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이름값 하는 게임.

카를루스 마그누스 또는 샤를마뉴로 불리는 보드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딱 작년 이맘때쯤 각종 보드게임 카페에서 이상하리만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누린 게임이기도 하다. 보드 게임이야 바둑이나 장기처럼 출시된 시기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니 만큼, 그만큼 인기를 누렸다는 것은 게임이 상당히 재미있음을 뜻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샤를마뉴의 인기 요인을 풀어보겠다.

먼저, 샤를마뉴가 누군지 알면 더 재미를 느끼지 않겠는가. 샤를마뉴 대제 또는 카를루스 대제로 불린 그는 카롤링거 왕조의 제2대 프랑크 국왕으로 768년부터 814년까지 통치를 했다. 서유럽의 정치적, 종교적 통일을 이뤄내, 서유럽을 당시 비잔틴 제국이었던 동로마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낸 크나큰 업적을 남긴 위인이다. 그는 전투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기도 했는데, 본 게임에서 신나는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는 무대가 바로 그곳이다.

이제 보드게임 샤를마뉴로 돌아간다. 사를마뉴는 Leo Colovini 가 디자인한 게임으로 2000년 작품이다. Leo Colovini는 꽤나 잘 알려진 보드게임 디자이너인데, 대표작으로 얼마 전 한글화된 추리 게임 인코그니토와 작년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아쉽게 올해의 독일게임대상을 놓쳤던 클랜스 등이 있다. 샤를마뉴 역시 2000년 당시에 올해의 독일게임대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으나, Wolfgang Kramer의 토레스에 밀려 아쉽게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해에 수백가지 보드게임이 출시되는 마당에 최종후보까지 올랐다는 건 그만큼 게임성을 인정받았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박스, 콤포넌트부터 유별나다. 박스는 인코그니토와 같은 형태인데, 30cm(가로) * 30cm(세로) * 7cm(높이) 의 정사각형에 꽤나 두터운 크기를 자랑한다. 뭐 이렇게 생긴 박스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보드 게임들 쌓아놓기에 다소 거추장스런 형태임은 짚고 가야겠다. 콤포넌트는 Leo Colovini 의 다른 게임들처럼 실하다. 먼저, 보드판이 되는 15개의 영토 타일부터 체스의 비숍 같이 생긴 성이 30개, 샤를마뉴대제를 떠올리게 하는 큼지막한 황제 말, 1부터 5까지 숫자가 적힌 디스크 5셋, 그리고 무려 150개에 달하는 부족 말 등 구성물이 꽤나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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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 박스


바로 게임 규칙을 가볍게 얘기하겠다. 콤포넌트가 많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게임은 결코 규칙이 어려운 게임은 아니니 말이다. 게임은 2명부터 4명까지 플레이가 가능한데, 게임에 동봉된 매뉴얼을 보자면 게임 규칙이 복잡할 수 있으니 2인용부터 플레이를 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디자이너의 매우 섬세한 배려일 뿐이니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를 해보자. 사실 플레이하는 인원에 따라 약간의 규칙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몇인 플레이를 하건 문제될 건 없다.

그래도 디자이너의 배려에 따라 2인플레이를 기준으로 규칙을 얘기해보겠다. 먼저, 게임 바닥에는 15개의 영토를 띄엄띄엄 배치한다. 영토의 한곳에 샤를마뉴 말을 올려놓고, 부족말을 색깔별로 3개씩 골라 15개의 영토 위에 다시 하나씩 배치한다. 플레이어마다는 부족의 우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영향력 카드 1장과 자신이 원하는 색상을 결정해 성 10개와 같은 색상의 숫자 디스크 1세트를 가져온다. 그리고, 주사위를 굴려 7개의 부족을 가져오는 것으로 게임 세팅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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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플레이를 위한 초기세팅 모습


