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살벌한 온라인 게임 시장, 100억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1부 : 점점 어려워지는 한국 게임 시장]
1화. 살벌한 온라인 게임 시장, 100억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본지에서는, 대형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한국 게임산업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고, 한국 게임사들에게 진정한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순신 장군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그린 명량, 그리고 하정우와 강동원을 내세운 군도, 김윤식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해무, 손예진을 앞세운 해적 등 100억 규모의 자금이 투입된 대작 영화들, 이른바 빅4가 한번에 쏟아져 국내 영화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물론 그 이상의 금액이 투입된 몇몇 별종들이 가끔 등장하긴 하나 100억 이상이라고 하면 국내 영화계에서는 대작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기준점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국내 게임업계에서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9년전인 2006년에 넥슨, 한빛소프트, 웹젠이 100억 이상 투입된 MMORPG인 제라, 그라나도 에스파다, 썬을 거의 같은 시기에 내놓으면서 빅3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그 뒤부터 한동안 대작의 기준이 100억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라나도에스파다
그라나도에스파다

이 뒤부터 갈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져 대작의 기준이 계속 높아졌으며, 이제는 400억 이상이 투입된 테라와 블레이드&소울, 아키에이지, 이카루스까지 왔다. 모 회사 관계자는 150억 이상의 자금이 투입된 게임을 선보이면서, 워낙 개발비가 많이 투입된 경쟁작들이 많다보니 개발비가 공개되면 중급 게임 취급 받을까 걱정된다는 반응을 보인 적도 있었다. 불과 9년전에 대작의 기준이었던 100억이 이제는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최소 기준점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속설에 의하면 위에 언급된 대작 게임 중 몇몇은 부담감으로 인해 실제 소모된 금액보다 축소해서 발표한게 400억이라는 설도 있다.

테라
테라

이처럼 온라인 게임의 개발비가 천문학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이유는 치열해진 경쟁, 그리고 높아진 게이머들의 눈높이 덕분이다. 최초의 빅3가 개발되기 시작한 시기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인해 국내 게이머들의 MMORPG에 대한 기준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이며, 그 뒤부터 개발 기간이 이전보다 대폭 늘어나게 됐다. 이전까지는 오픈 베타 테스트가 아직은 베타 테스트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빅3 이후부터는 게이머들이 정식 서비스와 다름없는 품질을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인해 퀘스트와 인스턴스 던전이 게임의 재미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으며, 타 국가 게이머들에 비해 콘텐츠 소비가 훨씬 빠른 국내 게이머들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정식 서비스 이후 업데이트 콘텐츠까지 미리 준비해둬야 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부담은 훨씬 더 커졌다. 통상 대형 MMORPG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100명이 넘는 개발자들과 최소 3년 이상의 개발 기간이 필요한 만큼, 이미 인력 비용만으로도 수십억을 상회하며, 게이머들의 눈 높이에 맞는 퀄리티를 위한 상용화 엔진 구입비, 시설비까지 고려하면 100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작은 금액일 뿐이다. 참고로, 레드덕이 언리얼 엔진으로 아바를 만들 시 엔진 구입비로 10억 이상을 썼다고 한다.

wow
wow

게다가, 이것은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됐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지, 실제 개발 상황에서는 이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다. 가장 최근에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한 이카루스의 경우 지난 2005년 크라이엔진1을 사용한 프로젝트 네드로 시작해 지금까지 3번 이상 개발 방향이 뒤집어지고, 엔진까지 크라이엔진2로 변경했으며, 10년이 지난 올해에야 겨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게임한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라그나로크의 후속작 라그나로크2는 언리얼 엔진 2.5로 개발을 시작해 2007년 오픈 베타를 진행한 후 2008년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리고 중간에 제로딘 엔진으로 변경했다가, 2012년에 게임브리오 엔진으로 다시 리뉴얼을 거쳐 서비스를 재개하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쳤으나, 결국 2013년 12월 23일 국내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처럼 기획의 문제로 인해 중간에 개발 방향이 뒤집어지고, 사용 엔진까지 바뀌는 경우에는 그동안 개발했던 리소스들을 전부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만큼 개발비가 2~3배 이상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 게임들은 굉장히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개발 중간에 기획이 뒤집어져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을 한번도 겪지 않은 온라인 게임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라그나로크2
라그나로크2

이런 많은 금액을 투입해 게임을 만들어도 마케팅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현재 게임트릭스 기준 PC방 인기 게임 순위를 보면 리그오브레전드, 피파온라인3, 서든어택, 리니지, 스타크래프트, 아이온, 던전앤파이터, 블레이드 & 소울, 디아블로3, 워크래프트3로 10위권이 형성되어 있다.

이 게임들의 공통점은 전세계 시장을 휩쓴 대작 게임이거나, 벌써 수년간 서비스를 통해 탄탄한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있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온라인 게임은 게임 내에서 형성된 커뮤니티로 인해 다른 게임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신작 게임은 이들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더 탄탄한 콘텐츠와 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다.

리그오브레전드
리그오브레전드

참고로 게임 마케팅이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 광고는 위치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가장 비싼 위치인 메인 광고는 1시간당 약 200만원에서 3000만원 정도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고 네이버 광고만 1주 돌려도 1억은 우습게 날아간다. 요즘 모바일 게임 때문에 각광받고 있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는 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1개당 160만원에서 600만원 정도다.

즉, “자주 눈에 보이네. 광고 좀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임이 있다면 10억~20억 이상의 마케팅 비용이 투입됐을 확률이 높다. 여기에 인기 있는 연예인이 포함됐다면 최소 몇 억이 더 추가된다. 넥슨이 국내 선보인 도타2의 경우 리그오브레전드를 꺾기 위해 지금까지 2년간 40억 이상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메이플스토리
메이플스토리

결국, 100억이 기본이 된 현재의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것은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또한 대기업 조차 위험도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온라인 게임 개발을 기피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아키에이지 개발 당시만 해도 창업투자사들이 온라인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모바일 게임의 흥행 이후 대부분 온라인 게임에 대한 관심을 끊는 상태다. 몇 십억의 투자 금액이 필요하고, 적어도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온라인 게임 대신, 금액도 적고, 투자 후 1년 이내에 성과를 볼 수 있는 모바일 게임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막대한 부담감이 게임 개발 자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 금액이 적을 때에는 다소 실험적인 도전도 해볼 수 있지만, 100억이 넘는, 다시 말해 회사가 휘청할 수 있는 금액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는 철저히 검증된 흥행 요소만을 쫓을 수 밖에 없다. 참신한 것을 개발해보고 싶다는 욕심보다 실패하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게이머들은 왜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완성도 높은 게임은 못 만들고, 양산형 for Kakao만 만드냐면서 국내 개발자들을 비하하고 있는 중이다. 게이머 입장에서는 좀 더 수준 높은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당연한 요구이겠지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개발자들은 억울함을 토로할 수 밖에 없다.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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