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인즈 게이트의 팬디스크, 비익연리의 달링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텍스트 게임의 새 지평을 연 슈타인즈 게이트(이하 슈타게). 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를 매듭지었단 평가는 플레이한 게이머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를 내린 게이머들에게 한 점의 아쉬움도 없었느냐 묻는다면 이건 또 쉽게 긍정할 게이머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슈타게란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 된 것과 별개로 그 과정에서 등장한 ‘세계선’이란 이름의 각종 스토리 분기라든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여기에 언급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각종 설정 및 뒷이야기까지 슈타게의 팬이라면 목이 타서 갈증에 쓰러질 소재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 그리고 이런 팬들을 대상으로한 서비스&상술에 정통한 일본 게임업계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으니 슈타게의 팬디스크 Steins;Gate 비익연리의 달링(이하 비익연리)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슈타인즈 게이트 비익연리의 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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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인즈 게이트 비익연리의 달링 스크린샷

대한민국에서는 생소한 팬 디스크란 존재를 잠깐 설명하자면 특정 본편이 흥행할 때 이와 연계하여 추가 발매하는 서비스 성격의 상품을 의미한다. 텍스트 게임의 불모지인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이러한 텍스트 게임의 팬 디스크 상술이 보편화 되어 있는데 이 팬 디스크에는 해당 본편에서 못 다룬 IF 시나리오나 후일담 등의 추가 스토리, 미니게임이나 신작 벽지 등의 유희 요소, 그밖에 본편의 단점이나 설정 보완 등이 주로 들어간다. 본편을 플레이한 게이머를 고객으로 삼으므로 이것을 전제로 여타 물밑준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점이나 팬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자극을 선사해 문자 그대로 본편 팬들을 위한 상품이라 할 수 있겠다. 슈타게의 팬 디스크인 비익연리도 마찬가지라 슈타게의 캐릭터와 설정들을 가지고 슈타게에서 이룰 수 없었던 각양각색의 서비스 성격 강한 시나리오들을 담고 있다(본편 플레이를 전제로 한 것 또한 다른 작품의 팬디스크와 동일해 본편을 안 하고 비익연리부터 시작하면 분명 본편에서도 등장한 설정이나 TIPS 용어임에도 게이머가 전개를 못 따라가 이해를 못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슈타인즈 게이트 비익연리의 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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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서비스들이 무엇이냐. 슈타게를 플레이한 게이머라면 비익연리가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는 지는 제목에 들어가는 ‘사모할戀’과 표지에 나타난 하트모양 인공위성(라고 해두자. 정체는 누설이니), 그 뒤의 서있는 마키세 크리스와 시이나 마유리 두 명만으로 감이 잡힐 것이다. 이 작품 안에 얼마나 끈적거리고 독하기 짝이 없는 순분홍색 꽃밭이 가득할 지가. 게임을 시작하고 바로 나타나는 밝은 색의 시작 화면과 조금 기다리면 흘러나오는 상큼발랄 오프닝 곡, 분홍빛 영상, 이어지는 왁자지껄 파티 시추에이션까지 들어가면 부농부농 말기 판정이다. 게다가 다이버젠스 수치 0~1% 사이에서 세계 규모의 음모와 싸우던 것이 비익연리에선 다이버젠스 수치가 3%를 넘어가 당면 목적이 고작 연구소 유지비 마련 정도로 스케일이 대폭 축소, 슈타게에서의 살벌험악한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용등급이 15세 이용가로 내려가고 폭력성 표시가 빠진 건 덤. 이렇듯 비익연리는 슈타게의 진지한 분위기와는 크게 다른 라보 멤버들의 일상 러브 코메디를 컨셉으로 잡아 주인공 오카베 린타로를 중심으로 하시다 타루를 제외한 각 라보멘과의 전용 시나리오를 담고 있으며 게이머는 초반에 딱 한 번 등장하는, 분기 선택을 위한 D메일 발송을 제외하면 그저 텍스트를 넘기며 시나리오를 읽으면 그만인 작품이다(다만 주인공 오카베 린타로도 후반의 대격변을 거치지 않으므로 초반의 그 언행들을 끝까지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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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시나리오가 그저 하하호호 웃는 연애 시나리오인 것은 아니고 각 캐릭터에 따라 그 목적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가령 시이나 마유리나 페이리스냥냥 시나리오처럼 슈타게에선 이런저런 사정에 치여 꽃 피지 못 한 캐릭터 어필의 한을 마음껏 푸는 루트가 있는 반면 마키세 크리스나 아마네 스즈하 시나리오처럼 분명 본편에 나왔어야 했는데 타이밍, 시나리오 완성도 문제로 희생을 강요받았던 설정이나 게이머가 보고 싶었던 이벤트를 담은 시나리오도 있고, 해당 캐릭터 팬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은 키류 모에카, 우루시바라 루카 루트 같은 시나리오도 있다. 플래티넘 트로피를 노릴 것이 아니라면 게이머의 입맛대로 골라가면서 시나리오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시나리오에 따라 퀄리티나 분량의 차이가 많이 나긴 해도 해당 캐릭터의 팬이라면 대부분 만족할 내용이란 점은 동일하니 말이다.

