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헌터 아류작을 넘어서다. 소울 새크리파이스

최근 발매된 소울 새크리파이스(이하 SS)는 퀘스트 중심의 게임 플레이, 몬스터 토벌과 아이템 수집이 주가 되는 퀘스트 구성, 재료를 모아 더욱 강력한 공격수단을 만들어내는 아이템 합성, 플레이 중에 체력이 다해도 게임 오버 되지 않는 시스템 등 겉보기만 놓고 봤을 때에는 캡콤의 수렵 액션 게임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SS를 몬스터 헌터의 판타지 버전이나 단순 아류작으로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자기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싶어지는 분위기 있는 BGM과 상식을 뒤집는 디자인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매력적인 스토리와 동료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구제 및 희생 시스템과 재미와 속도가 결합된 전투 시스템 등 SS 만의 다양한 특징들이 게이머를 반긴다.

소울새크리파이스
소울새크리파이스

몬스터헌터의 뒷통수를 친다!
발매 첫 주 만에 다운로드 버전을 제외하고도 13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SS. PSVITA의 보급률을 고려했을 때, 게임 업계의 전설이자 유사 장르의 표준형이 되어버린 몬스터 헌터와 비슷한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많은 게이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 몬스터 헌터에 중2병 요소를 첨가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독자적인 세계관과 시스템 구축으로 게이머들에게 사랑 받는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갓이터 시리즈처럼, SS의 판매량은 이 게임이 단일 타이틀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만한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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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있는 전술에 빠른 템포를 더하다
SS에서는 적을 공격하거나 체력을 회복할 때 마법의 일종인 공물을 사용하는데, 숫돌만 넉넉하게 챙겨놓으면 공격 회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몬스터 헌터나 무한 탄창인 갓이터와 달리 사용 회수에 제한이 있다. 공물의 사용 회수는 필드에 배치된 오브젝트를 활성화하거나 적을 흡수할 때 발생하는 부가 효과로 회복시킬 수 있는데, 한 번 사용한 오브젝트는 약 5분 동안의 대기 시간을 필요로 하며, 적끼리 서로를 잡아먹어 회복 기회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정해진 회수 이내에 적을 쓰러뜨려야 하는 부담감과 마음 놓고 회복할 수 없는 긴박감.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전투의 완급을 조절하며, 게이머는 항상 일정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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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형 마물, 다시 말해 보스급 적의 공략 난이도는 다소 높은 편이다. 주인공의 기본 공격력과 비교했을 때 체력 자체는 많지 않지만, 유도 기능이 있는 돌진 공격이나 화면 전체를 가리는 섬광 공격 등의 변칙적인 패턴이 많고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커 방심할 수 없는 전투가 이어진다. SS에는 몬스터 헌터의 고급 귀마개나 내진처럼 피해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는 스킬이 없기 때문에, 게이머는 장애물을 이용해 적의 추적을 따돌리거나 방패 스킬을 발동시켜 상대의 돌진 공격을 튕겨내는 등 피해를 최소화 하고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갖가지 노력을 고안해야 한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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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에는 미니맵 기능이 없다. 보스의 현재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필드가 비교적 좁은 편이라 길을 잃고 헤맬 위험은 없지만, 장애물에 시야가 가리는 경우가 많아 불시에 기습 공격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따라서 게이머들은 일종의 정찰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심안 모드를 통해 적과 아군의 및 사용 가능한 오브젝트의 위치를 항상 파악하며 싸워야 한다. 심안 모드를 이용하면 적의 파괴 가능 부위 및 남은 체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전술적인 플레이에도 도움을 준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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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외적인 행동을 많이 하니까 SS가 느린 게임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SS의 전투 진행 속도는 비슷한 장르의 다른 게임들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다. 중간중간 정찰 및 회복 행동을 벌이면서도 이 게임의 거대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인간형 마물 한 마리를 잡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5~15분 정도. 적의 초기 위치로 퀘스트 시작 지점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보스를 찾기 위해 맵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다. 필드가 하나의 통짜 맵이라 몬스터 헌터처럼 지역 이동에 따른 로딩이 발생하지 않는 점도 전투의 체감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다. 이는 고생한 만큼의 결과물이 돌아오는 적당한 난이도와 치고 빠지기 이상의 다양한 공략 패턴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적 도움과 맞물려,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반복 플레이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낸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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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은 게이머의 선택
