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컴의 추억과 부활에 대한 불안감. 파이락시스는 달랐다

추억은 항상 미화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아름다웠던 추억만을 기억하고 안 좋았던 기억은 지워버린다.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망각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게임업계의 꾸준한 수입원 중 하나는 추억팔이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옮겨오기도 하고, 시대에 맞게 그래픽을 업그레이드하기도 한다. 또는 아예 일신해서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게임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추억은 추억으로만 존재해야 아름답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추억이라는 달콤함이 너무 매력적인 탓에 꾸준히 속아주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 어린시절을 함께 했던 엑스컴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환호하면서도 걱정이 앞섰었다. 그동안 엑스컴을 계승하겠다고 등장했던 많은 게임들이 실망스럽기도 했거니와, 재미있게 즐기긴 했지만 현세대의 트렌드와는 완전히 다른 동떨어진 엑스컴의 매력 포인트를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똑같이 가져와도 문제고, 트렌드를 반영한다고 확연히 바꾼다면 그것은 엑스컴이 아니게 된다. 솔직히 원 개발자들이 다시 뭉쳐서 게임을 개발한다고 해도 긴가민가 했을 것이다.

근데 개발을 담당한 회사가 파이락시스라고 한다. 구시대의 유물이 된 턴제 전투를 가지고도 아직까지 최정상의 위치에 있는 문명을 개발한 그 회사다. 더욱이 개발진 전체가 엑스컴의 골수팬이란다. 걱정이 앞서면서도 손이 가는 이유다.

파이락시스가 부활시킨 엑스컴은 엑스컴 1편과 똑같은 부제를 달고 나왔다. 원작을 최대한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픽은 언리얼 엔진3를 활용한 덕분에 확실히 좋아졌고, 턴제 전투는 약간의 변화를 주긴 했지만 기본 맥락은 똑같이 가져갔다.

과거에는 행동포인트를 기반으로 한칸 한칸 움직이는 형태였지만 이번에는 총을 쏠 수 있는 한계 이동구역과 최대로 이동할 수 있는 구역으로 나누고 주변 물체가 있다면 자동으로 은폐, 엄폐를 하는 형태다. 그리고 모든 대원이 행동을 다 끝내면 턴을 넘기게 되고, 외계인의 행동이 시작된다.

기본 룰은 기존과 똑같은 형태이지만, 이동시마다 적절한 애니메이션이 삽입되면서 확실히 답답함이 덜하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포인트 때문에 다소 답답함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정도로 속도감이 느껴지는 턴제 전투는 기대하지 못했었다. 역시 파이락시스다.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최대 인원수가 6명으로 줄어든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나 이 역시 전투의 속도감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으로 인벤토리가 없어지고 각 부위별로 아이템을 선택 장착하는 방식으로 변경됐으며, 총알이 다 떨어져도 한턴을 소비하면 무조건 재장전을 할 수 있어 게이머들이 전투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인상적이다.

대원들의 능력치를 고려해 무기를 배분해야 했던 병과 시스템은 보다 직관적으로 바뀌었다. 전투 결과에 따라 진급을 하면 자신의 능력치에 어울리는 병과를 배정받게 되며, 계급이 오를 때마다 특수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병과의 밸런스 부분에서는 다소 이견이 있긴 하지만 전투를 나갈 때마다 대원들의 능력치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장비를 맞춰줘야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굉장히 편리해진 것이다(병과 뿐만 아니라 대원들의 이름을 자신의 마음대로 지정할 수도 있다).

또한, 사이오닉 능력의 비중이 커진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사이오닉 능력을 사용하면 전투 중에 가장 골치아픈 상황을 만들어주던 정신 지배를 외계인을 상대로 쓸 수 있게 된다. 후반부에 연구를 달성해야만 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실상 사용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지만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나름 쾌감도 있다.

전투는 이정도로 마치고 기지 경영 쪽으로 넘어가면 전투와 마찬가지로 원작을 최대한 배려하면서도 많은 부분을 간소화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시티의 기분을 맛보게 했던 기지 건설은 개미집을 연상케 하는 형태로 변경됐지만, 모양만 다를 뿐 할 수 있는 일은 똑같다. 연구실을 건설해 외계인 기술을 연구해야 하며, 기술실에서는 연구를 통해 얻어진 성과를 가지고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전 상황실에서는 각 국가별로 외계인 패닉 상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익숙한 지구본이 돌아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추가 기지 건설은 위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대체했다. 위성은 대륙마다 설치할 수 있으며, 대륙에 있는 외계인 UFO의 움직임을 관측해 공중 전투정을 파견하는 목적만을 지닌 보조 시설이다. 원작의 경우 다른 대륙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지를 건설해서 본거지와 똑같은 형태의 운영을 다시 또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었음을 떠올리면 기본 목적은 만족시키면서 스트레스는 줄여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위성 건설은 해당 국가의 패닉 상태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어 게임 내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요소이긴 하지만 멀티플레이도 지원하고 있다. 이 게임의 멀티 플레이는 전투 부분만을 따로 가져와 독립적인 모드로 승화시킨 형태로 게임을 시작할 때 일정 포인트를 주고 그 포인트 내에서 부대를 구성해 전투를 하는 방식이다. 강력한 소수의 유닛으로 부대를 구성할지 아니면 물량전으로 승부를 걸지 게이머들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의 전투가 펼쳐지게 되며, 무제한 시간이 주어지는 싱글 플레이와 달리 제한 시간이 존재해 사뭇 긴장감 넘치는 전투를 즐길 수 있다. 물론 화끈한 전투를 원한다면 포인트 제한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

이렇듯 이번 작품은 원작의 장점을 계승하면서도 스트레스를 줄인 훌륭한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평가도 높고 전문가 평가도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불만은 아예 없지는 않다. 오히려 불만의 목소리만을 놓고 보면 매우 격렬하다.

이 게임에 대한 대표적인 불만은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아쉬워진다는 것이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나왔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아쉬움이 더 많아진다고 한다. 원작의 장점을 계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깊이까지 그대로 계승하지 못했다는게 불만의 이유다.

사실 원작의 경우에는 그 당시 이런 시스템을 생각해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었다. 긴장감이 넘치는 턴제 전투와 기지 경영, 대원 육성 요소까지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구성 요소가 대단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리메이크된 엑스컴은 전작의 구성 요소를 가져오긴 했으나 너무 복잡한 것을 원하지 않는 대중들을 위해 그 과정을 단순화시켰다.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외계인의 시체를 해부하는 것도, 무기를 생산해 팔아먹는 재미도 일순간에 끝나버린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정말 기대했던 클라이막스 장면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 듯한 느낌이다.

물론 앞서 완성도가 높다고 칭찬했던 전투 부분도 병과 밸런스 문제와 지나치게 적은 맵과 외계인의 종류로 인한 전략의 단조로움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점 역시도 원작 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또한 언리얼 엔진을 사용했다는데 성에 안차는 그래픽도 불만족스러운 요소다. 하지만 경영의 간략화로 인한 플레이 타임 감소가 더욱 심각하다. 난이도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20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은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원작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다. 맛있는 음식이기에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나!

이 같은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확장팩과 DLC다. 안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것이 즐거움을 더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아쉬움을 덜어주는 역할이라는 점이다. 명작을 성공적으로 부활시켜준 파이락시스에게는 과한 투정이 될 수도 있지만 문명의 확장팩과 DLC가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를 떠올려보면 분명 아쉬운 점이다. 억울하겠지만 이해하길 바란다. 원래 팬들은 욕심쟁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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