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DONGA

상대방을 속여라!

shims

보드게임과 PC게임의 차이를 얘기함에 있어, 블러핑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블러핑은 간단하게 허세라는 말로 이해하면 되는데, 있어도 없는 척, 없어도 있는 척 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포커를 떠올리면 된다.

혹시 포커의 그것을 모르는 게이머를 위해 친절하게 부가 설명을 해보자면, 포커는 5장의 트럼프 카드로 진행되는 카드 게임이다. 수백가지 룰이 통용되는 포커게임이지만, 일반적으로 5장의 카드가 이루는 조합에 따라 승부를 가리게 된다. 일례로, 같은 숫자 2장을 가진 경우 원페어, 같은 숫자 3장을 가진 경우 쓰리 카드라고 하는 등 포커만의 서열이 있다. 이 서열의 높낮이를 겨루는 게임이 바로 포커인데, 단순히 5장의 카드를 받아 누가 높은지 바로 오픈한다면, 포커가 지금껏 사랑 받는 게임이 되었을 리가 없다.

바로 포커의 백미는 자신이 가진 패를 상대가 모르게 함으로써, '나는 좋은 패를 가졌으니, 당신은 포기하시오' 등의 무언의 경쟁에 있다. 이러한 경쟁은 일반적으로 돈으로 판가름되는데, 적당히 좋은 패를 가진 경우 상대가 높은 액수를 걸어오면 '내가 정말 상대를 이길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고, 결국 게임을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돈을 많이 거는 것으로 허세를 부릴 수도 있지만, 아예 겉으로 "나는 좋은 패를 가졌으니, 포기해라"고 거짓말을 해가며 상대를 혼란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재미가 꼭 포커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재미는 보드 게임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탑 시크릿 스파이는 바로 이러한 블러핑의 요소를 잘 살린 게임으로, 간단한 규칙과 검증 받은 게임성으로 첫 번째 타자로 소개하게 되었다. 보드게임에 있어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Spiel des Jahres(올해의 독일게임대상)을 지난 1986년에 수상한 게임이기도 하며, 앞으로도 자주 소개하게 될 보드게임 명디자이너중 한 사람인 볼프강 크래머씨가 만든 게임이기도 하다.

370mm(가로) * 270mm(세로) * 55mm(높이) 크기의 박스를 열어보면 7개의 스파이 요원말과 그들의 점수를 표시하는 7개의 형형색색 말, 스파이를 표시하는 7장의 카드, 스파이를 위한 일급 비밀 서류가 감춰져 있을 것만 같은 검은 금고, 주사위 1개, 520mm(가로) * 260mm(세로) 크기의 게임 보드, 그리고 26개의 일급비밀 카드와 룰을 설명한 설명서가 들어있다. ( 이렇게 게임안에 든 것들을 콤포넌트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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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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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콤포넌트

게임 진행은 다음과 같이 이뤄진다. 먼저, 스파이 요원 카드를 섞은 상태에서 각 플레이어에게 나눠준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받은 카드를 슬쩍 확인해보는데, 절대 남에게 보여줘서는 안 된다. 바로 자신의 스파이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는 것이 이 게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블러핑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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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스파이 중 한명이 되어 게임에 임한다

이제, 다양한 색상의 스파이 말을 게임 보드 위에 0이라 숫자가 써있는 교회 건물 위에 올려놓는다. 보드를 자세히 보면, 12개의 건물이 동그랗게 연결되어 있고, 그 주변에 웬 숫자가 빼곡이 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형적인 보드게임판 모습 중 하나인데, 주변에 빼곡이 써있는 숫자는 각 색깔별 점수를 표시하는데 쓰이고, 게임은 가운데 건물에서 진행된다. PC게임이나 콘솔 게임은 일반적인 경우, 게임의 점수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경우가 많은데, 보드 게임에서는 이러한 점수가 게임의 승부를 가르는 절대적인 요소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승리 조건이 점수가 높거나 돈을 많이 획득하거나, 상대 영역을 전부 획득하거나 하는 등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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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팅을 마치고 한 컷!

