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의 노하우는 다 넣었다, 에스카&로지의 아틀리에

나만의 선택으로 나만의 아이템을 만든다. 각양각색의 캐릭터들과 어울리면서 이벤트 홍수 속에 웃고 떠들기 바쁜 일상. 그리고 연금술이든 전투든 착실하게 레벨을 올려서 스토리 목표를 달성한다. 이 간단명료한 정체성으로 장수한 코에이 테크모 게임스와 거스트의 판타지풍 RPG 아틀리에 시리즈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 이름은 에스카&로지의 아틀리에~황혼 하늘의 연금술사~(이하 에스카&로지). 이걸로 시리즈 정식 시리즈만 15번째에 들어서면서 어지간한 장수 RPG 시리즈에 밀리지 않는 역사와 전통을 달성했다.

에스카 로지의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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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카 로지의 아틀리에 스크린샷

그리고 이처럼 역사와 전통이 부끄럽지 않은 아틀리에 시리즈의 최신작 에스카&로지는 발매 전부터 팬들의 많은 시선을 모았다. PS3용으로 등장해 시리즈 부흥에 성공한 알란드 3연작 로로나의 아틀리에, 토토리의 아틀리에, 메루루의 아틀리에를 종결하고 세계관과 시스템을 일신하여 코에이 테크모 게임스의 산하에서 새로 시작한 전작 아샤의 아틀리에가 게이머들의 극명한 호불호 덕분에 고전했기 때문이다. 아샤의 아틀리에는 실수의 일환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알란드 3연작을 끝으로 시리즈마저 황혼을 맞이할 때인 것인가. 에스카&로지는 이 갈림길을 결정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시선의 집중 속에서 2013년 6월 일본에서 발매를 하였고 전작 아샤의 아틀리에 흥행부진으로 인해 불발되지 않을까 우려가 섞였던 국내 정식발매도 가이드 북(공략 및 독점 아트워크 포함, 약 150페이지), 미니 배너, 에스카&로지의 이미지가 새겨진 특제 타월. 스페셜 트럼프 카드, 한국 패키지 아웃박스로 이루어진 초호화 구성으로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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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속사정 많은 에스카&로지가 던진 승부수란 바로 2인 주인공. 정식 시리즈 10번째 작품인 마나케미아 2 ~타락한 학원과 연금술사들~에 이어 5년 만에 돌아온 남녀 주인공 체제이다. 여기서 게이머는 여주인공 에스카와 남주인공 로지 중 한 명을 선택하여 중앙 소속의 변방 코르세이트 지부 공무원으로서 연금술사의 능력을 활용해 매 분기(4개월)마다 대과제를 해결해나가며 3년+@를 보내야 한다. 이 선택에 따라 드러나는 주인공의 속마음 차이부터 시작하여 독점 이벤트(=독점 트로피), 루트 전용 아이템, 메인 스토리의 내용 변화, 심지어 독점 엔딩과 일부 엔딩에서 CG다르거나 CG는 같지만 내용이 다른 차이에 이르기까지 차별화가 두드러져 생각 없이 주인공을 고르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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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루트 전용 아이템은 각 주인공의 최강 공격 아이템이고 즐거운 현재와 행복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전작들과 지향점이 겹치는 에스카 편, 설정과 세계관을 부각시키며 현재를 바로잡고 과오의 재발을 막는 로지 편, 이렇게 스토리 특색이 뚜렷하게 나타나므로 2회차 이후 플레이가 권장에서 거의 필수로 자리 잡았다(물론 장비와 사용 아이템의 2회차 전승이 존재). 당연히 2회차 이후의 플레이 감각 역시 전작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여기서 우러나오는 재미와 특징은 에스카&로지의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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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면적으로 내세우진 않고 있으나 시스템의 개선으로 게임 적응 난이도를 대폭 낮춘 티가 난다. 우선 이벤트 알람의 등장. 그동안 PS3용 아틀리에 시리즈의 이벤트 대다수는 거점 안 여러 구역에 진입할 때 발생했기에 오랜 시간 야외 활동을 하거나 아이템 조합에 전념하며 게임 내 시간이 흐르면 이벤트 발생 조건을 달성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을의 구역을 하나하나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맵 이동 목록에 이벤트가 발생하는 구역과 그 종류를 아이콘으로 확인할 수 있어 정기 점검 하듯이 돌아다녀야 하던 플레이 패턴을 드디어 청산했다(아틀리에는 표시가 나타나지 않으나 안 들릴 수 없는 구역이기 때문에 괜찮다). 거점이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이벤트 찾아 이 거점, 저 거점 떠돌아다녀야 했던 전작 아샤의 아틀리에의 단점이 사라진 건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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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회차에서나 연금술사를 항상 고뇌에 빠지게 만들던 아이템의 사용 횟수 문제. 이번 작에선 소모형 아이템을 탐색장비라 하여 사용회수가 0이 되어도 마을로 돌아오면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변경됐다. 이걸로 기껏 좋은 특성과 고품질로 만들고는 아까워서 사용 못 하던 딜레마가 말끔히 해결. 대신에 기존의 필드 획득 아이템을 저장하던 기존 바구니 슬롯과 별개로 디아블로 시리즈, 마비노기 온라인처럼 공간 관리가 필요한 슬롯에 따로 장착해야(당연히 강력한 아이템은 차지하는 슬롯이 많다) 필드에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예전처럼 폭탄 30개 회복 아이템 10개씩 들고 다니는 플레이는 불가능하나 애초에 사용횟수 문제로 벌어진 고육지책이므로 전혀 문제없다(소모 시간 감소, 이동 시간 증가 등의 기존 탐색장비 역할은 연구 개발이란 소지금 사용으로 바뀌었다). 한편, 필드는 필드대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는데 하나의 지역에 여러 구역을 나누고(지역 내 구역 이동엔 시간이 소모되지 않는다), 이 구역마다 게이머가 필요에 따라 발동시킬 수 있는 필드 이벤트를 준비해 소모 없이 채취 작업, 강적 전투, 아이템 발견, 보상 변화 등을 노릴 수 있게 하여 활용도가 대폭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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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합과 전투 시스템. 이 둘은 아틀리에 시리즈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작은 변화에도 바로 체감할 수 있으며 매번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였다. 전작 아샤의 아틀리에에선 알란드 3연작과 일부러 거리를 두는 대대적인 개편을 한 결과 적응 문제와 완성도의 차이로 인해 호불호가 심했던 것이 좋은 예. 조합의 경우 아샤의 아틀리에와 같은 조합 시스템을 사용하여 이번에도 정해진 소재와 변수를 가지고 결과를 미리 계산하면서 아이템을 완성해야한다.