게임이 시작되면, 숫자 디스크를 내놓아 턴의 게임 순서를 결정한다. 숫자가 낮은 플레이어가 먼저 플레이를 하게 되는데, 숫자에 해당하는 만큼 샤를마뉴 말을 이동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턴에는 다음 행동을 취한다. 갖고 있는 부족말 중에서 3개를 골라 영토 혹은 영향력 카드에 배치한다. 그리고, 샤를마뉴 말을 내놓은 숫자만큼 이동하고, 마지막으로 주사위를 3개 굴려 부족 말을 다시 7개까지 보충한다. 행동할 것은 이것이 다이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조금 더 심도 있게 얘기해보겠다. 일단 부족 말을 투자하는 첫 번째 액션부터. 영토 또는 영향력 카드에 배치하는데, 영향력 카드에 배치하는 부족 말의 개수가 상대 영향력 카드에 배치된 같은 색상의 부족 말보다 많으면 해당 부족을 통치하는 것으로 한다. 이것은 영토 위에서 우위를 논할 때 기준이 되는 것으로, 자신이 통치하는 부족 말의 개수를 모두 더하여, 상대와 누가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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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의 순서를 결정하기 위해 숫자 디스크를 냈다.
낮은 숫자부터 플레이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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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영향력 카드다. 이곳에 부족말을 투자하고,
다른 플레이어와 비교해서 가장 많은 부족말이 있는 경우, 해당 부족말을 지배하고 있음을 표시하든 둥근 막대기를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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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샤를마뉴 말의 이동은 영토 위에서 이뤄진다. 자신이 낸 숫자 이하만큼 이동할 수가 있는데(즉, 3을 냈다면 1~3까지 이동할 수 있다)샤를마뉴 왕이 멈추는 영토에서는 무조건 누가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여기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플레이어의 성을 짓는 것으로 두 번째 액션이 끝나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인접한 영토가 동일한 플레이어의 성이 위치해있는 경우, 영토가 합쳐진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이 진행될수록 15개의 영토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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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 말이 위치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플레이어의 성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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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플레이어마다 1턴씩 진행했다. 초반에는 영향력 카드에 부족을 모는 것이 일반적이라 지역에는 기본 부족 외에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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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한 두 개 지역에 같은 색상의 성이 쌓이는 경우,
두 개 지역은 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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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합해진 지역은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 나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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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미 상대의 성이 위치한 지역에 왕이 이동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때는 성마다 1점씩 계산해서 부족의 우위를 결정할 때 +를 해준다. 분명 성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해당 지역의 우열이 뒤바뀌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첫 번째 액션에서 영향력 카드에, 상대가 통치하는 색상의 부족에 더 많은 수를 투입하여 내가 통치해버리거나, 차지할 지역에 자신의 영향력 하에 있는 부족을 직접 투입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영토 싸움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혼전의 연속이다.

마지막으로, 부족말 보충은 주사위 운에 결정되게 된다. 한데, 재미있는 점은, 주사위 눈 중에 하나가 왕관 모양으로 이것이 나오는 경우, 자신이 원하는 색상의 부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샤를마뉴에서 부족 하나가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간단하게만 보이는 부족 가져오기 액션도 굉장한 생각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게임이 진행되어, 한 플레이어가 가진 성 10개를 모두 세우거나, 바닥의 영토가 3개 이하로 줄어드는 순간 더 많은 성을 세운 플레이어가 승리하게 된다. 확실히 어려운 규칙은 아니다. 한데, 실상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하는지에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아마 전혀 샤를마뉴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본 글만 읽자면, 대략의 게임은 짐작할 수 있겠으나 어떠한 요소에 게이머들이 흥분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지는 간파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부터, 게이머들이 왜 그토록 열광했었는지 샤를마뉴의 핵심적인 시스템 2가지를 얘기해 보겠다.

