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개발사, 원석을 깍아 보석 만들다

아이팟터치와 아이폰으로 IT업계에 핵폭풍을 몰고 온 애플이 아이패드로 3연타석 홈런을 칠 기세다. 물론 아직 성공이라는 단어를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첫 공개 당시에 아이폰을 4개 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조롱을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첫날 70만대의 판매량은 대단히 성공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이패드에 들어간 대다수의 부품이 한국 기업인 삼성과 LG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개발된 부품에 그들만의 창조력을 더해 만든 물건으로 전세계 IT 시장에 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애플이 전세계 IT기기 시장에서 삼성과 LG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회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씁쓸한 결과이지만 원석을 가공해 보석을 만드는 그들의 실력에 감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은 이와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외산 유명 콘텐츠를 국내 기술력으로 온라인 게임화 하는 작업이 연이어 진행되고 있는 것. 해외 많은 콘텐츠 보유사들이 자사의 콘텐츠를 활용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성공을 거두고 싶어하고, 그를 위한 성공 파트너로 한국 온라인 게임 개발사를 선택하고 있다.


현재 서비스되고 있거나 공식적으로 발표된 게임들만 봐도 프린세스메이커 온라인, 퀘이크워즈 온라인, 메탈슬러그 온라인, 사무라이 쇼다운 온라인, 킹오브파이터즈 온라인, 드래곤볼 온라인, 슬램덩크 온라인, 케로로파이터, 케로로팡팡, 케로로레이싱, 피파 온라인, NBA스트리트온라인, 배틀필드 온라인, 보노보노 온라인, 디지몬RPG,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괴혼 온라인, 마계촌 온라인, 스맥다운VS로우 온라인, SD건담캡슐파이터, 이렇게 20종이 넘는다. 업계 관행상 일이 상당부분 진척되지 않으면 공식적인 발표가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한국 게임업체들이 외산 콘텐츠의 온라인 게임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안정성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를 만들어야 하는 게임사 입장에서 이미 확보된 팬층만큼 든든한 무기가 드물며, 이미 완성된 세계관이나 흥행 포인트는 게임 개발 기간을 상당히 단축시켜준다. 게다가 이미 해외 시장에 잘 알려진 콘텐츠인 만큼 해외 진출의 용이성이라는 덤도 따라온다. 외산 콘텐츠 업체들 입장에서는 자사 콘텐츠의 활용도를 높여주며, 미지의 영역에 진출하기 위해 새롭게 사업부를 꾸려야 하는 리스크가 없어지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보는 업계의 시선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전세계를 주름잡는 막강한 콘텐츠를 보유한 해외 업체들이 자신들이 직접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게임사를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것은 한국 개발사들의 개발 실력을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만든 작품의 첫공개를 한국에서 한다는 것도 긍정적인 시선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는 성공을 위해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게이머들의 냉철한 평가를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들이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이며, 한국이 전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블리자드가 자국 게이머들에게 불평을 들어가면서도 한국에 스타크래프트2 테스터 기회를 가장 많이 제공하고 있는 것도, 일본 만화의 자존심인 드래곤볼을 온라인 게임화 한 드래곤볼온라인이 한국에서 먼저 공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외산 콘텐츠의 온라인 게임 개발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을 가공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자칫 잘못하다가는 하청업자의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임 역시 콘텐츠인만큼 어떤 사업을 추진하던 원저작권자가 가장 많은 수익을 얻게 되어 있다. 또한 게이머들도 누가 개발했는지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가 온라인 게임으로 나왔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즉, 개발은 한국 개발사가 했지만 그것이 한국 개발사의 것이 되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또한, 그들과 협업을 한다지만 어찌보면 우리의 노하우를 송두리째 넘겨주는 것일 행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온라인 개발 및 서비스 노하우를 배워갈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창작 능력을 배우기 힘들다.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자체 콘텐츠 개발 노력이 줄어드는 것도 예측할 수 있다. 순수 창작물이 대박을 칠 경우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검증된 콘텐츠를 가지고 개발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 입장에서 검증된 콘텐츠를 버리고 순수 창작에만 몰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너도나도 순수 창작의 길을 포기한다면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미국의 하청 업무만을 맡고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길을 게임 산업이 똑같이 걷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튼 외산 콘텐츠를 온라인 게임화 하는 것은 국내 게임 사업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한국 개발사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빠른 방법 중에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게임도 콘텐츠이고, 콘텐츠 강국은 남의 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많아야 이뤄질 수 있는 목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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