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삼국지11, '이제는 3D다'

'이것을 세 번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대화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이들의 필독서가 되어버린 삼국지. 이 삼국지에 매년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코에이가 17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10'이라는 기념비적인 숫자를 찍더니 여기에다 1이라는 숫자를 하나 더 붙여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은 작품이 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 같지만, 삼국지 마니아를 자청하는 기자는 삼국지 시리즈가 출시될 때마다 지겹다는 생각보다는 이들이 삼국지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또 어떤 노력을 했을 지에 대한 궁금함으로 설레인다. 물론 가격도 비싸고 매번 형편없는 인공지능에 분개하긴 하지만 새롭게 시도된 것들이 주는 재미는 이것을 상쇄하는데 충분하기 때문이다(삼국지보다 신장의 야망 시리즈에 좀 더 노력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시리즈 최초로 3D 그래픽을 도입하고, 전술 시스템을 강화해 전투의 재미를 극대화시켰으며, 일기토와 10편에도 도입된 설전도 3D로 변화시키는 등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 이제는 사양 높은 컴퓨터가 필요하다.


삼국지 시리즈를 인스톨하고 실행시키면 언제나 친숙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삼국지 시리즈의 그래픽도 서서히, 그리고 꾸준하게 발전하긴 했지만 그 변화의 폭이 액션 게임처럼 충격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변했다는 것을 체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너무나도 큰 변화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게임을 인스톨하고 실행시키면 왠지 수묵화 또는 벽화와 같은 느낌의 같은 분위기의 오프닝이 게이머를 반긴다. 그리고 본 게임화면에 들어가면 시리즈 최초로 3D, 그리고 수묵화같은 분위기로 표현된 필드가 게이머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삼국지 마니아라면 삼국지 시리즈가 7, 8편은 장수제, 9편은 군주제, 10편은 다시 장수제로 변화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의 규칙대로 다시 군주제로 돌아갔는데 필드 역시 9편처럼 하나의 통짜 맵을 사용해서 그 안에서 내정과 전투가 동시에 이뤄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9편의 경우에는 2D 쿼터뷰 화면을 사용하다보니 지형이 입체적이지도 못했고 부대가 많으면 겹쳐서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시점을 게이머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사실적이며, 또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다.

단적으로 촉 지방에서 험한 지형 때문에 산 사이의 외길로만 가야하는 모습을 보면 이번 작품의 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런 그래픽의 발전은 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매번 조그마한 녀석들이 나와서 챙~챙~챙~챙~ 거리던 일기토 역시 큼지막한 3D로 바뀌어서 마치 '진삼국무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으며, 설전 역시 상당히 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시리즈 최초로 나이에 따라 캐릭터 이미지가 변화하기 때문에 꽃미남 조운의 발랄한 매력과 늙은 조운의 중후한 매력을 같이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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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의 핵심은 전투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삼국지 시리즈가 장수제와 군주제를 교대로 사용하고 있다보니 이번 작품은 10편이 아닌 9편의 후속작이라고 해도 될만큼 게임 진행 방식이 9편과 닮아있다. 내정은 최소한으로 간소화시켰으며, 대신 전투의 중요성이 커져 게이머는 장수를 스카웃하고, 병사를 모아 적들과 싸우는 것만 신경 쓰면 된다. 특히 내정의 경우에는 죽어라 수치를 올려야 했던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건물 몇 개만 지으면 끝이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간편해졌다. 하지만 9편과 11편의 전투는 재미라는 측면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다. 9편의 경우에는 장수들의 움직임을 게이머가 직접 컨트롤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게이머들이 굉장히 짜증을 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게이머가 부대의 움직임을 직접 컨트롤할 수 있어 더 이상 멍청하게 행동하는 아군들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더 재미있는 부분은 단순히 일반 공격에 비해 조금 더 센 것에 불과했던 전법에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코에이 마니아라면 PS2용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전기'를 해봤을 텐데 이번 작품에서는 '삼국지전기'에서 도입됐던 전법의 연쇄가 그대로 적용됐다. 예를 들어 창병의 경우에 돌출이라는 전법을 사용하면 적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한 칸 뒤로 밀려나는데 만약 그 뒤에 함정을 파 놓았다면 공격을 당함과 동시에 뒤로 밀려나면서 함정에도 빠지는 방식이다. 그리고 장수들은 자신보다 무력이 낮으면 공격할 때 크리티컬 대미지가 뜬다거나 상대방이 건 계략을 다시 반사시키는 등 여러 가지 독특한 특기를 가지고 있어 장수의 개성을 더욱더 강조함과 동시에 전법을 사용하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새로운 편이지만 코에이의 새로운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선 노, 말에 불과했던 무기를 창, 극, 노, 말로 세분화시켜 각 무기별 상성관계를 부여했다. 또한 장수들에게 각 무기별 적성을 부여했는데 이로 인해 아무리 무력이 높은 장수라도 적성이 맞지 않은 부대를 이끌고 나가면 전법을 사용할 수 없게 돼 전투에서 고전을 면할 수 없게 된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기교 포인트다. 이것은 각종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쌓이는 보너스 포인트인데 이것을 많이 모으게 되면 기교연구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쉽게 말해 전법의 위력을 향상시키고 좀 더 상위의 전법을 습득하게 해주는 것으로 게임을 오랫동안 진행해서 기교연구를 끝까지 진행하게 되면 전략에 의한 일발역전이 주는 재미가 얼마나 화끈한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 삼국지의 꽃 일기토와 설전


