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 기자의 놈놈놈] 젤다무쌍 편

젤다의 전설. 1986년에 패미컴 디스크 시스테으로 출시된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전세계를 아우르며 이렇게 기복 없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RPG가 또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파이널판타지와 드래곤퀘스트를 꼽을 수 있겠지만, 파이널판타지는 최근 들어 과거의 명성에 비해 어딘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드래곤퀘스트는 그 인기가 대부분 일본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젤다의 전설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젤다의 전설이 ‘일기당천’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혹자는 벼베기 액션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코에이테크모의 무쌍 시리즈와 손을 잡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기대 반 걱정 반.

여타 RPG에 비해 액션성이 강조된 편이기에 ‘기존 젤다의 전설의 틀은 유지하고 전투만 무쌍류로 바뀐다면?’ 이라는 기대를 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두 시리즈의 색이 너무나 다른데 어우러질 수 있을까?’하는 우려는 하는 이들도 많았다. 소위 말하는 ‘콜라보레이션 무쌍’들이 실망스러운 게임성을 선보인 적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김한준 기자(이하 까는 놈): Wii U 전용으로 출시된 덕분에 국내에서는 이 게임을 접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적어.
조광민 기자(이하 말리는 놈): 국내 발매가 안된 게임기의 게임이니 당연한 일이죠. 이름값은 상당한 게임인데 말이죠.

젤다무쌍
젤다무쌍

까는 놈: 자연스럽게 한글화도 안 됐지… 젤다의 전설도 그렇고 삼국무쌍도 그렇고 스토리 읽는 재미도 제법 있는 편인데, 이런 재미를 포기하고 게임을 하게 되니까 그런 점도 많이 아쉽고.
조영준 기자(이하 편드는 놈): 예전에 해적무쌍은 한글화 안 됐어도 잘만 하시더니 왜 그럽니까.

까는 놈: 그건 내가 원피스를 좋아하니까… ‘팬심’으로 극복한 경우고 -_- 나는 사실 젤다의 전설도 진삼국무쌍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야. 이번에는 ‘비한글화’라는 단점을 극복할 팬심을 발휘할 여지가 없더라고.
편드는 놈: 별로 안 좋아하는 게임들이 합쳐졌다고 무작정 까기만 할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뭘까요.

말리는 놈: 사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장르에서 뚜렷한 마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는 게임들이에요. 이런 두 작품이 하나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좀 놀랐습니다.

편드는 놈: 건담하고도 손 잡았고 북두무쌍하고도 손 잡은 적이 있으니 놀랄 것도 없지만… 생각해보면 두 게임의 이용자 층이 전혀 다르기는 합니다. 젤다 시리즈는 일본보다는 북미나 유럽 지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는 게임이고, 무쌍 시리즈는 서양보다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니까요.

말리는 놈: 이름이 알려진 게임들이 합쳐졌으니, 개발진들이 공을 들인 티는 확실히 나는 게임입니다.
까는 놈: 그럴 수 밖에 없지. 잘 되면 두 작품의 팬들 모두에게 칭찬을 받겠지만, 사실 그런 일보다는 두 작품의 팬들 모두에게 욕 먹는 일이 더 쉽게 벌어지거든. 사실 출시 전부터 우려가 없던 것은 아니야.

이 게임의 개발사가 오메가 포스와 팀 닌자인데… 팀 닌자의 경우는 닌자가이덴 시리즈의 최신작과 메트로이드 아더 M을 새롭게 개발하면서 기존보다 못 한 게임을 출시한 이력이 있거든. 사람들이 불안해 할 수 밖에.

젤다무쌍
젤다무쌍

편드는 놈: 일단 이 게임은 개발진들이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게임입니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가 스테이지 곳곳에서 나고, 캐릭터의 기술도 나름대로 개성이 잘 살아있어요. 아무래도 과장된 액션이 특징인 무쌍 시리즈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이 캐릭터가 이런 이미지였던가?’ 싶은 연출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설프지 않게 구현된 덕분에 오히려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편드는 놈: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두 시리즈의 맛을 동시에 볼 수 있죠.
까는 놈: 그런데 젤다의 전설 특유의 게임 내에서 캐릭터들의 음성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도 그대로 이어왔더라고 -_- 전장에서 캐릭터들이 고함을 지르고 자신들의 유행어를 외치는 것을 보는 것도 무쌍 시리즈의 재미였는데… 이런 점은 좀 아쉽네.

말리는 놈: 젤다의 전설 시리즈가 애초에 음성 연기가 돋보이던 게임이 아니니… 섣부르게 음성 요소를 넣기 어려웠겠죠.

까는 놈: 플레이 방식은 전형적인 무쌍 시리즈의 그것을 따르고 있어. 젤다의 전설 팬들이 기대했던 ‘젤다의 전설의 게임성에 다수의 적을 도륙하는 전투 방식’이 채택된 게임이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무쌍 시리즈에 젤다의 전설 캐릭터가 나온다’ 수준이야. 뻔하다면 뻔한 게임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편드는 놈: 그렇다고 마냥 무쌍 장르에 젤다의 전설 스킨을 입힌 것 같은 게임은 아니에요. 특히 보스전에서 기존 무쌍 장르와는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죠. 원래 무쌍 시리즈에서의 보스전은 ‘내 화력 맛 좀 봐라!’하는 식으로 공격을 퍼붓는 것이 일반적인데, 젤다무쌍의 보스전은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고, 이를 공략하는 식이에요. 젤다의 전설에서 즐기던 보스전 특유의 느낌을 옮겨온 셈이죠.

