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과 레이싱의 조합. 이것이 색다른 드라이빙 액션이다

뜨거웠던 온라인 게임 시장과 달리 상반기를 조용하게 보냈던 비디오 게임 시장이 연말이 다가오면서 치열한 경쟁 체제로 돌입했다. 나오는 게임을 보면 제목 하나 하나가 어찌나 화려한지 이 녀석들을 보고, 지갑을 보고 한숨을 쉴 게이머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스쳐지나가는 듯 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색다른 게임이 하나 출시됐다. 같은 시기에 발매되는 게임들이 워낙 화려한 탓에 별로 주목을 못받고 있지만 폭 넓은 팬층을 자랑하는 드라이버 시리즈의 최신작이자 시리즈 최초로 차세대기 진출작인 드라이버 샌프란시스코가 그 주인공이다.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굉장히 재미있다는 평도 있고, 사자마자 재미없어서 바로 팔았다는 평도 있는 이 게임.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 드라이버 시리즈가 뭐야?>
국내에서는 잘 안 알려져 있긴 하지만 드라이버 시리즈는 전세계적으로 굉장한 유명한 게임이다. 이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GTA인줄 알고 했더니 레이싱만 하는 반쪽짜리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1999년에 첫 작품이 출시된 이후 이번작까지 총 5편이 출시된 유서깊은 게임 시리즈이며, 스토리와 레이싱이 접목된 독특한 게임 플레이로 전세계적으로 1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지금이야 GTA 시리즈에 완전히 밀려 찬밥 신세가 됐지만 과거에는 어깨를 나란히 했던 슈퍼스타 출신인 셈이다.
이 게임이 이처럼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영화를 방불케 하는 실감나는 스토리 라인과 박진감 넘치는 레이싱이 잘 접목된 게임성 때문이다. 그냥 남들보다 빨리 달리는 것에 그쳤던 그동안의 레이싱 게임과 다르게 달리는 것에 목적성을 부여했으며, 매번 다른 주행방식의 도입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줬다. GTA에서 레이싱만 빼온 게임이 아니라, 스토리가 백미인 레이싱 게임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이 게임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번엔 유체이탈이다>
전작인 드라이버 페러렐 라인즈가 어설프게 GTA를 따라한 오픈월드 방식을 선택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 이번작은 시리즈의 원래 모습이자 가장 강점을 가진 드라이빙 액션으로 회귀했다. 이 게임에서는 차에서 내려 시민을 폭행할 수도 없고, 적들과 총격전을 펼칠 수도 없다. 오로지 차에서 시작해서 차에서 모든 것을 끝낸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드라이빙 자체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색다른 요소를 도입했다. 이 게임의 모든 미션과 시나리오에 당위성을 제공하는 장치, 바로 시프트다.
이 게임을 시작하면 다소 충격적인 오프닝을 경험하게 된다. 전전작인 드라이버3의 주인공이었던 존 태너가 이번 작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시작하자마자 탈옥범을 추격하다가 교통사고가 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주인공이 혼수상태에 빠졌으니 이후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또다른 설정이 필요해진다. 존 태너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이후에 발생하는 이야기는 존 태너의 꿈속에서 벌어진다는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이 아닌 꿈 속이다보니 주인공 존 태너는 정신만 따로 빠져나와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하는 시프트를 사용할 수 있다. 기존의 레이싱 게임에서는 목표가 저 멀리 앞서 가고 있다면 엔진이 터지도록 엑셀을 밟아서 달리는 수 밖에 없지만, 이 게임에서는 앞서 가는 차량의 운전자로 시프트 한 다음에 목표물을 못달리게 방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덕분에 기존 레이싱 게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양한 방식의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이것이 차타고 달리는 것 뿐인 이 게임을 레이싱이 아닌 드라이빙 액션, 아니 전략성이 가미되어 있는 드라이빙 액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 이렇게 다양할 수가...>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게임의 미션은 차를 타고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타 오픈월드 게임 못지 않게 다양하다. 경찰의 입장이 되어서 길거리 폭주차들을 검거하는 것은 기본이고, 택시 드라이버가 되어 목적지까지 손님을 문제 없이 데려다주는 것, 스릴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박수를 일정 수준까지 올리는 것, 폭탄 테러범이 도시 곳곳에 설치해준 폭탄 트럭의 바퀴 사이로 들어가 차량을 멈추게 하는 것, 영화 스피드처럼 일정 속도 이하로 내려가면 터지는 대형 트럭을 안전한 곳까지 운전해 가는 것 등 하면 할수록 그 다채로움에 놀라게 된다. 물론 이러한 미션들은 타 레이싱 게임에서도 어느정도 비슷한 컨셉으로 선보여진 적이 있었지만, 이 게임에서만 존재하는 시프트가 이것을 타 게임과 차별화되는 재미로 만들어줬다.
자 게임 속에 한 상황을 살펴보자. 미션의 목표는 스트리트 레이스를 즐기는 3명의 폭주족들을 골인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제지하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열심히 달려서 뒤에서 들이받아 차량을 파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러했으니까(결국 그 방식으로 깨긴 했지만 수면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 상승으로 패드를 집어 던질 뻔 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맞은 편 차량으로 시프트 한 다음에 다가오는 목표 차량으로 돌진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또 다른 상황을 하나 더 살펴보자. 미션의 목표는 2:2로 레이싱을 해서 우리편이 1, 2등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역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게이머가 조정할 수 있는 차량은 한 대 뿐이고, AI가 맡은 차량은 정말 한없이 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상을 바꿔서 적 차량을 모두 파괴해버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남아있는 우리 팀이 모두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으니까.
이 같은 시프트의 재미는 멀티 플레이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싱글 플레이에서는 자신만이 유체 이탈을 할 수 있지만 멀티 플레이에서는 모두 시프트를 할 수 있으므로 누가 어떤 차량으로 공격해올지 알 수가 없는 스릴 넘치는 상황이 연출된다. 멀티 플레이에 들어가보면 술래 차량을 쫓는 태그, 상대팀의 공격을 피해 목적지까지 깃발을 운반하는 캡쳐 더 플래그, 도주범과 경찰이 되어 쫓고 쫓기는 테이크 다운 등 다양한 모드가 등장하는데, 시프트를 지원하지 않는 일반적인 레이싱 모드는 인기가 없다. 이 게임을 즐기는 모든 이들이 시프트의 재미에 푹 빠졌다는 얘기다.

