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가는 최고의 그래픽. 크라이시스3

발매될 때마다 최고의 그래픽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임은 흔치 않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크라이시스3가 바로 그런 수식어에 해당하는 게임이다. 크라이시스3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뉴욕을 배경으로 인류 구원을 위해 활약하는 주인공 프로핏의 모습을 그린 FPS 게임이다. 이번 작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샌드박스 스타일의 미션제 형식으로 진행되며, 추가적으로 다양한 외계인 무기와 프레데터 활, 그리고 적 기계류를 자기 통제 하에 두는 해킹 등이 추가되었다.

크라이시스3
크라이시스3

자유로운 진행방식
크라이시스3의 가장 큰 특징은 진행 방향이 정해져 있는 다른 FPS/TPS와 달리, 시작과 목표 지점, 그리고 중간에 반드시 지나가야 할 통로 부분을 제외하면 정해진 접근 방식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이벤트 플래그가 목표 지점에 집중되어 있어 목적지까지 진행하는 과정에서 죽지만 않는다면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
은신 상태로 적의 옆구리를 지나갈 수도 있고, 고정 포대를 해킹해서 적진을 교란시킬 수도 있다. 이것저것 다 귀찮다면 업그레이드 킷으로 강화한 아머 모드를 켜고 적진 한가운데에서 영화 람보를 찍을 수도 있다. 적들이 우글대는 계단과 통로를 지나는 것이 부담된다면, 건물 밖으로 넘실대는 푸른 강물 속에 몸을 내던지는 자유를 누릴 수도 있다. 유저들은 시스템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체험할 수 있다.

크라이시스3
크라이시스3

적 AI가 똑똑해졌어요
크라이시스2의 적 AI는 주인공을 조금씩 압박해 들어가는 포위 전술을 사용하거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계 모드를 발동시키는 등 1편에 비해 향상된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눈 앞의 주인공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거나 근처에 있는 아군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별 관심이 없는 등의 자잘한 버그가 눈에 띄었다.
크라이시스3에 등장하는 적들은 인간과 외계인을 막론하고 더욱 향상된 시야와 경계 범위를 갖고 있으며, 아군이 죽으면 해당 위치를 정찰하고 증원을 요청하는 등 전작에서 지적되었던 단점이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엄폐물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군이 공격하는 사이 유저의 뒤를 습격하는 교란 작전을 펼치는 등 지능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물론 건물 틈으로 머리만 살짝 내밀었는데 깊은 어둠 속, 10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그걸 발견해서 뜨거운 총알 세례를 퍼붓는 적들 때문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조건 돌격만 하거나 시작 위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총질만 하는 적이 아닌 ‘자신이 살기 위해서 주인공을 죽이려고 노력하는 진짜 적’을 상대하는 듯한 손맛, 그리고 이들의 위협을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는 재미는 확실한 편이다.

크라이시스3
크라이시스3

모범적인 3부작 완결 스토리
지금까지 뿌려진 떡밥을 회수하려고 하자 주인공이 나서서 ‘진실은 저 너머에’ 상태로 만들어버린 기어즈 오브 워 시리즈, 유저들이 무슨 선택을 했든 엔딩에서 기어코 주요 인물들을 죽여버리고 역대 시리즈의 스토리를 모조리 부정해버린 매스 이펙트 시리즈, 모든 비밀을 풀기 위해 찾아간 외계 행성에서 결국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결론만 얻은 채 꿈도 희망도 없이 끝난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까지, 최근 발매된 여러 3부작 게임의 완결편들은 ‘마지막’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산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크라이시스3는 크라이엔진3의 성능을 십분 발휘한 사실적인 그래픽의 폐허 뉴욕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외계인 함대를 비롯한 나쁜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지구와 인류를 구해내는 이야기를 총 10여시간의 플레이 타임 안에 깔끔하게 담아내 유저들의 가슴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플레이 타임이 짧다고 오로지 이야기의 핵심 부분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동료와의 갈등, 숨겨진 진실, 이별과 만남, 함정 등의 다양한 장치들은 게임에 영화적인 긴장감을 부여하며, 빙 돌아가는 설명을 자제하고 불필요한 이벤트를 배제함으로써 뻥 뚫린 고속도로를 바람처럼 내달리는 것과 같은 상쾌함을 제공한다.

크라이시스3
크라이시스3

익숙해질 때까지가 고비
크라이시스3는 게임의 기본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장점 요소를 확실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적에게 들키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스텔스 위주의 잠입 플레이를 펼친다고 해도, 적의 시야 거리가 이상하리만큼 길고, 스텔스 기능의 지속시간도 짧기 때문에 플레이 스타일의 한 종류로서 스텔스 모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고도의 플레이어 스킬이 필요하다.
아머 모드를 중심으로 한 람보식의 플레이도 마찬가지이다. 피해 경감 효과만 믿고 전면전을 펼친다 하더라도 빠른 속도로 충원되는 적 증원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수적으로 불리해지며, 유저가 휴대할 수 있는 주무기가 난전에서 효과를 발휘하기 힘든 프레데터 활을 제외하고 2개에 불과해 탄약 박스를 끼고 싸우지 않는 이상 화력 부족을 피할 길이 없다.
게임 진행에 필요한 필수 정보를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목표 지점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는 유저가 알아서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뻔히 보이는 개폐장치 스위치를 못 찾아 같은 곳을 헤매는 것은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적의 십자포화에 벌집이 되기도 한다. 마음 놓고 쉴 공간을 찾는 것도 고역이다.
크라이시스3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한 게임이기 때문에 A라는 시도가 실패했다고 해서 반드시 B가 최적의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문제 해결 방법이 비교적 명확한 다른 게임들과 달리, 시행착오가 곧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스트레스 없이 게임을 플레이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유저 취향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이 게임에는 너무 많다.

크라이시스3
크라이시스3

아쉽게도, 온고지신에 머무르다
크라이시스3를 이야기하기 위해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크라이시스3가 전작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작품에서 추가된 요소는 소음이 없고 한 번 사용한 탄환을 회수할 수 있는 프레데터 활과 적의 기계류를 해킹할 수 있는 해킹 모드, 그리고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각종 에너지 무기 정도에 불과하다. 플레이 스타일은 조금 다양해졌지만, 게임 전체를 극적으로 바꾸었다고 보기는 힘든 요소들이다.
그래픽도 2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물론 2013년 현재까지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 전작의 그래픽을 더 이상 좋게 만드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벤트 연출이 강화되고 세부 묘사가 정교해졌다는 점 외에 전작과 비교했을 때 겉보기에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신작에서 ‘전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기대하던 유저들의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하다.
앞서 이야기한 크라이시스3의 장점과 단점 역시 전작에서 한번쯤 언급됐던 사실들이다. 1편에 비해 똑똑해진 적 AI에, 미션제 형식을 채택한 대신 맵 하나의 크기를 키우고 목표 수행을 위해 다양한 접근 방법을 제시한 것하며, 일반 유저들이 즐기기에는 기본 난이도가 너무 높아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점은 모두 크라이시스2의 장점이자 단점들이었다. 이쯤 되면 이번 작품이 전작의 완전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감에 쓸데없는 기능을 추가해 게임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것보다는 100번 나을지도 모른다. 크라이시스2가 그 자체로 잘 만든 게임임에는 분명하다는 사실이 이러한 옹호론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유저들의 기억에 좀 더 깊이 각인되는 게임이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명색이 완결편인데 말이다.

크라이시스3
크라이시스3

게임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