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진화 속에 피어난 대전격투의 꽃, 철권

지금이야 스마트폰에서도 등장할 만큼 이제는 여느 게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3D 게임이지만, 단지 3D로 개발됐다는 이유 하나로 전세계 게이머들이 떠들썩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네모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듯한 투박한 캐릭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난해한 액션까지 당시 3D 게임들은 지금의 게임과 비교하면 실소가 나올 법한 수준이었지만, 2D 게임만 보고 자라던 게이머들이 처음 접한 3D 게임의 세상은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이는 스트리트파이터2의 흥행으로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대전격투 게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3년 세가 AM2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3D 대전격투 게임 버추어파이터가 출시되어 큰 흥행을 거두자, 대전격투 장르에 급격한 3D의 물결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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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년 후인 1994년 남코(현 반다이남코)에서 당시 3D 기술력을 모두 접합시킨 한 대전격투 게임을 출시한다. 지금까지도 최고의 대전격투 게임으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철권 시리즈의 첫 시작이었다.

처음 세상에 등장한 철권은 3D 대전격투의 첫 스타트를 끊은 버추어파이터에 이은 후발주자로 여러모로 비교되는 처지였지만 한 단계 발전된 그래픽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완전한 폴리곤(3D 그래픽에서 물체를 표현할 때 쓰이는 기본 단위인 다각형- 네이버 지식백과)으로 구성된 버추어파이터와는 달리 폴리곤을 기반으로 한 ‘텍스처 맵핑’을 더해 보다 부드럽고 수려한 그래픽을 구현한 것이다.

여기에캐릭터 별 ‘스토리’를 도입하여 캐릭터마다 중간 보스가 다르게 등장하는 등 색다른 요소를 곁들여 게임의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이 스토리라인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괴짜 디렉터 ‘하라다 카츠히로’ 사단의 손을 거치며 흡사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이 더욱 자극적이고, 극적으로 변화해 시리즈를 거듭하며 게임의 또 다른 인기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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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95년 등장한 ‘철권2’는 전작보다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히트 시리즈로써의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한다. 전작의 2배에 달하는 20여명 이상의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물론, ‘나락 쓸기’, ‘붕권’ 등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 기술들이 완전히 다른 모션으로 등장해 게임 속에 자리를 잡았고, ‘스토리라인’ 역시 강화돼 더욱 다양한 중간보스들과 캐릭터별 ‘멀티 엔딩’을 지원하는 등 여러모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지금도 많은 격투 게임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는 철권의 게임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도 바로 이때로 전국의 오락실에는 서로의 기술을 탐색하고, 교류하는 등 일종의 ‘사교의 장’의 열리기도 했다.

또한, 철권2에서는 한국인 캐릭터 백두산이 등장했는데, ‘왼발과 오른발’ 두 가지 버튼으로도 콤보가 발생되는 덕에 당시 초등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렇듯 철권2는 일반적인 대전격투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 팬덤’을 만들어 냈으며, 게임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만화책 ‘파이트볼’(저자 박철호)이 등장하는 등 국내의 게이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와 함께 ‘철권2’는 철권 시리즈 특유의 괴이할 정도로 독특한 스토리가 자리잡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주먹과 주먹이 마주치는 대전격투 장르의 게임에서 ‘레이저빔’을 쏘는 ‘데빌’이 최종보스로 등장하는가 하면 악마를 막기 위해 천사(엔젤)가 참전하고, 엔딩에서 주인공인 카즈야가 헤이하치를 절벽에 떨어트리는 엔딩이 등장하는 등 그야말로 막장스토리로 게이머들을 경악시켰다. 여기에 곰(쿠마)와 로봇(잭-2) 등 동물과 로봇이 정규 캐릭터로 편입되어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여담으로 방어가 불가능한 이 데빌의 ‘레이저빔’ 때문에 전국의 오락실에서는 철권 꿈나무들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점점 인지도를 높여가던 철권 시리즈는 1997년 발매된 3편에 이르러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전작인 2편에서 무려 19년이나 지난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철권3’는 대다수의 캐릭터에 연륜이 쌓이게 됐고,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미시마 카즈야’가 사망 처리되고, ‘백두산’이 실종되었으며, 신규 캐릭터 ‘카자마 진’과 ‘화랑’이 등장하는 등 캐릭터 설정에 대대적인 변화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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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스템 역시 변화하여 여타 3D게임에 등장한 ‘횡 이동’이 처음으로 등장해 게임 플레이에 다양성을 높였고, 몇몇 캐릭터의 대회 출전이 금지될 정도로 악명 높았던 캐릭터 밸런스도 3편에 이르러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철권3’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단어 중 하나인 ‘초월이식’으로 게이머들을 놀라게 한 것 작품이기도 하다. 아케이드 기판(오락실 게임기)로 먼저 출시된 게임을 가정용 게임기(PS, 세가세턴 등)로 출시하는 것을 일컫는 ‘이식’은 게임기가 아케이드 기판의 성능을 따라가지 못했던 90년대에 흔히 있었던 것으로, 게이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물론, 개발사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업 중 하나였다.

