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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WOW' 패치의 참담한 실패

조학동

공개 시범 서비스 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시작한 이래 길드원 접속목록에 내 아이디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항상 열 명 이상이 복작거리던 길드원 채팅창이 언제부터인가 한산하기만 하다.

작금의 '와우' 게이머 이탈과 하락세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썰렁하기만 한 길드원 접속목록에서 절실히 체감하게 된다. '명예점수 시스템'이 도입된 1.4.0 패치가 등장한 지난 21일, 한동안 뜸했던 길드원들이 기대와 호기심을 안고 다시금 모여드나 싶었지만 며칠을 가지 못한다. 진영간 전쟁을 활성화시켜 콘텐츠 부재에 허덕이는 게이머들의 투지를 불살라 주리라 예상됐던 이번 패치. 반응이 썩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게시판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다.

21일 단행된 1.4.0패치에서 많은 것들이 변하고 추가되었지만 그 중 단연 이슈가 되었던 것은 명예점수 시스템 도입이었다. 적 진영 플레이어를 죽임으로써 점수를 얻고, 그에 따라 명예호칭을 부여받고 초고급 아이템을 얻게 한다는 것이 이 시스템의 골자. 그동안 진영간 전쟁은 경험치나 아이템 등 보상이 전무해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기에 이번 패치는 전쟁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묘책으로 기대되어 왔었다. 허나 반응은 기대 이하. 무엇이 문제인가.

패치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진영간 전쟁의 문제점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렁 점수제도만 도입한 것이 일단 가장 큰 문제다. 보통 전쟁은 공격대(40명)나 그 이상의 단위로 일어나는 경우를 일컫는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동일지역에 집결했을 경우 발생하는 극심한 서버랙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최소한의 컨트롤만이 가능한 상태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 외에 일사불란하고 조직적인 전략적 행동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고 전쟁의 패턴도 천편일률적이다.

힐스브레드 구릉지에 위치한 얼라이언스의 '사우스 쇼어'와 호드의 '타렌밀 농장'을 각 거점으로 하여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먼저 전쟁 공격대를 구성한 쪽이 적진영의 마을까지 진격해 오면 수비 진영에서는 NPC경비병의 지원을 받아 공격 진영을 몰아내고 추격한다. 추격당한 쪽에서는 자신의 거점까지 후퇴해 다시 NPC경비병의 지원을 받아 적진영을 몰아내고 역추격 한다는, 마치 '우리집에 왜 왔니' 놀이와 다를 바 없는 패턴이 반복되며 점수를 얻을 뿐이다. 설사 한 진영이 패퇴한다 해도 영토확장이나 아이템 등의 보상이 전무해 성취감은 느끼기 힘들다.

물론 개개인의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소규모 국지전도 있다. 허나 다수가 소수와 싸울 때의 패널티가 거의 없는 탓에 승리의 키포인트는 중과부적(衆寡不敵), 즉 컨트롤 싸움도 전략 싸움도 아닌 머릿수 싸움으로 변질되게 된다. 서로 지원요청을 통해 경쟁적으로 머릿수를 늘리다보면 결국 대규모 전쟁이 되고, 앞서 말한 대규모 전쟁의 무한반복 패턴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무한반복 패턴이라도 보상이 노력에 상응한다면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일정기간 동안 고득점을 올린 '극소수'의 플레이어만 고급 아이템을 보상받을 수 있기에 소위 '노가다'가 아니면 순위권 내 진입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적게 지고 많이 이기는 게이머가, 혹은 기량이 뛰어난 게이머가 다득점하는 것이 아닌, 그저 오랜 시간동안 전쟁터만 쫓아다닌 플레이어가 다득점하는 시스템이므로 '폐인'이라 일컬어지는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니면 명예점수 보상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실 이런 불만마저도 행복한 고민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극심한 진영간 인구불균형을 보이는 서버의 게이머들. 상위 10여개 서버의 경우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인구비율이 2:1이하로써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호드진영에서도 큰 무리 없이 전쟁에 임할 수 있지만 인구비율이 2:1 이상으로 벌어진 그 외의 서버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호드 진영에서는 압도적인 인구 차이에 밀려 정상적인 전쟁이 불가능한 지경이고 얼라이언스의 경우 점수 획득에 필요한 호드 플레이어를 찾기가 힘들어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인구수 부족 서버일수록 진영간 인구 격차도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때문에 하위서버 게이머들 중에는 인구비율 사정이 좋은 상위서버로 이주를 단행하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버 간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명예점수 체제하에서 이런 현상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서비스 초기부터 제기되어온 서버간 인구불균형 문제와 진영간 인구불균형 문제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도입된 명예점수 체제는 문제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즈도르무 서버 인구비율 4.2:1



