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3, ‘차세대기의 제왕이 되기 위한 조건’

게임기로서는 가히 쇼크라 해도 좋을 만큼 높은 가격으로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혹독한 악평을 들었던 PS3. 하지만 지난 E3 2006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던 부정적인 여론이 요 며칠 간은 다소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각 언론사마다 세세한 수치는 틀리지만, PS3의 성공을 점치는 소비자들이 절반 이상이라는 여론 조사 결과도 심심찮게 재기 되고 있을 정도니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봐도 좋겠다.


하지만, 소니 입장에서 '이제는 안심'이라고 말할 만큼 여론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PS3가 성공하고, 나아가서는 블루레이 디스크 시스템(BD-시스템)이 차세대 광학 매체의 표준 자리를 차지하려면 당면한 여론 문제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것이 많다.

지난 1부(http://gamedonga.co.kr/gamenews/gamenewsview.asp?sendgamenews=17399)에서 언급한바 있지만, 소니는 월드컵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보일 HD-TV 시장을 염두에 두고 PS3의 런칭 시기를 11월로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매우 훌륭한 노림수라는 점에서는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노림수'란 어디까지나 앞 일을 예측하고 행하는 것으로, 주변 상황이나 그 때의 운세에 따라 실패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PS3를 필두로 하는 BD(블루디스크) 시스템의 가장 큰 위협요소로서 영화 전문가들은 HD-DVD 시스템을, 게임 전문가들은 닌텐도의 새로운 게임기 Wii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XBox 360를 꼽는다. PS3는 양방향으로 압력을 받고 있는 형국인 셈이지만, 이처럼 '양다리'를 걸치면 한쪽의 리스크를 다른 쪽으로 메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현재 HD-DVD 플레이어는 유럽을 중심으로 판매를 시작, BD 시스템에 대해 시장 선점효과를 노리는 중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디스플레이 장치인 HD-TV의 시장 장악력이 아직 까지는 약한데다 HD-DVD 콘텐츠 조차 심각하게 빈곤한 탓에(런칭 당시의 영화 콘텐츠는 3개 뿐이다) 난항을 겪고 있다. 심지어 HD-DVD를 사놓고도 주로 DVD를 감상하는 경우가 많다는 보도까지 있는 정도. 아직까지는 HD- DVD가 제대로 된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결국 진짜 승부처는 지난 1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월드컵 이후 HD-TV가 본격적으로 시장을 지배해 들어가는 시점이다. 그러나 고가의 HD-TV를 사는 즉시 차세대 광학미디어 플레이어를-그것이 BD 시스템이던 HD-DVD던 간에- 냉큼 구입할 가정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정도 가계부의 빨간 글씨가 사라져 갈 때쯤, 즉 최소 3개월 이상이 흐른 뒤인 10월 이후부터 차세대 광학미디어 플레이어의 수요가 늘어난다고 보면 HD-DVD와 비교하여 발매가 늦었다고 해서 PS3가 받는 패널티는 거의 없다.

또한, 콘텐츠 문제에 있어서도 HD-DVD와 BD 시스템 진영간의 갭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많은 전문가와 평론가들이 '영화사의 이익'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한 편이지만,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익으로, 이는 영화사 역시 마찬가지다. 수 십 년간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벌여온 소니는 '영화사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제시해 줄 수 있는지'를 명확히 제시해 줄 수 있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소니의 저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기업이 이득을 얻는 방법은 본질적으로 '적은 돈으로 많이 판다'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플랫폼 홀더측에서는 비록 많이 팔린다는 것을 100% 보장해 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은 돈으로 생산'하게 해준다는 것은 보장해 줄 수 있다.

현재 BD의 디스크 생산단가가 높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디스크 생산단가가 높은 만큼 플랫폼 홀더가-즉 소니가- 가져가는 로열티를 싸게 해버리면 영화사 입장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현재 플레이어의 가격은 HD-DVD가 BD 시스템의 그것보다 싸지만, 현재 공시된 콘텐츠의-간단히 말하면 영화 한 편- 소매 가격은 오히려 HD-DVD가 조금 더 비싼 수준이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로열티를 포함한 BD의 원가가 어느 정도 낮지 않다면 이런 정책은 펼 수 없다.

