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의 아쉬움을 달랜다. 기어스 오브 워 저지먼트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가 3편으로 오랜 여정의 마무리를 장식했을 때, 게이머들은 잘 만들어진 게임과 이별해야 한다는 아쉬움을 내비치면서도 언제 발매될지 모르는 후속작, 최소한 DLC에서라도 지금까지 뿌린 시나리오 떡밥을 속 시원하게 회수해주기를 바랐다.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잘 다듬어진 전투 시스템은 실험적인 새로운 시도 추가 같은 것도 필요 없이 딱 지금 수준으로 해서. 그런 팬들의 염원을 받아들여 나온 것이 기어스 오브 워 저지먼트(이하 저지먼트)다. 게이머들은 답답한 속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제작사는 시리즈 완결로 공중에 붕 떠버린 기존 게이머들을 다시 끌어들일 수 있어서 좋았다. 누가 봐도 제작사-게이머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이상적인 Win-Win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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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염원과는 달랐다
그런데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의 최신작이라고 발표된 이 게임은 게이머들의 기대를 저버린 게임이 되고 말았다. 고유한 시스템이나 저지먼트 만의 특징, 장점 같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작사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넣은 요소 외에, 게이머들의 요청은 제대로 반영된 것이 없다. 시리즈의 복선은 끝내 회수되지 않았고, 전투 시스템은 엉망이 됐다. 스토리에 몰입감도 부족한데다, 게임 밸런스도 뭔가 좀 이상하게 바뀐 것은 덤이다. 무슨 다른 시리즈 게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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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커버액션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커버 액션 관련이 그렇다. 커버 액션은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를 다른 FPS/TPS와 구분 짓게 해주는 결정적 요소이다. 몸을 가리는 정도로만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다른 게임과 달리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는 엄폐물을 따라 이동하고, 엄폐물 뒤에 숨어 총만 내놓고 사격할 수도 있으며, 자유자재로 그것을 뛰어넘고, 엄폐물과 엄폐물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다. 아군뿐만 아니라 적들도 엄폐물을 적극 활용한다. 커버 액션 없는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저지먼트는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커버 액션을 반쪽 짜리로 만들어버렸다. 박격포나 스나이퍼 라이플 등 장거리 공격 수단을 가진 적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냥 무조건 돌격이다. 피해를 입으면 잠시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것. 언제 그랬냐는 듯 빗발치는 포화망에 다시 몸을 내밀고 아군을 향해 용감하게 달려오는 모습은, 반어법으로 비장함을 넘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군 NPC도 마찬가지이다. 고정포대의 십자포화가 포화망을 형성하든 말든, 엄폐물이나 다른 아군의 엄호를 받을 수 없는 곳까지 무식하게 달려가 거기서 산화해버린다. 그나마 참호전이 주가 되는 호드 모드 스타일 섹션에서는 한 자리에 비교적 가만히 머물러준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아군과 적이 동시에 상대방을 향해 들이대는 통에 전투는 항상 근접 총격전 위주로 진행되며, 엄폐물은 상대와의 거리를 벌리는데 방해되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커버 액션이 주가 되지 않는 게임을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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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대량으로 등장한다
분대 단위의 적과 여러 번 전투를 벌이던 지금까지의 시리즈와 달리, 저지먼트에서는 소대 단위의 적이 한꺼번에 리스폰된다. 매 플레이마다 적의 리스폰 위치와 종류가 달라지는 스마트 스폰 시스템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미리 적의 수를 줄여놓는 방어책을 구사하기도 힘들다. 전투가 벌어지는 공간 자체는 좁은데 기존 시리즈에 비해 부머나 그라인더, 몰러 같은 대형 적의 수도 크게 늘어, 서로가 서로에게 총질을 하며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하는 듯한 난전 상황을 더욱 정신 없게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을 한다. 정신 없이 게임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기어스 오브 워를 하고 있는지 디펜스 게임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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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 무기가 줄어들다
싸워야 할 적이 많은 관계로 강력한 공격 수단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당연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기 수가 수류탄 포함 3개로 기존 시리즈보다 1개 줄었다. 당연히 종합 전투 능력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 등 각 사정거리에 맞는 무기를 하나씩 들고 다님으로써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었던 기존의 올라운드 플레이 역시 불가능해졌다. 특정 사정거리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데, 스마트 스폰 시스템에 의해 해당 사정거리 안에서의 전투를 특기로 하는 적들이 대량으로 리스폰된다면 그것만한 스트레스가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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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수가 줄었으면 성능 좋은 무기라도 많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들쭉날쭉하다. 