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DONGA

[게임비평]'레퀴엠' 한국 게임의 전형적인 문제를 보여주다

정동범

한밤중에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언가 섬찟한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그리고 이미 우주 저 멀리로 날라 가버린 잠 덕분에 더이상 잠이 오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때 갑작이 알수없는 소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돋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레퀴엠'을 처음 봤을때 기자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눈앞에 직접적으로 보여지지는 않지만 은근히 소름끼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또한 게임에 접속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붉은 색이 돋보이는 접속화면 부터 시작해서 게임에 들어갔을때 보이는 우울한 배경은 왠지 뱀파이어들이 판을 치는 우울한 느낌을 한껏 돋구워 주웠다. 마치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특히 화면 곧곧에서 보이는 카메라 시점은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자극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했던 흔적들도 엿보였다. 예를 들어 훈련장을 나와서 첫번째로 방문하게 되는 론델 마을이 지하이기 때문에 들어갈 때마다 지하의 심연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선사하며, 마을 곳곳에 보이는 왠지 우울한 분위기들은 당장이라도 알수 없는 마물들이 마을을 침략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더욱 마음에 드는건 무척이나 편리한 인터페이스다. 전투 방식도 간단하고 기술 사용도 간단하고 한마디로 누구나 쉽게 게임에 접근해서 플레이해 볼 수 있다. 물론 전투시에서 보여주는 액션도 꽤 볼만하다. 칼이나 혹은 둔기로 몬스터를 공격할때 보여지는 효과들도 무척 깔끔하고 몬스터들 역시 여타 게임에서 보여지는 귀엽거나 웅장하다는 느낌 보다는 레퀴엠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기하게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서 소개한 것이 레퀴엠이 가진 특징의 전부라는 것이다. 레퀴엠은 분명 성인들을 겨냥해서 만든 게임이다. 성인게임이라는 어감이 왠지 굉장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인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철학과 사고, 그리고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아직 레퀴엠에는 그런것들이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래픽 그럭저럭 괜찮고 다른 게임들에 비해 좀 잔인한 연출이 추가 됐다는 정도? 더 나아가 과거에 만들어진 게임들에 비해 전혀 발전하지 못한 게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동안 한국 게임산업의 가장 심각한 고민 중에 하나가 기획자들의 부재였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은 어떤 신념도 이야기도 없이 몬스터만 사냥해 아이템을 얻고, 어느 정도 레벨업이 되면 서로 싸운다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공식을 가진 노가다 게임이라는 편견이 생긴 이유가 바로 제대로 된 기획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면서 요즘 등장하는 게임들, 그리고 개발되어지고 있는 게임들도 충실한 시나리오와 다양한 콘텐츠를 위해 전력을 다해 개발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라그나로크로 전세계 게임 시장을 점령했던 그라비티가 무려 5년을 개발한 게임이 이렇게 과거로 역행하는 듯한 어이없는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개발사쪽에서 아직 자신들이 준비한 것들이 모두 공개 되지 않았을뿐 다양한 콘텐츠들을 준비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아직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게임을 출시한 것이니 게임을 보는 안목이 개발자 뺨 칠 정도로 성장한 수많은 게이머들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레퀴엠의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한 목적 설정이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게임내에 들어와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가상의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전무하다. 물론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시나리오 역시 허술하기 그지없다. 대충 만들어진듯한 싯구 몇개가 레퀴엠에 대한 설명의 전부다.

더욱이 그 싯구 조차도 내용이 잘 와닿지 않는다. 몇가지 튜토리얼 퀘스트 같은 것들을 해결하고 나면 더 이상 보여지는 콘텐츠들은 없다. 아마 근래에 나오는 캐주얼 게임들도 레퀴엠 보다는 더 탄탄한 내용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잘 봐 주려 해도 게임내에 등장하는 퀘스트들은 대충 매충 만들어서 구색만 맞추었다는 느낌 그 이상은 들지 않는다. 과연 본 기자만 레퀴엠을 가혹하게 평가한 것일까? 아니다. 실제로 레퀴엠에 관련된 각종 게시판들을 보면 게이머들의 불만 사항이 끔찍할 정도로 가득 차 있다.

최근 국내 게이머들은 단순하게 진행되는 사냥 그리고 아이템 획득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눈앞에 보이는 고블린(판타지 게임에 주로 등장하는 하급 몬스터)을 공격 하더라도 명확하게 공격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몬스터들과 혹은 다른 종족들과 전투를 벌여도 난 왜 이들과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원한다.

성인게임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그리고 하드코어 액션이라는 칭호를 달고 게임 시장에 등장했다면 반드시 그에 걸맞는 내용들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성인게임들을 준비하는 다른 게임사들에게 민폐만 끼칠 뿐이다.

아마도 지금 레퀴엠 개발자들은 레퀴엠의 다양한 버그들과 시스템적인 문제들을 해결을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앞서 게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면 레퀴엠은 그냥 그저그런 게임으로 게이머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다.

: 게임비평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