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걸작' 액션 게임

시작하며...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닌텐도'라는 이름을 모르는 게이머는 없을 겁니다. 수퍼 마리오, 젤다의 전설, 별의 카비, 포켓 몬스터 등등... 닌텐도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명작 게임들은 개성적이면서도 귀여운 여러 캐릭터와 함께 게이머는 물론 게임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도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폭넓은 지지기반을 가지는 닌텐도의 게임들 중에서도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등의 동양권에서는 인지도가 상당히 낮은 게임이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메트로이드(Metroid)'시리즈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에 리뷰할 '메트로이드 퓨전'은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4번째 작품으로, 미국의 게임 사이트 IGN에서 역대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한 전작 '수퍼 메트로이드'로부터 무려 8년이나 후에 발매된 후속작입니다.(게임큐브용 '메트로이드 프라임'도 동시에 발매)필자도 메트로이드란 게임을 접하게 된 것은 이 작품이 최초였는데, 리뷰를 쓰는 지금은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팬이 되어 있습니다.(^^) 극렬 세가 신자인 필자를 이렇게까지 빠져들게 한 닌텐도 게임(뭐 세가 게임을 좋아한다고 닌텐도 게임을 싫어하란 얘기는 아니지만 서도...), 메트로이드 퓨전의 매력에 관하여 설명하도록 하지요.

정말 닌텐도 게임 맞아?
'닌텐도 게임'이라고 하면 여러분들께서는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장르의 기본에 충실한 게임'이라던가,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게임' 등의 여러가지 이미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귀여운 캐릭터가 주로 등장하는 게임'이란 인상도 지우기 힘든 것이 닌텐도의 게임이지요. 하지만, 메트로이드 퓨전은 이런 닌텐도 게임의 선입견과 180도 다른 게임입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층을 겨냥한, 치밀하게 짜여진 SF적 세계관이라던가 마치 어드벤처 게임이나 비주얼 노벨 게임을 보는 듯한 이벤트 신, SF 영화를 연상케 하는 연출이라던가 전문용어와 어려운 한자의 전면적 사용은, 이것이 과연 닌텐도 게임인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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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사무스 아란(Samus Aran). 저 연령층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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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노벨'을 연상케 하는, 화면을 채우는 빽빽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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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게임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게임과 '파이어 엠블렘'시리즈를 해보시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하지만, 닌텐도는 어딘가의 모 회사처럼(...뜨끔...)자신들의 최대 고객층에 대한 일절의 배려 없이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더군요. 이 게임에선 어려운 한자나 전문 용어에 익숙치 않은 어린이들을 위해, 쉬운 문장으로 스토리를 설명해 주는 '어린이 모드'를 선택 가능합니다. 이 모드로 진행하면 저 연령층 유저들도 쾌적하게 게임을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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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모드/어린이 모드 중 하나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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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모드로 게임을 진행할 때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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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의 모든 텍스트는 알기 쉬운 말
(물론 일본 어린이 기준)으로 바뀌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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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배니아' 시리즈의 아버지?
메트로이드 퓨전은 기존의 메트로이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넓은 맵을 탐색하며 보스를 없애거나 아이템/특수 능력을 획득하는 등의 '탐색형 액션 게임'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모두 잃어버린 주인공 사무스는 처음에는 단순한 빔 건 발사와 점프만을 사용할 수 있지만, 모든 능력을 다 갖춘 후반에는 냉동 미사일이라던가 파워 봄 같은 여러 가지 무기와 새로운 능력을 갖추게 되지요. RPG 게임처럼 특별한 레벨 업 개념은 없지만, 역경을 헤쳐나갈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사무스를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러한 특정 이벤트를 통한 캐릭터의 성장이라는 것은 닌텐도의 또 다른 명작 게임 '젤다의 전설'시리즈와도 비슷한 면이 있지요. 액션 게임이면서도 레벨 업이나 돈 모으기를 위해 소위 '노가다'를 해야 하는 게임들보단, 이렇게 플레이어의 실력 향상에 캐릭터의 능력 업을 맞춰가는 쪽이 액션이라는 장르상 더욱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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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룸에서 임무를 확인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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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데이터(무기)를 획득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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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를 물리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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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능력을 획득. 이것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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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게임 스타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바로 코나미의 인기 게임, '악마성 드라큘라'의 새로운 시리즈 '캐슬배니아' 시리즈가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요(정확히는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부터). 이런 형식의 탐색형 액션은 사실 이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원조인 것입니다. 캐슬배니아 시리즈를 먼저 접해 봤던 저로서는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지요. 캐슬배니아가 다양한 무기와 아이템, 레벨 업 등의 RPG적 요소로 메트로이드와는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면, 탐색 액션의 원조 메트로이드만의 재미는 무엇이 있을까요? 필자는 다채로운 액션과 더욱 복잡한 길 찾기(주로 숨겨진 아이템 획득을 위한)이 캐슬배니아와의 차이를 만드는 주된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게임만의 독특한 액션인 '공 모양으로 변하기'를 써서 좁은 틈이나 굴 속을 조사하는 것은, 지금 봐도(이 액션이 처음 등장한 것이 1984년의 메트로이드 1부터니까...)정말 참신한 시도라고 여겨지네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시나리오도 이 게임의 묘미 중 하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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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로록~ 왠지 쥐며느리(곤충의 일종)가 생각난다(...).


