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대디보다 귀여운 송버드가 온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화려해보이지만 실속은 없는 게임, 전작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는 게임, 마무리가 개운치 못한 게임에 배신당한 적은 없는가? 안타깝게도, 근 1년간 발매되었던 속칭 '대작' 게임들의 후속 작은 그 이름만 듣고 수십 벌의 속옷을 갈아입었을 팬들의 기대감을 송두리째 배신해 온 예가 적지 않았다. 전작들의 장점들만을 취하고 변화에 인색했던 시리즈가 가장 많았고, 그래픽 이외에 변경점이 없거나 심지어는 완결을 흐지부지하게 끝내버려 시리즈가 쌓아왔던 스토리의 이미지에 먹물을 끼얹은 사례까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망감을 안겨준 게임들의 공통점은 스토리가 장대하다는 점이다. 직관적이지 않은, 각본가의 자기만족용으로 복잡하게 구성한 스토리 때문에 시리즈를 처음 접할 때의 두근거림은 사라지고 머리 아프게 지난 설정들을 되짚어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게임으로 고통 받는 게이머들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은 게임이 등장하였으니, 그 이름하여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통렬한 사회풍자와 잘 짜여진 동선, 심도 있게 그려지는 등장인물 간 관계 등으로 유명한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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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쇼크 시리즈는 배신하지 않았다
앞서 대작 게임들의 지지부진한 행태를 말했지만 이번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경우 그런 걱정은 잊어도 좋다. 무엇을 상상하든, 이 게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의 4배 가까운 만족도를 보장한다! 모든 상황과 등장인물에 의미가 있고, 사소한 이벤트 하나하나에 복선이 숨겨져 있다.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스토리와 공중도시 콜롬비아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사회비판은 더욱 세련되고 통렬해 졌고, 이를 뒷받침하는 화면 연출은 잔혹하면서도 생동감 있다. 너무 길지도, 그렇다고 너무 짧지도 않은 플레이 시간은 스토리를 이해하고 게임을 즐기는데 적당하며, 다양한 서브 퀘스트는 게이머의 도전 정신을 불태운다. 다양한 콤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특수능력과 레이싱 게임 못지않은 속다감을 제공하는 스카이라인 액션, 개성 넘치는 다양한 총기와의 만남은 FPS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요,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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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FPS게임으로서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바이오쇼크 1, 2와 같이 FPS게임이다. 난이도 설정이 절묘하여 스토리만 즐기고 싶은 게이머는 EASY난이도로 거침없는 학살을, 익숙한 게이머는 노멀 이상의 난이도로 긴박감 넘치는 부유도시 탐험에 나설 수 있다. 전작들의 특수능력 플라스미드와 대응해 비거라는 특수능력으로 대체되었는데, 사용법은 완전히 같다. 일반 FPS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특수능력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강력하여 직접공격 외에도 트랩을 만들어 설치하고, 일대 다의 싸움이 대부분인 전투에 전략적으로 사용된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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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속도가 전작들에 비해 조금 빨라지고 더불어 적들의 AI도 더욱 지능적으로 발전해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퍼즐 요소에 해당하는 해킹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 자물쇠 따기로 변경됐으며, 엘리자베스양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퍼즐적인 요소는 대폭 줄어들고 아이템 발견 등으로 노선이 변경, 숨겨진 열쇠 찾는 부분은 해킹 대신 서브 퀘스트로 변경되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플레이 타임과 모험을 계속해 나갈수록 새로워지는 맵 구성 등이 패드를 놓지 못하게 만든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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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진 게임 그래픽. 우중충한 해저에서 탈출하다!