힘든 전투 끝에 적은 빈사 상태에 빠지고, 실낱 같은 목숨을 거두어가려는 듯 주인공은 느릿한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차디찬 바닥에 누워 이 생에서의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적 앞에 서자, 주인공의 눈 앞에 두 개의 손이 나타난다. 상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구제의 왼손과, 상대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을 강화하는 희생의 오른손. 이 구제와 희생 시스템은 SS를 플레이 하면서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선택의 순간이며, 스토리부터 전투까지 게임 속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이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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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를 선택하면 주인공의 HP가 회복되며, 구제 레벨이 높아지면 방어력과 회복량이 높아진다. 반대로 희생을 선택하면 소비된 공물 사용 회수가 회복되며, 희생 레벨이 높아질수록 공격력이 강해진다. 게이머는 매 번의 선택을 통해 그 어떤 공격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캐릭터를 만들 수도,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고 적을 순식간에 섬멸할 수 있는 파괴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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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에서 함께 싸울 수 있는 동료 NPC들도 구제 및 희생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다. 각 동료마다 구제 및 희생과 관련한 성향이 설정되어 있는데, 주인공이 성향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파티에서 이탈해버리며, 성향에 맞는 행동을 하면 호감도가 올라 캐릭터가 강해진다. 동료 NPC 역시 구제 및 희생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쓰러진 동료를 구제하면 주인공의 현재 HP 중 절반이 날아가는 대신 동료가 그만큼의 HP를 회복한 채 부활하며, 쓰러진 동료를 희생하면 동료와 사별하는 대신 페널티 없이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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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구제했을 때에는 기를, 희생했을 때에는 혼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을 이용해 오른팔에 장비 가능한 각인 스킬을 해금할 수 있다. 선량한 영혼이나 흉포한 영혼 등 특정 속성을 가진 적을 구제 및 희생하면 보다 강력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상위 소재를 입수할 수도 있다. 특정 캐릭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스토리도 분기된다. 인간형 마물을 구제하면 동료 NPC가 늘어나는 대신 마법사 협회로부터 자객이 파견되어 힘든 싸움을 치러야 하며, 희생을 선택하면 마물들에게 둘러싸여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흉기로 변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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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시스템 자체는 이미 바이오쇼크 시리즈 등으로 익숙한 소재이기는 하다. 하지만 기껏해야 엔딩의 종류나 특전 아이템의 입수 정도에나 영향을 미치던 다른 게임들과 달리, SS의 선택은 게임 안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의 미래를 바꾸어버린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자유. SS에는 그것이 있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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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AI와 공격 패턴, 이로 인한 전투 밸런스 측면에서는 약간의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근거리 공격이 원거리 공격에 비해 불리하다. 대부분의 인간형 마물이 굉장히 활동적인데다 꽤 많은 적들이 하늘을 날기 때문에, 지상전 위주의 근거리 공격을 적에게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몇몇 보스는 아예 일정 이상 피해를 입기 전에는 바닥에 내려오지 않는다. 상시 발동되는 공격을 몸에 두른 적도 있어 쉽게 접근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적의 근접 공격 위력이 기본적으로 높기 때문에 기껏 접근해서 몇 대 때린다 하더라도 방어력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맞았는데 좀 아프네?”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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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원거리 공격은 앞서 언급한 리스크가 전혀 없다. 자동으로 상대를 조준하며, 좀 덩치가 큰 적 같으면 대충 쏴도 모든 공격이 명중한다. 공격 발동 속도도 빠르고, 사용 회수도 넉넉하다. 손에 꼽을 정도의 일부 보스를 제외하면 적의 기본 공격 범위도 좁은 편이라 안전한 거리에서 마음껏 적을 공격할 수 있다. 근거리 공격은 닿지 않는 높이의 파괴 가능 부위를 빠르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으며, 하늘을 나는 적도 문제없다. 플레이 패턴을 원거리 공격 중심으로 고정시킬 위험이 있는 셈이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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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헌터 등에서 유명세를 떨친 꼼수도 존재한다. 짧은 시간 동안 상태이상 수치를 누적시키는 장판 형태의 공격을 인간형 마물이 변신하는 동안 미리 깔아놓은 뒤, 누적 수치 돌파로 상대가 행동불능 상태에 빠지면 높은 공격력을 자랑하는 골렘을 소환해 전투를 맡기는 것이다. 땅에 발을 붙인 적이라면 누구에게나 통하며, 최고 난이도에서도 연속으로 상태이상을 걸 수 있기 때문에, 각종 변칙 플레이가 횡행했던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와 마찬가지로 자칫 게임이 단조로워질 수 있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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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액션의 새로운 기준선을 제시하다
소울 새크리파이스는 다소 어려운 듯하면서 균형 잡힌 난이도와 빠른 템포의 전술적인 전투, 그리고 게이머의 선택을 극한까지 살리는 구제 및 희생 시스템 등 각자 돌출된 개성을 잘 정리한 게임이다. 아더왕 이야기를 암울하게 비틀어낸 성인 지향의 스토리도 높은 평가를 매길만하다. 스토리 모드, 프리 플레이, 서브 퀘스트 등 수십 개의 퀘스트가 마련되어 있어 아무리 게임을 플레이 해도 지겹지 않으며, 등장인물(+책)들도 다들 개성적인 면면뿐이다.

소울새크리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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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볼륨이나 밸런스 등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으나, 추가될 업데이트를 통해 앞으로 더 나은 게임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 4월 4일 업데이트로 이미 신규 마법과 퀘스트, 인간형 마물이 추가된 상태. 올 여름에는 한글판도 발매될 예정이다. 차별화되는 각종 요소들을 통해 PSVITA 액션 게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소울 새크리파이스. 구제하고 희생당하는 다크 판타지의 세계에 함께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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