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PK, '대전 게임이 진화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통해 상대방과 1대 1로 승부를 겨루는 걸 흔히 대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승부적인 요소를 최대한 살린 게임을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로 표현한다. 최근에는 대전 게임의 영역이 넓어져 많은 인원이 한 번에 대전을 즐기는 온라인 게임들도 다수 등장하고 있으며 예전에 등장한 게임들의 시리즈가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임도 있다.

이런 대전 게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90년대 초반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출시부터다.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가 대전 게임의 시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커맨드 입력' 시스템이나 캔슬, 필살기 등의 시스템이 대부분 이 게임에서 확립되었기 때문에 '스트리트 파이터'야 말로 격투게임의 기본적인 모습을 잡은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로 두 개의 라인이나 필살기를 도입했던 '아랑전설' 시리즈부터 타격 부위에 따라 얼굴 등에 손상을 입는 '용호의 권' 시리즈, 무기를 들고 싸우는 최초의 격투 게임 '사무라이 쇼다운' 시리즈, 체인 콤보(특정 시간 사이에 버튼을 연속적으로 눌러서 기술을 만드는 키 입력 기술)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사용한 '다크 스토커즈' 시리즈까지 손가락 발가락 전부 더해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출시됐다. 게임동아에서 이 많은 대전 게임들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역사와 시리즈의 발전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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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도 대전 게임의 시작은 '공수도'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로 처음 등장한 게임은 데이터이스트社의 '공수도'로 1980년 중반에 아케이드 센터에 출시되어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보면) 개척한 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두 명의 가라데 선수가 등장해 대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 게임은 두 개의 방향키를 조작해 적과 대전을 펼칠 수 있었다. 물론 그때 당시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가 생소했던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이 '공수도'를 시작으로 아케이드 센터에서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가 생겨나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 외에도 펜싱을 소재로 한 '그레이트 소드맨'이나 1985년 출시한 '이어 쿵푸'(국내명 소림사), '여자 산시로' 등도 출시되어 본격적인 대전 게임 경쟁이 시작됐다.

*대전 게임의 춘추전국시대 1990년

1980년도부터 1985년 사이에 등장하는 대전 게임들은 '공수도' 이후 특별한 변화점 없이 그래픽만 강화된 형태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가 없던 시기에 대전 게임 장르의 획을 그은 게임이 1987년 등장했다. 단순한 키 입력 형태의 대전 게임 모습을 일거에 바꾼 작품이 출시된 것이다. 바로 2D 대전 게임의 명가로 잘 알려진 '캡콤'에서 제작한 '스트리트 파이터'가 그것. 기존의 대전 게임들은 레버를 한쪽 방향으로 입력하며 펀치 버튼이나 킥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형태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스트리트 파이터'의 경우 레버 입력은 점프, 이동, 앉기 등으로 제한시키고 아래, 앞, 펀치라는 연속 커맨드 입력 방식을 사용해 기술(그때에는 필살기라는 단어가 없었다)을 쓰도록 했다. 이 방식은 그때 당시에는 "어렵다" "복잡하다"는 이유로 크게 환영 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3년이 지난 후에 후속작 '스트리트 파이터2'가 출시되면서 '연속 커맨드 입력 시스템'(또는 복합 커맨드 시스템)이 인정받게 되고 본격적으로 대전 게임이 발전되기 시작했다. '스트리트 파이터2'는 이 외에도 일반 평타와 기술을 연결하는 캔슬 시스템과 연속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콤보, 공격을 많이 맞게 되면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 그로기 시스템 등 참신하고 다양한 시스템을 내놓았다. 이때 나온 다양한 시스템은 이후로 등장하는 모든 대전 게임에 영향을 주게 되고 많은 게임들은 이 시스템을 발전시킨 형태의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1991년 SNK가 출시한 대전 게임 '아랑전설'은 '스트리트 파이터2'가 가진 커맨드 입력, 캔슬 시스템 외에도 '2웨이 런'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사용했다.(아마도 '스트리트 파이터2'의 아류작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을지도) '2웨이 런' 시스템은 한 개의 라인에서 싸우는 일반적인 대전 게임과 다르게 2개의 라인을 번갈아 이동하면서 싸우는 시스템으로 게이머는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맞춰 라인의 위치를 선택할 수 있고 2인 플레이 시에 한 명의 적을 상대로 두 명이 괴롭히는(?) 진풍경을 연출할 수도 있었다. (이후 '아랑전설' 시리즈는 '3웨이 런'까지 위치를 늘렸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SNK의 '용호의권'이 등장해 리얼한 타격감과 스토리를 선보였으며, 최초의 무기 격투 게임 '사무라이 쇼다운'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세가의 '버닝 라이벌', 타이토의 '카이저 너클' '단쿠가', 아틀러스社의 '호열사 일족', 코나미의 '마샬 아츠' '구극 전대 다단단' 등 많은 대전 게임들이 등장해 대전게임계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서양 개발사 미드웨이의 살인 대전 게임 '모탈컴뱃'이 등장하기도 해 오락실에 간 순순한 아이들의 동심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전 게임은 게임 자체의 참신한 요소보다는 유명 게임의 좋은 점만 베낀 아류작 형태로 등장해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증가해버린 대전 게임은 그 포화를 이기지 못하고 1990년대 중반부터 몇 개의 대형 개발사만 두고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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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에서 3D로 새로운 형태의 대전 게임의 출현