< 오픈 월드 방식의 미션>
이 게임은 상황에 따라 목표가 주어지고, 그 목표를 차량을 타고 해결하는 전형적인 미션 클리어 방식의 게임이다. 하지만 그것은 스토리 미션에만 해당되는 얘기이고, 게임 방식 자체는 오픈월드 스타일에 더 가깝다.
게임을 시작하면 스토리 미션이 나오고, 스토리 미션을 클리어하면 다음 지역이 개봉된다. 당연히 다음 스토리 미션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필수 미션을 일정 수 이상 클리어해야 하고, 해당 지역의 미션을 모두 클리어했을 경우 다음 스토리 미션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지역이 개봉된다. 그럼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계속 똑같은 미션을 반복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각 지역에는 필수 미션과 별도로 서브 퀘스트들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그것을 클리어해서 얻는 돈으로 새로운 차량을 구입하거나 자신의 차량을 강화할 수 있다. 필수 미션, 스토리 미션, 실패시 서브 퀘스트로 강화 후 다시 도전. 엔딩까지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되며, 그것을 통해 주인공을 혼수상태에 빠지게 만든 세력의 정체를 알아가게 된다.

< 수집 요소는 당연히 존재한다>
게임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일정 시간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하는 것. 요즘 나오는 게임들이 팔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에서도 다양한 수집요소를 통한 싱글 플레이 타임 늘리기를 지원한다. 필수 미션 외에도 다양한 서브 퀘스트를 통해 돈을 수집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차량을 구입하거나, 기존 차량의 성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으며, 특정 장소에 등장하는 무비 토큰을 습득하면 영화의 추격신을 방불케 하는 무비 챌린지에도 도전할 수 있다. 또한 이 게임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실제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만큼, 아무런 목적없이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도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 GTA와 달리 시민이 차에 치이지 않기 때문에 마구 돌아다닌다고 해서 경찰이 쫓아오지도 않으며, 마구 달리는 속도감도 꽤 괜찮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리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다고 해도 드라이빙 자체를 벗어나는 것은 아닌 만큼 이런 부분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듯 하다.

< GTA와 비교하지 말아달라>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괜찮다는 평가를 주고 있는 이 게임의 현재 상황은 그닥 좋지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게임이 출시됐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있으며, 벌써부터 가격 덤핑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평가가 나오게 된 주된 원인은 이 게임에 대해 흥미를 가진 사람들의 머릿속에 GTA가 있기 때문이다. GTA에서는 이런 것도 되고, 저런 것도 되는데 왜 이 게임은 주구장창 레이싱만 하느냐. 사람들이 반쪽자리 게임이라고 하는 배경에는 이런 의문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시리즈의 원점과 달리 전작에서는 GTA와 굉장히 유사한 방식으로 게임이 변경된 만큼 이 같은 생각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 게임은 GTA가 아니라 드라이버다. 여러 가지 다양한 재미 중에 하나로 드라이빙을 삽입한 것이 GTA라면 드라이버 샌프란시스코는 드라이빙의 미학을 추구한 게임이다. 물론 처음의 신선함과 달리 하면 할수록 반복 플레이의 한계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쪽자리 GTA라고 폄하 당할만큼 이 게임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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