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선택] 아키에이지와 테라의 공성전

MMORPG는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게임이 증명하듯 개발자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개성을 부여할 수 있는 장르다.

세계관만 바꿔도, 그래픽만 바꿔도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전세계를 휩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절대 강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게임들도 굳건한 팬층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겉모습을 논외로 하고 시스템만을 살펴보면, 퀘스트, PVP, 인스턴스 던전 등 몇몇 특징들은 거의 모든 게임들이 공유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두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콘텐츠이지만, 다른 느낌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최근 MMORPG의 핵심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공성전을 선보인 두 게임 역시 공성전이라는 공통의 콘텐츠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주 개발자의 선택 코너에서 다룰 게임은 아키에이지와 테라다.

먼저 공성전에 대한 전반적인 상식을 살펴보자. 공성전을 핵심으로 내세워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리니지의 공성전이 아마도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공성전의 모습일 것이다.

길드 단위의 게이머들이 모여 매주 한번씩 성의 소유권을 두고 서로 싸우게 되며, 승리한 길드는 성이 속한 영지의 세율 및 NPC가 판매하는 물품의 가격을 조절할 수 있게 돼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성 안에 존재하는 특별 던전을 이용할 권한도 주어진다.

아키에이지 공성전
스크린샷
아키에이지 공성전 스크린샷

아키에이지의 공성전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공성전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정해진 시간에 성을 두고, 길드 단위의 전투가 펼쳐지며, 승리 길드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부여된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키에이지 공성전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이 게이머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공성전은 개발자들이 사전에 만들어놓은 성의 소유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아키에이지는 노동력과 재화를 소모해 성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에 공성전이 펼쳐지는 성 역시 개발자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게이머들이 스스로 건설한 성이다.

또한, 공성전 참여 조건도 흥미롭다. 공성전을 하기 위해서는 공성진지라는 아이템을 구입해야 하는데, 이것은 경매를 통해 얻게 된다. 또한, 경매를 통해 공성진지를 획득한 길드가 선포 기간 내에 공성 선포를 하지 않으면, 공성전이 아예 진행되지 않기도 한다. 아키에이지의 건설, 경제, 전투 시스템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최종 콘텐츠다운 모습이다.

아키에이지 공성전 스크린샷
아키에이지 공성전 스크린샷

반면에, 테라의 공성전, 포화의 전장은 순수히 컨트롤을 겨루는 대결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대 70:70의 대결이 펼쳐지는 아키에이지의 공성전과 달리 테라의 포화의 전장 참여 인원은 20:20으로 제한되어 있다. 또한, 공성전을 통해 성의 소유권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하나의 성을 두고 공수를 번갈아 진행해서 최종 승리자만 가리는 형태다. 공성전이라기보다는 정예 인원이 맞붙는 PVP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공성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콘텐츠인 만큼 기본은 갖췄다. 타 공성전보다 인원이 다소 적긴 하지만, 거대한 성과 공성병기와 공중 침투 등 전략적인 전투를 경험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인원이 적기 때문에 개개인의 컨트롤과 팀웍이 더욱 중요하다.

포화의 전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최고 레벨을 달성한 고수들 중심으로 흘러가는 타 게임의 공성전과 달리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콘텐츠라는 점이다. 성의 소유권이 오가는 것이 아닌 만큼 막대한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30레벨만 넘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저레벨 게이머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포화의 전장에 참여하는 순간, 모든 게이머들이 똑같은 레벨과, 똑같은 스킬, 똑같은 장비를 착용하게 된다. 정말 순수하게 컨트롤 실력만 겨루게 되는 시스템이다.

테라 공성전 스크린샷
테라 공성전 스크린샷

두 게임의 공성전이 이만큼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두 게임의 현재 상황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키에이지의 경우 올해 초 오픈 베타를 시작 한 이후 그동안 꾸준히 레벨업을 해온 게이머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목표를 제시해야 할 상황이었다. MMORPG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이라는 측면을 만족시키면서, 건설, 경제 등 아키에이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콘텐츠를 아우를 수 있는 종합적인 목표가 필요했던 것.

또한, 게임 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게이머들이 그동안 쌓아온 막대한 재화를 없앨 필요가 있었으며, 그것을 위해 공성진지 아이템 경매 시스템 등 경제와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진 형태의 공성전을 구상한 것으로 분석된다.

테라는 아키에이지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다. 올해 초 2년간의 정액 요금제 서비스를 중단하고 부분유료화로 전환하면서 신규 게이머들이 대폭 늘어난 상태다. 또한, 이미 2년간 게임을 즐겨온 고수들도 존재한다. 즉, 어느 한쪽만을 배려한 콘텐츠를 꺼내서는 분란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테라 개발진들이 공성전 업데이트 계획을 발표했을 때 일반적인 공성전을 생각했던 게이머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테라 개발진들은 이점을 파고들었다. 공성전에 참여하는 순간 똑같은 조건에서 컨트롤 실력만을 겨루게 해 고레벨만의 리그가 되는 것을 방지했다. 또한 공, 수를 교대로 진행하는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컨셉, 즉 전략이 중요한 e스포츠 형태로 만들어 반복 플레이를 하더라도 매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콘텐츠 부족이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던 테라 입장에서는 여러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줄 수 있는 최적의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다.

테라 공성전 스크린샷
테라 공성전 스크린샷

다만, 타 게임의 공성전처럼 고레벨 게이머들의 최종 목표가 되지는 못하지만 테라에는 포화의 전장 외에 연맹전이 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즉, 아키에이지와 테라는 공성전이라는 콘텐츠를 현재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했다. 공성전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성을 두고 겨룬다는 행위 자체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담은 것이다. 폭 넓은 의미에서는 둘 다 공성전이긴 하지만, 이것을 통해 개발자들이 달성하려 했던 목표는 전혀 다르다. 이래서 게임 개발이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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