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에 펼쳐진 심오한 종이공작 세계. 테어어웨이

"이러라고 있는 디지털이 아닐 텐데"란 말이 나올 디지털 게임이 있다면? 그것도 디지털 게임이 아니었으면 구현이 불가능했을 그런 작품. 설명만 보면 모순인 그런 작품이 정말로 나타났다. 디지털 게임으로 아날로그 감성의 끝을 보여준 작품. 이번 주인공 Tearaway(이하 테어어웨이)이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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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어어웨이는 리틀 빅 플래닛 시리즈 제작사로 명성이 자자한 미디어 몰큘의 신작으로 메신저 아이오타(남) 혹은 아토이(여)를 조작하여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3D 필드 액션 어드벤처이다. 동화 같은 분위기 속에서 까마귀에게조차 겁을 먹는 약골 메신저를 조작하고 도와주면서 모험을 이끌게 되는데 전체이용가 게임답게 모난 곳 없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한 모험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데 첫째로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인 종이공작 세계의 심오함을 들 수 있겠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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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어어웨이는 디지털로 표현한 아날로그 감성의 결정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사실적인 종이공작 세계를 창조하였다. 바람이면 바람, 물이면 물, 불이면 불, 눈이면 눈, 여기에 글자와 사용자 인터페이스마저 전부 실제 종이 공작으로 할 수 있는 묘사를 사용해 사람이 직접 종이공작으로 촬영한 영상처럼 보인다. 나아가 게임 진행에 따라 얻는 종이접기 도면으로 게임 속 사물들을 직접 재현할 수 있단 점에서 테어어웨이의 현실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분명 게임의 내용을 손으로 재현하기엔 불가능에 가깝단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러한 특징은 게임 플레이에서도 마찬가지라 재질이 종이인 메신저를 동그랗게 말아 굴리기부터, 풀 바른 벽을 걷기, 색종이에 직접 절단선을 긋고 오려서 종이장식 만들기, 그런 종이를 부착, 살포하여 세계를 꾸미기까지 게이머가 종이공작으로 직접 메신저를 이끌어가고 세상을 창조해나간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리틀 빅 플래닛 시리즈처럼 말이다. 가상현실인 디지털에서 현실보다 더 사실적인 종이공작 세상을 창조한 제작진들에게 찬사와 경의를 보내고 싶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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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너무 실감나게 종이공작을 구현한 덕분에 게이머 개개인의 심미안에 따라서 플레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거. 사람의 손으로 잘라서 반듯하지 못 하고 삐뚤빼뚤 불안정한 테두리, 손으로 접고 구겨서 티가 확 나는 종이의 주름, 난잡하게 덕지덕지 붙은 종이 조각 등 기존의 디지털 게임에서 느끼기 어려운 손 맛이 스크린에 한가득 묻어난다. 그리고 현실세계의 일부로 존재하는 종이공작 작품과 종이공작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체감 정도가 달라 심하면 생리적인 거부반응까지 나타나는 게이머가 없을 거라곤 단언하기 어렵다. 만약 후술할 다른 특징과 더불어 게임과 게이머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의도한 사양이라면 질릴 정도로 유효했다고 전해주고 싶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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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플레이 방법을 살펴보자면 테어어웨이는 기본적으로 달리고 점프하며 주변의 도구를 사용하는 보편적인 3D 필드 액션 어드벤처다. 적을 물리치고 퍼즐을 풀어나가는 일방통행에 다른 길로 빠지면 서브 퀘스트나 숨겨진 아이템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구조. 점프와 동고동락하는 낙사의 존재가 있긴 하나 몇 번이고 체크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퍼즐이나 점프 난이도 역시 낮아 전체이용가에 어울리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평이한 플레이 패턴이 전혀 질리지 않으니 그 비결은 바로 게이머에게 있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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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어어웨이에서 게이머는 태양을 통해 메신저를 지켜보는 신으로 추앙받으며 게이머의 조작 상당수, 까놓고 말해 메신저가 직접 하지 않는 모든 행동이 신의 도움이란 명목으로 이루어진다. 이 신의 은총의 업적을 말할 것 같으면 북을 튕겨서 점프를 모르던 시절의 메신저를 띄워주시고 돌돌 말은 종이를 펴서 길을 만들어주시니 적들이 나타나면 손가락으로 바닥을 뚫거나 하늘에서 찍어주시사 VITA를 기울여 패널을 조종하시는 권능을 보여주시나니 오오 신이시여 오오. 