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꿈꾸는 미키마우스, 에픽 미키2

디즈니. 알파벳으로 여섯 자, 한글로 세 자면 적는 이 미디어 재벌(정식 명칭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이 문화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엄과 권위는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다. 당장 게임 시장에 발 담고 있는 날고 기는 게임 회사 중 디즈니 앞에서 큰소리 칠 회사가 있기는 할까? 이렇게 대단한 회사이다보니 디즈니의 간판 마스코트 미키 마우스 '님'께서 맥도날드,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3M이라 하여 미국의 3대 수출품 소리 들으며, 지구의 문화 아이콘으로 추앙받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세월엔 장사가 없다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다른 캐릭터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미키 마우스의 활약이나 등장이 예전만 못 하다. 여전히 디즈니의 간판 마스코트이긴 하나 여타 매체에서의 노출 빈도나 영향력이 줄어든 건 눈에 확연히 띌 정도. 이런 추세 속에서 미키마우스는 2010년 Wii로 발매한 'Disney Epic Mickey'(이하 에픽 미키)에서 1930년대의 복고풍으로 돌아가 주인공으로 나섰다. 이것은 전성기보다 더 이전의 초심으로 돌아간 모험에 가까웠으나 마법의 붓으로 세계를 창조하거나 지워나가는 에픽 미키의 신선한 컨셉이 먹혀들었고 비평가와 게이머 양측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미키 마우스는 스퀘어에닉스의 킹덤하츠 시리즈 이후 오랜만에 게임 시장에서 이름값을 다했다.

에픽미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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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ney Epic Mickey 2: The Power of Two(이하 에픽 미키2)는 이 에픽 미키의 정속 후속작으로 전작의 컨셉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1930~1940년대의 초기 디즈니의 복고풍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여 그 시절 향수가 잔뜩 묻은 애니메이션 수록, 세월에 묻혔던 디즈니 초창기 캐릭터와 디자인 채용, 마법의 붓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게임의 아이덴티티까지 전부 다 말이다. 그러면서 후속작답게 전작의 라이벌 오스왈드 래빗을 협력 동료로 추가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하면 빠질 수 없는 뮤지컬 요소 도입, Wii 단독 기종서 벗어나 PS3, X360, Wii, WiiU, PC 이렇게 다섯 기종으로의 멀티 플랫폼 진출이란 발전을 선보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픽 미키2는 전작에게 미안할 정도로 맘 편하게 즐기기 곤란한 게임으로 돌아와 버렸다.

에픽미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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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0분은 에픽 미키2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다. 1940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고전 명작 환타지아의 마법사의 제자 파트를 연상케 하는 튜토리얼 스테이지 속에서 게이머와 미키 마우스는 물을 길어 나르는 빗자루들을 지나 마법의 붓으로 주변을 덧칠하고 지워나가며 게임의 기본을 배운다. 짧은 시간 동안 페인트로 없던 발판을 만들고 희석제로 가려져있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에픽 미키2의 정체성이 은하수처럼 펼쳐지는데 이 군더더기 없는 레벨 디자인으로 게이머는 어릴 적 즐겼던 색칠놀이의 재미를 다시 깨닫는다. 마음껏 칠하고 멋대로 지우는 반복 작업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심플 이즈 베스트'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이다.

에픽미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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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은 저 10분간 플레이가 이 게임의 최고조란 사실이다. 처음부터 클라이맥스다. 이 뒤로 이어지는 전개들은 하나 같이 게이머들을 실망시킨다. 재발견한 색칠놀이로 노는 것도 정도 것이지, 하던 짓 하고 또 하고 가라면 가고 고치라면 고치고 옮기라면 옮기고 칠하라면 칠하고 지우라면 지우면서 하염없이 페인트 쏘고 희석제 뿌리는 똑같은 상황과 똑같은 지시 수행이 이어져 게이머가 처음에 느꼈던 그 두근거리는 심정이 깨끗하게 증발한다. 게임이라면 응당 짧고 강하든 길게 끌고 나가든 게이머가 재미를 느끼고 자극 받을 무언가가 플레이 중에 드러나야 하는데 에픽 미키2는 오로지 텐션 하락 일변도인 것이다. 퍼즐, 수집 요소, 횡스크롤 액션, 보스전, 퀘스트 등등 여타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 가진 요소들 다 도입하였으나 하나같이 일부러 흉내 내기도 힘들 정도로 지루하다. 이 와중에 카메라 시점은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거나 정도를 넘어서 클로즈업 할 때가 많아 게임을 방해하기에 바쁘고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피드백과 정보 제공이 부실해 보스전보다 스테이지 길목에서 작동시켜야 하는 스위치나 레버를 찾는데 시간을 더 써버리기 일쑤다.

