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심의, '손해보는 사람은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시절 양식과 절차에 맞추어 게임을 내놓았지만, 한 순간에 불법이 되어 20억 이상을 손해 봤습니다'지난 7월19일 있었던 게임 등급분류 개선 대 토론회에서 한 아케이드 사업자가 한 말이다. 이 사업자는 영등위 당시 심의기구가 시키는 대로 적법하게 진행을 해 왔는데 자신이 왜 그렇게 큰 손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 손해를 어떻게 보상 받아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얘기는 영등위 이후 탄생한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가 주관하는 대부분의 토론회나 비슷한 형식의 공청회 등에서 늘 나오는 단골 소재다. 위와 같이 주장하는 이들은 '바다이야기' 등의 사행성 게임을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사행성 유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해 왔는데도 '국민의 주적'으로 몰린 자신들이야 말로 '피해자'라며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 게임물 심의와 사법부 판단은 별개

지난해 11월 야심차게 시작된 게임위는 '이전 영등위와는 다를 것'이라는 김기만 위원장의 말처럼 발 빠른 행보를 해나가고 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심의 파장, '오디션' 경찰 사건 등 게임업계 전반에 큰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게임업계 모두가 게임위에 수긍하고 이에 발 맞추어 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위가 정해놓은 각종 절차에 맞게 게임을 심의 받고 출시 하더라도 향후 사법부가 '불법' 판정을 내리면 해당 사업자는 졸지에 불법을 행한 '피해자'가 된다는 것에 있다.

현재 'GTA' 등 다소 폭력적인 게임들이 성인 등급을 받고 출시되어 있지만 만약 사법부에서 이를 '불법 폭력물'로 분류한다면 졸지에 불법물로 전락하게 된다. 이렇게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제도적인 '모순'에 대해서 피해를 보는 경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 사안이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위의 한 관계자는 "게임위에서 등급을 정당하게 부여했더라도 어디까지나 최종 판단은 사법부가 하는 것"이라며 "갑자기 사법부가 심의 받은 게임을 불법이라고 판단하더라도 현재로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강해진 심의 절차, 게임업계들 '헌법에 위배된다' 주장

이러한 제도적인 모순과 과거 '바다이야기' 파장 등 과거 영등위의 영향으로 게임위에서는 심의 절차를 대폭 강화해 내놓은 상태다. 사전에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로 비추어지지만 게임업계는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게임 심의를 거치려면 '게임물 자기기술서' 등 게임위가 요구하는 각종 서류와 동영상을 체크해 올려야 한다. 또한 게임 내에서 1시간마다 한 번씩 이용등급과 내용정보를 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 지난 19일 열린 등급분류 개선 대토론회에서는 반발 의사가 피력됐다.

게임산업협회의 최승훈 정책국장은 '현 게임위의 등급분류는 법률에서 정한 등급분류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제도 및 행정'이라며 개선을 요구했으며, 토론회를 참관하러 온 한 관람객 역시 본지 기자에게 "영화를 보는데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오른쪽 상단에 심의 내용과 이용등급이 표시된다면 신경 쓰여서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겠냐, 게임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게임위 관계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사전에 완전 봉쇄해야 한다" 라며 "청소년들을 비롯해 사람들에게 유해한 게임을 즐기지 못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있다"고 입장을 설명했다.

  • 준사법권 문제, 그리고 게임업계 활성화에 초점 맞추어야

위에 언급한 제도적인 모순은 현재 게임위에 '사법권을 부여해야 하는가'의 논란으로 귀결되고 있다. 현재 게임위는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불법 사행성 단속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단속을 하다가 오히려 사행성 게임기 업주들에게 협박 당하기도 하는 등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것, 또 위에 언급한 것처럼 사법부와의 분리로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도 게임위의 준사법권 인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사법권을 부여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사법권을 부여한다면 모든 업무 처리가 문화관광위원회 쪽에서 내려오게 될텐데 오히려 신속하게 일이 처리되지 못해 효용성 측면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또 과거 영등위 시절과 비교해서 크게 개선된 편이지만 게임업계에서는 게임위가 게임 규제의 기관이 아니라 게임 활성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게임위가 진정한 게임사들의 파트너사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게임업계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해한 게임의 방지도 중요하지만 게임의 활성화도 중요한 사안"이라며 "게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좀 더 사업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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