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관리? 논리 없는 규제는 폭력이다

일명 ‘손인춘법’으로 게임업계가 시끌시끌했던 지난 1월, 게임 업계에는 꽤나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폭력적인 내용을 담은 게임이 실제 폭력적인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연구할 것을 지시했다는 소식이었다.

2012년 12월 코네티컷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이후, 해당 사건의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 이들이 생기자,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 이후, 미국의 CDC(질병통제센터, Centers for Diseases Control)는 해당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에 투입된 예산은 1천 만 달러. 한화로 약 105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 연구에 투입됐다.

미국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협회인 ESA는(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 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해당 연구를 반기고 나섰다. 정부가 총기 난사사건과 게임과의 상관관계를 찾기 위해 신중하고 폭 넓은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문제가 발생하고 해당 문제의 원인으로 무엇인가가 지목되면, 아무런 비판을 거치지 않고 그 원인을 탓하기 보다는 ‘이것이 진짜 원인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상당히 합리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는 이러한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면을 보이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 시각이 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선행연구도, 게임산업군의 의견 수렴 절차가 완전히 배제된 채로 각종 규제가 진행되어 온 탓이다.

심지어 지난 4월 30일에는 게임을 마약, 도박, 음주 등 대중들에게 그 해악을 인정받고 있는 개념들과 동일시하는 법안마저 발의됐다. 일각에서는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중독이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졸지에 게임이 마약과 동급이 된 덕분에 게임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해당 법안에는 마약, 도박, 음주, 게임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휘하에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중독 예방, 치료를 위해 국가에서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국가는 해악이 널리 알려진 것들에 대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관리 대상에 게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임이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지난 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연구 결과는 없다. 그 폐해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음주, 도박, 마약과 게임의 사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정 국가에서 국민을 게임 중독으로부터 보호하겠다면, 게임의 폐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먼저다. 증명되지 않은 위해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입증되지 않은 개념을 빌미로 국민을 관리하겠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은 ‘미신’으로 국민을 관리하겠다는 입장과 다를 바가 없다.

도박에 빠진 이는 도박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빚을 지거나 사채를 끌어다 쓰게 되며 이로 인해 가정 파탄을 불러온다. 술을 마신 사람이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준다거나, 성폭행, 기물파손 등을 일으키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사고를 친 사람들이 ‘술 김에 그랬다’라고 스스로 인정할 정도이다. 마약은 마약 사용자의 신체를 돌이킬 수 없이 망가트린다는 것도 이미 입증이 됐다.

하지만 게임은 이러한 입증이 된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게임업계와 대중들이 이번 법안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법안 내용에 동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해악을 끼친다는 것을 대중들조차 인정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이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도박, 마약, 음주 등을 규제하겠다는 이야기에 찬성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해당 사례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으며,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실제로 접했기 때문이다. 정말 게임을 마약, 도박과 동일선상에서 규제를 하겠다면, 마약, 도박, 음주의 사례처럼 게임의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다.

게임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에 게임업계가 보이는 반응은 완전히 상반되어 있다. 미국의 게임업계는 자신들을 돌아볼 줄 알기 때문이고, 한국의 게임업계는 변명만 할 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미국의 정치인들은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밟고 있는데, 한국의 정치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절차를 거쳐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밀어붙이기 때문일까?

이러한 소식을 접한 한 게이머는 이런 얘기를 했다. “국민들을 보호하고 싶은 것인지, 국민들이 그냥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를 원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국민들이 보호해 줄 필요가 없는 부분에까지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보호가 아닌 폭력이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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