시작 플레이어부터 주사위를 굴리며, 게임은 진행된다. 주사위에 나온 숫자만큼 말을 이동시켜야 하는데, 그 주사위의 모습과 이동하는 형태가 독특하다. 주사위는 여느 주사위와 똑같이 생겼지만, 그중 한면에 적혀있는 숫자가 다르다. 일반적인 주사위는 1부터 6까지 각각 한면에 숫자 1개씩 적혀있으나, 탑 시크릿 스파이의 주사위에는 2부터 6까지 적힌 면이 있고 1이 적혀야 할 면에는 1-3의 숫자가 적혀있다. 직감적으로 1-3은 1부터 3 사이의 숫자를 쓰면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건 숫자가 적힌 만큼 스파이 말들을 이동시켜야 하는데, 한 개 말을 숫자만큼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하고, 여러개 말을 각각 이동시켜 숫자를 맞춰도 된다. 즉, 주사위 숫자가 5일 경우, 1개 말을 5칸 움직이거나, 3개 말을 각각 1칸, 2칸, 2칸씩 움직이거나, 아니면 5개 말을 모두 1칸씩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형태로 진행하다가, 스파이 말 중 1개 이상이 금고가 위치한 지역에 들어가면, 각각의 스파이가 위치한 지역의 숫자만큼 점수를 얻게 된다. 게임은 스파이 중 한명이상이 42점 이상을 얻는 경우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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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스파이를 안들키기 위해, 골고루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게임의 기본적인 룰의 끝이다. 너무 간단해서 놀랍고 싱겁게 느껴지는 게이머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보드 게임은 설명만 듣고 게임의 재미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는 비단 보드 게임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단언하건데 보드 게임을 접해보지 못한 게이머일수록 보드 게임이 그 어떤 게임 종류보다 글로 게임을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게이머가 글로 이해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여기서 글을 접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마무리 지으면 뒷감당을 어찌하겠는가.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왜 이 게임이 재미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개똥이, 영구, 삼룡이 이렇게 3명이 탑 시크릿 스파이를 시작했다. 처음 카드를 분배하고 보니 개똥이는 빨간 스파이, 영구는 파란 스파이, 삼룡이는 검은 스파이다. 개똥이가 시작 플레이어다. 주사위를 굴리니, 이게 웬떡!? 6이 나왔다. 바로 빨간 스파이를 앞으로 떡하니 6칸 내달렸다. 흠, 영구와 삼룡이는 알아챘다. 개똥이가 빨간 스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부터 개똥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미 자신의 스파이가 탄로난 이상, 다른 플레이어의 딴지를 피해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높은 점수를 얻고 싶어도, 다른 플레이어가 -3점 짜리인 폐허에 던져놓고 금고로 가 점수를 계산해버리는 것이다. 그에 반해 삼룡이는 달랐다. 아예 자신의 말인 검은 스파이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말을 위주로 움직였다. 다른 플레이어가 과연 삼룡이의 말을 끝까지 알아챌 수 있었을까. 당연히 몰랐다. 삼룡이는 중후반까지 그렇게 게임을 진행하다, 막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검은색 점수 마커가 1등으로 결승점을 골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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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앞으로 나가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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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잡혀 3점을 오히려 뺏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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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빨간 스파이가 가장 빨리 결승점을
통과했다.

자, 다소 오버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게임은 저렇게 진행된다. 하지만, 솔직한 얘기로 처음 게임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개똥이같은 플레이어는 없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어느 누가 그렇게 미련하게 말을 움직이겠는가. 그렇다고, 삼룡이 같이만 플레이할 수도 없다. 게임에 승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자신의 말이 제일 뒤에 뒤처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 있겠는가. 마라톤의 그것과 같이, 이 게임에서도 일정 이상 뒤처지면 아무리 후반에 스퍼트를 내더라도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내 스파이를 상대방이 모르게 하기 위한 갖은 블러핑과 함께, 상대말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한 날카로운 추리가 필요한 것이다. 탑 시크릿 스파이에는 이외에도 추가 옵션룰이 있다. 잠시 옵션룰에 대해 살펴보면, 보드 게임은 PC게임이나 콘솔 게임의 그것에 비해, 게임 규칙이 갖는 비중이 어마어마하다. 따라서, 이러한 규칙에 일부 요소를 첨가하거나, 일정 부분을 바꿔서 플레이하는 옵션룰이 보통 따라붙게 된다. 이러한 옵션룰은 실제로 새로운 게임을 플레이하는 느낌까지 주는 경우도 많다.

탑 시크릿 스파이는 공식적으로 2가지 옵션룰을 제공한다. 첫째가, 바로 상대방 스파이가 누구인지 게임 도중에 알아맞히는 것이다. 1개 이상의 말이 29점 이상의 점수를 얻는 순간,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게이머는 각 색깔별로 주인 말을 맞춰야 한다. 이는 공개적으로 얘기되는 것은 아니고, 종이에 각자 적어놓고 게임이 종료되면 맞춰보는 형태이다. 이때 맞춘 스파이의 개수에 따라 추가 점수를 얻게 되고, 최종 점수가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를 하는 옵션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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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오렌지색 말이 29점을
넘었으니, 옵션룰을 적용했다면 이때 각 스파이마다 누구의 소유인지를 몰래 적어둬야 한다.

두 번째 옵션룰은 콤포넌트에서 잠깐 얘기한 26장의 카드를 사용하는 규칙이다. 카드는 주사위를 굴려 1-3이 나오거나, -3점이 적힌 폐허에 들어가면 해당 플레이어가 받는 것인데, 게임 도중 누구나 카드를 사용해서 게임 진행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카드는 금고를 이동하는 것과 스파이 말을 앞뒤로 이동시키는 것, 점수 말을 이동하는 것 등 상당히 다양하다. 하지만, 카드 사용 개수에 제한이 없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칫 게임이 지루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 카드 옵션룰의 경우에는, 탑 시크릿 스파이가 상을 수상하던 때에는 없던 규칙인데, 이런 형태로 보드 게임의 경우에도 PC게임의 패치처럼 일정한 부분이 업데이트되거나 추가되어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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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를 추가한 옵션룰로 플레이하는 장면

이 정도로, 탑 시크릿 스파이의 전체적인 소개를 마칠까 한다. 이 게임은 상을 수상한 것만도 20년이 다 되어가는 게임이지만, 간단한 규칙과 함께 블러핑과 추리의 요소가 적절하게 녹아 들어 있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보드 게임을 처음 접하는 게이머라도, 별다른 부담 없이 플레이하기 좋으며, 남녀노소에 구분을 두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는 가족 게임을 찾고 있다면 탑 시크릿 스파이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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