계산해야 할 내용은 연금술 스킬과 이에 필요한 자원인 5속성 특성치, 소재의 잠재능력과 속성 수치 적용에 필요한 CP, 적용 가능한 잠재능력들 중(세가지)를 붙이는데 필요한 PP 이렇게 세 가지. 적어 보면 복잡해 보이나 전작에서 아이템 효과에 영향을 주던 특성이 아이템의 잠재능력 개방, CP 확대, 소비 CP 축소, 효력 증가, 수량 및 속성치 증가 등 연금술 스킬에 필요한 자원으로 바뀌면서 조합 완성에 이르기까지 아이템 고유의 효과와 게이머가 적용 가능한 효과인 잠재능력 두 가지만 고려하면 된다. 게이머의 취사선택이 가능한 잠재능력이 다섯 가지에서 세 가지로 줄었으나 잠재능력 발현 순서마저 맞춰야 했던 전작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며 편의성과 게이머의 조율 가능성을 동시에 충족한 형태이다(그러나 단순해졌다고 생각하지 말자. 특성과 연금 스킬 활용으로 겉보기엔 완성이 불가능한 형태로 아이템 조합을 성공시켜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설명하면 소재에만 매달려야 했던 알란드의 조합 시스템과 계산이 너무 복잡한 전작의 조합 시스템의 단점을 한꺼번에 해결한, 황혼 세계관을 시작할 때 진작 이렇게 나와 이번 작에서는 세부적인 조율로 완성해나갔어야 할 조합 시스템이란 이야기다. 이 좋은 시스템이 시작부터 나오지 못 해 안타깝기까지 하다.