말리는 놈: 스토리는 어떻습니까? 오랜 세월에 걸쳐 뚜렷한 세계관을 갖춘 젤다의 전설이니만큼 이를 게임 내에 어떻게 살렸는가도 게임의 가치를 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요.

젤다무쌍
젤다무쌍

편드는 놈: 사람들이 우려했던 IF 스토리는 아니에요. 오메가포스는 해적무쌍2에서 오리지널 스토리가 아니라 IF 스토리를 선보여서 사람들을 조금 실망시킨 경험이 있는데…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이번에는 원작의 스토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기존 작품의 세계관 몇 개를 융합해서 풀어내는 식이에요.

까는 놈: 스토리의 질은 그렇다고 쳐도 분량은 너무 적어. 뭐 방대한 대서사시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젤다의 전설 시리즈가 제법 긴 역사를 지니고 있고 다양한 작품이 나온 만큼, 이 게임에서도 이러한 방대한 이야기를 만나봤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

이런 아쉬움은 해소하기 위해서. 어쩌면 반복적으로 즐길거리를 주기 위해서 어드벤처 모드가 준비되어 있긴 해. 128칸이나 되는 지도의 각 칸을 움직이면서 주어지는 퀘스트를 수행하는 모드인데, 높은 랭크를 기록하거나, 숨겨진 아이템을 찾아내는데 주안을 두면 한참을 즐길 수 있기는 해.

나야 개인적으로 아이템 파밍, 수집 등의 요소는 신경을 잘 안 쓰는 편이라 큰 장점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갖고 놀 것’이 있는 게임이라느 건 부정할 수 없네.

편드는 놈: 일단 무쌍이라는 이름을 썼으니 액션에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데, 액션도 제법 마음에 들어요. 상당히 호쾌하고 화려한 연출이 이어집니다. 팀 닌자가 닌자가이덴 시리즈를 통해 축적한 노하우가 이번 작품에 발휘된 느낌이에요. 캐릭터의 모션도 상당히 박력이 있거든요.

까는 놈: 무쌍 시리즈가 ‘벼베기 액션’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이유 중에 캐릭터 동작에 무게감이 부족하고, 연출이 크게 화려하지 않기 때문이니까 상당한 장점이지. 원피스와 콜라보레이션 했던 해적무쌍에 버금가는 연출을 보여줘. 거기에 묵직한 타격감이 더해져서 시리즈 최고 수준의 액션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액션을 펼칠 캐릭터들이 너무 부족해. 희한하게도 ‘콜라보레이션 무쌍’의 첫 작품에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수가 부족하게 등장하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는데. 그 전통이 이번에도 이어진 것 같아. 쓸데 없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나 할까?

젤다무쌍
젤다무쌍

말리는 놈: 바꿔 말하면 후속작이 나온다면 더 많은 캐릭터가 나올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네요. 다양한 아이템을 조합할 수 있다면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지는 것이구요. 이것도 무쌍 시리즈의 전통이니까 후속작은 뭐 이렇게 나오지 않겠어요?

까는 놈: …그건 전통이 아니라 상술이라고 하는 거지 -- 후속작을 팔기 위해 전작에서 일부러 맛만 보여주는 거니까.
말리는 놈: 선배의 평소 말버릇을 빌자면… 개발사도 먹고 살아야죠.
까는 놈: 언제부터 네가 내 이야기를 그렇게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살았다고… 이제 와서 내 발언을 구비구비 펼치는 거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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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드는 놈: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젤다의 전설과 무쌍 시리즈 팬들의 취향이 서로 상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그 타협점을 잘 찾은 게임이에요. 볼륨이 부족하다는 것이 조금 치명적이긴 하지만요.

까는 놈: 아. 한글화가 안 됐기에, 어드벤처 모드를 즐기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어. 일본어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제법 큰 단점이지. 볼륨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매워줄 수 있는 콘텐츠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되니까.

편드는 놈: 이건 여담인데 어째 이번 작품에서 링크는 그다지 강한 것 같지가 않아요. 주인공이 맞는가 싶기도 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게임의 주인공이면서 아이러니하게 게임 제목에는 언급도 안 된 캐릭터라서 그런가.

까는 놈: 개발진도 ‘젤다의 전설 주인공 이름은 젤다 아니여?’ 하고 착각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전설은 링크(젤다의 전설의 주인공)가 만들어가는데 그 명성은 공주 젤다에게 쌓여가는 이 부조리의 사슬이 이번에도 이어지는구나.

무쌍 장르를 싫어하는 젤다의 전설 팬, 혹은 젤다의 전설에 관심이 없는 무쌍 장르의 팬들에게는추천할 수는 없는 게임인데… 뭐 이거야 게이머 취향 문제니까 당연한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점 이외에도 아쉬움이 있는 게임이야.

말리는 놈: 뭔가요?

까는 놈: 얼마전에 사망한 로빈 윌리엄스가 젤다의 전설 팬으로 유명했던 거 알지?
편드는 놈: 딸의 이름까지 젤다라고 지을 정도였으니까요.

까는 놈: 그 정도로 젤다의 전설을 좋아했으면 젤다무쌍도 좀 즐겨보고 갈 일이지… 한달하고도 보름만 기다렸으면 미국에도 출시가 됐을 건데… 너무 빨리 세상을 등졌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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