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PSE법 파장에 '日 중고시장 오리무중'

일본의 가전업계는 현재 PSE(PS는 Product Safety, E는 Electrical Appliance & Materials 의 약자로 붙여서 PSE)법에 의해 심각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PSE법이란 전기용품 안전법을 줄여 쓴 말로써, 전기용품 안전법이란 간단히 말하면, 'PSE마크'가 붙어있지 않은 전기제품은 판매를 금지하는 법률이다.

일본의 정식 법조문을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위의 발췌문을 보면 이 법이 가전기기가 해당 기준을 준수했을 경우, 제조업체는 PSE마크를 달 수 있고, PSE마크가 없는 물건을 취급하거나 팔아서는 아니된다~ 라는 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PSE법은 원래 전기안정성 검사를 국가 측에서 일일이 실시해서 까다로운 검사를 받아야 했던 것을, 안전관리를 메이커 측에 자율적으로 맡기는 제도로, 이를테면 '이제품은 전기 안전법을 준수했으며 우리가 검사해봤는데 이상 없었습니다' 라는 의미로 메이커 측에서 PSE 마크를 붙여서 팔아라 라는 것이다.(대신 PSE마크가 없는건 판매금지, 사고가 생기면 메이커 배상책임)


이법은 기존에는 생산 전 까다로운 신고절차를 거쳐 생산에 들어가야 했던 것을 생산 후 간단한 검사를 거쳐 PSE마크를 붙이는 것으로 완료할 수 있게 되었기에 제품생산이 자유롭고 스피디하게 되어, 메이커 측으로는 상당히 메리트가 큰 법률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 항목이 법효력 발효를 앞두게 되자 중고게임기 시장, 넓게는 중고 가전시장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법률이 제정된 것은 2001년 4월 1일로, 5년의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에 실제 법조항 발효는 2005년 4월 1일이 되었다. 하지만 2001년 4월 이후에 제조된 전자제품이나 게임기 등에는 확실히 PSE마크가 붙어서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현행의 전자제품들은 큰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법제정 이전에 PSE마크를 붙이지 않았던 제품들, 주로 중고 오디오기기, 전자악기류, 중고 게임기류가 완전히 판매중단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중고 게임기일 것이다. 과연 어떤 범위내의 하드웨어가 PSE법에 저촉되어 판매중단의 위기에 몰렸는가?

▷ 대상이 되는 게임기들

게임기에서 PSE법에 걸리는 게임기들은 쉽게 말하면 '어댑터'를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다. 즉 AC어댑터를 통하지 않고, AC어댑터를 본체에 내장하고, 그냥 전원케이블로 플러그 콘센트를 꽂아서 사용하는 기종들이 해당된다.


이상의 게임기들이 법에 저촉되는 범위에 들어가게 되었고, 당연히 하드웨어의 유통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게임샵 들은 해당 중고기기의 매입, 판매를 일제히 중단하고 관련 소프트웨어의 취급도 중단했다.

이렇게 취급점 들이 일사불란한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후 PSE마크를 붙이지 않은 물건을 팔다가 적발될 경우 최악의 경우 가게 간판을 내려야할 수도 있기 때문인데, 제조업자로 등록해 PSE마크를 알아서 붙여서 판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때는 판매한 물건이 사고가 났을 경우 제조업체가 모조리 다 배상해야하므로 게임샵들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물론 전기안전법은 말 그대로 '안전'을 위한 법률이므로 이에 대해 판매점들도 국민들도 그 필요성에 대해서 납득하기는 하지만, 메리트가 있는 건 제조사측일뿐, 엄청난 양의 중고를 고철값에 팔아넘겨야 하는 판매점, 그리고 중고를 사고팔면서 자금을 충당하고 비싼 기기나 게임을 싸게 구할 수 있었던 고객층으로서는 디메리트 밖에는 없는 법률인 관계로 법시행이 코앞에 다가오자 게이머나 판매업자들에게서 불만의 소리가 높아져가고 있었다.

▷ 불공정한 행정이 중고업자들의 시위를 촉발

3월 14일, 영향력 있는 유명 음악인의 항의에 의해 중고악기류가 PSE법에서 제외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애초에 중고 악기류도 PSE법 내에 들어가는 것으로 발표되어서 4월 1일 이전에 재고를 모두 처분하기 위해 싼값에 상품을 처분한 중고악기 업자들은 이같은 처사에 대해 임기응변식 행정이라고 비난했고, 악기류 제외 방침에 기타 중고 유통업자들은 불평등한 처사라고 반발하기 시작, 결국 각지에서 중고업자들에 의한 시위가 발생했다.