1990년대 중반 시기는 대전 게임의 대형화 및 세대교체시기로 아류작 형태만 보여준 대전 게임 개발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캡콤, SNK, 세가, 남코 등의 대형 회사들이 살아남아 자신들의 개성이 묻어난 대전 게임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1993년 업계 최초로 3D로 제작된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는 포화 상태의 2D 대전 게임 시장에 질린 게이머들을 사로잡으며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했다. '버추어 파이터'는 가상적인 공격과 직선적인 공격 위주의 2D 게임과 다르게 사실적인 공격과 잡기, 다운 공격 등 현실감을 살린 점이 특징이었으며, 가드 버튼을 따로 채용해 키 입력의 다양화를 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링 아웃이라는 요소를 도입해 무조건적으로 도망가는 일을 줄인 점 역시 2D 대전 게임에서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재미를 안겨줬다. 이후 1994년 팩맨으로 유명한 남코의 3D 대전 게임 '철권'이 아케이드 센터에 출시되면서 3D 대전 게임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철권'은 '버추어 파이터'와 다르게 가상적인 캐릭터와 공중 콤보, 10단 콤보 등 다양한 공격 형태를 제공해 시원하면서 현란한 공격 위주로 게이머들을 현혹시켰다. 그리고 소니의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타카라社의 3D 무기 격투 액션 '투신전'이 등장했으며 아틀라스의 '헤븐즈 게이트', 3차원 공간에서 날아다니면 싸우는 '사이킥 포스' 등 다양한 방식의 게임들이 제작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 외에도 2D 게임처럼 다양한 콤보가 가능했던 캡콤의 '라이벌 스쿨'(원명 사립 저스티스 학원)이나 '투신전' 이후로 뜸했던 무기 격투 게임인 세가의 '소닉 파이터' '라스크 브롱크스' 남코의 '소울 엣지' 등이 등장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물론 이 시기에 2D 게임이 완전 사장된 건 아니었다. 2D 대전 게임의 명가인 캡콤과 SNK는 'X맨 VS 스트리트 파이터'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를 매년 출시하면서 3D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화려함을 보여줬으며, 슈팅 게임으로 유명한 사이코社의 괴작 '타락천사'와 선소프트의 '갤럭시 파이터', SNK와 ADK가 합작으로 제작한 '월드 히어로즈' 시리즈 등이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3D 게임의 강세로 인해 2D 게임들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정말 몇 개의 대형 개발사를 제외하면 3D 게임으로 넘어가거나 개발을 중단하는 사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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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기를 맞은 대전 게임 시장

