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누구의 잘못인가? 게임 역사상 최악의 사건 '아타리쇼크'

2014년 4월 미국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발굴이 진행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을 받은 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주도한 이 발굴 작업은 소식을 듣고 온 수 많은 관중들과 함께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뉴멕시코 의 한 황량한 광야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아타리쇼크
아타리쇼크

오래된 유적도, 역사적인 전투도 없던 곳이었지만 발굴단의 장비가 계속 땅을 파내려 가자 시멘트 덩어리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광경을 지켜본 관중들은 마치 역사 속 유물을 발굴해 낸 듯이 환호했다. 시멘트 밑에 있던 것은 바로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게임팩. 게이머들에게는 '도시전설' 정도로만 취급되던 '아타리쇼크' 시절 벌어진 'ET' 게임팩 매장설(設)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수십 개의 기업이 도산하고 하나의 산업이 송두리째 없어지며,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된다. 흔히 경제 위기라고 말하는 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다. 이런 위기가 찾아오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과열된 투자와 잘못된 경제 시스템으로 벌어진 일이 대다수 인 것이 사실.

미국 게임시장의 구조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1983년 북아메리카 비디오 게임 위기' 이른바 '아타리쇼크'로 불리는 사건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아타리쇼크'는 당시 '39억 달러'에 이르던 미국 콘솔 시장의 규모를 불과 2년 만에 '1억 달러'로 추락시킨 것을 비롯해 수 많은 기업들이 '줄도산'을 면치 못하는 등 게임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시절로 꼽히는 사건이다.

수천 개의 게임팩을 땅에 묻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최악의 시절로 기억되는 '아타리쇼크'. 그렇다면 이 게임산업의 대공황은 과연 어떻게 미국 콘솔시장을 휩쓸게 되었을까?

1980년대 북미 게임시장 특히, 콘솔 기기 시장은 그야말로 황금기라고 불릴만큼 역대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지금이야 소니의 PS,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닌텐도의 Wii 등 통용되는 콘솔기기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지만, 당시 북미 게임시장은 '게임을 고르는 것 보다 게임기를 고르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수 많은 기기들이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아타리 5200
아타리 5200

'아타리 2600, '아타리 5200', '벨리 아스트로케이드', '콜레코비전', '콜레코제미니'(아타리 2600의 호환 게임기), '아르카디아 2001', '페어차일드 채널F' 등 각 회사별로 10여 종이 넘는 콘솔기기들이 거실을 차지하려 격돌했고, 이 과정 속에서 매출의 규모는 날로 커져 게임은 영화산업에 맞먹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런 춘추전국시대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회사는 바로 '아타리'였다. 미국 전역에 동전이 모자라게 만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퐁'을 개발한 전설적인 인물이자 '게임의 아버지'로 불리는 놀런 부슈널이 세운 게임사 '아타리'는 게임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개발자들을 통해 게임을 공급받고 자신들이 출시하는 지금의 서드파티 형식의 게임 판매 방식을 통해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게임을 프로그램에서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시킨 인물이기도 한 놀런 부슈널은 새로운 사업분야인 콘솔 게임기개발에 착수하게 되지만 이내 자금난에 허덕이고 만다. 자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던 놀런 부슈널 앞에 나타난 회사는 게임시장의 성장에 눈독을 들이던 영화사 '워너브라더스'였다.

아타리 2600
아타리 2600

이 과정 속에서 놀런 부슈널은 워너브라더스로부터 약 2천 8백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돈을 투자 받았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마침내 1977년 세계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탑재한 게임기 '아타리 2600'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당시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영화 2~3편을 제작할 정도(지금도 명작으로 꼽히는 벤허의 제작비가 1,500만 달러다)의 자금을 투자한 워너브라더스. 하지만 불과 2년만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정도로 큰 수익을 올리는 게임시장의 맛을 본 경영진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자 게임산업에 깊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당시 게임기는 있으나 자금 부족으로 인해 소프트 개발에 차질을 겪고 있던 놀런 부슈널에게 접근한 워너브라더스는 '아타리'의 완전 인수를 추진하여 결국 자신들의 자회사로 두게 된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 부흥기와 함께 '아타리'는 매년 최고 매출을 경신해 나갔고, 한 때 워너브라더스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을 게임부문에서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매출은 곧 비극으로 바뀌고 만다. 워너브라더스의 경영진은 1980년대에 들어 게임사업의 수익을 유지시키기 위해 자칭 '전문가'들을 경영진으로 투입시켰는데, 문제는 이 전문가들이 게임에 완전한 '문외한'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아타리게임들
아타리게임들