첫째, 샤를마뉴의 순서를 결정하는 디스크 내기다. 플레이어는 1부터 5까지 숫자가 적힌 디스크를 갖고 있는데, 한번 내고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5개를 전부 내야만 회수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턴에 1을 냈다면 다음 턴에는 2부터 5까지 숫자중에서 하나를 내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내는 숫자는 단순히 턴의 진행 순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샤를마뉴 왕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결정해버린다. 때문에, 내가 먼저 플레이를 하더라도, 원하는 지역까지 왕을 옮기지 못해 상대에게 오히려 뒷통수를 맡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숫자 디스크의 중요성은 또 있다. 2인 플레이를 기준으로, 숫자 디스크만 적절히 낸다면 전 턴에서 나중에 하고, 다음턴에서 먼저하는 식으로 연달아 2턴을 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2턴을 연달아 진행한다는 것은, 부족의 숫자 싸움이 결정적인 샤를마뉴에서 굉장한 기회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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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마다 3턴씩 진행한 상황이다. 몇 개의 지역이
합쳐져 있고, 놓인 부족의 수도 제법 많아졌다. 4인
플레이의 경우, 팀플레이기 때문에 주사위만 적절히
도와준다면 상당히 많은 수의 부족이 지역으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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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후반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미 성이 2개 이상 자리잡은 지역의 경우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세력으로 따져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곧, 지각 변동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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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부족의 영향력 싸움이다. 이는 주사위 운이 작용하는 요소인데,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5개 부족 중 3개 이상은 누구도 확실한 우위를 점칠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된다. 초반에야 자신의 영향력 카드에 부족을 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영토에 직접 투자되는 부족의 수가 많지 않아 영향력 싸움이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으나, 중후반으로 갈수록 자신이 어느 정도 앞서간다 싶은 부족말을 직접 영토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하지만, 부족말을 보충할 때, 자신의 원하는 부족이 척척 나올리는 만무한 법, 상대방이 의외의 수로 한두가지 부족 말을 싹쓸어 가는 경우, 내가 열심히 닦아놓은 터전이 상대방의 물량 공세에 밀려 한순간에 판세가 뒤집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어느 정도 보정해주는 것이 바로 왕관인데. 주사위의 왕관의 존재와 연달아 2턴을 갖기 위한 디스크 수싸움은 농담이 아니라 머리에 쥐날 수준이다. 대략 앞으로 2~3턴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 게임이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플레이어끼리 제대로 맞붙는다면, 게임에서 예상하는 30~45분 플레이타임을 가볍게 2~3배 오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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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지막 폭탄이 터졌다. 7시 방향의 검은색 성이 3개
쌓인 지역을 보자. 상황을 얘기하자면, 검은색 팀은 분홍색과 빨간색 부족을 지배하고 있고, 흰색 팀은 노란색과
녹색, 파란색 부족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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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플레이어의 턴이 진행되면서 7시 방향의 지역에 변화가 생겼다. 수성하느냐, 탈환하느냐는 이미 라운드의 시작 때 점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 결국 흰색 팀의 세력이 더
강해졌다. 정확히 쓰자면, 5점(분홍)+3점(빨강)+3점(성)<6점(노랑)+2점(녹색)+4점(파랑)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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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검은색 성은 흰색 성으로 바뀌고, 흰색 팀은 10개 성을 모두 쌓았으므로 게임에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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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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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인 플레이 역시 기본 흐름은 동일하다. 3인플레이의 경우에는 갖고 있는 성의 숫자와 플레이하는 부족의 수에 차이가 있고, 4인플레이의 경우에는 2인플레이의 확장 형태로 2명의 파트너가 함께 힘을 합해야 하는 파트너 게임이다. 적어도 4인 플레이는 샤를마뉴를 몇차례 플레이 해본 유저끼리 플레이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으며, 2,3,4인 플레이가 각기 다른 전략적인 플레이를 필요로 한다는 점 또한 샤를마뉴의 매력적인 요소다.

샤를마뉴, 확실히 이름값 하는 게임이다. 많은 이들이 괜히 샤를마뉴 찬가를 불렀던 것이 아닌 셈이다. 너무 재미있어, 수백판을 플레이했더니 더 이상 못하겠더라는 플레이어는 봤지만, 게임을 제대로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재미없어 못하겠다는 플레이어는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콤포넌트에 매료되고, 다음에는 게임성에 매료되었다는 말도 들리는데, 실상 콤포넌트는 그 양이 많아서 보기 좋지, 개성적인 콤포넌트에 많은 점수를 주는 게이머라면 콤포넌트에 매료된다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게임성은 확실히 매료될만하다. 보드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꼭 플레이해서 그 시스템을 한번 맛봐야할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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