슈타인즈 게이트 비익연리의 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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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재미있는 것은 슈타게와 180도 동떨어진 비익연리임에도 마키세 크리스와 시이나 마유리의 양강 구도, 대척점 설정은 그대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슈타게에서 굴러온 돌vs박힌 돌, 온갖 조건을 만족해야 루트 진입vs최소한의 폰 트리거만 해결해 나가면 손쉽게 루트 진입, 외강내유vs외유내강 등등 여러 비교 사항들이 많았는데, 비익연리에서 역시 아무 것도 안 하고 텍스트만 넘기면 루트 진입vs온갖 조건을 만족해야 루트 진입, 다른 루트와 비슷한 분량의 시나리오vs최대 분량 시나리오, 일본식 츤데레 공략 시나리오vs한국 드라마 시나리오 등등 여전히 비교하게 된다. 어떤 의미론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채로 말이다. 이런 세심한 디테일을 살리면서 슈타게와 동떨어진 비익연리의 정체성을 유지시킨 점이 인상적이다.

슈타인즈 게이트 비익연리의 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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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슈타게란 정체성이 저렇게 게임 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퍼포먼스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데이터 인스톨은 비익연리에도 없다. 일본에서부터 PS3용 슈타게와 비익연리의 발매일이 같았는데 데이터 인스톨이 들어있을 리가. 그러니 비익연리 역시 PS3용보다 PS VITA로 플레이하기가 더 좋다. 년 단위로 발매 시기가 다른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PS3용과 PS VITA용이 동시 발매되었기 때문에 일본보다 더 사정이 좋다고 할 수도 있겠다. 반대로 플래티넘 트로피 획득 난이도는 슈타게보다 까다로워졌는데 모든 메일을 봐야 하는 트로피가 생겨서 메일 분기 파생 패턴과 특정 패턴에 등장하는 메일 답문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수고가 생겼다. 슈타게에는 없던 메일 리스트가 있어 빠진 메일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손이 많이 가는 건 여전하다. 슈타게보다 부족한 시나리오 분량과 폰 트리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슈타인즈 게이트 비익연리의 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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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서 그렇지 비익연리도 슈타게다. 슈타게를 좋아하면 비익연리도 좋은 작품이고 슈타게가 끝까지 맞지 않았다면 비익연리도 추천하기가 어렵다. 팬디스크라 해서 두 작품을 구분하지 말고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일각에서는 비익연리를 완벽하게 끝난 슈타게의 사족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차피 슈타게와 한참 떨어진 별세계에서의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를 라보멘들의 이야기 가지고 호들갑 떨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캐릭터와 우하우하 시나리오 즐기겠다는 팬들의 욕구가 무슨 죄짓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좋은 게 좋은 거다.

슈타인즈 게이트 비익연리의 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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