때문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철권3’의 가정용 게임기 ‘이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철권의 개발진은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출시한 버전에서 약간의 폴리곤 조절 및 그래픽 다운을 제외하고 거의 완벽히 게임을 ‘이식’하는데 성공해 큰 충격을 주었다. 더욱이 단순히 게임을 가정용 게임기로 구동시킨 것을 넘어 엔딩과 오프닝 등의 콘텐츠를 추가하는 등 그야말로 ‘초월이식’이라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남코는 철권3가 발매된 지 불과 1년만인 1999년 ‘철권 태그토너먼트’를 출시하며 다시 한번 격투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사실 ‘철권 태그토너먼트’는 흔히 말하는 ‘윗선의 강요’로 만들어진 게임인데, 이런 게임들은 흔히 실패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철권의 개발팀은 ‘콤보로 띄운 상대를 다른 캐릭터가 와서 마무리 한다’는 식의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 ‘철권 태그토너먼트’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 게임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당시 완성도가 높았던 ‘철권3’를 기본으로 제작된 게임의 틀에 캐릭터의 교대 공격을 통한 자연스러운 콤보가 구현되는 등 외전 격인 ‘철권 태그토너먼트’는 본편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정도로 폭발적인 성과를 거뒀다.(이후 남코 경영진에서 ‘철권4’보다 ‘철권 태그토너먼트2’를 먼저 개발하길 바랬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연이은 성공으로 승승장구를 이어나간 철권 시리즈였지만 2001년 발매된 ‘철권4’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전작까지는 스테이지의 좌우 한계가 없이 무한으로 이동할 수 있던 것과는 달리 시리즈 최초로 스테이지에 ‘벽’ 개념이 도입됐다. 이를 통해 데드오어얼라이브, 버추어파이터 등에서나 볼 수 있던 ‘벽 콤보’를 비롯해 고저차를 활용한 콤보 게임 시작 전 움직이기 등의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이들이 모두 일종의 꼼수로 이어져 재미를 크게 반감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더욱이 아케이드 시장의 불화로 게임기가 많이 보급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게이머들의 관심도가 낮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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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작이 발매된 지 3년만인 2004년. 남코는 ‘철권5’를 출시하며 다시 한번 철권의 명성을 높이는데 성공한다. 전작의 실패를 거울삼아 ‘철권4’에서 적용한 시스템 중 상당수를 삭제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철권 태그토너먼트’의 장점을 흡수한 완전히 새로운 게임성을 선보인 것이다. 특히, 이식판인 PS2 버전의 경우 이전의 철권 시리즈(1,2,3편)을 즐길 수 있는 파격적인 특전과 특별 콘텐츠가 포함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아케이드 시장의 급속한 침체로 철권은 ‘이식’이 아닌 가정용과 아케이드 버전이 각자 발매되기에 이른다. 2000년대 중반에는 아케이드 시장의 침체에 맞물려 대전격투 장르가 다소 마니악한 장르로 여겨지며 이전만 못 한 인기를 구가했다. 이 시기에 철권의 메인 개발자 하라다 카츠히로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선보이겠다”고 말하며 철권의 차기작을 예고한다.