금융, 건설,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연봉을 받던 이들에게 게임은 그저 돈이나 버는 사업 중 하나에 불과했고, 자신들이 출시하는 게임에 대해 플레이는커녕 어떤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게임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더욱이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자들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해 개발자들에게 복장규정을 적용하고, 정시 출퇴근을 강요하는 등 일반 기업과 똑같은 회사원으로 취급했으며,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도록 하는 등 그야말로 푸대접을 일삼았다.

이에 많은 개발자들이 '아타리'의 정책에 반발하며 이탈하기 시작했고, 이 중에서는 창립자인 놀런 부슈널도 있었다. 이렇게 회사를 나온 이들은 직접 자신들의 회사를 창립하기에 이르러 1980년대 미국에는 신생 게임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이렇게 설립된 회사 중 한 곳이 바로 엑티비전이다)

경직된 회사분위기, 핵심 인력의 이탈 등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아타리'는 점점 수준 낮은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는 게임사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더욱이 '아타리 2600'의 성공을 지켜본 후발주자들이 잇따라 새로운 콘솔 게임기를 선보이며, 거센 공세를 시작했으며, 우수한 게임 타이틀 역시 다른 콘솔기기에도 함께 보급되면서 '아타리'는 점차 매출 감소를 겪기에 이른다. 이에 아타리의 새로운 경영진들은 새로운 전략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검증 단계를 거치지 않고 되도록 많은 게임을 아타리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이었다.

유명 개발자도, 이를 검증할 만한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게임들의 수준이 높을 리가 없었고 개발하기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게임은 그야말로 뻔한 게임들 투성이였다. 게임이라는 산업의 이해 없이 단순히 수치와 자본의 논리로만 수익을 얻으려 했던 경영진들의 어처구니 없는 기획이었다.(여러 매체에서 다룬 '역대급' 최악의 게임들 대부분이 바로 이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설상가상 콘솔 게임이 돈이 된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분야의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게임부를 신설해 게임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콘솔 게임 개발사는 그야말로 우후죽순 생기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XX건설, 스타벅X, 페리카X, KT&X 등의 회사들이 게임개발에 뛰어든 셈. 여기에 '아타리'에서부터 시작된 물량전은 다른 게임사들에게도 확대되어 일단 게임만 만들면 무조건 출시되기에 이르게 되고 이렇게 시장에 등장하는 게임의 질은 계속 하락하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다름아닌 게이머들이었다. 표지나 게임소개를 보고 만만치 않은 가격을 치르고 게임을 구매했건만, 다른 게임들과 비슷한 심지어 버그투성이인 게임을 접한 게이머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더욱이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포르노 게임이 등장하는 등 도를 넘은 부도덕함에 질린 게이머들은 점차 게임사들을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ET 게임 이미지
ET 게임 이미지

그러던 1982년 스티븐스필버그 감독의 'E.T'가 흥행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이에 주목한 워너브라더스의 경영진은 황급히 천문학적 규모로 E.T의 판권을 사들인 후 크리스마스 시즌 전까지 '아타리'의 이름을 단 게임을 출시하라고 지시한다. 문제는 이 지시가 불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5주 앞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것.

5주 만에 블록버스터 급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는 황당한 지시를 받은 '아타리'의 개발진은 최선을 다해 게임을 개발했지만, 날림으로 개발한 게임에 재미 요소가 있을 리가 없었고, 온갖 버그와 저질 콘텐츠로 가득한 '게임 E.T'는 곧 대규모 반품 사태를 겪게 된다.