바이오 쇼크 1, 2의 경우 바닷속 망한 해저도시라는 디스토피아에서 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에 게임의 거의 100%가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반면에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부유도시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가운데에서 시작된다. 당연히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전투의 상대는 대부분 콜롬비아의 공권력이다. 건물 내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모든 게임 그래픽이 백주대낮을 그리고 있어 맑은 하늘과 원색적인 건물들 사이로 붉은 피가 낭자하는 전투가 펼쳐진다. 원색 계열의 색조로 이루어져 있어 폭력 묘사가 더욱 잔인하게 다가온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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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게임 배경에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는데, 시민들과 어린이들을 독제자의 입맛에 맞도록 세뇌시키는 시설들이 게임의 주 무대이므로 이들 세뇌시설들의 디테일이 이전 시리즈들보다 더욱 정교하게, 질리도록 게이머들의 파괴본능을 일깨워준다. 전투와 이동 간은 동일한 맵에서 위화감 없이 부드럽게 전환되며 시리즈 전통의 잘 짜여진 동선은 서브퀘스트를 제외하면 헤매지 않고 진행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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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사운드의 새로운 발견
바이오쇼크 인피니티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2년이 배경이다. 따라서 게임 속 배경음악들은 그 시대에만 존재하는 악기들로 연주하며, 따라서 아코디언, 피아노 등의 아날로그 음악들이 주를 이룬다. 게임 속 설정에 따라 80년대 팝송 등도 아날로그적으로 연주한 음악들도 종종 들리곤 한다. 이러한 설정 등의 이야기는 게임 중 발견되는 북소폰(100년 전 LP기술을 이용한 녹음기)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전까지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대사가 없었지만 이번 작에서는 표지에 주인공의 얼굴이 드러나듯 주인공 부커 드윗 역시 사람들과 대화하고 농담하며 하드보일드한 소녀 구출작전을 진행한다. 듣고 행동하기만 했던 바이오 쇼크 시리즈에 대사와 선택이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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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독립한 부유도시 콜롬비아
시대 배경이 20세기 중반이었던 바이오쇼크 1, 2와 달리 20세기 초반인 1912년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게임 설정상 천재 과학자 루티스의 양자역학으로 콜롬비아는 부유도시로 탈바꿈했고 미국에서 독립한 가상의 주이다. 미국의 청교도정신과 유색인종 혐오가 요상하게 섞인 신흥종교가 콜롬비아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괴랄한 분위기가 도시 전체에 감돈다.

"장님의 나라에 가면 두 눈이 보이는 사람이 장애인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콜롬비아는 망한 도시국가 렙쳐의 미치광이 주민들과 달리 멀쩡하게 살아있는 주민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갑자기 주인공을 공격하는 경우는 매우 적지만 이들 NPC들의 대사는 전체주의, 일그러진 애국주의 등에 세뇌당하고 자기 합리화시키는 대사들이 태반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 내의 아랫세계를 ‘소돔’이라 부르며 불로 모두 정화시켜야 된다는 선민사상과 인위적 종말론 등이 횡행하는 다른 의미의 디스토피아 콜롬비아. 게임 속 세계이지만 실제로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어색하지 않다. 단지 모여 있을 뿐.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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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통렬해진 현실풍자
바이오쇼크 1은 천민자본주의를 풍자하며 그 몰락의 추함을 그려냈다. 바이오 쇼크 2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사회주의의 이상론과 비극을 그려내 각 작품마다 현실세계와 비교할 수 있도록 격리된 인간사회를 빗대어 대놓고 풍자해왔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에서는 맹목적인 종교관과 선민사상, 인종차별, 군국주의 등 20세기에 등장했던 복합적인 사회문제들을 전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풍자했으며 스토리상 이들의 연결 관계도 매우 자연스럽다. 역사책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지만 시대 배경상 비극적인 사건들이었던 운디드 니 전투(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사건)이나 의화단 운동 등이 스토리상 깊게 관여되어 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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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지도자인 컴스탁은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 남부 등지에서 횡행하는 개신교 기반의 신흥종교 교주로, 맹목적 믿음을 이용해 인종차별, 탄압까지 서슴지 않는 종교의 나쁜 점을 부각시켰고(이들에게 링컨은 뿔 달린 악마로 묘사되며,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는 기념관에 동상까지 마련해준다), 슬레이트 대령은 말만 그럴싸한 어리석은 군국주의, 핑크는 갑으로 표현되는 악질적인 기업가, 해방운동 리더 피츠로이는 극단적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 모든 것을 대부분 경험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게이머에게, 이 게임은 말 그대로 또 하나의 현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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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한글화 게임의 비극, 하지만 PC판은...
전작인 바이오쇼크 1, 2는 모두 한글화가 이루어져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모든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한글화를 거치지 않고 영어 그대로 발매되어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더구나 시리즈 중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콘솔판에 비해 늦게 출시된 PC판은 한글을 지원한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티를 하루라도 빨리 플레이해보고 싶어서 언어의 장벽에 굴하지 않고 콘솔판을 먼저 구입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아직 구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PC판을 구입해서 플레이하길 바란다. 시리즈 사상 가장 심도 있는 스토리와 게임성, 바이오쇼크의 마스코트 빅대디의 프로토타입 송버드와 핸디맨은 한글로 만나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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