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임이 망국의 유희라고?

올 한 해는 게이머들과 게임업계에 기록적인 수해를 입힌 한 해로 기록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의 수해는 폭우로 인한 수해(水害)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연이은 게임을 향한 무리수(無理手)로 인해 발생한 수해(手害)를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게임을 향한 언론의 비판과 질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무리수를 둬가면서 까지 게임업계와 게임 그 자체를 질타하던 시기가 있었던가 싶다.

올해 초에는 자신의 아들이 게임 때문에 비뚤어졌다는 논조의 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한 방송국의 무리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급기야 게임을 <망국의 유희>라 표현하는 칼럼까지 모 언론사를 통해 게재됐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게 이 칼럼의 목적이었다면 이 칼럼은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해당 칼럼이 게재됐다는 소식이 다양한 게임 관련 커뮤니티로 급속도로 퍼져나간 후, 많은 이들이 이 칼럼에 대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게임을 <망국의 유희>라고까지 표현한 이 칼럼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어찌나 폭발적인지 국내 최대 검색포털 네이버에서는 <망국>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추천 검색어로 <망국의 유희>가 추천되기까지 한다. 지금껏 기사를 쓰면서 단 한 번도 네이버의 추천 검색어에 본인의 기사 제목이 포함되어 본 적이 없는 기자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 칼럼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악플투성이다. 이런 식의 반응이라면 기자는 겸손히 <네이버 추천검색어>라는 영광은 사양하고 싶다. 상처뿐인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해당 칼럼을 읽지 않고 이 칼럼을 읽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해당 칼럼의 내용을 설명해 보겠다. 이 칼럼은 게임에 빠져 PC방을 전전하느라 공부를 하지 않는 고3 아들과 그런 아들을 찾아 밤 11시에 PC방을 급습해 아들을 집으로 데려가는 부모, 그리그 그 부모의 표현에 따르자면 <철없는 아이들 호주머니나 터는 야바위꾼 같은> PC방 사장의 이야기를 사례로 들며 시작한다.

이런 아들의 사례를 대표적인 예로 들며 청소년들의 머리 속에는 공부도, 부모도, 희망도 없으며, 게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탈까지 일삼는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단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는 국내 게임 산업이 아무리 돈을 번다한들 청소년들의 가슴과 머리를 푸석푸석하게 만들어 놓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며, 인성을 망치고 인간의 성장기회를 빼앗아가는 게임 산업은 의미가 없다고 마무리를 짓는다.

문제는 이 칼럼이 예로 들고 있는 사례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해당 칼럼은 게임에 빠져 일탈을 하는 아들의 사례를 예로 들고 이를 일반화 하며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례부터 일반론과는 꽤 많은 차이가 있다.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적당히 게임을 즐기지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게임에 빠져드는 청소년은 극히 드물다. 노량진이나 종로 등 학생들이 많이 밀집 되어 있는 PC방에 단 이틀만 있어도 충분히 알수 있는 사실이다. 대부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친구들과 잠깐 게임을 즐기고 학업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네티즌들이 지적한 이부분 "아들이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시간은 오후 11시" 하지만 현재 청소년들은 PC방에 오후 10시 이후에는 출입할 수가 없다.

표면적인 법일 뿐 시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오후 10시 이후에 청소년들이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경우가 발각될 경우는 꽤나 큰 벌금이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대부분이 영세사업주인 PC방 업주들은 정말이지 이 법안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즉, 이 사례 자체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글의 시작부터 현실성이 부족하니 글의 전반적인 신뢰가 떨어지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네티즌들은 <게임과 PC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작성한 글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고1 때까지 반에서 3~4등을 하던 아들이 3학년이 되어 공부를 팽개치다시피하고, PC방에가 있었다는 예를 들며, <게임이 아들의 학업을 망쳤다>고 말하고 더 나아가서는 <게임이 청소년의 학업을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들이 학업에서 멀어진 것이 게임 때문인지, 아니면 학업에서 멀어진 이후에 놀 거리를 찾다가 눈에 띈 것이 게임인지는 알 길이 없다. 만약 아들이 게임이 아니라 방과 후 농구를 하고 있었어도 필자는 해당 칼럼을 통해 “농구 때문에 우리 아들이 공부를 안 한다!”고 주장 할 런지 궁금하다.

일부 네티즌들은 “자신이 자식 관리를 제대로 못 해놓고, 뒤늦게 그 책임을 PC방 업주에게 떠밀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PC방 업주가 아들에게 다가가 “우리 PC방에서 놀다가 학생”이라고 유혹했을 확률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또한, PC방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한 아들이 자꾸 PC방에 간다며, 이는 게임의 중독성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논거가 부족하다. 오히려 게임을 대신할 대체 여가를 알려주지 못 한 것은 학교와 가정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청소년의 여가 시간을 채워줄 다른 콘텐츠가 없다 보니 게임이 유난히 부각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이 의자에 앉아서 게임만 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청소년들이 놀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는 본 기자가 청소년기를 보낸 90년대에도 꾸준히 나오던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오락실과 만화방이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PC방이 그 비판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셈이다. 씁쓸한 것은 이러한 비판이 계속됨에도 이를 대체할만한 청소년을 위한 여가 공간이 여전히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청소년을 걱정한다면 게임을 비판하기 전에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비판이 나온 가장 큰 원인은 게임을 <망국의 유희>라 표현한 데 있다. 여가를 위한 문화콘텐츠인 게임에 재미를 위한 흥미요소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를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마약>과 동급으로 치부하고 있다. 순식간에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마약중독자>로, 게임을 개발하는 이들은 <마약생산자>로, 게임 퍼블리셔를 <마약공급책>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논리는 가장 대중적인 여가 콘텐츠인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가 갈수록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소재를 다루고, 시청률을 위해서는 불륜, 사생아 같은 소재를 다루며 말 그대로 <막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하지만 언론은 드라마를 두고 <드라마 한류 열풍!>이라며 해외 시장에 한국 드라마가 잘 팔려나간다며, 드라마를 새로운 산업 역군으로 칭하기까지 한다. 아무도 드라마를 <망국의 유희>라고 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망국의 유희>라는 칼럼을 쓴 작성자가 드라마를 <마약>취급 하며 똑같은 칼럼을 써 줬으면 한다. “우리 아내가 드라마에 빠져서 저녁밥을 차려주지를 않는다!”며 아들과 함께 아내를 찾아 나서는 사례는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물론, 해당 칼럼을 보고 방송3사 드라마 제작국의 PD들이 “아니 기자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우리가 마약제작자라니?!”라며 달려드는 일이 생기는 건 능히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게임업계가 들고 일어나는 것을 감수하고 있듯이 말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를 혹은 상대 의견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상황과 그의 논리에 대해 상대방보다 더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인터넷의 대형 커뮤니티에서 설전이 오갈 때, 흔히 나오는 반박이 “까려면 좀 알고 까라”는 말이다. 표현이 좀 거칠긴 하지만 자신이 비판하려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비판이 나올 수 없다. 결국, 자신이 내린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례를 끼워 맞춘다거나, 가짜 사례를 만들어냈다가 들통이 나 역공을 당하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게임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게임을 향한 언론의 비판적인 의견은 하나 같이 <있을 수 없는 사례> 혹은 <게임이 아니라 그 어떤 사례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을 논거로 삼고 있는지 의문이다. 게임을 향한 타당한 증거와 사례가 있는 비판을 보고 싶을 지경이다.

제대로 된 논거가 없는 채로 게임을 향하는 비판은 그저 무리수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수는 게이머들을 수재민(水災民) 아닌 수재민(手災民)으로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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