90년대 후반에는 3D 대전 게임 명가들이 등장하면서 오랜 시간 인기를 끄는 대전 게임 장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버추어 파이터'나 '철권' 시리즈는 엄청난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남코의 '소울 엣지'는 '소울 칼리버' 시리즈로 변하면서 맨손 격투 게임 못지않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제로 시리즈와 정식 후속작인 '스트리트 파이터3'을 내놓으면서 2D 대전 게임 명가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시기는 꼭 좋은 시기만은 아니었다. 2D 대전 게임이 몇 년 사이에 대 부분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3D 대전 게임 역시 포화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투신전'으로 큰 인기를 얻은 타카라社 역시 후속작들의 연이은 실패를 막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아틀라스 역시 대전 게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른 장르로 전환을 시도했다. 이런 현상은 유명 게임을 개발한 세가도 마찬가지. 세가는 '버추어 파이터' 외에 '라스트 브롱크스', '파이팅 바이퍼즈' 등을 출시했지만 후속작 정도만 출시하고 사라졌으며, '스트리트 파이터'의 3D 게임을 제작한 아키라 역시 참신한 시스템을 도입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PS2로 '스트리트 파이터 EX 3'을 출시한 이후 더 이상의 시리즈를 개발하지 못했다. 물론 아케이드 시장의 포화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 하나만으로는 큰 재미를 줄 수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또한 콘솔 게임기 시장이 발전하면서 대전 게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르에서 3D 그래픽을 즐길 수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도가 부족한 3D 대전 게임은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대전 게임들은 색다른 모드를 추가해 콘솔 게임기로 대전 게임을 출시하기 시작했으며 그 도전은 의외로 괜찮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초월 이식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남코의 경우 콘솔로 출시한 '철권'에 아케이드 '철권'에서는 볼 수 없던 고화질 CG와 엔딩, 숨겨진 캐릭터, 대전 장르가 아닌 다른 게임 모드 등을 추가하면서 가정에서도 대전 게임을 즐기게 했으며 자사의 '소울 칼리버' 역시 숨겨진 무기를 찾으며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엣지 마스터 모드'나 전략 시뮬레이션 모드인 '크로니클 모드' 등을 넣어 게임의 수명을 길게 했다. 세가에서도 PS2용 '버추어 파이터 4'에 실제 유명 플레이어의 데이터를 넣고 순회하며 대결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옵션을 넣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대전 게임 자체의 재미는 사람과 사람이 싸울 때 생기는 것이기에 이런 변화 점에 대해 크게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정에서 친구들이 없이도 사람 대 사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건 없을까?" 이 생각은 테크모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 2 울티메이트'에서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다. 그때 당시의 플랫폼인 Xbox의 온라인 기능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대전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가정용에서 문제시 되던 싱글 플레이의 단점을 극복했으며 차후에 등장하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 4'를 통해 새로운 커뮤니티의 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진화, 나중에는 어떤 발전이?

기술력의 발전은 대전 게임 또한 온라인의 반석 위에 올려다놓았다.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로 가능한 대전 게임의 온라인 화. 최근에는 그래텍의 '잼파이터'나 한게임의 '권호', 넷마블의 '그랜드 체이스', 윈디소프트의 '인피니티' 등 다수의 인원이 동시 들어가 즐길 수 있거나 콘솔 게임 못지않은 그래픽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콘솔이나 아케이드 시장에서 선전한 대전 게임 수준의 높은 퀄리티의 대전 게임은 아직 출시되지 못했다. 즉, 아직 온라인을 통한 대전 게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발전적인 모습을 보면 대전 게임이 게임 시장에서 선전하고 출시되는 건 아마 게임 시장이 존재하는 동안은 계속 등장할 것 같다. 단순한 입력의 2D 게임에서 복잡한 배경의 3D게임으로, 아케이드 센터에서 사람들과 즐기는 대전 게임에서 가정에 앉아 편안하게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들과 대전을 즐기는 지금의 모습까지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는 참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다. 앞으로 대전 게임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기자 입장에서는 지금의 모습으로 오랜 시간 있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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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게임 장르의 최초 최초!

대전 게임이 많이 출시되었지만 이 중에서 요즘 출시되는 게임들의 모티브가 된 게임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자.

최초의 대전 게임 : 공수도(데이터이스트 / 1980년)

최초의 커맨드 입력 게임 : 스트리트 파이터(캡콤 / 1987년)

최초의 무기 대전 게임 : 사무라이 쇼다운(SNK / 1993년) (타이토에서 개발한 황금성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황금성은 횡스크롤 아케이드 게임이었으며 2인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최초의 줌인 아웃 시스템 채용 게임 : 용호의권 (SNK / 1992년)

최초의 신체 손상 게임 : 용호의권 (SNK / 1992년)

최초의 실사 대전 게임 : 피트 파이터 (아타리 / 1990년)

최초의 살인 대전 게임 : 모탈컴뱃 (미드웨이 / 1991년)

최초의 체인 콤보 사용 게임 : 뱀파이어 (캡콤 / 1994년)

최초로 배경이 부서져 스테이지가 넓어진 게임 : 호열사 일족 (아틀라스 / 1993년)

최초로 몬스터가 등장한 대전게임 : 뮤턴드 레슬링 (데이터이스트 / 1991년)

최초로 제작된 국산 대전 게임 : 왕중왕 (빅콤 / 1994년)

최초로 공중에서 싸운 대전 게임 : 사이킥 포스 (타이토 / 1996년)

최초의 3D 대전 게임 : 버추어 파이터 (세가 / 1993년)

최초로 바스트 모핑을 도입한 게임 : 데드 오어 얼라이브 (테크모 / 1998년)

최초의 히든 캐릭터 : 고우키 (아쿠마 / 수퍼 스트리트 파이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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