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정한 지옥도다. 파크라이3

푸른 하늘, 맑은 해변, 따스한 햇살이 아름다운 휴양지 방콕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는데 하필이면 착륙한 섬이 인신매매를 일삼는 해적과 용병이 점령한 지옥도. 일행은 전부 뿔뿔이 흩어졌고 주인공은 같이 붙잡혔던 형과 탈출하다가 형제마저 잃고 만다. 홀몸으로 겨우 피신한 주인공은 이제 맨손으로 시작하여 섬 전역에 흩어진 일행들을 구하고 형제의 복수를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이러한 설정으로 게임을 만들려면 어떤 장르여야 할까? 지옥도에서 생존게임을 벌여야하니 액션을 기본틀로 잡겠지만 이 다음부터는 여러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슈퍼맨이 아닌 이상 혼자서 수 백 명의 해적과 용병을 한꺼번에 상대할 순 없으니 하나씩 처리해나가는 잠입 액션일 수도 있고 섬 전체를 돌아다녀야 하니 탐험 액션일 수도 있다. 일반인인 주인공에게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중 성장을 묘사하면서 RPG처럼 꾸며 퀘스트 수행하고 아이템 꾸려나가는 것도 가능하겠고. 아예 자본과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해 온갖 장르를 다 섞고 하나의 세계 내지는 사회를 완성해 게이머에게 즐길 자유를 선사하는 샌드박스로 가는 선택지까지 있다.

파크라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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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크라이 3가 어떤 게임인지 설명하려면 온갖 장르 요소를 전부 꺼내야 한다. 조작체계는 FPS, 섬을 점령한 해적들의 전초기지를 차례차례 점령해나가는 건 전략 시뮬레이션과 잠입 액션의 결합, 아이템 현지조달부터 유물을 비롯한 각종 수집과 라디오 타워 활성화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어드벤처 액션, 퀘스트 수행과 업적 달성으로 경험치를 얻고 능력을 강화해나가는 주인공의 묘사는 딱 RPG, 다양한 탈 것으로 레이싱 게임 흉내가 가능하며 광기 넘치는 스토리를 따라가면 공포 게임이 떠오른다. 그러나 게이머가 파 크라이 3를 붙잡을 때는 어떤 설명도 충분치 않다. 심지어 뭐든지 가능한 자유도를 근거로 샌드박스라 정리하는 것조차 말이다. 파 크라이 3는 그냥 '생태계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해적과 용병이 점령하여 무법지대로 돌변한 외딴 섬에서 상상 가능한 일들은 전부 일어난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파크라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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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가 조작하는 주인공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외딴 섬의 야생과 광기에 물든 아수라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래픽, 몰입도 높여주고 긴장의 끈을 놓기 힘든 일촉즉발의 상황과 휴양지의 그 아늑한 분위기가 공존하여 작곡가 브라이언 타일러의 실력을 다시 입증한 음향 효과, 손에 착착 감겨 더 발전할 수 없을 것 같은 조작체계 등등 퍼포먼스로 파 크라이 3를 칭찬할 거리야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뛰어난 요소들이 아니라 게이머가 직접 느끼는 생존게임. 이 게임의 칭찬거리들이 전부 생존게임을 위해 존재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섬 생태계로 감쪽같이 녹아들어갔다. 점점 인외마경의 강자로 거듭나는 일반인 주인공 제이슨이나 라디오 타워와 전초기지 점령으로 치안이 돌변하는 것처럼 게임의 재미를 위해 타협한 부분도 적잖이 있으나 이걸 용인하고도 남을 만큼 파 크라이 3에게 작위적인 냄새가 거의 나질 않는다. '이것은 게임이다'란 최소한의 자각이 남던 그동안의 여러 샌드박스 게임들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평가하고 싶다. 비속어가 쏟아지는 게임 분위기에 맞추자면 "쩔어!"

