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와 PS3, ‘그 숨겨진 전략과 의미’

소니社의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이하 PS3)의 가격 문제로 세계가 들끓고 있다. 염가형 예상가 55만원. 표준형 예상가 70만원. 도저히 게임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가격이다.

지난 E3를 통해 PS3의 가격이 발표되자마자 게이머와 언론은 물론, 심지어는 경제계의 투자가들 까지도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그 결과 소니의 주식은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게임계의 패권을 휘어 잡으리라 예상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번 사건은 그만큼 큰 충격이었던 듯. 각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애초에 PS3의 구상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심각한 의견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작 사태의 중심인 소니의 거두 쿠타라기 켄 회장은 그리 동요하고 있지 않은 듯, 자신만만한 태도로 각 언론의 인터뷰에 대응하고 있다. 도대체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있는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게임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전세계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흐름과, 그 안에서 PS3의 자리매김을 폭넓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자아, 게임기적인 면에서 잠시 나아가, 가정용 엔터테인먼트의 흐름에 맞추어 보자. 조금만생각을 해보면 블루레이 디스크(이하 BD) 시스템과 PS3의 런칭 시기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절묘하고 탁월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현재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5.1 채널 스피커와 대형 모니터 등을 앞세운 이른바 '홈 시어터 시스템'으로 이행하는 중이며, 관련 매출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이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 HD-TV라 불리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기.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HD-TV는 "인간의 모공까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해상도를 자랑한다고 한다.

바로 이 '높은 해상도' 때문에 현행 DVD 매체를 통한 영상 콘텐츠를 HD-TV의 해상도로 출력하면, 결코 만족스러운 화상을 얻을 수 없다. 글쓴이도 개인적으로 HD-TV로 DVD를 시연한 실물을 직접 볼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경계선 마다 작은 색종이가 보이는 듯한(보통 이를 두고 '도트가 튄다'고 표현한다) 조악한 화면을 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결국 무엇인가를 통해 이 화질의 차이에서 생기는 괴리를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생겼다. 구타라기 회장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부분으로, 이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매체로서 BD 시스템을 홍보하며 이를 PS3에 탑재시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BD 시스템은 아직 이르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HD-TV는 기존의 디스플레이 기기를 점점 대체해나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소니의 HD-TV, 즉 신형 '브라비아' 시리즈의 저가 정책과 성장세. '브라비아' 시리즈의 가격은 소니 제품 치고는 지나치게 가격이 낮은 편으로, 한국을 기준으로 보자면 삼성의 '보르도' 시리즈와 10만원 가량 밖에 차이 나지 않으며, 이러한 저가 정책을 기반으로 '브라비아' 시리즈는 가파른 곡선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고가 정책을 유지해온 소니가 이처럼 저가로 물건을 내놓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이상의 의미로, 소니가 자진하여 HD-TV의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아마도, BD 시스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일환일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이며, 그 장소는 다름 아닌 유럽의 독일이다. HD-TV의 수요는 월드컵 개최에 발 맞추어 유럽을 기점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소니를 비롯한 HD-TV 생산자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일단 HD-TV를 구입하고 나면 그 화질을 감상한 사람들이 현재의 영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차세대 영상을 요구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마도 월드컵이 종료된 후의 올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차세대 영상 매체의 수요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즉 DVD 시장으로부터 차세대 영상 매체 시장으로의 이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높은 가격의 HD-TV를 구입한 가정이 새로운 영상 재생 장치를 덜컥 구입할 수는 없다. 최소한 3개월 정도는 지나야 HD-TV로 구멍난 재정에 여유가 생긴다고 보면, 구타라기 회장이 PS3의 출시를 11월로 결정한 것이 결코 섣부른 판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추수 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시즌, 그리고 HD-TV 시장의 성장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시기가 바로 2006년 11월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발매일에 임펙트를 주기 좋아하는 소니로서는 11월 11일이 주말이라는 점도 행운의 표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개인적으로 11월 11일은 닌텐도의 게임기 Wii의 발매일에 더욱 어울린다고 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BD 시스템의 라이벌이라 할 만한 HD-DVD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똑같이 HD-TV의 혜택을 받는 매체이지만, 강력한 지원을 약속하던 마이크로 소프트의 X-Box 360은 '외장형 드라이브 추가'라는 형식으로 뜨뜻미지근한 자세를 보이고있다. 조금 심한 말로 마이크로 소프트가 X-Box 360에 '외장형 BD 시스템 추가'를 발표하거나 '중국산 X-Box 360용 외장 BD 시스템'이 등장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피터 무어 부사장은 이번 E3에서 BD가 보편화된다면 XBOX360용 BD 외장 디스크를 발매할 수 있다는 선언을 했다) 게다가 얼마 전 출시된 HD-DVD 플레이어는 1000 달러로 PS3에 비해 훨씬 비싸다. 여기에, 영화 소프트의 가격 역시 BD를 지원하는 측에서 다소 싸게 책정해 버렸으니 난감한 상황.

사실, 영화사들의 입장에서는 BD 시스템이던 HD-DVD던 성공하는 쪽을 지원하면 그만이고, 광학 드라이브의 명가인 삼성과 LG마저 이미 BD 시스템과 HD-DVD 양쪽 모두 기기를 생산할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니 결국 재생 기기의 초기 보급 문제가 승부의 관건이 된다. 바로 여기서 구타라기 회장은 '차세대 영상 재생 기기로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PS1, 2의 역사를 거쳐온 고품질 게임 플레이'를 내세운 PS3로 기선을 제압한다는 전략을 내세우리라고 본다. 심플하지만 매우 무게감이 있는 전략이다.

어차피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싸움이란 수 많은 개미들을 상대로 한 '분위기 몰이 싸움'이다. 대중이란 어느 쪽이 우세한 분위기다 싶으면 순식간에 그 쪽으로 몰리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쿠타라기 회장의 공언대로 초기 600만대의 출하를 달성 할 수 있다면, 그 시점에서 BD 시스템의 승리가 결정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2부에서 계속-

글 : 최낙윤(hjhan@kr.fujits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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