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키드’에서 ‘페르소나’까지, 한글화 타이틀의 발자취

지난 8월 24일. 한동안 잠잠하던 비디오게임 시장에 게이머들이 반길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PS비타용 신작 롤플레잉게임 ‘여신전생 페르소나4 더 골든’(이하 페르소나4 더 골든)이 출시된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지난 2008년에 PS2로 발매된 ‘여신전생 페르소나4’의 리마스터 버전. 추가 캐릭터가 등장하고 스토리가 추가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원작의 궤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새로운 기종으로 출시되긴 했지만 4년 전에 출시된 작품이기에 이미 즐겨본 사람들은 거의 즐겨봤다고 해도 좋을만한 작품. 하지만 이 게임은 출시 이전부터 ‘PS비타의 하드웨어 판매를 견인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실제로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이 이렇게 좋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게임성도 있겠지만, 게임에 한글화 작업이 이뤄졌다는 것도 그 이유로 꼽힌다. 수준 높은 한글화 덕분에 게이머들은 이 작품에서 언어의 장벽에서 오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 하기 때문이다.

사실 게이머들에게 있어 ‘언어’ 문제는 게임 플레이를 방해하는 가장 심각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개발사 대부분이 해외 업체인 비디오게임의 경우에는 ‘언어’ 문제가 더욱 심각한 편으로 실제로 “언어 때문에 이번 작품은 못 하겠다”는 말을 하는 게이머들의 반응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게임 한글화는 게이머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국내 게임시장의 한글화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 그 발자취를 간략하게 파악해보자.

80, 90년대의 게이머들은 흔히들 “사전을 옆에 두고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다 보니 일본어가 늘었다”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비디오게임 시장 환경이 워낙에 열악하다보니 게임을 즐기는 것도 벅찼던 이 시기에, 한글화 게임을 바라는 것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욕심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에도 한글화 된 게임들은 출시되고 있었다. 비디오게임 시장에 있어 가장 척박했던 시기에 게임 한글화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이야기다.

이 시기에 국내 게임 한글화 작업에 가장 열성을 보였던 것은 다름아닌 삼성전자였다. 당시삼성은 ‘겜보이’(일본명 세가마크3)라는 게임기를 시장에 출시한 상황이었고, 이를 위한 한글화 타이틀도 출시하고는 했다.

이 시기에 출시된 한글화 게임은 ‘알렉스키드’, ‘화랑의 검’, ‘판타시스타’ 등의 작품으로 특히 ‘판타시스타’는 국내 출시된 RPG 중 최초의 한글화 RPG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화랑의 검’ 같은 경우는 단순히 언어의 한글화를 뛰어넘어, 게임에 등장하는 배경과 캐릭터까지 한국의 분위기에 맞게 수정한 최초의 '현지화' 사례로 꼽힌다.

이후, 비디오게임 시장은 8비트 시대를 넘어 16비트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16비트 게임기인 ‘슈퍼겜보이 / 슈퍼알라딘보이’(일본명 메가드라이브)용 RPG ‘스토리오브도어’를 한글화하며 비디오게임 시장의 한글화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한글화 작품은 다름아닌 ‘슈퍼컴보이’(일본명 슈퍼패미컴)로 출시된 대전격투게임 ‘초무투전’ 시리즈였다. 특히 초무투전 3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드래곤볼을 소재로 했다는 점과 한글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게이머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초무투전 3의 전국대회 상품으로 그 당시 처음으로 출시됐던 국산 경차 '티코'가 상품으로 걸렸을 정도였다.

이와 함께 한국의 무예인 태권도를 소재로 하는 동명의 게임 '태권도'가 출시되며 인기를 얻기도 했다. SFC용 대전 액션게임인 '태권도'는 소재는 물론 당시 마니아들 사이에서 개발력을 인정받은 일본의 개발사 '휴먼'에서 제작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던 게임이다.

이 시기 이후의 게임 한글화 작업은 비디오게임보다는 PC 패키지 게임 위주로 진행됐다. 특히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발더스게이트, 마이트앤매직, 플레인스케이프토먼트 등 굵직한 게임들이 한글화 되며 많은 관심을 얻기도 했다. 물론, ‘왈도체’로 대변되는 마이트앤매직6처럼 엉성한 수준의 한글화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열악한 시장 환경에서도 한글화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는 이들도 많다.

2002년에 플레이스테이션2(이하 PS2)가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면서 게임 한글화 작업도 다시 활발한 모습을 띄기 시작한다. 특히,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이하 SCEK)는 PS2의 출시와 함께 발매한 런칭 타이틀인 ‘이코’를 한글화 해 출시하며 게이머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PS2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국내 한글화 게임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최고의 한글화 타이틀로 꼽히는 ‘괴혼’, ‘테일즈오브데스티니2’ 등의 작품이 발매된 시기도 바로 이 시기. 이 기간에는 대작들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작품의 대부분이 한글화 되어 출시됐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한글화 바람도 그다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일본 내에서도 판매량이 떨어지는 소위 '마이너'한 작품들은 한글화를 거쳤더라도, 작은 규모의 국내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대작들마저도 무분별한 불법복제로 인해 게임 업체에 이렇다 할 수익을 가져다 주지 못했으며, 수익 악화로 인해 다수의 업체가 게임시장에서 발길을 돌렸다. 게이머들 스스로가 ‘복에 겨워 굴러온 복을 발로 걷어차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악재가 있었음에도 국내 게임시장에서 한글화 바람은 꾸준히 불고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는 스타크래프트의 대성공 이후 한국 시장을 의식한 탓인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디아블로3, 스타크래프트2 등의 작품에 꾸준한 한글화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한국 닌텐도 역시 오는 9월 27일에 닌텐도 3DS 전용 소프트웨어인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3D’를 한글화 작업을 거쳐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 업체에 있어 게임 한글화는 양날의 검이다. 한글화 덕분에 판매에 성공한 작품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글화 덕분에 불법복제가 더욱 활성화 된 작품도 많기 때문이다. 게임 업체가 쉽사리 한글화를 결심하지 못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의식이 널리 퍼지고, 불법복제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시행된다면 게임 한글화 작업도 다시 한 번 바람을 타고 높이 올라갈 수 있다. 결국 자신이 즐기는 게임이 한글화 될 것인지 아닌지는 게이머들 손에 달린 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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