일절의 군더더기 없이 치밀하게 짜여진 맵을 돌아다니며 임무를 해결해 가면서, 교묘하게 배치된 숨겨진 아이템들까지 찾느라 지루해질 새가 없는 게임의 구성은, 지금까지 메트로이드 시리즈를 전혀 플레이 해 본적 없는 저로서도 왜 전작 수퍼 메트로이드가 그렇게도 찬사를 받았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주더군요.

더블 메트로이드를 즐기자
이 게임과 동시 발매된(일본 기준)게임큐브용 '메트로이드 프라임'과 이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면, GBA 케이블을 이용한 연동 기능으로 더욱 다양한 재미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두 게임을 모두 클리어 한 데이터를 서로 연동시키면 메트로이드 프라임에서 새로운 복장의 사무스(메트로이드 퓨전에서 바뀐 파란색 복장입니다)를 사용할 수 있으며, 패미컴판 오리지널 메트로이드를 플레이 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큐브가 없는 저로서는 한 번도 시험해 보지 못한 기능입니다만, 닌텐도 팬들은 두 기종을 같이 구입하는 경우가 많고, 같은 캐릭터가 나오는 게임이 두 기종 모두에 출시되는 경향도 많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팬 서비스 차원에서는 정말 좋은 기능이라고 여겨지네요. GBA 연동이 없이는 2인 플레이 이상이 불가능한 '파이널 판타지 크리스탈 크로니클'등은 좀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옥에도 티는 있다
여러 가지로 장점들로만 뭉쳐있는 듯 보이는(게다가 특별히 장점이 아닌 요소들-사운드나 플레이 시간 등-도 별로 흠잡을 데는 없는 평범한 수준인)메트로이드 퓨전입니다만, 유독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띄는군요.
게임의 엔딩을 보면 갤러리 모드가 생기는데, 이 갤러리 모드에 등록되는 그림이라곤 엔딩 후에 나오는 사무스의 전신 그림(클리어 조건에 따라 4종류로 나뉩니다)이 고작. 이벤트 신에서 나오는 고화질의 그림들은 결국 게임을 다시 플레이 해서 볼 수밖에 없어서 아쉽습니다(...닌텐도. 너희들은 '갤러리'의 의미를 아는 거냐?).

너무나도 아쉬운 비 한글화 정발
이 게임은 국내의 게임큐브/GBA의 유통을 맡고 있는 대원 CI를 통해 국내에 정식 발매되었습니다만, 일체의 로컬라이제이션 작업 없이 일본판 그대로 출시되었습니다. 한글로 되어 있는 부분이라고는 간단한 조작법 설명 시트 한 장과, 일본판 케이스 뒤에 붙여놓은 추가 뒷표지 뿐이지요. 이 게임의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스토리와 각 미션의 진행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막의 한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게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마치 예전 16비트 게임기 시절 같은 '정식 발매를 가장한 정식 수입'만을 하고 있는 대원에게는 솔직히 말해서 환멸을 느낍니다. 보다 많은 연령층이 즐길 수 있게끔 '어린이 모드'를 넣은 제작사 닌텐도의 배려도, 이러한 유통 방식에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일 뿐이지요.

마치며...
메트로이드 퓨전은, 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GBA 유저라면 한번쯤은 플레이 해 볼 가치가 있는 수작 액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단순히 '수작'이라고 하기는 아까운 '걸작' 액션 게임이겠군요. 하지만 성의 없는 국내 유통으로 인해 이 게임의 또 다른 재미인 스토리를 많은 유저들이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아쉽습니다. 마치 헐리웃 영화를 연상시키는 후반의 극적인 반전에 감탄했던 필자였지만,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한 이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한숨이 나오게 만들지요. 그것도 우리나라에 정식 발매된 게임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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