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지키는 중력공주, 그라비티 러쉬

2012년 2월 11일 대한민국에 PS VITA가 정식 발매된지 벌써 5개월. 그동안 양질의 PS VITA용 게임이 대한민국에 상륙해 전례 없는 다양한 재미들을 선사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PS VITA 사용자들을 만족시켰느냐 하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PS VITA 사용자 중에는 다년 간 여러 게임을 하면서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소위 말하는 골수 게이머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로지 PS VITA에서만 할 수 있는 게임을 원했다. 그것도 PS VITA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개성은 유지하되 여타 게임과 비교할 수 없는 재미까지 보장하는 그런 게임을. 이렇게 일부러 작정했나 싶은 가혹한 조건을 내밀어 PS VITA를 폄하한 게이머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저 경지까지 다다른 PS VITA용 게임이 정식 발매한 게임 중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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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눈 높은 게이머들을 위한 PS VITA용 게임이 드디어 나왔다. 이미 2012년 2월 일본에서 발매돼 비평과 판매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PS VITA에서만 가능한 게임성에 전례가 없는 독특한 재미로 갈채를 받은 100% 오리지널 게임. 이것이 소녀는 하늘로 떨어졌다 / GRAVITY RUSH(이하 그라비티 러시)이다. 중력 액션을 주제로 PS VITA의 강력한 기기 성능을 증명하는 동시에 전례 없는 독특한 개성으로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이 한글화를 거쳐 2011년 6월 정식 발매됐다. 일찍이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에 한글화까지 이루었으니 대한민국 PS VITA 게이머들에겐 이만한 선물이 따로 없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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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액션이 멋져

단연 그라비티 러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중력 액션. 실제로 중력을 마음껏 다룰 수 있다면 다양한 응용이 있겠지만, 그라비티 러시에서는 크게 이동용 중력 액션과 전투용 중력 액션 두 분류로 나눠서 구현했다. 여기서 다시 무중력으로 이동하느냐, 지면(길, 천장, 벽 어떤 지면이든 OK)에 붙어 미끄러지느냐와 중력 액션으로 물건을 던지느냐 직접 몸을 날리느냐로 나뉘기 때문에 사실상 게임 안에서 중력 액션은 네 가지가 전부. 그렇다고 기발한 중력 액션을 바랐던 게이머들은 실망하지 마시라. 저 네 가지만으로 중력 액션이 너무나 재미있어 종류의 다양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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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결은 상상의 나래 속에서 절묘한 사실감이 녹아들어간 압도적인 중력 체험이다. 하나 같이 강력한 위력과 날쌘 속도를 보여주는 중력 액션이 게이머를 감탄하게 만들고 정교한 물리 연산이 보여주는 사실적 묘사가 게이머를 현실처럼 몰입하도록 조장한다. 단순히 이펙트 많고 소리가 우렁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력 액션에 주변 사물과 사람들이 휘말리는 묘사, 중력이 작용하는 힘과 방향에 따라 변하는 관성과 반발력, 그 와중에 3차원 공간을 활보하며 움직이는 몸짓과 시점 변화 등 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모든 장치가 중력 액션과 한 몸을 이뤘다. 이렇게 현실감을 높인 와중에 미려한 그래픽, 통쾌한 사운드 효과가 어우러져 탄생한 고도의 기술 집합이자 계산의 산물이 중력 액션의 정체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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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중력 액션을 사용한 방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력 액션이 아주 처음 등장한 아이디어도 아니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소재라 하여 보여주기만 해서는 재미있는 게임으로서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라비티 러시는 보상을 준비했다. 중력 액션을 사용하면서 게이머가 만날 스토리 진행, 능력 향상, 콘텐츠 증가 모두 중력 액션에 빠져들도록 하는 보상이다. 그래서 그라비티 러시는 과정과 변화를 보여줬다. 게임 플레이 속에서 게이머가 적응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챌린지 미션의 결과와 난이도는 중력 플레이와 게이머를 한 몸으로 만드는 과정과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라비티 러시는 목표와 성취감을 줬다. 스토리 미션이든 챌린지 미션이든 중력 액션으로 목표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 기쁨은 여타 게임의 도전보다 더 값지다. 중력 액션의 묘미가 한 걸음씩 해답에 다가가는 기술과 경험이 쌓여서 차곡차곡 완성되는 탑과 같기 때문이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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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중력 액션의 완성도를 뒷받침한 PS VITA의 모션 센서와 중력 액션을 전부 품은 방대한 오픈 월드 역시 그라비티 러시를 뒷바라지한 숨은 공신이다. 손쉬운 조작만으로 실제 중력을 인식하는 PS VITA의 우수한 모션 센서가 없었다면 중력 액션은 스틱과 버튼뿐인 2차원 조작에 매달려야하는 반쪽짜리로 남았을 것이며, 방대한 오픈 월드가 중력 액션을 써먹을 공간이자 놀이터의 역할을 해주었기에 중력 액션이 언제나 게임 안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스토리 진행이나 미션 수행이 아니라면 드넓은 공간에서 깨알 같은 아이템 수집이나 숨겨진 서브 이벤트 수행 정도가 할 일의 전부이지만, 사소해 보일지 모르는 이 부분이 빠졌다면 중력 액션은 게임의 중심이 아니라 써야 할 때만 골라 쓰는 한낱 기술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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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재미있어