샷건은 공격력은 높지만 넉백 효과가 사라져 돌격하는 적에 대한 저지력이 떨어지고, 붐실드를 들거나 적을 총알받이 삼았을 때 유일한 공격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던 피스톨 계열은 모든 무기를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변경되면서 그 가치를 잃었다. 스나이퍼 라이플 계열은 연사력이 떨어져 무리 지어 달려드는 적들에게 유효한 공격 수단이 되지 못하며, 붐샷이나 토크 보우 같은 폭발형 무기는 적이 떨어뜨리는 공용 탄창으로는 보급이 안 돼서 전투 지속력에 문제가 많다. 결국 랜서처럼 범용성 높은 무기가 주류가 되고, 그 사정거리 안에서 게임 플레이가 맞춰진다. 게임이 게이머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가 게임의 한계에 따라가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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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모음
스토리 상의 떡밥은 아예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 먹은 눈치이다. 캠페인 모드에서는 저지먼트 파트와 후폭풍 파트라는 서로 다른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는데, 전자는 1편 이전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베어드가 소속된 킬로 분대의 활약상을, 후자는 3편 후반부에서 베어드, 콜, 카민이 별동대로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설정 상 저지먼트 파트와 후폭풍 파트에서의 활약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인정한다. 저지먼트 파트에서 킬로 분대가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라이트매스 미사일을 발사했기 때문에 마커스 피닉스가 속한 오메가 분대가 무사할 수 있었고, 후폭풍 파트에서도 이들이 없었다면 최종 결전에 필요한 원군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나쁘게 말하면 설정놀음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끝난 이야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출해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내용이라면 따로 게임 타이틀 하나를 희생하기보다 DLC 형식으로 발매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1년전쟁 확대계획 마냥 캐릭터 미화나 설정 살 붙이기에 신경 쓸 겨를이 있다면, 우선 그 기본이 되는 본편의 미회수 떡밥부터 잘 처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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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의 구성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내리기는 힘들다. 저지먼트 파트의 경우, 각 챕터는 6~7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섹션은 보급- 일정 시간 경과 또는 일정 거리 이동-전투-평가라는 4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인 평가 부분. 기존의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는 하나의 통짜 미션이 여러 개의 챕터 포인트로 나뉘어 게임에 연속성이 있었던 반면, 저지먼트는 평가 부분에서 섹션이 아예 끝나버리기 때문에 상쾌함이 떨어진다. 원샷이나 실버백 같은 대형 무기도 평가 부분으로 전후 섹션이 분리되는 관계로 연속으로 사용할 수 없다. 전작의 호드 모드 같은 지루한 전투를 끝마치고 비로소 강한 무기 좀 마음껏 써보나 싶었는데 바로 코 앞이 섹션 종료 지점이었을 때의 그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후폭풍 파트는 그 모양새가 3편과 비슷하기 때문에 구성이나 플레이 감각 면에서 흠잡을 곳은 없지만, 총 플레이 시간이 어지간한 대용량 DLC와 맞먹는 약 1시간 30분 정도로 짧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대형 보스도 등장하지 않으며, 목적 중 하나인 대형 선박을 공수하는 매우 어정쩡한 시점에서 스태프 롤이 올라가 버린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정도 길이와 내용이었으면 3편의 DLC로 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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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즈오브 워이기 때문에 높아진 기대치
앞서 많은 불만사항을 정리해 놓았지만 이는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의 최신작이기에 나올 수 있는 불만이다. 저지먼트의 그래픽은 2013년 3월까지 발매된 FPS/TPS 게임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뛰어나며, 당장 최고급 사양을 요구하는 최신 PC 게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정교한 묘사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게이머의 시각적 즐거움을 120% 만족시켜준다.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게임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기밀 공개 임무를 통해 더 큰 손맛을 느낄 수도 있다. 형보다 뛰어난 아우 없다고 했던가, 3편까지의 너무나 큰 명성을 잇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어즈 오브 워 시리즈이기에 들어야만 하는 불만이고 다른 FPS게임에 비하면 엄청난 몰입감으로 다가오는 타이틀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몰입 중 생기는 불만들은 분명히 있으며 누적된 플레이 중 전작들과의 괴리감에 치를 떠는 팬들을 생각하면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다. 캠페인의 연속성이 아쉽긴 하지만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를 처음 접해보는 게이머들이나 일반 FPS게임이 식상한 게이머들에게는 크게 신선하게 다가올 타이틀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한글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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