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 상처투성이 한국 게임산업의 그늘 '게임위'의 역사

때는 2006년. 횟집 이름을 연상케 하는 한 성인 오락실이 전국의 도시와 골목 곳곳에서 성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빠칭코 시스템을 접목시켜 만든 게임기가 가득한 이 성인 오락실은 없는 골목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수를 불려나갔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각종 문제들이 수면위로 드러나며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 최고의 감사기관 '감사원'에서 전담팀이 만들어질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진행된 강도 높은 수사 끝에 그 심각성이 연일 대서 특필되며 국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한 때 전국을 뒤덮었던 이 오락실은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사행성 오락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전국을 뒤흔들었던 이 사건이 바로 게임업계에는 다시 없을 흑역사이자, 아직까지도 게임산업의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유해성'이라는 '주홍글씨'를 찍은 원흉. '바다이야기' 사태였다.

게임위
로고
게임위 로고

부실한 법안, 안일한 규제 등 '바다이야기' 사태는 당시 게임의 심의를 담당하던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했다. 이에 사회 각계 각층에서는 차별화된 게임 심사 기관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이에 정부는 게임 심의를 위한 새로운 기구를 창설하게 된다. 출범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게임물등급위원회(현 게임물관리위원회 / 이하 게임위)의 시작이었다.

2006년 10월 30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로 출범한 게임위는 방대한 문화 콘텐츠를 다루던 영등위와는 달리 오롯이 게임분야를 다루는 전문 심의 기관으로써 게임 심의절차와 기간이 매우 간소화되고 짧아져 게임업계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사행성 오락실의 경우 이전부터 게임업계의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 도박성 혹은 사행성 요소가 가미된 게임에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게임위의 모습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게임심의
표기방법
게임심의 표기방법

또한, '선정성', '폭력성', '공포', '언어의 부적절성', '약물', '범죄', '사행성' 등 지금의 게임 등급 심사 기준을 마련하고, 사행성 오락실의 단속에 나서는 등 게임위는 온,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게임 분야 전반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여담으로 등급 심사 기준 7종에 모두 해당되는 전관왕에 오른 최초의 게임은 락스타게임즈의 '레드데드리뎀션'이다. 이후 락스타게임즈는 'GTA5'를 통해 다시 그 기록을 갱신한다.)

이렇듯 게임 심의를 통해 나날이 발전해 가던 국내 업계의 행보에 맞추어 영향력을 넓혀가던 게임위였지만, 시작부터 지니고 있던 한계가 서서히 발목을 잡았다.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게임의 관리를 위한 임시 정부기관 형태로 출발한 게임위는 소속 공무원 외 심의 예산이 출범 후 1년인 2007년까지만 책정되는 등 매년 기관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게 기관 운영에 어려움에 겪던 게임위는 점차 게임업계과 엇박자를 내기 시작한다. 2008년 12월 발표한 '등급분류 심의규정 개정안'이 그 시작이다. 게임위는 게임을 플랫폼에 따라 구분해 심의하던 방식을 PC와 콘솔, 포터블, 기타(IPTV, 플래시, 다운로드 등), 아케이드 등으로 세분화하는 동시에 이용형태, 장르, 한글화 등의 여부에 따라 각각 개별적으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새로운 '등급분류 심의규정 개정안'을 개정한다.

게임위
홈페이지
게임위 홈페이지

문제는 이 같이 심의 항목을 늘리는 동시에 수수료를 무려 2배 이상 증가시켰다는 점으로, 당시 성장기를 넘어 안정기에 접어든 온라인게임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부담을 증가시켜 물의를 빚었다. 심지어 2011년에는 업계의 반발 속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강행한 게임 등급분류 수수료 100% 인상안이 기획재정부로부터 '게임위가 쓰는 비용이 분수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크다'며 승인을 받지 못하고 무기한 유보되는 망신을 겪기도 했다. 게임업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밀어부친 안일한 대책이 역풍을 맞은 것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 디아블로
사태
게임물등급위원회 디아블로 사태