에스카 로지의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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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쪽은 조합과 반대로 전열과 후열의 구분, 그로 인해 전투 참가 인원이 주인공을 반드시 포함한 3명에서 6명으로 2배 늘어나 대격변에 가까운 변화가 찾아왔다. 메인은 여전히 몬스터를 중심으로 삼아 세 방향으로 전개한 전열의 3명이지만, 후열의 동료 3명 역시 서포트 공격과 방어로 전투에 참가하며, 때에 따라선 서포트 행동과 동시에 전열과 자리를 교체하기 때문에 서포트 셔틀로 여기면 매우 곤란하다. 그리고 전투 참가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서포트 게이지가 각 캐릭터마다 존재하던 예전의 방식에서 모두가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뀐 덕분에 서포트 선택권이 대폭 상승하였고 이것은 연속 서포트에 따라 상승하는 대미지 배율 보정이란 새 시스템과 맞물려 전작에선 느낄 수 없던 폭풍 액션이 펼쳐진다. 대미지 배율 300% 이상 때 사용하는 주인공의 최강 공격 아이템이나 동료들의 필살기는 모 게임마냥 무쌍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게다가 몬스터들은 몬스터대로 필드 효과를 발생시켜 버프, 디버프를 걸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하는 등 강화되어 맞불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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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여타 RPG 게임처럼 최종 대미지가 5만이 넘어가고 보스 몬스터들의 HP가 만 단위는 기본에 30만, 999999까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이 펼쳐지긴 하는데 이런 인플레이션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밸런스 조절을 훌륭하게 소화하여 게임이 어려워진다거나(오히려 이번 작품의 전투는 시리즈 역대 최저 난이도에 가깝다) 재미없어진다거나 하는 부작용이 없다. 굳이 부작용이라 따질만한 현상을 찾자면 후반에 들어서 장비를 몰아치기를 위한 대미지와 서포트 게이지 상승 위주로 맞춘 다음 슬레이어의 스페셜 서포트 공격으로 전 능력치 하락-더블 드로우로 최강 아이템 사용하는 패턴고착 정도이지만, 장비와 아이템을 완성한 후반 파티의 전투가 단순해지는 건 시리즈 공통이라 새삼스럽고 DLC 던전의 보스들은 이런 단순 패턴으로 공략할 수 없기 때문에 아쉬울지언정 문제라 지적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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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에스카&로지가 오랜만의 2인 주인공 체제를 앞세워 고칠 부분은 다 고치고, 바꿀 것들은 다 바꿨음에도 정작 플레이해보면 신선함보단 익숙함이 더 강하다. 시리즈를 오래 즐겼던 게이머라면 더더욱. 하나씩 따져보자면 일단 과제 시스템. 5x5표 중앙에 위치한 1개의 대과제와 이를 둘러싼 8개의 중과제(가칭), 가장 외각에 위치한 16개의 소과제(가칭) 자체는 이번 작품에서 첫 등장한 것이지만 기한 안에 대과제를 해결하지 못 하면 바로 가차 없이 게임오버, 일정 관리를 개월 단위로 끊어 이벤트나 게이머의 선택권 같은 통제 변수를 줄인 것, 중앙이란 갑에게 휘둘리면서 고군분투하는 지방 공무원 을의 서러움을 몸소 보여주는 부분에선 마찬가지로 상하관계(의뢰 주 왕국과 하청업자 아틀리에)가 뚜렷했던 로로나의 아틀리에가 떠오른다.

의뢰 평가에 일희일비하던 로로나나 매월 지급하는 지원금 상승과 연구 항목 확대를 위해 공무원 등급에 매달리는 에스카나 실적의 노예이긴 마찬가지라 두 작품은 더욱 겹쳐 보인다. 한편으론 거점을 하나만 두고 정기 귀환하는 구조로 인해 특별한 요청이 발생하지 않는 한(필드에서의 이벤트 유무도 느낌표 표시로 확인할 수 있다) 거점에서 대부분 이벤트가 벌어지고 끝나므로 게이머의 스토리 순서가 일방통행에 가깝단 점까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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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세계관의 확장. 아샤의 아틀리에의 무대였던 동쪽 끝인 황혼의 대지로부터 먼 서쪽의 끝자락인 코르세이트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여 점차 커져가는 이번 작품의 내용에서 게이머는 선박을 개발, 알란드 대륙 전체를 탐험하고 바다 너머에 위치한 세계의 끝에 다다라 세계관의 규모를 밝힌 토토리의 아틀리에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연금술로 지역 부흥을 꿈꾸는 부분이나 전투에서 동료들의 서포트 행동 이후에 사용하는 소모형 아이템(더블 드로우 한정)의 강화 쪽은 빼도 박도 못 하는 메루루의 아틀리에의 재림. 보다시피 이제 볼 일 없을 거라 여긴 알란드 3연작의 특징이자 핵심이었던 것들은 다 차용하고 있다.