뭐 이런 느낌까진 아니더라도 여하튼 신의 인도 하에 게이머가 세상에 개입한다는 컨셉으로 진도가 나가다보니 낮은 난이도나 간단한 구조는 개의치 않게 된다. 신께서 수호천사 노릇 하신다는데 어디 잡스러운 장애물과 퍼즐, 종이쪼가리들이 감히 길을 막을 수 있는가.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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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 신의 개입이란 설정 덕분에 다른 게임에서 억지로 사용하느라 귀찮고 불편하기 십상이던 VITA의 여러 기능들이 재미로 재탄생했단 사실이 중요하다. VITA 기능 활용이 불편했던 게임들이 게임 본편 위에 기능 활용을 얹었다면 테어어웨이는 VITA의 기능들을 위해 게임을 만든 것 같은 수준의 완성도다. 전면, 후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그것을 게임 안 세계에 장식하거나 마이크로 녹음한 소리를 게임 안에서 사용하는 등 게임 안과 밖의 상호교류를 유도하고 설정과 플레이를 일체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게임을 즐기도록 해준다. 게이머가 게임 안에서 무엇을 바라고 게임 밖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PS VITA TV가 등장하고 이쪽과의 호환성을 고려하여 점차 PS VITA만의 고유 기능인 전면 터치 스크린, 후면 터치 패드, 전후면 카메라, 마이크 기능 비중이 줄어들 것을 감안한다면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테어어웨이는 기기 활용의 대미를 장식한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모범으로 길이 남을 작품일 거라 확신한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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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일련의 플레이 경험을 통해 도달한 하나의 끝, 이야기의 마무리가 테어어웨이를 단순한 게임 스토리로 치부할 수 없는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당장 미디어 몰큘이 앞서 제작한 리틀 빅 플래닛 시리즈부터 게임과 게이머의 상호교류를 중시하면서 안 그래도 명작인 게임이 메시지를 담은 엔딩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던 바. 테어어웨이 역시 마찬가지이며 여기서는 게이머의 그동안 행적 하나, 하나가 의미를 내포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전면 카메라로 플레이어의 얼굴을 찍고 후면 카메라로 각종 사물을 찍는 것도 후면 패드, 전면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다루는 것 모두가 그저 다른 게임이 안 쓰는 기능을 멋지게 시연하기 위해서가 아니란 것이다. 테어어웨이가 게이머에게 전하려 한 메시지는 좁게는 이 게임이 왜 게이머와 마주하고 있는지, 넓게는 게임이 어떻게 게이머와 닿을 수 있을지, 이야기란 매개체로 인간세상 전체와 마주보는지 하나의 예, 적어도 답에 가까운 예를 선보였다 평가하고 싶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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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게이머의 행동이 본래 추구하던 방향이 아니더라도 그 나름대로 의미를 지닐 수 있단 점이 테어어웨이의 진면목을 나타내준다. 어떤 매체의 어느 작품이던 향유하는 개개인에 따라 해석과 수용이 다른 법. 테어어웨이에서도 기본은 게이머의 얼굴과 주변 사물,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얼굴이나 주변 환경이 아닌 그림이나 사진, 막나가서 게이머의 목소리가 나와야 할 부분에 애니메이션 OP 전주를 녹음하고 플레이해도 테어어웨이는 훌륭하게 하나의 작품,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물론 정도에서 벗어난 만큼 우스꽝스럽기도, 안 어울리기도, 심지어 의도치 않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곡해되기는 하는데 어차피 벗어난 정도, 이런 어긋남이 오히려 좋지 않을까. 세상부터가 반듯하지 않은 종이공작의 세계인걸. 게이머의 변칙을 포용하고 그것대로 즐길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그릇에 박수 쳐주고 싶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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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세상에는 게임하면서 웃다가 암전으로 스크린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짜게 식는 게이머, 녹음한 자기 목소리를 견디지 못 하는 게이머도 있는 만큼 전, 후면 카메라 선택권 보장이나 녹음 기능의 유연성을 확보해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전면 카메라로 게이머의 얼굴이 아닌 다른 사진을 찍는 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테어어웨어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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