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게임 폭력성 연구 지시' 반기는 美게임업계... 어째서?

지난 1월 1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색적인 지시를 내렸다. 폭력적인 내용을 담은 게임이 실제 폭력적인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이는 2012년 12월에 코네디컷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이후, 그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 움직임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로 인해 시작되는 연구는 CDC(질병통제센터, Centers for Diseases Control)가 담당하게 됐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이 연구를 위해 CDC에 1천만 달러의 연구 예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05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미국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 근본적인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무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폭력적인 사건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를 알지 못 하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총기난사 사건 이후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감내해야 했던 미국 내의 게임산업계도 이런 기류를 반기고 있다. 미국 게임산업군을 대변하는 협회인 ESA(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 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는 정부가 이번 총기 난사사건에 신중히, 그리고 폭 넓은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소년의 폭력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에 그 원인을 청소년들이 많이 즐기는 게임 탓으로 몰아가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너무나 큰 차이가 드러난다.

사태의 원인을 한 쪽으로 몰아가기 전에, 과연 그 행동이 적합한 것인가부터 판단해야 한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논리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타당하고 보편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국내 게임산업계와 게이머들이 바라보기에는 마냥 신기한 일일 뿐이다. 선행연구 없이, 산업군의 의견 수렴작업 없이 막무가내 식으로 강행된 규제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규제의 폭과 강도가 더욱 강화될 상황에 처해 있다.

어떤 이들은 "미국에서도 게임을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런 규제 움직임이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 법적으로도 위헌의 소지를 담고 있어 실효를 내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의 '폭력적 게임을 청소년에게 판매한다는 것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두고 미국연방대법원은 "이는 수정헌법 1조를 침해하기에 위헌이다"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게임업체에게만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한국과는 차이를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구 지시가 있기 이틀 전인 지난 1월 14일, 미국 미주리 주에서 공화당은 긴급 법안을 발의했다. 폭력성을 담고 있는 게임에 1%의 주세를 부과한다는 법안이다.

얼핏 보면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일명 '손인춘법'과 흡사한 내용인 것 같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 법안은 엄연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게임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조기에 예방하기 위한 자금 마련이 목적이지만, 그 징수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손인춘법'은 매출의 1%를 강제 징수하고, 해당 기금을 여성가족부가 관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공화당에서 발의한 법안은 해당 기금을 세금 형식으로 거두고 이를 주정부에서 관리하게 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공화당 측은 게임의 폭력성 사태는 게임을 개발한 기업은 물론 유통업체와 구매자 모두가 책임을 져야할 문제라며, 세금을 부과하면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자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물론, 공화당의 법안 역시 대중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다름이 없다. "결국 세금을 늘리겠다는 것 아니냐"라는 반응이 해당 법안 발의 소식을 접한 미주리주 지역 네티즌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발의과정에서 '원천징수'라는 폭력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과, 책임을 개발사에게만 묻지 않았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만 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게임의 폭력성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미국은 사태가 발생하고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정말로 이것이 사태의 원인인가'부터 분석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한국은 낙인을 찍고 무거울 정도의 책임을 요구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라며, "산업군과 게이머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 없이 자신들의 입장을 견지하고 밀어붙인다면 더 큰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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