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로 이야기를 만들자!

이번에는 보드 게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준 게임을 소개할까 한다. 바로, 아틀라스 게임에서 제작한 "Once upon a Time", 우리말로 풀이하면 "옛날옛적에" 라는 게임이다.

옛날옛적에, 그 제목부터 뭔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가. 지금이야,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컴퓨터에 익숙해져, 인터넷을 통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10년전만 해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는 "옛날옛적에" 또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로 시작하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보드게임, 옛날옛적에도 그러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아니, 이야기로 진행하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소개하던 전략, 블러핑과 같은 요소가 아닌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해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게임이다.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게임이 진행될 수 있는가' 라 묻는다면, 훌륭한 질문이라 칭찬하고 싶다. 지금부터, 이야기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게임이 진행되는지 살펴보겠다.

옛날옛적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엄밀히 말해, 보드게임이 아닌 카드게임이다. 보드에서 뭔가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통해 게임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보드게임,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보드게임, 카드게임 등을 통틀어 보드게임이라 부르겠다고 얘기한바 있다. 어찌되었건, 옛날옛적에는 "Once Upon A Time"이라 부르는 이야기 카드 112장과, "Happy Ever After"이라 부르는 엔딩 카드 56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카드마다 그려진 예쁜 그림과 더불어, 2명에서 10명 이상까지 동시에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 역시 옛날옛적에가 가진 장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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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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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영문 빼곡한 카드가 엔딩카드요,
아래의 큼지막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이야기 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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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진행은 다음과 같다. 게임을 함께 하는 플레이어에 따라 각각 5장에서 10장씩의 이야기 카드를 건네 받는다. 그리고, 엔딩 카드를 각각 1장씩 받는다. 게임 진행은 다소 싱겁게도 시작 플레이어를 정하는 방법이 그냥 "아무나" 이다.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순서를 따라 진행하는 보드게임에서 시작 플레이어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플레이어가 시작플레이어가 되는지 결정하는 방법도 다양한다. 일반적인 경우, 나이 어린 사람 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먼저하고, 여자가 먼저하는 밋밋한 경우가 많지만, "맘마미아"라는 피자 만드는 게임의 경우, 가장 배고픈 플레이어가 시작 플레이어가 되는 등, 시작 플레이어를 결정 짓는 방법부터 재미난 게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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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플레이 기준, 각 플레이어는 이야기카드 7장과 엔딩카드 1장을 받는다.


옛날옛적에는 어찌보면 말장난을 하는 이야기 게임인데, 시작 플레이어가 아무나라니 다소 싱겁지만, 어찌되었건 게임은 그렇게 시작한다. 한가지 제안하자면,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 시작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유는, 비밀! 이 아니고, 그렇게 해서라도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 게임에 동요되어, 게임에 몰입해야지 그렇지 않아서는 게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카드를 받으면, 자신의 엔딩카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본다. 보통 영어 한문장으로 이뤄졌는데, 그것이 의외로 난해한 수준이다. 소위, 영어의 압박이 느껴지는 게임이지만, 보드게임커뮤니티 등을 통해 엔딩을 한글로 번역한 문서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엔딩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and the king was delighted with such an unusual gift.
(해석) 그리고 왕은 그런 귀한 선물에 무척 기뻐했다.

he picked up his weapon and went on his way.
(해석) 그는 무기를 들고 길을 떠났다.

so he forgave her and they were married.
(해석) 그래서 그는 그녀를 용서하고, 그들은 결혼했다.

저런 것들이 무려 56종류나 된다. 그 중에서 플레이어는 1장을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에 맞게 끌어가야 한다. 바로 다음부터 이야기할 이야기 카드를 통해서 말이다.

이야기 카드는 말 그대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카드이다. 카드에는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에 대한 풀이가 영어로 적혀있는데, 모두 5가지 종류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먼저, 캐릭터 카드가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인물 또는 동물을 뜻하는데, 왕, 거인, 늑대, 요리사, 늙은이 등이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물건 카드인 아이템 카드도 있다. 아이템 카드에는 보물, 칼, 불, 문, 길 등이 있다. 다음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를 표현하는 장소 카드가 있는데 성이나, 숲, 폐허, 강, 바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캐릭터나 아이템, 장소 카드의 상태를 표시하는 상태 카드도 있다. 묘사 카드에는 행복한, 기쁜, 변장을 한, 길을 잃은, 저주받은, 못생긴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특정한 이벤트가 일어나는 이벤트 카드가 있는데, 여기에는 이 동물이 말을 하다, 동료를 만나다, 죽다, 물건이 부숴지다, 모습을 드러내다, 구해내다 등이 있다.

이야기 카드와 엔딩 카드 이것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시작 플레이어는 자신이 받은 엔딩카드와 이야기 카드를 확인하고, 엔딩에 걸맞게 이야기 카드의 요소들을 버무려 이야기를 꾸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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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들은 왕과 여왕이 되었데요~" 란다.
어떻게 이야기를 꾸려가야 할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플레이어에게 "왕", "불", "도망가다", "행복한", "숲" 이야기 카드가 있고, "그래서, 마법은 깨지고, 그들은 풀려났다" 는 엔딩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자, 어떻게 이야기를 꾸려가야 할까. 뭐, 역시 말주변이 없지만, 나 같으면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해보겠다.