게임 심의에 대한 전문성 논란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 2011년 '디아블로3'가 무려 40일의 심의 기간을 거친 끝에 2012년 1월 간신히 청소년 이용불가(19세) 판정을 받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게임위는 디아블로3 심의 연장에 대한 그 어떤 이유도 공개하지 않아 많은 추측이 오갔고, 사태가 점점 길어지자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게임위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붉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2011년 1월 건물의 불법 증축으로 게임심의를 받지 못한 이른바 '주차장 지붕' 사건도 네티즌들의 공분을 산 사건 중 하나였다. 한 게임 개발자가 직접 게임위를 찾아가 등급 신청을 받던 중 자신이 임대한 사무실 건물의 주차장 지붕이 불법 건축물로 지정됐다는 이유로 게임심의가 취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임대 건물의 불법 여부와 게임 심의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직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 사건을 통해 게임위의 권위적이고 복잡한 절차의 게임 심사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고, 이는 곳 게임위에 대한 인식이 크게 손상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각종 홍역을 치르던 게임위는 스마트폰의 대두를 통한 게임 플랫폼의 다양화와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연거푸 보였으며, 2010년을 시작으로 민간 주도의 게임 등급 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게임 심의의 민간 자율화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하지만, 공공기관이었던 게임위는 이러한 시장의 요구에 따라가지 못했다.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는 2년 간 연장된 게임위의 국고지원 만료 시한을 두 달 앞둔 2011년 11월, 게임위를 영구 기관으로 변환하는 게임법을 국회에 제출하여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에게 큰 비난을 받는 등 게임 심의의 민간 이양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게임위
부산
게임위 부산

결국 2012년 12월 31일까지 게임 심의의 민간 이양 작업을 마칠 것을 약속한 게임위는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기존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재산과 권리의무를 승계하며, 청소년이용불가 게임물의 등급분류 업무 및 사후관리 업무를 관리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로 흡수된다. 2006년부터 위태하게 명맥을 이어온 게임위가 새로운 '게임위'로 재 탄생한 것이다.

또한, 게임 심의의 민간 이양도 이어져 2014년 5월 게임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민간등급분류기관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가 전체 이용가 및 청소년 이용가에 한해 심의를 맡는 것으로 게임 등급 심사 기관이 나뉘게 됐다.

이렇듯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변신을 꾀하며 국내 게임 산업에 땔래야 땔 수 없는 존재로 자리잡은 게임위. 하지만 기관 명을 바꾸며 야심찬 계획을 밝힌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논란에 휩싸인다. (이쯤 되면 연례행사라고 할 만하다.)

2014년 8월 회식자리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을 발단으로 가해자 4명 및 담당 부장 등 총 5명의 직원이 해임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 간부가 여직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수 차례 한 것이 드러나는 등 그동안 게임위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이 연이어 밝혀져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12월 23일에 불법게임 심의를 통과시켜줄 공무원을 소개해주겠다며 업자에게 2천3백만 원을 받은 사건이 들통나기 까지 했다. 특히, 이 사건은 '반부패 결의대회'를 시행한 다음날 벌어져 '이런 기관에 어떻게 심의를 맡길 수 있겠나'는 불신이 팽배해졌다. 이전부터 벌어진 각종 사건과 성추행에 뇌물수수까지 게임위는 공직자가 저지를 수 있는 대부분의 범죄가 발생한 기관이라는 불명예를 달성한 셈이 됐다.

이처럼 게임위는 출범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는 논란에 휩싸이며, 게임 업계에 영향력을 미쳐왔다. 분명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았고, 아직까지도 존폐 논란에 휩싸이는 등 그 위치가 여전히 불안하지만, 한국 게임 산업의 심의를 관장하는 기관으로써의 역할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2015년 새해. 과연 게임위가 들려줄 새로운 뉴스는 '비보'일지 '낭보'일지 앞으로의 모습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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