전투의 발전은 정말 눈부신 편이지만 일기토와 설전의 발전 역시 그에 못지않다. 먼저 일기토의 경우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화려한 3D 화면으로 바뀌면서 마치 '진삼국무쌍'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일기토에 임하는 장수의 스타일, 그리고 필살기의 종류 및 사용 타이밍을 게이머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게 해 일기토를 바라보는 재미가 아니라 직접 즐기는 재미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한 명씩만 붙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3명의 장수가 교대하면서 싸울 수 있도록 시스템이 변경됐는데, 이것을 적극 이용하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장수도 이길 수 있으며,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여포와 자웅을 겨루던 호로관 전투의 한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다.

전작인 10편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설전 역시 시스템을 더욱 갈고 닦아 파워업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10편의 설전은 말판에서 한 줄을 만드는 일종의 빙고 같은 시스템이었다. 뭐 그다지 복잡한 시스템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쉬운 편도 아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던져준 다음 그 주제에 걸맞고, 또 센 대사를 하는 쪽이 이기는 조금 복잡한 가위바위보 형식을 띄고 있다(예를 들어 도리가 주제일 때 한쪽이 도리-소를 내고 다른 쪽은 도리-대를 냈다면 도리-대를 낸 쪽이 이기는 방식이다). 물론 이것뿐이라면 너무 간단해서 싱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주제에 관련된 발언 이외에도 상대방의 발언을 무시하고 이쪽의 발언을 관철시키는 '대갈' 등 다양한 특수 발언들이 존재하며, 흥분 게이지라는 것이 있어서 적의 공격을 계속 받아 흥분하게 되면 '소심' '냉정' 등 각 장수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특수 기술이 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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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의 고질적인 약점


'10'이라는 기념비적인 숫자를 찍었던 전작은 시리즈 최대의 볼륨과 작품성을 선보이며, 코에이가 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짐작케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팬들의 반응은 이전 작품에 비해 굉장히 안 좋은 편이었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멍청한 인공지능으로 인해 새롭게 시도된 시스템들의 장점이 모조리 묻혀버렸으며, 공교롭게도 시리즈 최악의 수준이었던 한글화가 네티즌들의 레이더망에 걸려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삼국지 시리즈의 골수팬인 기자도 대사 중에 등장하는 '님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코에이 코리아에서도 이번에는 신경을 좀 썼는지 '님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여전히 존대말과 높임말이 왔다갔다하는 등 어설픈 번역이 게이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 하지만 전작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시리즈 최초로 시도된 중국어 음성은 삼국지다운 분위기를 더욱더 잘 살려주고 있기 때문에 한글화에 대한 불만을 덜어주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부분은 아쉽게도 한글화처럼 관대하게 넘어가기 힘들다. 매번 삼국지 시리즈의 문제이고, 게이머들에게 가장 많이 지적받는 부분이면서도 이번 작품 역시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투는 이전 작품에 비해 훨씬 어려운 편이다. 한 세력과 세력이 맞붙을 경우 한 세력이 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병력을 보내오기 때문에 전투가 굉장히 오래도록 지속되며, 성을 지키는 것이 이전 시리즈보다 어렵다. 그렇게 전투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인공지능은 바보짓을 반복하고 있으며, 생산이 아닌 다른 위임을 시켜놓으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여러 도시를 한꺼번에 관리를 해야 하는 시스템 특성상 위임은 필수인데, 인공지능이 이렇다보니 조금만 성이 늘어나도 게임이 금새 지겨워질 수 밖에 없다.

*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타이틀로는 충분하다.


막판에 이래저래 불만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작품이 이전 작품과는 다른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은 그야말로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시도된 전투 시스템도 인상적이다. 특히 각종 전법과 함정의 연계, 그리고 단순 숫자로만 평가받아오던 장수들의 개성을 살려준 특기 시스템은 기존 시리즈의 병력 위주의 단순한 전투를 실감나게 바꿔놓는데 성공했으며, 일기토와 설전도 생기면 즐거운 미니 게임이 아니라 없어선 안될 게임의 핵심 시스템으로 성장한 느낌이다. 물론 후반부에 가면 여전히 지루해지고, 인공지능도 실망스럽고, 한글화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게다가 장수제 일 때 삼국지를 처음 접한 게이머들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더욱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숨 가쁜 전투를 한번 즐겨보면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밤을 세고, 또 다음 시리즈가 언제 나올까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1편이라는 장수 시리즈로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온 삼국지 시리즈, 3D로 새로운 변혁을 예고하고 있는 이 게임은 여러 불안요소에도 불구하고 꼭 즐겨보고 겪어봐야할 게임이 되었다. 단순히 유비-장비-관우와 조조의 대결, 제갈공명 등으로 대표되는 삼국지를 떠올리지 말고, 삼국지가 주는 깊숙한 매력을 느끼기 위해 이 게임을 플레이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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