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게임 개발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 그 사람 지금은 뭐하고 지내지?'처럼 잊고 지내던 추억 속의 인물, 사건이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이러한 일은 주로 학창시절이나 여행지에서의 추억처럼 즐거운 기억이 많은 일들을 떠올릴 때 발생한다.

게이머들 역시 마찬가지다. 30대 이상의 게이머라면 게임을 즐기거나 그와 관련된 대화를 하다 보면 '그때 한창 그 게임에 빠졌었지'와 같은 회상에 잠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에 빠진다. '요즘 그 게임 만들었던 개발사는 어떻게 된거지?'와 같은 궁금함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인기작을 남겼던 게임 개발사의 이름이 점점 귀에 들리지 않게 됐다. 대형 개발사로의 흡수, 상호간의 전략적 합병 등의 형태를 통해 회사의 존재가 사라지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 EA는 Electronic Arts의 약자인가 Eat All의 약자인가

90년대를 풍미한 유명 PC게임 개발사들의 최근 근황을 살펴보면 대부분 도산했거나, 거대 업체에 흡수 합병된 곳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 산업이 비약적으로 거대해지기 시작한 90년대 중, 후반부터 대형 게임업체들은 중소 개발사들을 합병하기 시작했으며, 그 선두에는 EA가 있었다. EA는 9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인 기업 인수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게임 업체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됐다.

EA의 이러한 적극적인 M&A 행보를 향한 업계의 반응은 상당히 극단적이다. '게임 업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정당한 행동이다'라는 호의적인 의견과 '게임 업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만행이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특히 EA의 이러한 행보를 좋지 않게 평가하는 이들은 그 근거로 EA가 인수한 개발사들의 게임이 맥이 끊겼거나 질적인 하락을 보였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워해머 시리즈의 미씩, 심시티와 심즈 시리즈로 유명한 맥시스, 야구의 변수를 제대로 구현해 스포츠 게임 마니아들의 찬사를 받았던 3DO, 한때 RTS의 대명사로 불렸던 C&C(Command & Conquer)를 제작한 웨스트우드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3DO의 합병 사례는 EA가 어째서 'Eat All'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EA는 자사의 야구 게임 시리즈인 '트리플 플레이' 시리즈와 비교해 비교 우위의 평가를 받고 있던 '하이히트 베이스볼' 시리즈의 제작사인 3DO를 인수하며 'MVP 베이스볼'이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불거졌다. MLB(Major League Baseball)의 라이센스를 양분하고 있던 EA와 3DO가 하나가 되면서, MLB 라이센스의 사용권을 2005년 말까지 자사 독점 계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즉, 다른 게임사들은 EA의 독점 계약이 완료될 때까지 MLB 게임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게 됐으며, 야구게임 마니아들은 좋건 싫던 'MVP 베이스볼'만을 해야만 했다.


또한, 'MVP 베이스볼'의 진정한 공로자로 꼽히던 3DO를 해체해버리고 제작진들을 퇴출시켜 게임 시장에서 MLB 야구 게임의 씨를 말리다시피 한 행보를 보인 것이 게이머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 사례는 '자신들과 경쟁 관계에 있는 개발사는 일단 흡수한 후 공중분해 시킨다'는 EA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생겨난 계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EA는 2005년 이후 MLB 게임을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 2005년 말 MLB 라이센스의 사용권이 사라질 즈음에 'NBA 2K' 시리즈로 유명한 2K 인터렉티브가 신규 MLB 게임의 제작을 위해 EA보다 한 발 앞서 MLB 사무국 측과 MLB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2K 인터렉티브의 MLB 라이센스 계약은 2K 인터렉티브의 독점 계약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어째서 축구, 농구, 미식축구, 하키 등 온갖 스포츠 게임을 제작하고 있는 EA가 어째서 유독 야구 게임만큼은 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2K 인터렉티브는 MLB 사무국과 맺은 라이센스에 '다른 기업들은 MLB 사무국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을 수 있지만 EA와는 계약할 수 없다'라는 굉장히 독특한 조항을 넣어 EA의 발목을 잡아버린 것이다.

또한, "MVP 베이스볼' 출시 이후 공중분해 됐던 3DO의 개발자들이 SCE 산하 샌디에이고 스튜디오에서 PS3용 야구 게임인 'MLB 더 쇼' 시리즈를 개발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 건설업체가 게임과 무슨 상관? 면모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껄?

80년대와 90년대에 PC 게임을 즐겼던 게이머들이라면 다이나믹스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A-10 탱크킬러', '맥워리어', '데스트랙' 등 1980년대 후반을 강타한 인기 게임들을 다수 제작한 개발사인 다이나믹스는 1990년 또 하나의 그리운 이름, 시에라에게 합병된다.

다이나믹스는 시에라에 합병된 이후에도 '윌리 비미쉬의 모험', '태평양의 에이스', '레드 바론', '더 인크레더블 머신'(국내명 요절복통 기계) 등을 개발하며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어드벤처 게임의 인기가 식으면서, 어드벤처 게임을 주로 제작하던 모기업 시에라가 타격을 입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제작한 '판타스마고리아', '가브리엘 나이트' 등이 판매도 시원찮아 이번에는 시에라가 2000년에 프랑스의 거대 기업 '비벤디'에게 흡수된 이후, 개발사의 기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비벤디라는 이름은 게이머들에게 자칫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비벤디라는 기업은 본디 게임과 거리가 먼 프랑스의 건설, 통신, 엔지니어링 사업을 하던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벤디가 인수한 게임사들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이 기업이 게임과 관련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저 유명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액티비전, 비자레 크리에이션즈가 모두 비벤디 산하에 속해있으니 말이다.

비벤디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액티비전의 인수 관계는 앞서 언급한 다이나믹스와 시에라, 비벤디의 관계에 비교하자면 조금은 복잡하다.

2007년 12월, 블리자드를 소유하고 있는 비벤디가 액티비전의 대주주가 되면서 자연스럽게게 인수가 이뤄졌다. 이들의 합병 과정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비벤디의 자회사인 비벤디 게임즈가 액티비전의 자회사로 귀속됐다는 점이다.

비벤디 게임즈는 약 81억 달러 규모의 주식으로 전환되어 액티비전의 신규 주식으로 편입됐으며, 비벤디 게임즈를 흡수한 액티비전은 다시 비벤디 게임즈의 모회사인 비벤디에 흡수됐다. 이 와중에 비벤디 게임즈의 4개 크리에이티브 부서 중 가장 거대한 업체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액티비전과 하나가 된 것이다.


이 계약을 통해 비벤디는 액티비전이 인수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로 유명한 인피니티 워드와 트라이아크를 비롯해 레이싱 게임 '포르자 모터스포츠' 시리즈를 제작한 비자레 크리에이션즈까지 자신들의 휘하에 두게 됐다. 즉, 다이나믹스, 시에라,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액티비전, 인피니티 워드, 트라이아크, 비자레 크리에이션즈를 비롯한 수많은 업체가 모두 비벤디라는 이름 아래로 들어간 셈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게임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이 사라지거나 질적으로 하락하는 경우가 발생하긴 하지만, 거대 기업들의 유통망을 통해 군소 개발사들의 게임을 게이머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순기능도 갖추고 있다"라며, "대형 업체가 작은 업체를 흡수하는 것을 두고 찬반양론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수 과정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기업들의 이러한 행보가 문제될 것은 없다"고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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