수요에 대한 분석 없이 영화의 명성을 빌어 성공을 확신하던 경영진의 오판 덕에 게임팩을 이미 수백 만장 이상 찍어낸 상황. 판매는 고사하고 대규모 반품 사태 덕에 악성 재고를 떠안게 된 아타리의 경영진은 이 수 십 만장의 '게임 E.T'를 뉴 멕시코에 있는 자신들 소유의 땅에 몰래 묻어버리기에 이른다. 더욱이 엄청난 손해를 겪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많은 저질게임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재고로 남은 게임들을 덤핑 할인하여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게임사들 모두 이 할인 경쟁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20TH 미국 게임 시장 동향
20TH 미국 게임 시장 동향

수익만 쫓는 게임사들, 게이머들의 실망만 안겨주는 부분별 한 저질 게임의 난립, 그리고 전문성의 부족과 기업윤리의 실종. 당시 북미의 콘솔 게임 시장은 온갖 문제로 가득차 곪을 대로 곪아 있었고 게이머들은 이들 게임을 완전히 외면하기 시작했다. 물량은 넘치는데 수요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자 게임사들은 연이어 문을 닫기 시작했고, 매출은 그야말로 곤두박질쳤다. 또한, 콘솔 게임의 붐이 일던 당시 참여한 여러 업종의 투자사들은 수익이 감소되는 것을 보자마자 자본을 황급히 회수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더 많은 게임사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며 '줄도산'하기 시작했다. 게임업계의 대공황 '아타리쇼크'가 시작된 것이다.

'아타리쇼크' 이후 39억 달러 수준까지 육박하던 시장이 불과 1억 달러로 추락할 만큼 미국의 콘솔 게임업계는 그야말로 '전멸'했다. 이 폭풍에 살아남은 몇몇 게임사들은 애플2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게임을 출시하기에 이르렀으며, 해외의 유명 게임들을 수입해 공급하는 퍼블리셔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사실상 콘솔 게임 개발사는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내수 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관대함 그리고 막강한 구매력까지 북미의 게임시장은 해외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존재였으며, 북미 콘솔 개발사가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자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닌텐도 게임
닌텐도 게임

이 무주공산(無主空山)에 가장 처음 발을 디딘 회사가 바로 패미컴(북미명 NES)를 앞세운 닌텐도였다. 닌텐도는 이전까지와 차원이 다른 수준의 게임들을 선보이며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어 북미 시장에 진출한 세가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미국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석권했다. 이런 구도는 2000년대 들어 마이크로소프트가 Xbox를 내놓기 전까지 이어졌으며, 85년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사실상 일본 게임사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닌자', '전국시대', '기모노' 등 일본 문화코드를 듬뿍 담은 게임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미국의 청소년 혹은 성인 게이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유입되는 결과로 이어졌으니, 북미 콘솔 시장에서 벌어진 '아타리쇼크'의 최대 수혜자는 일본 게임사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아타리쇼크'는 전문성을 잃어버린 경영진의 그릇된 방향성, 저질 게임의 난립, 도덕적 해이, 윤리의식의 부족 그리고 수익만 쫓은 게발사들의 부도덕함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되며 벌어진 사건이다.

몇몇 게이머들은 이 '아타리쇼크'를 현재 국내 게임산업에 빗대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비슷한 온라인게임, 동일한 방식의 모바일게임 등에 실망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소개했듯 한국의 게임사들은 과거 80년대 북미 콘솔 게임사들 같이 게임의 문외한도, 도덕적 해이도 없는 순수 개발사들이 가야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태다.

비록 예전과는 달리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게임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이 같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임 개발자들이 지금도 게임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게임산업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며 게임업계 전체에 경종을 울린 '아타리쇼크'. 과거를 봄으로써 앞으로의 일에 준비하듯, 과거의 일들을 반면교사 삼아 다시 이런 참사가 게임산업에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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