오히려, 영화 산업에 있어서 BD 시스템의 가장 큰 불안요소는 예상 밖으로 HD-TV 시장이 커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HD- TV가 없는 가정에서 굳이 차세대 광학 미디어 플레이어를 들여놓을 리는 없고, 이는 바로 차세대 광학 미디어 플레이어의 판매 악화로 이어진다. 이 경우는 PS3가 꿈꾸는 구상 자체가 완전히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HD-DVD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겠지만, 둘 다 쓰러져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하에서는 굳이 공평하고 자시고를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소니는 '보르도' 브랜드를 저가로 풀어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내려 하고 있다. 게다가 2010년 즈음이면 실제 PS3의 판매시장인 경제 상위권 국가들의 절대 다수가 HD 방송을 의무화 할 예정이므로 HD-TV의 보급 문제는 심각히 우려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확률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언제든 소니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수 있다. 이 부분만큼은 HD-DVD 진영이든, BD 시스템 진영이든 그들의 손으로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영화산업과는 또 다른 전장인 거치형 게임기 시장 측면을 살펴보자면, 적어도 이쪽에서만큼은 소니가 상당한 우선권을 점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 또한 E3 2006 개최 전까지의 이야기로, 이제는 업계의 상식이 되어버린 진동 기능이-게임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 중 이만큼 저렴하고 탁월한 것도 없다- 삭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상 소매가격이 무려 600 달러를 넘나드는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PS3를 기다리던 전세계 게이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PS3와 소니를 그들의 '주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난 E3 2006 이후 일본에서 XBox 360의 판매가 증가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과거 게임계의 독재자로 군림하던 닌텐도의 새 게임기 Wii에 대한 관심이 연일 증폭되고 있을 만큼 게임계의 상황은 PS3에 부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소니에 반감을 품고 있던 세가의, 혹은 닌텐도의 팬들은-이들 중 일부는 신도라고 불리고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타도 소니'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으로, 현재의 분위기로만 본다면 PS3를 구입할 게이머는 전체의 10%도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여담이지만, 이처럼 특정 브랜드를 사용함에 있어서 우월감을 넘어 '소속감'을 가지는 현상은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마케팅 방안의 하나로서 연구 가치가 높다).

하지만 게임기가 가진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은 얼마나 급진적으로 빠르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의 Xbox360과 Wii가 지금으로선 통용될 수 있을지 모르나, 당장 1-2년 뒤에는 '성능'이 부족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직까지 Xbox360과 PS3의 게임적 성능 차에 대해서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게이머들이 많지만, 실제로 E3에서도 Xbox360 진영은 30인치 수준의 LCD를 채용했고 PS3 진영은 40인치, 크게는 60인치까지 LCD를 포진한 것을 보면 '게임 영상에 대해 어느 쪽이 훨씬 자신이 있는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발매가 되지 않은 Wii는 차치하고서라도, PS3의 발표 이후에 Xbox360이 폭발적인 판매 증가를 이루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많은 잠재수요들은 PS3를 욕하면서도 발매될 때까지 기다려본다는 입장일 것이다.


물론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영화 산업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인 게임 산업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영화 전문가들은 대체로 BD-시스템과 HD-DVD 시스템을 이야기 할 때 게임기로서 PS3가 가지는 파괴력에 대해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PS3는 BD 시스템의 보급률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기폭제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PS 시리즈는 전세계에 수 억 대 이상 보급되어있고, 그만큼 브랜드 가치가 높은 존재다. 만일 소니가 이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 PS3의 발매 초기에 기존 PS 시리즈의 10분의 1 수준 정도 이상 판매한다면, 이는 즉 BD 플레이어를 약 2천 만 대 이상 보급시켰다는 의미가 된다. 보급률을 최우선으로 치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2천만 대의 플랫폼을 보급한다는 것은 사실상 승부를 결정 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소니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영화 팬들 만으로는 결코 저 같은 실적을 낼 수 없다. 베타 비디오와 VHS의 뼈 아픈 역사를 알고 있는 그들은 섣불리 차세대 플레이어를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PS 시리즈를 알고 있는 게임 팬이라면 기대를 걸어 볼만 하다. 게임 팬들은 영화 팬들과는 달리 '이미 팔리고 있는 멋진 작품' 보다 '앞으로 나올 멋진 작품'에 더욱 흥미를 보이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 심리를 활용하여 초기 보급대수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 때문에 게이머들의 도움이 없다면 그만큼 소니로서는 '결정타'를 날리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게임기를 어필하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수법은 '타 기종과의 비교를 불허하는 멋진' 게임 그래픽과 '미래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재미'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게임 그래픽으로 상대를 압도하려는 시도는 XBox 360의 '헤일로 3', '기어즈 오브 워' 등 화려한 미국산 FPS 게임들의 프로모션 덕분에 큰 효과를 보기 힘들게 되었다. 차선책인 '새로운 재미'마저도 플레이어의 몸놀림을 이용하는 파격적인 형식의 게임과 24시간 온라인 서비스를 제시한 Wii에게 완전히 눌린 상태.