그라비티 러시의 기본 줄거리는 어느 날 기억을 잃은 채 공중도시 헥사빌에 나타난 중력술사 캣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도시 시설들을 고쳐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거나 중력 액션 능력을 발달시키면서 헥사빌과 캣을 둘러싼 의문의 핵심에 다가간다. 줄거리만 본다면 도시를 지키는 명랑 히어로물과 큰 차이가 없고 도시 안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는 자유도나 능력치 성장으로 게임을 쉽게 풀어나가는 요소도 새로울 게 없어 다른 게임과 얼마나 차별화가 되는지 의문을 가질 법하다. 그러나 이것은 게임의 보편적 재미를 추구한 제작진들의 고충이자 왕도의 가치증명이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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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비티 러시의 꽃인 중력 액션은 분명 화려한 꽃이긴 하나 그 꽃을 알아보려면 안목과 경험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론 360도 회전하는 시점과 3차원을 마음껏 활보하면서 원하는 대로 캣을 이동시킬 공간 인식과 조작 실력이 필수 요건이다. 일단 이 경지에 오르도록 그라비티 러시가 게이머에게 해줄 수 있는 편의성 배려는 전부 해주고 있다. 시점 이동 속도와 모션 센서의 감도는 옵션에서 얼마든지 조절 가능, 주관 시점과 시점 리셋 기능, 언제나 한결같이 게이머를 챙겨주는 안내, 게임오버가 두렵지 않은 다수의 체크포인트 등 전부 열거하기 힘들 만큼 ‘아, 이거 없으면 곤란하다’ 싶은 장치가 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력 액션 속에서 게이머가 적응해야 할 환경은 지금껏 등장한 게임들보다 훨씬 생소하며 게이머의 적성에 따라 적응 난이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문제가 있다. 스토리 미션이 각자 컨셉을 가져 중력 액션의 경험과 적응을 쌓게 만들고 챌린지 미션이 중력 액션의 실력을 가늠하여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작진 역시 중력 액션의 적응에 편법이 없음을 알고 스토리 미션과 챌린지 미션을 단계적으로 배치해 중력 액션을 반복하게 만들었고 이 쳇바퀴는 마지막 스토리 미션까지 이어진다. 액면 그대로 드러낸다면 게이머가 질릴 대로 질릴 수준이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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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라비티 러시는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구석이 없는 높은 완성도의 시스템과 스토리로 이 단점을 지워야 했다. 말이야 쉽지 사소한 결점 하나 없는 스토리와 시스템을 중력 액션에 맞춰 제작하려면 끝도 없는 시행착오와 고충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성공했다. 소소한 일상의 사건사고부터 거대한 음모에 이르기까지 능숙하게 완급을 조절하여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이어간 스토리와 자칫 족쇄가 될 수 있던 중력 액션을 도구로 승화시킨 시스템들이 중력 액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무엇보다 큰 힘이 된 것이다. 더불어 탐색, 전투, 도전처럼 경험과 적응을 쌓을만한 시간과 기회를 벌어주었고 그사이 게이머는 중력 액션의 진가를 느끼면서 게임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익숙한 포장을 생소한 방법으로 풀도록 하여 다른 포장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그럼 어떤가, 덕분에 포장을 뜯는 과정들이 재미있어졌는데.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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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재미 추구보다 효율적인 진행을 선택한다면 그라비티 러시가 게이머를 위해 준비한 요소 상당수가 무용지물로 전락해버리는 문제가 있다. 게임 안에서 빠른 진행, 쉬운 진행을 위한 방법과 그라비티 러시가 게임의 재미를 위해 준비한 장치들이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중력 액션에 적응을 포기하고 그저 빠른 진행만을 바란다면 중력 액션에 적응하도록 안배한 콘텐츠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게임의 난이도가 중력 액션에 적응하기를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클리어 가능한 수준이라 속전속결을 선호하는 게이머일수록 콘텐츠 부족을 느끼기가 쉽다. 이렇게 게임을 급하게 끝내버리면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다시 체험해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라비티 러시 자체에 흥미를 잃을 가능성마저 있다. 엔딩 이후에 도전과 탐험이 자유로운 챌린지 미션, 이차원 세계처럼 스토리 미션 역시 멋모르고 지나쳐버린 게이머를 위해 재도전의 기회를 주었다면 DLC 미션이 없더라도 콘텐츠 수명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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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올 거야

