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게임은 유해물질이 아닌 문화. 세계의 시선은 다르다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4부 :세계가 바라보는 게임
9화. 게임은 유해 물질이 아닌 문화. 세계의 시선은 다르다

[본지에서는, 대형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한국 게임산업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고, 한국 게임사들에게 진정한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럼 우리는 마약을 제조하는 마약상인인가요?”

한국의 미래를 이끌 IT 산업의 핵심, 전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한류의 대표주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온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지위가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정책으로 인해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게임을 마약, 도박, 음주와 함께 묶어 4대 중독물질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술 더 떠 황우여 신임 교육부 장관은 게임을 4대 악으로 규정하고,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 측 인사는 아니지만 카톨릭대의 이해국 교수는 마약을 빼더라도 게임은 중독물질로 꼭 들어가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게임중독법 토론
게임중독법 토론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게임은 마약보다 더 악질인 존재이니,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악의 축인 셈이다. 2012년 기준으로 전세계에 한국을 알린 문화 콘텐츠 수출액 46억1151만 달러 중 게임은 57%인 26억3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K-팝이 기록한 2억3500만 달러의 11배이며, 영화가 기록한 2000만 달러의 130배다. 이렇게 전세계에 한국을 성공적으로 알린 이들이 악의 축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이라 말하고 항상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미국과 유럽 강대국에서 게임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비교하면 더욱 처참해진다.

해외 이전을 고민하는
게임사들
해외 이전을 고민하는 게임사들

영국에서는 영국 문화를 드높인 사람들에게 대영 제국 훈장을 지급하고 있다. 이 훈장은 잘 알려진 그룹인 비틀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징하는 알렉스 퍼거슨 전감독,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인 조너선 아이브, 유명 기타 리스트 에릭 클랩튼 등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받아온 명예로운 훈장이다.

이 훈장의 수상자 리스트를 살펴보면 게임 개발자가 상당히 많다. 파퓰러스, 블랙앤화이트 등의 게임으로 유명한 피터 몰리뉴와 풋볼매니저 시리즈를 총괄한 마일즈 제이콥슨, 레이싱 게임 더트 시리즈로 유명한 코드마스터즈의 창립자인 데이비드 달링과 리처드 달링 형제, 풋볼매니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챔피언십 매니저의 아버지인 올리버 콜리어와 폴 콜리어 형제 등이 이 훈장을 수상했다.

영국의 세금 감면 정책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영국은 게임에 영국 문화를 충실히 담아 개발하면 제작비에 대해 25%의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게임이 영국의 문화를 전세계에 전파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정책이다.

러시아 정부 역시 게임은 엔터테인먼트이면서 동시에 애국심 형성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자국 게임 개발업체들의 애국적 게임 개발을 장려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역시 게임의 게임이 가진 문화적 파급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4 주제가로 그래미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퍼
틴
문명4 주제가로 그래미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퍼 틴

미국의 대중 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꼽히는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게임 주제가를 수상작으로 선정해 게임음악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시드마이어의 문명4 주제가 바바예투가 최우수 편곡 보컬상을 차지했으며, 2013년에도 댓게임컴퍼니가 개발한 저니의 음악이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또한, 미야모토 시게루, 시드마이어, 존 카멕, 사카구치 히로노부, 팀 스위니 등 많은 개발자들이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가 시상하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바 있다.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는 명예의 전당 외에도 미국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협회와 함께 예술의 경지에 오른 게임 그래픽을 선정해 매년 인 투 더 픽셀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인 투 더 픽셀 전시회
인 투 더 픽셀 전시회

이렇듯, 해외에서는 게임을 유해물질이 아닌 문화로 인정하고 대우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폭력적인 게임이나 과몰입 문제는 그들도 겪고 있는 문제이고, 그것에 대한 연구도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진행해왔지만, 마약과 다름없는 유해물질로 규정하고, 규제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유럽을 이끌고 있는 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가장 엄한 청소년 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청소년이 가장 많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인 게임 역시 판매 및 마케팅에 강력한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게임 정책은 청소년에게 연령대에 맞는 올바른 게임을 즐기게 하는 것이 중심이지, 나머지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청소년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독일에서 모바일 게임 회사를 설립한 JNJ 조성운 대표의 말에 따르면 독일은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가정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으며, 아이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그들의 취미를 공유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세계적인 게임쇼인 게임스컴에서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손을 잡고 관람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청소년을 올바르게 자라게 하는 가장 큰 해결책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부모들이 자녀들이 즐기는 게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관련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자녀들이 즐기는 게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미디어 소양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씁쓸한 것은 청소년 보호 정책으로 유명한 그들이 한국에서 청소년 유해물질로 지정된 게임을 규제가 없는 독일에서 마음껏 개발하라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게임중독법이 진정 청소년 보호가 목적인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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