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오해? '롤드컵 분산개최'는 라이엇게임즈의 기만이다

지난 2013년 11월.용산 e스포츠 경기장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KeSPA의 전병헌 협회장이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의 2014년 최종 결선, 통칭 롤드컵을 한국에서 유치했다는 깜짝 발표가 터지는 순간 국내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세계에서 활약하는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들 중 최고의 기량을 지닌 이들이 '최강'이라는 이름을 두고 벌이는 각축전이 한국에서 벌어지게 됐으니 팬들이 환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2014년 6월 26일. 한국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선 다시 한 번 난리가 났다. 지난번의 난리가 긍정적인 의미의 난리였다면 이번에는 부정적인 의미의 난리였다. 라이엇게임즈가 공개한 롤드컵 2014 조별 예선 경기가 대만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진행되고, 한국에서는 8강전부터 진행된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팬들은 격하게 들고 일어났고 이에 라이엇게임즈는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배포했다. 하지만 이는 팬들의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 팬들이 조별예선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줄 몰랐다는 내용과 결승 개최 공지를 한국 팬들이 어떻게 해석할 지 몰랐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본론부터 말하자. 팬들이 오해한 게 아니다. 라이엇게임즈가 팬들을 기만한 것이다. 라이엇게임즈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던 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도 이러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배신감 때문이다.

롤드컵이라는 대회가 조별 예선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지난 3차례의 대회를 통해 라이엇게임즈도 충분히 알고 있는 부분이다. 리그오브레전드의 2014년 최종 결선을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것이 팬들에게는 대회의 모든 과정이 한국에서 진행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롤드컵이라는 말 자체가 월드컵과 리그오브레전드의 합성어로 이는 게이머들이 롤드컵을 월드컵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팬들의 통념을 라이엇게임즈가 몰랐다는 이야기다. 미국에 본사를 둔 라이엇게임즈는 모를 수 있다고 치자. 한국에 있는 라이엇게임즈 코리아는 이러한 정서를 미국에 전달 안 하고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리그오브레전드
리그오브레전드

설령 자신들의 뜻과 다르게 팬들이 오해할 수 있다면 좀 더 구체적인 답변을 했어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라이엇게임즈는 그러지 않았다.

또한. 라이엇게임즈가 롤드컵 2014의 조별 예선을 동남아 지역에서 분산개최하겠다는 뜻을 KeSPA 측에게 알린 것은 지난 3월. 전병헌 회장이 '롤드컵 한국 개최'를 공개적으로 알린지 약 5개월이 지난 이후다. 라이엇게임즈는 평소 한국 시장에 대해 'e스포츠의 발상지로 한국 시장을 늘 주시하고 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수차례 밝혔다.

평소 라이엇게임즈가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말대로라면 롤드컵 한국 개최 발언 이후에 '자신들의 뜻과는 다르게 롤드컵의 모든 경기가 한국에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한국 팬들의 의견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4~5개월이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라이엇게임즈가 한국의 팬들이 오해하고 있을 줄 몰랐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라이엇게임즈가 이전부터 리그오브레전드를 단순히 e스포츠의 한 종목에 그치지 않고 축구, 야구와 같은 스포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스포츠가 되기를 원했다는 점도 이번 롤드컵 분산개최라는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롤드컵은 게이머들에게 월드컵과 같은 의미다. 하나의 대회가 개최지를 벗어나 이곳저곳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팬들이 생각할 수 없었던 심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브라질 월드컵이 칠레, 볼리비아 등지에서 펼쳐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대표적인 경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성공적으로 치뤄진 대표적인 대회로 꼽히지만,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분산개최가 결정됐던 1994년 당시에는 피파의 이러한 선택을 비판하고 흥행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비판적인 시선을 헤쳐나갈 수 있던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팬들이 분산 개최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리기 위해 피파가 노력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롤드컵 분산개최는 이러한 사례 중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롤드컵 한국 개최'라는 명분을 내세운 후 5개월이 지난 후에 갑작스럽게 분산개최 소식이 알려졌으며, 그 사이에 라이엇게임즈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고, 징후를 보이지도 않았다.

세계의 어느 스포츠도 가장 권위있는 대회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스포츠계에서 세계 대회가 이런 식으로스포츠 팬들의 일반적인 정서와 전혀 다른 행보를 하면서 스스로를 스포츠라 칭할 수 있을까? 이는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는 팬들이 느끼기에 이번 사태는 자신들의 오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라이엇게임즈가 팬들을 기만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혹은 팬들의 의견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진행했거나 말이다. "다른 준비를 할 시간이 없으니 이제는 그냥 진행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통에 라이엇게임즈가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도 실제로 적지 않다.

라이엇게임즈의 이번 결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작은 시장이고, 작은 시장에만 몰두하는 것 보다는 좀 더 넓은 시장에 두루두루 투자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옳바른 선택일 수도 있다. 현재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리그오브레전드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도타2의 프로리그가 활성화 되고 있으니 롤드컵 분산개최를 통해 이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일방적으로 일이 처리됐다.

롤드컵 2014의 8강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것도 롤드컵의 일부고, 조별 예선이 동남아 지역에서 나뉘어 진행되는 것도 롤드컵의 일부다. 이 중에 절반만 공개적으로 공지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몰래 진행하다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팬들을 향한 기만행위다.

라이엇게임즈는 한국 팬들이 호구로 보였던 걸까? 그동안 자신들이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으니 이번 결정에도 지지를 보낼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큰 착각이다. 한국 팬들이 라이엇게임즈를 지지했던 것은 이들이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팬들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진실함이 팬들에게 닿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다르다. 팬들은 라이엇게임즈가 자신들을 무시했다고 느끼고 이에 분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라이엇게임즈가 다소 실수를 했을 때, 이전에는 눈 감고 넘어갔던 일들에 대해서 이제는 좀 더 까다로운 평가를 내리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2012년 롤드컵 시즌2 개최에 앞서 라이엇게임즈의 브랜드 백 대표는 "우리는 아무도 하지 않은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 브랜드 백 대표가 말한 '아무도 하지 않은 시도'가 이렇게 일방적인 롤드컵 분산개최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라이엇게임즈가 긴장해야 할 때다. 정말로 리그오브레전드를 스포츠로 만들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수준 있는 운영을 해야하고 팬들을 관리해야 한다.팬들은 라이엇게임즈라서 좋아했던 게 아니다. 팬들과 소통하고 개념있는 회사를 좋아하고, 라이엇게임즈가 그런 행동을 했었기 때문에 좋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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