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액션, 아쉬운 스핀오프 라그나로크 오디세이

대한민국과 세계를 휩쓴 화제의 MMORPG 라그나로크 온라인. 이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스핀오프 게임 라그나로크 오디세이(이하 오디세이)가 한글화 작품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복잡한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시작한 게임의 스핀오프를 수입 작품으로서 즐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것이다. 그래도 한글화를 거친 덕분에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 해외 게이머들과 차이가 없어졌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아직 뿌리를 내리는 단계라 다른 기기보다 한글화 성사가 더 어려운 PS VITA용 게임이라 더더욱.

라그나로크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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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레벨과 스킬로 육성하던 MMORPG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떠올리며 이 게임을 즐기려 했다간 적잖게 당황할 것이다. 오디세이는 게이머의 조작 실력을 중심으로 삼는 3D 액션 게임이기 때문. 포링 같은 마스코트나 익숙한 고유명사들을 제외하면 거의 다른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무작정 스토리 진행으로 능력치를 올리기보단 게이머가 빠르게 적응하여 캐릭터 숙련도를 높여야 하고 무작정 강한 스킬을 사용하기보단 시기적절한 스킬 사용이 더 효과적이다. 아이템의 경우 라그나로크 온라인처럼 캐릭터 성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지만 무작정 확률로 나타나기만을 바라던 본편과 달리 바라는 아이템의 재료나 스킬 카드를 노리고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한다. 결국 아이템도 게이머의 게임 이해도와 숙련도가 결정짓는단 이야기.

라그나로크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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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은 게임의 수명을 전적으로 게이머에게 맡기기 때문에 게이머들이 오랫동안 즐기리란 자신감이 크지 않고서는 함부로 시도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오디세이가 이 방식을 채택했다는 건 명가 라그나로크 온라인에게 하사 받은 브랜드 파워를 믿어서였을까? 아니면 게임 본연의 재미가 게이머들을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해서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디세이는 후자에 가깝다. 퀘스트 수주와 전투의 반복뿐인 게임의 흐름 속에서 난이도 조절이 절묘해 게임이 질리지 않는다. 같은 맵, 같은 몬스터라도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전투의 양상이 바뀌니 매번 새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달라지는 건 게이머의 숙련도에 따른 전투 과정 정도. 오디세이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거대 몬스터와의 보스전 퀘스트에 이르면 공격 부위에 따라 획득하는 아이템의 제작 재료까지 감안하게 되어 순간적인 판단력과 조작실력으로 전투를 해쳐가는 흥미진진한 전개가 펼쳐진다. 한편 퀘스트와 퀘스트 사이에 아이템 제작,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장비 교체 등등 전투로 몸과 마음이 지친 게이머가 느긋하게 살펴볼 요소들 역시 갖추고 있어 게임 콘텐츠가 전투에 쏠리지 않도록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라그나로크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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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게이머가 질리지 않도록 유도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무너질 때이다. 질릴 틈이 없다는 건 긴장의 끈을 놓기 힘들다는 것이지 재미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게임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게이머에게 쌓이는 피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몇 시간씩 붙들고 있으면 몸에서 반응이 오기 마련인데 오디세이는 퀘스트와 퀘스트 사이를 제외하곤 게이머가 느긋하게 지나갈 구석이 적어 체감상 피로가 더 빨리 쌓일 수밖에 없다. 플레이 동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좋은 장비나 아이템을 구하여 전투 난이도를 낮추고 싶어도 후반 재료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전까진 꼭 한 두 번씩 거대 몬스터와의 결투나 반복 작업으로 고행을 겪어야하기 때문에 게임 내내 점점 강도가 강해지는 채찍질을 당하는 느낌마저 든다. 채찍질만큼이나 당근이 풍성하다면 다행이겠지만, 채찍질 끝에 얻는 당근들이 하나같이 보다 이전에 필요했던 경우가 많아 당장 필요한 당근을 위해선 다시 고행의 길에 뛰어들어야 한다. 게다가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고행의 여정은 하염없이 길어지기만 하니 게이머의 집념과 체력 없이는 지속적으로 즐기기가 힘들다.

라그나로크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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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로크와 오디세이 사이에서

이 때마다 가장 그리워지는 건 본편인 라그나로크 온라인과의 연계다. 전통의 명가 MMORPG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등장했으니 전투로 다 채우지 못 하는 플레이 동기와 흥미 유발 장치로도 요긴하게 쓸 법 했을 텐데 추억 묻어나는 DLC들에서만 그 흔적을 겨우 찾아볼 수 있다. NPC와의 대화로 라그나로크 온라인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대략이나마 유추할 수 있긴 하나 이건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설정에 관심이 많은 게이머들이 알아서 즐길 거리를 찾아가는 가십 정도의 비중일 뿐(이마저도 일일이 챙기기엔 많이 번거롭다). 플레이 동기 부여로서 본편과 이어지는 요소가 너무 부족하다. 스핀오프는 본편과 일정 거리를 두되 서로의 이야기에 영향을 주고 받는 팀플레이가 있어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 말이다. 결국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떠올리면서 오디세이를 시작한 게이머는 보고 싶었던 본편과의 2인 3각 경기 대신 손만 맞잡다 끝난 포크댄스를 보는 신세가 된다.

라그나로크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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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게이머가 오디세이를 계속 붙잡을 수 있게 해주는 건 오디세이의 자랑거리인 온라인 멀티플레이다. 단적인 예로 게임 안에서 등장하는 특성 뚜렷한 여섯 타입의 직업들은 싱글 플레이에서도 전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멀티 플레이에서 경험하는 협동 플레이와 비교하면 어디까지나 수박 겉핥기. 라그나로크 온라인에서 느끼던 협동의 묘미와 싱글 플레이에선 염두내기 힘들었던 전투 양상을 동료들의 힘으로 이끌어나가면서 새로운 플레이 경험을 제공한다. 그밖에 온라인 회선 상태 표시, 아시아 버전 제품들의 공용 서버(한국, 홍콩 등) 사용을 통한 멀티 플레이 참여 게이머 확보, 멀티 플레이 과정 간소화, 싱글 플레이와 반응 속도가 흡사한 인식 속도 등 오디세이가 멀티 플레이에 들인 공들도 싱글플레이와 비교하여 매우 눈에 띈다. 게임이 후반부나 고난이도에 들어갈수록 멀티 플레이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높아져가는 게임 구조나 간편한 의사전달이 눈에 띄는 유저 인터페이스 역시 같은 맥락. 싱글 플레이의 문제점들을 만회하기 위해 멀티 플레이에 더욱 공을 들인 것인지 오디세이 개발진들의 기획 의도인지는 이 자리에서 알 방법이 없지만 혼자 즐기기보단 여럿이서 같이 즐겨야 진가를 발휘하는 모습에서 오디세이에 남아있는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라그나로크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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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오디세이는 타이트하게 짜임새를 잘 갖추고도 다룰 수 있는 일부 콘텐츠를 소홀히 하여 웰메이드에서 좀 더 나아가지 못 해 아쉬운 게임이다. 멀티 플레이의 요소들을 좀 더 싱글 플레이에 접목시킬 수 있었다면 PS VITA의 액션 장르를 책임질 명작으로 거듭나 본편인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아성을 넘볼 수도 있었으리라. 그래도 라그나로크 온라인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수작에 버금가는 건 변하지 않으니 PS VITA로 멀티 플레이 액션 게임을 즐기고 싶은 게이머들이라면 한 번 붙잡아 보시라. 액션 게임 본연의 재미로 무장한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또 다른 세계가 게이머를 기다리고 있다.

라그나로크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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