옛날옛적에, 별똥 나라에 아주 아주 못생긴 '왕'이 살았데요. 그는 원래 아주 잘생겨서 따르는 여자만 한트럭이었지만, 그만 실수로 얼굴을 '불'에 데어 화상으로 그렇게 된 것이랍니다. 그는 젊었을 때의 '행복한' 시절을 그리며, 불행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숲'을 거닐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늙은 노파를 발견했어요. 마음이 착한 왕은, 그녀를 궁궐로 데리고 와서 성심껏 돌봐줬지요. 머지 않아, 늙은 노파는 기력을 회복했지요. 한데, 그녀는 심성이 매우 나쁜 옆나라 마녀였어요. (중략) 그래서, 마법은 깨지고, 그들은 풀려났데요~

음, 뭐 이런 식으로 진행한다. (중략) 부분은 여러분들이 "도망가다" 카드를 이용해서 멋진 이야기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게임은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하되, 모든 이야기 카드를 사용하고, 특별한 요소의 추가없이 엔딩 카드까지 사용하면 승리하는 방식이다. 이 정도면, 대략적인 흐름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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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게임답게 게임 진행의 모습은 간결하다.


하지만, 이래서야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지, 어떻게 게임이 진행되겠는가. 그렇다면, 이야기를 꾸려가지 않는 옆에서 경청하는 플레이어는 어떻게 게임에 난입하는지 알아보자. 그들 역시 자신들의 카드를 유심히 본다. 그리고, 이야기를 꾸려가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카드의 무언가를 말하는 순간, 카드를 내놓고 난입하면 된다. 이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일례로, '왕' 카드를 가진 플레이어가, "저 멀리 동쪽 나라에 왕이 살았는데, 그는 아주 똑똑했어요" 라 말하면, '매우 똑똑하다'를 가진 플레이어가 해당 카드를 내놓으며 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난입하면, 기존의 이야기꾼은 벌칙으로 이야기 카드를 한 장 가져가고, 난입한 플레이어는 그 다음부터 이야기를 끌어가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존의 이야기와 계속해서 연결되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플레이어가 많고, 뭔가 있음직한 이야기를 꾸려가지 않으면, 위의 형태의 단순 이야기 카드 난입은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아예 난입을 위한 방해 카드가 있다. 방해 카드는 이야기 카드에 속하는데, 카드 정중앙에 Interrupt(방해) 라 적혀있으며, 방해를 위한 종류도 함께 적혀있다. 그러한 종류는 위에 이야기 카드 종류로 얘기했던 캐릭터, 아이템, 장소, 상태, 이벤트이다. 방해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현재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놓은 카드에 해당하는 종류의 방해카드를 내놓으며 난입하게 된다. 일례로, 이야기꾼이 "그녀는 헐레벌떡 몬스터의 추적을 피해 도망갔데요" 라면서, '도망가다' 카드를 내놓으면, 상태 방해 카드를 가진 플레이어가 이를 내놓으며 난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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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이야기할때
간단하게 난입할 수 있게 해주는 방해 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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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이 이벤트 카드를 내놓았다.
바로, 이벤트 방해 카드로 난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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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이야기꾼이 더 이상 이야기 진행이 힘들다고 스스로 현재 진행을 포기하는 패스가 있고, 또한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주변의 플레이어가 한목소리를 내는 경우, 자동으로 진행이 짤리고, 다음 플레이어가 바톤을 이어받아 이야기를 진행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앞서 말했던 이야기 카드와 방해 카드를 이용한 난입의 경우, 시계 방향이라는 일정한 순서를 가졌던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누구나 해당 조건을 만족하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들어와 순서를 가져가는 형태라는 점이다. 그래서, 난입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인데, 이런 형태의 게임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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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늑대는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라며,
늑대 카드 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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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력으로 하늘이 감동하사 마법이
풀렸답니다~" 로 결국 개똥이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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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이 정도가 게임의 전체적인 진행이요. 핵심 시스템이다. 옛날옛적에를 지금 처음 듣거나, 이름은 들었지만 그 진행방법을 모르던 플레이어라면, 그 느낌이 둘로 나뉠 것이다. 당장 보드게임쇼핑몰이나 보드카페로 달려가 옛날옛적에를 플레이 하고프거나, 아니면 "에이! 알고보니 별것 아니네" 라 실망?하거나로 말이다. 하지만, 이것하나는 분명하다. 옛날옛적에는 보드게임만이 이뤄갈 수 있는 요소를 적절히 꼬집은 게임이요, 보드게임을 즐긴다고 표현하는 게이머라면 반드시 한번은 플레이 해봐야할 게임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 게임은 앞서도 말했지만, 언어의 장벽이 다소 있는 편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게임이 그렇듯 한글로 된 매뉴얼을 참고하거나, 어느 정도의 영어 독해실력을 가졌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것보다 중요한 점은, 옛날옛적에는 그 분위기를 읽고 타는 플레이어가 함께 해야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게임은 보드게임 초보자보다는 어느 정도 중급자 이상에게 권해지는 편이다. 하지만, 소위 "나는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아" 또는 "내 머리와 겨드랑이 사이에서 책이 떠날 날이 없었어" 또는 "뭔가 새로운 게임을 달라니까!~" 라 부르짖는 게이머라면, 옛날옛적에를 생애 첫 보드게임으로 접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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