바엘군 서버 인구비율 4.5:1


불만의 목소리는 만렙들보다 하위 레벨 플레이어들에게서 더 높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벌어지는 전쟁과 적진영 학살로 인해 애꿎은 하위 레벨 플레이어들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하위 레벨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퀘스트를 즐기던 하위 레벨 플레이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플레이 장소를 옮겨가야 한다. 비록 일정 레벨 이상 차이가 나게 되면 적진영 플레이어를 죽여도 명예점수가 오르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지만 피아의 구분조차 힘든 격렬한 전쟁터에서 만렙의 자비를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만렙에 가까운 50레벨대 게이머들의 불만은 더 심하다.

50레벨 이하의 캐릭터는 만렙이 죽여도 명예점수가 오르지 않는 덕에 만렙들의 주타겟이 되지는 않지만 50레벨 이상의 캐릭터는 만렙이 죽이면 점수가 오른다. 때문에 50렙 이상의 게이머는 만렙과 대적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에서 그들의 점수벌이용 타겟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적 진영에 대해 무차별적 공격을 허용하는 전쟁서버라 하더라도 비(非)만렙 플레이어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학살을 방조하는 현 시스템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

대규모 패치로도 핵 프로그램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책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 역시 이번 패치에 대한 실망을 가중시키고 있다. 와우 커뮤니티에 유료 핵 광고가 버젓이 올라오고 있고 각종 공유 프로그램과 게시판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와우 핵 프로그램의 범람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으며 정상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느끼는 박탈감도 그에 비례하고 있다.

타계정 1레벨 캐릭터를 이용해 쉽게 골드를 벌어 본계정 캐릭터로 골드를 옮기는 행위는 '던전 입장가능레벨 제한'으로 막았다고 하지만 본 캐릭터를 이용한 작업이나 스피드 조작, 텔레포트 등은 아직도 패치 전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와우 홈페이지에 '철저한 로그 파일 조사와 추적으로 핵 사용 게이머를 엄격히 제재하겠다'는 공지가 내걸리기는 했지만 사실 핵사용 게이머에 대한 블리자드의 단속의지 표명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었고 게시판의 핵사용 후기로 미루어 볼 때 검거율도 대단히 낮은 실정이다. 대규모 패치 이후에도 정상작동 되고 있는 핵 프로그램을 볼 때 블리자드의 핵 단속 공지에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패치 이후 인던 입장가능 레벨에 제한이 생겼다


아직도 기존의 핵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다시 명예 점수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듯 산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쉽게 대안을 제시하기가 힘든 이유는 이 명예점수 제도의 도입자체가 시기상조이기 때문이다. 사실 명예점수 패치는 오래전부터 블리자드가 공언하던 'PvP전장 시스템'과 동시에 도입되었어야함이 옳다.

인스턴스 던전 형식으로 필드와 구분되어진 공간에서 일정수의 플레이어만을 입장시켜 전술적 전투를 벌인다는 전장시스템. 그것이 이번 명예점수 패치와 동시 도입되었더라면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다시금 와우 게이머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허나 국내보다 일찍 패치가 적용되는 북미에서조차 전장 시스템의 도입 시기에 관한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1.4.0패치는, 전장 시스템 패치의 도입 시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게이머 이탈에 대한 미봉책이라는 생각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이전 패치의 인스턴스 던전 추가로도, 이번 패치의 명예점수제 도입으로도 최근 체감되고 있는 와우 게이머의 흥미도 하락을 막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게다가 발등에 떨어진 '핵 범람'이라는 불도 쉽게 끄지 못하는 설상가상의 상황. 꺼져만 가는 불씨를 지필 수 있는 방안으로는 전장 시스템의 도입이 유일해 보이지만 과연 그 시기는 도대체 언제가 될 것인가.

하락세를 걷는 게임은 게시판의 글들이 뜸해지며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와우' 만큼은 아직도 게시판에 불만이 가득 찬 글들로 도배되기 일쑤다. '형이 애정이 있어서 패는 거다'라는 온라인 유행어처럼 그 불만들이 게이머들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하고 블리자드는 게이머 만족을 위해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애정을 갖고 패는 게이머들도 이제는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회우주닷컴 e-sports팀

1997~2000 월간 게임파워
2002~2003 월간 넷파워
현재 우주닷컴 e-sports팀

: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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