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가 아날로그스틱의 창조자?게임상식 뒤집기

요즈음의 가정용 게임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아날로그 스틱(Analog Stick)'은, 단순한 디지털 8방향 입력만이 아닌 360도의 다양한 방향과 세기를 인식하는 입력 도구입니다. 예전에는 주로 PC용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서 부유감을 주기 위한 전용 조이스틱 외에 그 사용 예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아날로그 스틱이 지금처럼 거의 모든 3D 게임에 쓰이게 된 것은, 아날로그 스틱이 달린 컨트롤러를 표준 탑재한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 64(Nintendo 64)'와 동시 발매작 '수퍼 마리오 64(Super Mario 64)'의 공이 컸지요.

하지만 많은 게이머들이 인지하고 있는 '상식'과는 달리, 아날로그 컨트롤러를 처음으로 표준 탑재한 가정용 게임기는 닌텐도 64보다 훨씬 이전인 1982년에 출시된 '아타리 5200(Atari 520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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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 5200의 컨트롤러는 전화기를 연상케 하는 숫자판과 컨트롤러의 양 옆에 붙은 버튼 등의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숫자판 위에 달린 뭉툭한 막대기가 바로 아날로그 스틱이지요. 아타리 5200의 아날로그 스틱은 현재 쓰이는 것과 달리 스틱에서 손을 떼면 조준점이 자동으로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오토 센터링(Auto Centering)'기능이 없었으나, 같은 해 미국 'GCE(General Consumer Electronics)'에서 출시된 '벡트렉스(Vectrex)'라는 게임기의 컨트롤러는 오토 센터링 기능을 갖춘 아날로그 스틱을 탑재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적인 아날로그 스틱의 기원이 바로 이 벡트렉스라는 의견도 있지요.

아타리 5200과 벡트렉스 이후 가정용 게임기에서 오랫동안 모습을 감춘 아날로그 컨트롤러는, 1991년 일본의 '전파신문사/마이컴 소프트(電波新聞社/マイコンソフト)'에서 출시된 'XE-1AP'로 다시 가정용 게임기에 돌아왔습니다. XE-1AP는 좌측과 우측에 각각 아날로그 스틱과 아날로그 스로틀(상하 혹은 좌우로만 움직이는 출력 조절형 레버)을 탑재한 컨트롤러로, 세가의 가정용 게임기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와 X68000, FM-TOWNS, MSX 등의 일본 PC에도 대응되는 다기종용 컨트롤러였지요.

XE-1AP에 대응되는 게임은 당시 인기를 모으던 세가의 체감형 게임이 대부분이었는데, '애프터 버너(After Burner)'나 '스페이스 해리어(Space Harrier)'등에서 특유의 부유감을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3800엔(약 12만원)이라는 가격이 문제이긴 했지만...

XE-1AP의 발매로부터 약 5년이 지난 1996년 6월 23일, 아날로그 스틱 보급의 일등공신인 닌텐도 64와 수퍼 마리오 64가 발매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7월 5일에는 '세가 새턴(Sega Saturn)' 전용 아날로그 패드인 '세가 멀티 컨트롤러(Sega Multi Controller)'와 대응 소프트 '나이츠(NiGHTS ~into dreams...~)'가 발매되게 되지요.

새턴용 아날로그 컨트롤러의 이름이 '멀티 컨트롤러'였던 것은, 케이블 접속부를 분리해서 다양한 추가 주변기기를 장착할 수 있게 한 구상의 컨트롤러였기 때문입니다. 이 컨트롤러에 추가 장착하는 진동+기울기 감지 센서 유닛의 사진이 이후 여러 게임지에 공개되었지만, 결국 실제로 발매되지는 못했지요. 이 컨트롤러는 방향 스틱 외에도 L/R 버튼을 아날로그화 해서 자동차의 페달을 밟거나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듯한 느낌을 주게 만든 '아날로그 트리거(Analog Trigger)'를 최초로 탑재한 가정용 게임기용 컨트롤러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컨트롤러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비화가 있는데, 닌텐도 64의 아날로그 패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무렵 수퍼 마리오 64의 개발진들이 마리오를 움직이기 위해서 새턴용 아날로그 컨트롤러의 프로토타입을 이용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죠. 어떻게 라이벌 회사의 주변기기(그것도 프로토타입)을 입수할 수 있었는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얼마 전에 미국에서 개최된 게임쇼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에서 선보인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3(PlayStation 3)'에까지 그 기본 디자인이 이어지는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아날로그 컨트롤러는 약 10년 전인 1996년 11월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이 컨트롤러에서 처음 사용된 2개의 아날로그 스틱 동시 탑재는 그 이후의 가정용 게임기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이후 출시된 게임기 중 세가의 '드림캐스트(Dreamcast)'를 제외한 모든 게임기가 컨트롤러에 2개의 아날로그 스틱을 표준 탑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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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현재의 비디오 게임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된 입력 장치인 아날로그 컨트롤러의 역사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사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중에는, 인터넷 게임 커뮤니티 등에서 흔히 보이는 '닌텐도만이 아날로그 스틱을 비롯한 주류 게임 입력 체계를 창조해 냈고, 다른 회사들은 그것을 카피하기만 할 뿐이다'라는 식의 글을 너무나도 많이 접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닌텐도가 아날로그 스틱과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는 3D 게임들로 이후 아날로그 스틱을 표준화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에 못지 않은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을 해 온 다른 회사들을 '카피'라는 한 마디로 매도하는 것은 왠지 석연치가 않더군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고, 서로 다른 문화나 아이디어가 영향을 주고 받는 예는 드물지 않습니다. 서로의 가는 길을 부정하고 자신의 생각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외치기보단, 서로에 대해서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게임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보다 성숙한 게임 팬 문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객원필자 = 배현호(leadku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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