[칼럼:조승연]프로게임계의 빛과 그림자

기본 연봉 3년간 5억4000만원. 성적에 따라 추가 매년 8000만원까지 옵션으로 제공. 국내 프로야구나 축구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e스포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SK텔레콤 소속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지난 4월 13일 소속팀과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3년간 7억8000만원의 사상 최대의 계약이었다. e스포츠팬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천재테란' 이윤열도 팬택엔 큐리텔과 3년간 6억원에 계약했다, 2억원으로 계약을 체결한지 얼마 안 된 일이다. 그리고 2002년 말 임요환이 오리온과 계약하면서 열린 '프로게이머 억대연봉 시대'는 이제 3년만에 '2억 연봉시대'로 넘어가게 됐다. 그만큼 프로게임계의 톱스타들의 몸값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위상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프로게임계는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최초의 프로게이머 신주영이 등장한지 7년여만에 정말로 화려하게 꽃핀 것처럼 보인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게임단을 만들고 리그를 개최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고, 문화관광부와 국회 등에서도 새로운 타입의 스포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프로야구와 같이 국가정책으로 시작된 스포츠가 아닌,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이기에 더욱 값지다. 흔히 하는 말로, '파이가 커진' 것이다. 그런데 그 파이를 누가 나누어 먹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진 '프로게임계'라는 파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일까? 임요환과 이윤열의 2억 연봉 뒤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는 무엇일까?

프로게임계의 그림자 - 스타플레이어 위주의 시스템

최근 2004 SKY 프로리그의 통합 챔피언십격인 '그랜드파이널'을 우승한 한빛스타즈 팀. 한빛스타즈는 최근 봉천동 근처로 숙소를 확장 이전했다. 이는 그랜드파이널 우승 이후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한 모기업의 약속의 일환이다. 감독과 선수들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더욱 좋은 성적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한빛스타즈 팀이 지금까지는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게임을 해왔나 하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팀의 연습생은 물론이고 일부 선수는 숙소에서 훈련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스폰서가 있는 팀은 그나마 나은 사정이다. 스폰서가 없는 팀의 사정은 훨씬 더 열악하다. 기본적으로 감독의 사비로 팀이 운영되며, 그 팀의 선수가 벌어오는 상금을 나누어 팀의 운영비에 보태 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선수들은 어려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 PC방이나 대학교 축제 등에 불려가 이벤트를 하고, 입담이 뛰어난 게이머는 게임방송에 출연해 돈을 벌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팀의 성적은 또 하락하게 된다.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2004년 초경, 이전에 있던 스폰서와 계약이 만료되고 스폰서를 구하기까지의 과도적인 단계에 있던 모 팀의 한 선수의 팬카페 운영자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라면이 아닌 쌀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말. 당시 그 팀 역시 인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팀이었으나, 스폰서가 없으면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만큼 아직 프로게임계는 양 극단에 서 있다. '억대 연봉', '2억 연봉'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있는 반면에, 그 이면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게이머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불균형은 어느 스포츠에나 존재한다고 강변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있지만, 마이너리그의 더블 A나 싱글 A에서 매일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연습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경우는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어쨌거나 메이저리그는 어느 정도 이상의 주전급, 혹은 부 주전급 선수는 일정 연봉을 보장 받지만, e스포츠에서는 '먹고 살만한' 연봉을 받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심한 편중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스타플레이어 위주의 마케팅에 있다. 굴지의 대기업이 프로게임계를 바라보고 있는 관점 자체가 e스포츠로서의 프로게임이 아닌, 몇몇 대형 스타를 타겟으로 하는 마케팅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례를 봐도 드러난다. 초대형 S급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모든 선수가 어느 정도 이상의 성적을 내고 끈끈한 팀워크와 용병술을 통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GO와 KOR팀. 허나 이 두 팀의 스폰서는 아직도 없다. 대기업은 이러한 팀을 장기적으로 맡아서 키우는 것보다는 몇몇 스타플레이어를 통해 기업을 '홍보'하고 싶어 한다. 장기적인 투자는 아직 꺼리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팀 내의 대표선수 몇몇만 연봉을 받고 나머지는 연봉없이 팀 운영비로 생활. 어느 스포츠도 이런 식으로 팀이 운영되는 일은 없다. 이러한 분위기가 바뀌어야 팀 간, 선수간의 극심한 빈부격차는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선수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e스포츠는 진정한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키워드는 팬과 선수, 리그 관계자 모두에게 있다.

스타크의, 스타크를 위한, 스타크에 의한 e스포츠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한 종목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고, 또 지적하고 있듯 e스포츠는 아직까지는 e스타크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협회에서 공식 지정한 e스포츠 종목은 많지만, 제대로 정기적인 리그가 열리고 프로게이머들의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고 있는 종목은 '스타크래프트' 하나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이어 2번째의 e스포츠 종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워크래프트3' 리그를 보자. '워크래프트3'리그는 한동안 침체를 겪었다. 한때 수가 급격히 늘어나 팀단위 리그까지 치룰 수 있었던 프로게임단이 하나 둘 사라졌다. 명망 높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은 한국에서의 희망이 안 보인다며 '워크래프트3'리그가 활성화된 유럽으로의 진출을 선언했다. 이는 어찌 보면 다른 스포츠에서 비인기종목이 극심한 위기를 맞고 있는 과정과도 같다. 투자의 부족이 관심의 부족을 낳고 리그는 침체된다. 그리고 그 침체가 또 투자의 부족을 낳는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이왕 투자하는 것 당장은 가시적인 성과가 뚜렷하고 투자대비 효과가 높아 보이는 '스타크래프트' 리그쪽에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한 종목만으로 굴러가는 e스포츠는 영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e스포츠 위기론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게임계가 지원 받는 데에 꼭 많은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유럽의 게임팀 SK(슈로엣 코만도)의 운영 방식은 우리나라 게임단들도 벤치마킹 할만하다. 이 게임팀이 특별한 점은 바로 '1기업 1팀'의 고정관념을 깨트렸다는 것이다. 한 기업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닌 여러 기업의 지원을 동시에 나누어 받으면서 기업이 한 팀 전체를 통째로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을 줄였다. SK뿐 아니라 유럽의 또 다른 명문 팀인 'Yperano' 역시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로지텍 등과 동시에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게임단을 창단하고 싶지만 주저하고 있는 기업들이 많고, 아직은 판이 커지지 않은 '워크래프트3' 리그, 혹은 다른 게임리그 쪽에서는 부담없이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원이 계속되고 최근 1회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WEG'가 계속 성공적인 개최가 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e스포츠'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분명 99년에 첫 방송리그가 열릴 때와 지금은 많이 상황이 달라졌다. 프로게임계가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새롭게 생긴 형태의 미디어에 'e스포츠'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외향적인 크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연봉 2억이 아닌, 3억 4억을 받는 스타가 탄생한다고 해도 내실이 다져지지 못하고 일부 스타플레이어와 스타크래프트 한 종목에만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라면 'e스포츠'는 허울만 좋은 바다 앞의 모래성일 뿐일 것이다. 프로게임계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해야 하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진정한 'e스포츠'를 향해 걸어야할 길이 아직 많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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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스타크 맵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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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 'Dual Space'로 제 2회 온게임넷 맵공모전 3위 입상

2004.2 온게임넷 맵제작팀(Ongamenet map architect team) 합류

2005.4 2005 EVER 스타리그 공식맵 'Forte'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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