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게임 앞에는 청소년 인권이 없다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3부: 불합리한 정부 규제와 영향]
1화. 게임 앞에는 청소년 인권이 없다.

[본지에서는, 대형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한국 게임산업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고, 한국 게임사들에게 진정한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갈 권리를 가진다. (중략)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국가는 위의 정신에 따라 청소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청소년 스스로 행복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지난 1998년 10월에 개정된 청소년헌장의 일부로 헌장의 청소년 권리 대목에는 청소년이 여가를 누릴 권리 등 인격체로 존중 받을 권리가 명백히 명시돼있다. 이 헌장은 청소년에 대한 가정과 학교, 사회, 국가의 책무와 유기적인 역할을 규정하기 위해 모든 유관 부처가 강력한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청소년문제에 적극 대처할 방침으로 마련한 것이다. 물론 헌장이 법적으로 강제성을 띄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청소년 정책 주무부처와 청소년 대표들이 참여해 개정한 것임을 감안하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은 크다.

청소년헌장
청소년헌장

▲1998년 개정한 청소년헌장

하지만 적어도 게임 앞에서는 이 청소년헌장을 통해 언급된 인격체로서의 청소년도 여가를 자유롭게 즐길 권리를 가진 청소년도 없다.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인 '강제적 셧다운제'가 게임물을 대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지난 2004년 청소년보호위원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청소년마을 등의 단체가 청소년의 수면권 확보라는 명분으로 제안한 내용으로 결국 2011년 청소년보호법에 도입됐다. 이를 통해 청소년은 게임 앞에서만큼은 인격체로서 받는 존중 보다는 국가의 시스템 아래서 보호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이에 반발해 16세미만 청소년 자녀를 둔 김모씨와 게임업체 등이 인터넷게임 제공자의 직업의 자유, 청소년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부모의 자녀교육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으나, 2014년 4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7:2의 의견으로 '강제적 셧다운제'의 합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인터넷게임 자체는 오락 내지 여가활동의 일종으로 부정적이라고 볼 수 없으나, 우리나라의 높은 인터넷게임 이용률, 인터넷게임에 과몰입되거나 중독될 경우에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 및 자발적 중단이 쉽지 않은 인터넷게임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16세 미만의 청소년에 한하여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금지하는 것이 과도한 규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물론 청소년 보호는 국제 사회를 통틀어도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지만, '강제적 셧다운제'처럼 관련 당사자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헌재의 판결은 16세 미만 청소년을 인격을 가진 주체보다는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 시각 때문에 청소년 인권이 뒤로 밀려진 경우로 해설할 수 있다. 진정 '강제적 셧다운제'가 청소년을 우선에 두고 실시된 정책인지 의구심을 가져볼 수 있는 부분이다.

헌법재판소 이미지
헌법재판소 이미지

이 같은 헌재의 '강제적 셧다운제' 합헌에 대한 판결에 대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황성기 교수는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사례 연구회를 통해 "일반적으로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지위와 인권주체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갖는다. 그런데 여기서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청소년 개념과 인권주체로서의 청소년 개념과의 상호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인권주체로서의 청소년 개념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즉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청소년 개념은 인권주체로서의 청소년 개념을 보완하는 의미로 설정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청소년 개념과 인권주체로서의 청소년 개념과의 상호관계를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청소년의 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며 "헌법재판소의 합헌의견에 대해서는 인권주체로서의 청소년의 헌법적 지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심층적인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합헌의견은 인권주체로서의 청소년과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청소년의 상관관계에 대한 검토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합헌의견은 단지 청소년은 자기행동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의미에 대한 판단능력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능력이 성인에 비하여 미숙한 존재라는 점만을 전제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소년을 하나의 인격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강제적 셧다운제'의 경우 단순히 청소년 인권 문제를 넘어 '가족의 자율성', 타 문화산업과의 차별, 국가의 후견주의에 의한 성인 여가 활동의 제한까지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문화부 여가부 이미지
문화부 여가부 이미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는 부모가 요청하면 '강제적 셧다운제' 적용을 해제하는 방식을 발표했다. 황성기 교수는 이 경우에도 이도 기본이 '강제적 셧다운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성기 교수는 "부모가 요청하면 해제하는 방식은 기존의 방식보다는 완화된 방식이다. 하지만 기본이 '강제적 셧다운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새로운 방식도 기본적으로 청소년을 인권 주체가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의 문제는 철저하게 부모와 자녀간의 커뮤니케이션 및 교육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국가가 함부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번에 새롭게 발표한 방식은 여전히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우선이고, 부모의 요청이 후 순위라는 점에서 '가족의 자율성'이라는 명제에 반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게임물과 비(非)게임물과의 차별 요소도 존재한다. 헌재는 '강제적 셧다운제' 합헌 판결 과정에서 "인터넷게임은 주로 동시 접속자와 상호교류를 통한 게임 방식을 취하고 있어 중독성이 강한 편이고, 정보통신망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이면 언제나 쉽게 접속하여 장시간 이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다른 게임돠 달이 인터넷게임에 대해서만 강제적 셧다운제를 적용하는 것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물 등급표
게임물 등급표

이러한 판결에 대해 황성기 교수는 "게임은 방송, 영화, 비디오물, 음악콘텐츠와 마찬가지로 문화콘텐츠에 해당한다. 동일한 문화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강제적 셧다운을 게임에만 적용하고 있는 것은 방송이나 타 기타 매체와의 관계에서 불합리한 차별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문화콘텐츠를 규제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바로 등급분류제도이다. 방송, 영화, 비디오물, 게임에 대해서는 이미 행정기관에 의한 등급분류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강제적 셧다운제는 등급분류제도가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화콘텐츠들 중에서 유독 게임콘텐츠에 대해서만 부가적인 중첩적 규제로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명제를 의미하는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강제적 셧다운제'의 합헌 판결은 청소년의 인격보다 보호를 앞세운 국가의 후견주의가 성인에게도 미칠 수 있다는 문제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웹보드게임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강력한 규제다.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처럼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에 대한 국가의 후견주의에 대한 논란은 법학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를 거쳐 꾸준히 이어져왔다. 다만 누구도 옳다는 답은 내릴 수 없다" 라며 "몇세기 동안 고민해 문제인 만큼 국가가 정말 나서서 국민을 위해 챙겨야할 문제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강제적 셧다운제'의 경우 국가가 오락의 도구인 게임에까지 나서서 어느 정도 시간을 정해서 하라고 하는 것인데, '강제적 셧다운제'를 넘어서 웹보드게임 규제까지 살펴보면 성인에게도 간접적으로 적용이 된다. 개인이 방안에서 즐기는 유희까지 국가가 나선다는 것이 정말 국가가 나서서 할 만큼 심각한지 한지, 다른 억제 할 수 없는 방법이 없는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국가가 취하는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이냐에 대한 답은 없지만,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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