어차피 PS3를 게임기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당장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서서히 게이머들의 마음을 달래서, 적어도 올 연말 까지는 PS3를 구입할지 말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소니가 당면한 큰 과제이다.

아이러니 한 이야기지만, 소니는 이 문제의 해법을 영화 산업에서 찾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 게임 시장의 주된 수입원이 20대 이상의 성인, 즉 자체적인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며 이들이 영화 시장의 소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소비 성향이 신용 카드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지름신 강림'으로 불리는 충동 구매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영화와 게임 양방으로 강력한 콘텐츠의 제공을 약속하면서 '지를 이유'를 제시한다면 영화와 게임을 동시에 즐기려는 요즘의 소비자들은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일단 지르는' 행태를 보일 공산이 크다.

일단 PS3는 '파이널 판타지', '메탈기어 솔리드' 등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시리즈물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지독하기로 유명한 격투 게임 팬들을 최소 20만씩은 끌어들일 수 있는 '버추어 파이터'나 '철권' 시리즈의 최신작까지 가세한 상태. 강력한 시리즈물만으로도 PS3는 전세계적으로 최소한 200만의 골수 팬들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특유의 강력한 마케팅으로 '지름신'을 소환, 구타라기 회장이 장담한 '초기 600만대 보급을 그리 어렵지 않게 달성 한다…' 라는 것이 소니의 '큰 그림'일 것이다. 일단 초기 600만 대 보급이 끝나고 나면 영화사든 게임 개발사든 PS3 콘텐츠를 판매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므로, 흔히 말하는 대중, 라이트 게이머들 역시 점점 PS3로 이동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강력한 마케팅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영화 콘텐츠의 보급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현재 전체 쉐어의 50%에 가까운 영화사들이 BD 시스템 측도 지원할 것임을 밝히고 있는 상태이며 최근 소니 픽쳐스의 '다빈치 코드'를 비롯, 여타 BD를 지원하기로 한 영화사들의 흥행 실적도 꽤 좋은 편이다.

HD-DVD 플레이어 보다 두 배 가량 비싼 가격이긴 해도, 이것은 가전 소매상들의 마진율만 보장해 준다면 그쪽에서 '게임기능'과 '매체 자체의 성능이 우수함'을 강조하며 입심으로 소비자를 현혹시켜 줄 수도 있다. 기실 PS2 시절 소니는 약 5~7%의 마진을 보장해주었었고, E3 2006 당시 일본에서는 PS3의 표준 기기의 가격이 '오픈 프라이스'로 제시되기도 했을 정도니 이번에도 상인들을 꽤나 신경 써줄 모양이다.

문제는 역시 소비자들의 입소문. DVD 플레이어로는 완전히 낙제점이었던 PS2와 같은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금의 거치형 게임기 소비자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영화 시장, 즉 홈시어터의 소비자이고,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훌륭한 BD 플레이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더라도 'PS3로 가격대 성능비 좋은 BD 기반 홈시어터를 구성할 수 있다'라는 소문 정도는 떠돌아야 '지름신' 소환이 완성되리라고 본다.

PS3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게임기로 시작한 PS 시리즈가 적지 않은 힘을 영화 산업에서 끌어오려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경제 상위국에 있어서 전자 엔터테인먼트의 달라질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3부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글쓴이 : 최낙윤(hjhan@kr.fujits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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