파크라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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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게이머의 신체안전을 보장하는 전제 하에 이 무간도에서 하고 싶어 할 일, 해야 할 일들은 전부 지원하는 이 파 크라이 3의 지향점은? 게이머는 너무 장대하여 어찌 할 도리가 보이지 않던 섬을 개척해나가며 카타르시스에 빠진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뺨치는 아니, 베어 그릴스의 Man vs Wild 버금가는 험난한 야생과 잔학무도하기 짝이 없는 무뢰배들을 혼자서 상대해야 하는 처지로 시작해 게임의 스토리 진행, 전초기지 점령, 스킬 획득과 무기 및 자금 확보로 성장해나가 기어코 섬 전체를 뒤엎기에 이른다. 초반엔 눈만 마주쳐도 오금이 떨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오기로 헤쳐 나가지만 게임에 진득하게 빠질 쯤에 게이머는 어느새 섬의 1인자로 군림하여 여타 게임에서 맛보기 힘든 성취감을 만끽한다. 일각에선 긴장 넘치는 다이나믹 지옥도가 관광단지로 전락한다고 불평하나 섬이 평화를 되찾기 전까지 그 과정을 가장 재미있게 즐긴 건 다름 아닌 게이머 자신이렸다. 오히려 절정에 이를 때 게임 자체의 재미와 개연성을 뒷받침해주지 못 하는 스토리 전개가 더 아쉬운 부분이다. 대한민국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도 엿보이는 노골적인 인종우월주의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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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플레이가 워낙 "쩐다!" 소리가 나오는 신천지라 이것만으로 충분하나 최대 14인까지 참여하는 네 가지 멀티플레이 게임모드와 4인 협동플레이도 지나치기 힘든 퀄리티를 보여준다. 멀티 플레이는 싱글 플레이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유저 인터페이스와 안정적인 FPS 완성도 덕분에 게임 구조상 하염없이 총질만 할 수 없는 싱글 플레이에서의 욕구를 대신 채운 액기스나 마찬가지. 무기 언락이나 전투함성 같이 멀티플레이 전용 콘텐츠들이 있어 싱글 플레이의 반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통신장비를 오래 보유해야하는 트랜스미션 모드나 상대의 창고를 불지르기 위해 협동심을 요구하는 파이어스톰처럼 독특한 모드가 멀티플레이 재미를 더한다. 4인 협동 플레이는 아예 독립 캠페인처럼 새로 판을 짜놨기 때문에 6가지 미션을 즐기면서 싱글 플레이와 다른 군도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당연히 혼자 잘 쏜다고 끝나지 않고 역할 분담의 비중이 늘어나 다른 게임 모드에선 느끼기 힘든 아군의 소중함과 협력 플레이의 재미가 풍부해 교양 삼아서라도 해 볼 가치가 있다.

파크라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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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파 크라이 3를 할 때 싱글 플레이를 할 때나 멀티 플레이를 할 때나 꼭 알람 설정하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길 추천한다. 파 크라이 3의 가장 큰 단점은 게이머의 체력을 아랑곳하지 않는 몰입도이니 말이다(세이브마저 잊게 만들어 기껏 고생한 성과가 호랑이의 뒤치기 한 방에 자동 세이브 지점 복귀와 함께 날아가는 비극이 펼쳐지기도). 파 크라이 3 패키지가 내세우는 '당신의 광기'란 어쩌면 이 게임에 매달려 제정신을 못 차리는 게이머 자신의 광기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광기를 억지로 참으란 이야기가 아니다. 이 광기야 말로 파 크라이 3의 매력인데 이것을 참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저 자신을 잃지 않는 한도 안에서 짧고 굵게 활보하면 그만이다. 잔인하다, 미쳤다, 정서적으로 괴롭단 색안경을 끼고 기피하기엔 파 크라이 3는 너무나 훌륭하고 재미있으며 완벽하다. 진짜 훌륭하고 재미있으며 완벽하다. 중요하니 두 번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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