원래 일본인들은 검소하기로 유명한데, 그만큼 중고품에 대한 애착이 높고, 한 가지 제품도 오랫동안 고쳐서 사용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것은 최근까지 일본의 리사이클(재활용) 장려와 맞물려 빈티지 패션(헌옷패션) 같은 새로운 유행까지 만들어내고 있었던 상태였는데, 국가가 나서서 거기에 직접 찬물을 끼얹은 형국이 된 터라, 그 반동은 굉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부랴부랴 법 시행을 1주일 앞둔 3월 24일, 빈티지 특별승인제도(ビンテ-ジ特別承認制度)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원래 PSE 마크란 전술한대로, 전기용품 안전법에 적합한 것을 나타내는 인장, 이 마크 없이는 전자제품을 4월 1일부터 판매할 수 없게 되지만 경산성은 빈티지품(ビンテ-ジ品)이라고 불리 우는 귀중한 중고기기만을 엄선해 예외로 취급, 약 2000종의 리스트를 경산성의 사이트에 올렸다.

그와 함께 'PSE마크'가 없는 전자제품의 경우도 중고물품 거래를 일종의 *주1)렌탈로 분류, 렌탈 기간이 끝난 후 판매업자가 PSE 마크를 획득하는 식으로 예외조항을 두면서, 렌탈기간이나 렌탈종료 후 PSE인증의 강제조항을 없애는 방식으로 유예를 두기로 해 사실상 PSE마크 가 없이도 중고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해 양자를 모두 PSE법에서 완전히 독립시켰다.

원래 경산성은 해당법률의 시행을 반강제로 밀어붙이려는 인상이 강했고, 이 상황에서 결국 불공정한 탁상행정으로 인해 대량의 재고를 떠안게 되거나 큰 손해를 입은 중고업자들과, 무리한 법 시행으로 인한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해당 항목의 법해석을 뒤집음으로써, 결국 PSE법은 '4월시행' 이라는 껍데기만 남기고 결국 해당항목은 유명무실화 되고 말았다.

  • 주1) 전기용품안전법에서는 제조, 판매업자는 4월 1일 이래, 2001년 4월 이전에 제조되었던 PSE마크가 없는 중고, 신고전화제품은 원칙적으로 판매금지지만, (1)수출, (2) 개인간의 판매, (3) 렌탈품에 대해서는 마크가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게 예외규정을 둔 것인데, 여기서 게임기 등에 대해서 경산성은 '모두가 렌탈품' 으로 취급함으로써 거래가 가능하게 풀어준 것

▷ 그러나 혼란은 끝나지 않는다

일단 게임기 쪽의 판매금지는 풀렸다고는 하나, 일단 한 번 붕괴단계에 들어간 중고시장은 쉽사리 복귀될 조짐이 없다. 여전히 야후 옥션 등에서는 엄청난 저가에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줄줄이 나와서 팔리고 있고, 한국이나 동남아로 중고기기를 헐값에 팔아넘기는 업자들도 딱히 눈에 뜨이는 중단 움직임은 없다.

거기에 일단 한번 거래를 중단한 시점이고, 이후 거래를 다시 재개한다고 해도, 제 가격을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리라는 것은 뻔한 일, 그에 따른 영업상의 피해와 신용도의 추락을 감안하면서까지 대형 양판점들이 중고매입과 판매에 다시 나설지도 의문이다.

게임뿐만 아니라 예외항목으로 분류된 다른 품목들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 4월 중순까지 PSE 법 예외 적용 심사를 받기 위해 여러 가지 서류와 검사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검사 기준이나 방법도 확실하지 않은데다 무척이나 까다롭고, 제대로 된다고 해도 세계 최초로 '국가공인 골동품'이 나올 판국이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에서는 아예 'PSE법은 악법' 이라는 구호와 함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 산업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법

PSE 법으로 인한 일련의 소동은 제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법제정을 잘못하면 후진국보다 못한 혼란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가 되었다. 관련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는 만큼, 한번 정해서 시행해버리면 마치 비이커의 용액에 염료를 풀어 넣듯이 순식간에 전국에 그 영향이 미치고, 그에 따른 반사작용이 곧바로 정부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법제정과 시행에 있어서 신중할 필요성이 있는 법이다. 이번 정책은 국민을 생각하기 보다는 신규 수요 창출을 위해 중고시장 와해를 노리는 제조업체들과 일본정부의 합작품이었던 만큼, 시행에 있어서 상당한 무리가 예상되어 왔음에도 강행한 경산성의 행동은 정경유착이 아직도 일본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음을 잘 알수있게한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비교하자면, 국내의 경우에도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고 업체의 손을 들어주는 법이 가끔 눈에 띈다. 단지 법조문 하나의 파급효과도 이러할 진데, 국민의 이익보다는 업체의 이익을 우선시한 법안(도서정가제라든지)도 가끔 소리소문 없이 통과시켜온 국내 실정에서 게임산업, 애니메이션 산업 등이 제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다시 사그러져 가는 건 어찌보면 필연이요, 예고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일본 중고시장의 상황이 어찌 풀릴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법안 자체가 유명무실화 되었다고는 하나, 언제 해석이 뒤바뀔지 모르는 일, 일본의 이런 파장을 다시 한 번 새겨두고 국내 게임 법 또한 신중하게 완성되길 바라는 바이다.

글 : 김효식(kdash2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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