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귀찮으세요? 자동으로 해드리면 되죠?

매년 게임 산업은 몇가지 화두를 가지고 발전해오고 있다. 물론 게임의 장르에 따라 조금씩 더 세분화될 수도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좀 더 사실적인 그래픽, 좀 더 화끈한 액션, 좀 더 방대한 스토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게이머 편의성' 역시 게임 시장에서 그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는 부분이다. 게임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대표적인 놀이문화인 만큼 게임의 시스템적인 불편함 때문에 게이머가 짜증이나 귀찮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타 장르에 비해 플레이 타임이 훨씬 긴 롤플레잉 분야에서는 그 중요성이 훨씬 더하다.

과거 롤플레잉 게임들을 보면 현재의 게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함의 극치를 달렸다. 과도한 레벨업을 요구해 같은 장소에서 계속된 반복 사냥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었고, 게임의 핵심 시스템에 대한 설명도 부족해 게이머들이 따로 공략집을 보며 공부를 해야 했다. 또한 사소한 아이템 하나를 얻지 못해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NPC를 찾아내는 것이 보물찾기 보다 힘든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반면에 현재의 롤플레잉 게임들, 특히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즐기는 롤플레잉 온라인 게임들을 보면 게이머의 편의를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빨리 고레벨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레벨업에 들어가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복잡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스템들은 퀘스트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또한 NPC나 몬스터의 위치를 맵에 표기해줘 특별히 공략 사이트를 보지 않더라도 퀘스트를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몇몇 게임은 버튼 클릭 한번으로 원하는 몬스터나 NPC의 코 앞까지 자동으로 데려다준다. 심지어는 사냥이 지겨운 게이머들을 위해 자동으로 사냥도 해주는 시스템을 지원하는 게임도 있을 정도다. 퀘스트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게시판의 글을 뒤지고, 마을에서 도와주실 분을 외쳐야 했던 초창기 온라인 게임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낄만 하다.

이 같은 게임들의 변화는 점점 더 편한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즉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몇 게임들이 내놓은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게임보다 더 친절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 기존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스템들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은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고, 특히 온라인 게임은 '상품'을 넘어서 '서비스'라는 것이 현재 게임시장의 추세이므로 이 같은 현상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이 게임 시장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게이머들이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발전방향이지만 몇 몇은 도를 지나쳐 게임의 재미를 해치는 부작용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들의 플레이 패턴을 간단히 말하면 "빠른 레벨업 후 PVP를 위한 아이템 맞추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퀘스트, 인스턴스 던전... 방식이야 게임마다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결론은 남들보다 강한 캐릭터를 빨리 만드는 것이다.

이런 플레이 패턴은 필연적으로 게이머들의 불만을 사게 됐다. 빨리 퀘스트를 해결해서 좋은 아이템을 먹어야 하는데 NPC나 몬스터를 찾기 힘드니 짜증이 나고, 빨리 레벨업을 하고 싶은데 사냥이 지겨우니 짜증이 났다. 게임사들은 그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NPC와 몬스터 앞에까지 데려다 주는 시스템을 넣었고, 사냥이 지겨운 게이머들을 위해 자동 사냥 시스템을 넣었다. 게이머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럼 이 같은 해결책이 진정으로 게이머들의 편의를 추구하는 방법일까? 그건 아니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어떤 문제이건 완벽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고쳐야 한다. 몬스터나 NPC가 찾기 힘들면 맵 시스템을 보기 편하게 개선시켜야 하는 것이고, 사냥이 지겨우면 사냥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정 자체를 자동으로 만들어서 게이머들이 불편하지 않게 만든다니... 어찌보면 게이머의 편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NPC를 찾아 세계를 여행하는 재미와 새로운 몬스터와 만나 전투를 벌이는 재미를 박탈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이런 해결책은 콘텐츠 부족이라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게이머들이 쉽게 게임을 즐긴다는 말은 다시 말해 게임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매우 빠르게 소비한다는 것이고, 콘텐츠를 빠르게 추가하지 못하면 다른 게임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진다. 개발자들이 아무리 빨리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자동으로 24시간 내내 성장하는 캐릭터들을 어떻게 따라잡겠는가!

물론 이처럼 게이머의 편의를 위한다고 극단적인 방법을 제시한 게임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게임사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해결책이 게이머가 진정으로 원하는 정답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게이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재미있는 게임이지 편한 게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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