사실 그라비티 러시를 가지고 콘텐츠 수명 운운하기엔 즐길 거리가 너무나 많다. 엔딩 이후엔 각종 탐험 거리와 도전 요소가 풍부하고 이것만으로 부족하면 본편에서 나오지 않았던 캣의 활약이 담긴 DLC팩을 구매할 수도 있다. 게이머가 찾고자한다면 얼마든지 즐길 콘텐츠가 나오는 이 게임이 볼륨 부족이란 평가를 받는 건 상당히 억울한 일. 이건 2회차 데이터 전승 플레이, 스토리 미션 재도전처럼 이제는 익숙한 콘텐츠 재활용이 그라비티 러시에는 없어서 게이머들이 느끼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하소연이라 봐야할 것이다. 기껏 돈 주고 산 DLC팩의 사이드 미션까지 한 번만 즐길 수 있단 건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재도전이 불가능한 미션은 클리어 후 복기 기록이 새로 생기긴 한다). 단 한 번의 플레이에서 느끼는 재미만으로 충분할 거란 제작진의 자신감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설령 이 예상이 맞다 쳐도 제작진의 자만이라고 할 수 없단 점이 왜 그라비티 러시가 대단한 작품인지를 대신 설명한다.

그라비티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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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바라보면 그라비티 러시 하나만 붙잡고 콘텐츠 수명을 늘릴 바에 차라리 후속작으로 그라비티 러시의 수명을 이어가려는 야심찬 계획에 밑바닥에 깔렸을 확률도 배제하지 못 한다. 게임 안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나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묘사가 너무나 많은데다 결국엔 후속작 예고와 함께 ‘에피소드 01. 끝’이나 “이겼다! 제 1부 끝!”이란 여운을 남겨버리니 말이다. 만약 그라비티 러시가 뭘 해도 용서가 되는 명작이 아니었으면 이 뒷감당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했을지 제작진의 용기가 가상할 따름이다. 반대로 해석하면 뭘 해도 용서가 되니 후속작도 지금 만큼만 만들어주면 더 바랄 게 없는, 그라비티 러시는 대단한 작품이고 재미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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