새로운 캐릭터의 모션, 신 캐릭터 대거 추가, 레이지 모드(HP가 일정 이상 줄어들면 대미지가 높아지는 시스템), 기존의 콤보보다 더욱 강력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바운드 콤보 시스템 등 다양한 시스템을 추가하며 완전히 새롭게 무장하고 2007년에 출시된 ‘철권6’가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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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게임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그래픽을 선보이던 전작과 달리 ‘철권6’는 그야말로 눈길을 사로잡을 수 만한 수려한 그래픽으로 게이머들의 시선을 붙잡아 놓았으며, 더욱 화려해진 격투 이펙트, 총 50명에 이르는 캐릭터 등 그야말로 차세대 대전 격투 게임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더욱이 전국의 게이머들을 하나로 묶는 ‘철권넷’을 2008년에 도입하여, 카드를 통해 자신의 전적을 쌓아나가고, 포인트를 모아 캐릭터의 복장을 바꿀 수 있는 등 ‘멀티플레이’ 요소를 듬뿍 담아 게임의 풍토를 ‘혼자’가 아닌 ‘여럿이’ 즐기는 것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국내에서 철권의 e스포츠 리그가 활성화 된 때도 바로 ‘철권6’부터로 전국의 강자들이 모여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관객들에게 선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운드 콤보의 추가로 인해 철권6는 기존의 국민 격투게임이라는 칭호와는 어울리지 않는 평가를 받게 되기도 한다. 콤보를 사용하는 난이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진 덕에 게임의 플레이 난이도가 덩달아 상승한 것이다. 이로 인해 초보자와 고수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게 됐으며, 가뜩이나 아케이드 시장이 침체기에 빠지며 줄어든 대전격투 장르의 팬들이 철권 시리즈에서 이탈하는 상황도 벌어지게 된다. 더욱 심오한 대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대중성을 잃게 만든 바운드 콤보는 철권 태그 토너먼트2까지 이어지게 된다.

철권 태그 토너먼트2는 철권 태그 토너먼트의 아성을 이어갈 작품으로 기대를 받았다. 역대 최다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욱 뛰어난 그래픽으로 시각적인 만족까지 더할 것으로 기대받았다. 하지만 바운드 콤보에 태그 콤보까지 더해진 철권 태그 토너먼트2는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호쾌한 대전을 할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시리즈라는 평가도 동시에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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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15년 오랜 공백을 깨고 드디어 철권의 새로운 시리즈 ‘철권7’의 모습이 공개됐다. 철권7에는 크라우디오 세라피노, 카타리나 아우베스 등 2종류의 신규 캐릭터가 추가됐으며, 위기의 상황에서 한 번에 역전을 노릴 수 있는 ‘레이지 아츠 시스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동시에 공격을 할 수 있는 ‘파워 크래시 시스템’이 추가되어 색다른 공방전을 유도한 모습이다.

여기에 언리얼엔진4를 사용한 역대 최고 수준의 그래픽과 지난 몇 년간 논쟁의 대상이 됐던 바운드 콤보 시스템이 완전 삭제에 가까울 정도로 축소되며 최근 몇 년간 잃었던 대중성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9일에는 대대적인 ‘철권7 론칭쇼’가 진행돼 전국 9대 게임장의 대표가 참석한 것을 비롯해 유명 연예인들의 참여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5년 처음 세상에 등장해 20여년간 꾸준히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전 세계게이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철권 시리즈.

과연 신작 ‘철권7’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해 또 밤을 지새우게 할지 전 세계격투 마니아들의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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