반면에 속편임에도 아샤의 아틀리에와의 연결점은 적어서 필드 이벤트에서 발견한 유물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잠재능력들 덕분에 다시 무작위에 영향을 받는 것을 비롯하여, 계산을 모토로 했던 시스템 대부분이 가지치기 당했고(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긍정적인 변화다), 세계를 떠돌며 황혼 속에서 쌓아가는 인연이란 컨셉은 거점의 중앙집권화, 과제로 인한 일방통행 등으로 인해 존재감을 잃으면서 스토리 중반에 이벤트로 추가되는 더블 드로우에서나 겨우 확인할 수 있다. 스토리에서도 직접 등장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작 캐릭터들의 대우가 처참하거나 종적을 감추어 전작 얘기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게이머는 윌벨 전투 참가 DLC를 구입해 위안으로 삼아야 할 지경이다. 이렇다보니 에스카&로지가 알란드 3연작의 오마주 작품인지 황혼 세계관의 최신작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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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분들께선 아마 이쯤에서 결국 재미있단 얘기냐 재미없단 얘기냐 하실 텐데 결론부터 적자면 많이 재미있다. 잘 만든 시스템과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왕도 스토리 속에서 과제표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헤매는 일 없이 웃으며 떠들기 딱 좋은 이벤트들을 거의 놓치지 않고 엔딩까지 달려가는데 재미없을리가 있나. 플레이 부담이 거의 없는 낮은 난이도가 더해져 마치 잘 만든 1쿨(약 3개월 방영) 애니메이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보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전작과의 연결점이 적다보니 아틀리에 시리즈 입문작으로도 적절하다. 굳이 아틀리에 시리즈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PS3용 RPG 작품들 중에서 순위권으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

그러나 만족했느냐면 또 다른 문제다. 아틀리에 시리즈를 처음 하는 게이머라면 몰라도 시리즈 팬들에게 에스카&로지는 두근거리는 신작이 아니라 즐기기 편한 구작에 가까워서 굳이 다른 명작 RPG를 제쳐두고 플레이 할 당위성이 부족하다. 타 게임과의 유일한 차이점인 조합마저 버튼 연타로 대충 아이템 완성해도 후반까지 쉽게 이어지다보니 스토리 최종보스나 DLC 던전 보스 공략용 최강 장비, 아이템을 위해 연금스킬 써보고 소재, 잠재능력 따질 때 빼고는 조합 과정을 연구할 일이 없어 "이래서 아틀리에 시리즈 하지!"란 정체성이 옅은 편. 단, 이런 만족도의 문제는 게임 자체의 퀄리티를 끌어올려 실적 부진을 만회했어야 할 책임보다 우선시하기 어려운 부분이므로 비판의 근거로는 적절하지 못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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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에스카&로지도 완벽한 게임은 아니라서 비판 할 거리는 정체성 외에 더 있다. 특히 시스템 중에서 캐릭터 이벤트의 척도인 교우도. 로로나의 아틀리에 이후로 캐릭터의 이벤트는 항상 파티에 합류하여 함께한 일수에 따라 올라가는 교우도+@조건이 공식이었고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중요한 교우도를 게임 안에서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 오죽하면 필자는 교우도가 아예 사라졌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교우도는 시간 경과가 나타나는(1일 단위가 아닌 시간미터 이동) 전투를 끝내야 오른다는 사실도, 전열이 후열보다 교우도가 빨리 오른다는 것도, 열외 처리한 파티는 후열과 달리 교우도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그래서 로테이션 돌리지 않으면 캐릭터 이벤트 100%가 불가능하단 것도, 돌아다니기만 해서는 소용없다는 것도 게이머가 추리하거나 눈치 껏 알아내야 한다.

캐릭터 이벤트의 비중이 큰 아틀리에 시리즈에서 이처럼 이벤트 척도를 알 수 없는 문제는 매우 뼈아픈 부분이다. 이게 너무 커서 여전히 부활할 기미가 안 보이는 콘테이너에서 잠재능력, 효과 검색하기나 필드 이벤트에 확률이 존재해 발동하고 싶은 필드 이벤트 아이콘이 나올 때까지 구역을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문제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수준이 되었다. 그밖에 게임의 설정 쪽에선 중앙의 대두와 전시대 유적의 탐사, 사건 해결과정에서 나타나는 세계관 확장 등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고고학 탐사 내지는 공무원의 희비가 부각되다보니 코앞까지 다가온 세계의 끝을 살아고, 힘내고,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인간찬가와 황혼의 여운이 많이 희석되어 아쉽다. 게임 내내 좌충우돌 코믹 시트콤 오늘의 코르세이트 같은 이벤트가 많아 막말로 이 게임만해서는 어디가 서서히 종말의 때를 맞이하고 있는 세계인지 모르겠다. 웃으며 즐기기엔 이쪽이 더 좋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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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자면 에스카&로지는 시리즈의 궤도 복귀 혹은 평가 반등이란 대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시스템 개선과 게임의 완성도 향상이란 중과제 역시 완수했으나 마무리 중심인 소과제들 중에서 몇 가지를 놓친 게임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특정 시스템이나 내용이 아닌 보편적인 완성도 향상에 따른 결과라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다보니 앞서 많은 이야기를 풀었음에도 사실 이 지면에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앞으로 이대로만 해주세요" 이걸 못 해 주구절절 쏟아낸 필자나 어김없이 옥의 티를 남긴 아틀리에 시리즈나 정진의 길이 많이 남았단 사족을 곁들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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