에픽미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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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총체적 난국은 AI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적을 제압하거나 전자기기를 작동시키는 전자파 방출부터 귀를 프로펠러처럼 사용하여 미키 마우스를 들고 활강, 부메랑 팔 투척에 이르기까지 게임 진행에 반드시 필요한 협력 캐릭터 오스왈드의 조작을 1인 플레이에선 AI가 맡는데, 이 AI가 구제불능의 행동거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격에 동참하지 않는 건 애교이고 오스왈드의 역할을 수행시키려 해도 한 번에 말귀를 알아듣지 못 해 협력 아이콘이 뜰 때까지 주위를 맴돌며 여러 번 불러야 하질 않나, 장애물 몇 번 넘어가면 미키 마우스를 따라오지 못 해 따라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낙사하여 미키 마우스 옆으로 순간이동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AI 수준이 이 모양 이 꼴이라 협동 기술인 줄기 교차시키기나 파트너 부활은 꿈도 못 꾼다. 20년 전 게임인 소닉2의 원조 활공 셔틀 테일즈보다 무능한 오스왈드의 진정한 역할은 게이머의 발목을 잡아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 아닐까? 따라서 Co-op 플레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 문제는 에픽 미키2가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전혀 지원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지루한 게임을 혼자 편하겠다고 애꿎은 오프라인 지인을 동원해야 하는지 인간적으로 고민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조작 캐릭터를 바꾸는 기능 하나만 있었더라도 오스왈드가 지금처럼 미키 마우스의 짐 덩어리로 전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에픽미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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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의 정신 건강을 황무지로 만드는 에픽 미키2에서 믿을 건 캐릭터들의 연기와 게이머가 꾸며가는 그래픽뿐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게임 안에서 지겹게 페인트를 칠하고 희석제로 지워야하지만 그래도 마법의 붓으로 세계를 탐구해가는 과정이 본편 진행보다 재미있는 건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얻는 아이템들도 나름 짭짤한 편이고. 뮤지컬 요소를 도입한 이벤트 진행과 캐릭터들의 연기에선 디즈니의 명성 어디 안 가는 모습을 보여주어 게이머의 안구를 정화한다. 깨알 같이 현대 디즈니의 캐릭터들과 모티브가 녹아있는 걸 찾아내는 것 또한 에픽 미키2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 다만 안 그래도 오랜 세월을 거친 복고풍 디즈니 캐릭터들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고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브라질어 4개 국어 자막과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3개 국어 더빙을 지원하는 에픽 미키2의 옵션에 소외당하는 소수 언어 사용자 국내 게이머들은 이 게임을 100% 즐기기 위해 기본 소양을 익혀야한다. 일단 플레이 대상인 국내 아동들이 에픽 미키2를 즐기기 힘든 건 당연하고 적어도 일요일 8시와 함께한 디즈니 만화동산 시청 세대는 되어야 디즈니 향수를 느끼며 게임에 빠져들 여지가 있다.

에픽미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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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미키2가 여타 문제작보다 상대적으로 더한 박탈감을 게이머에게 주는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게임 플레이는 나아질 가망이 안 보이는데 천하의 디즈니 캐릭터들의 연기들은 이름값을 해주니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플레이를 이어나가며 처음 10분의 마력을 잊지 못해 에픽 미키2의 진면목을 갈구하다 수 시간의 플레이를 끝으로 엔딩에 도달한다.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황무지가 된 세계를 구하는 건 좋지만 그전에 미키 마우스부터 구해줘야하지 않을까? 에픽 미키로 재기했던 미키 마우스의 명성이 에픽 미키2로 다시 죽게 생겼다.

에픽미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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