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아타리쇼크에서 피어난 불굴의 게임사 '액티비전'

때는 1979년. 당시 세계 최고, 최대의 게임사로 군림하던 아타리의 경영진이었던 앨런 밀러와 프로그래머 데이비드 크레인, 레리 카플란 그리고 밥 화이트 헤드는 회사의 CEO 레이 키사르를 찾아가 개발자들의 처우를 높여달라고 요청했다.

앨런 밀러: "우리들은 게임 디자이너입니다. 음반에 제작자들의 이름을 넣듯이 우리가 만든 게임에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더 많은 수익을 가질 수 있도록 수익률을 재분배 해주십시요"

1970년대 게임 회사에서는 수백 수천 달러의 수익을 벌어도 개발자는 단 한 푼의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거대 게임사였던 아타리는 출시한 게임에 개발자들의 이름을 싣지 못하게 한 것은 물론, 별도의 인터뷰도 금지할 정도로 당시 게임 개발자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했다. 앨런 밀러는 바로 이러한 개발자들의 처우를 향상시키고, 자신이 만든 게임에 이름을 넣을 수 있도록 하는 지금으로써는 아주 당연한 대접을 요구한 셈이었다.

하지만 아타리의 대주주 워너브라더스의 경영진이 CEO로 임명한 레이 키사르는 게임에 대해 완전한 문외한이었고,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개발자들의 요구를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망언’으로 거절했다.

레이 키사르: " 게임기의 카트리지를 바꾸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게임 디자이너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때 당신들은 '수건 디자이너'와 다를 바 없습니다"

게임산업에 단 1%의 이해도 없던 레이 카사르의 이러한 망언은 이들에게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앨런 밀러와 3명의 개발자는 곧바로 회사를 나와 1979년 10월 1일 새로운 게임회사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액티비전 로고
액티비전 로고

이 회사가 바로 전세계 FPS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콜오브듀티의 퍼블리셔이자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 최고의 게임사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는 Activision(액티비전)이다.

세계 최초의 게임 서드 파티(다른 회사 제품에 이용되는 소프트웨어나 주변 기기를 개발하는 회사- 출처 네이버사전)이기도 한 액티비전은 현재 게임 시장에서 PC, 콘솔을 가리지 않고 막강한 파워를 뽐내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매년 세계 최고 판매량을 갱신하고 있는 콜오브듀티 시리즈부터, FPS 멀티플레이의 붐을 일으킨 퀘이크 시리즈 그리고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프로토타입까지 액티비전은 매년 게이머들을 열광시키는 게임을 선보이며 EA, 유비소프트, 블리자드와 함께 대표적인 게임사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중이다.

위에서 설명 했듯이 액티비전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아타리’와의 불화였다. 심지어 회사의 이름인 액티비전(Activision)도 활성화(active)와 텔레비전(television)을 결합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아타리(Atari)보다 전화번호부에 더 먼저 이름이 나오기 위해 만든 것일 만큼 아타리 수뇌부에 대한 액티비전의 창업 맴버들의 증오심은 엄청났다.

피트폴
피트폴

하지만, 지금의 액티비전이 있도록 한 게임 중 상당수는 아이러니 하게도 아타리의 게임기 ‘아타리 2600’에서 등장했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82년 발매된 ‘피트폴’이다. ‘아타리 2600’으로 출시된 ‘피트폴’은 온갖 함정으로 가득한 정글에서 탈출하는 모험가를 다룬 게임으로, 다양한 장애물과 미로를 피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식의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작품이었다.

특히, 당시 쓰레기에 가까운 게임을 무수히 쏟아내던 아타리에서 기존 게임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뛰어난 스테이지 구성과 액션을 선보인 ‘피트폴’은 아타리 2600 게임기로 출시된 게임 중 2위에 해당하는 총 4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그야말로 대 히트를 기록했다.(1위는 700만 장을 판매한 ‘팩맨’)

하지만 1982년은 세계 게임업계의 대공황 ‘아타리쇼크’가 북미의 콘솔 게임시장을 휩쓸던 시기로, 수 많은 회사들이 도산하고, 북미에 생존해 있는 콘솔 게임사들은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줄도산을 면치 못했던 때였다.

이에 액티비전은 새롭게 북미 게임시장을 접수한 닌텐도, 세가와 같은 일본 회사들에게 게임을 공급하는 동시에 퀘이크, 둠 시리즈를 개발하던 ‘id소프트’의 퍼블리싱을 진행하는 등 약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콘솔, PC분야를 가리지 않고 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점차 몸집을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선보였지만 액티비전에서 출시한 게임 중 유독 인기가 높았던 장르는 바로 액션이었다. 퀘이크, 둠, 맥워리어 시리즈의 성공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함과 동시에 막대한 수익을 거둔 그들은 액션 장르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2000년대 들어 PC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차세대 게임기 시장이 열리자 새로운 액션 게임 타이틀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레이더에 포착된 게임사가 바로 ‘인피니티 워드’였다. 당시 콘솔과 PC로 출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던 ‘메달오브아너: 얼라이드 어썰트’를 개발한 ‘2015’는 새로운 전장을 배경으로 게임을 만들자는 파와 계속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들자는 파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의견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 2차 세계대전파 22명은 결국 다른 회사를 창립하기에 이르는데 이 회사가 ‘인피니티 워드’의 시작이었다.

콜오브듀티 이미지
콜오브듀티 이미지

액티비전은 이 신생 회사에 주목해 자금을 지원해주고, 독점 퍼블리싱 계약을 맺으며 아낌없는 지원을 해 나갔다. 그러던 2003년 콜오브듀티의 첫 작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연속되는 성공을 통해 콜오브듀티는 전세계 게이머들이 열광하는 FPS 프렌차이즈 게임으로 성장해 나갔다.

혼자서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분대단위의 전투, 영화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던 전투를 보다 생생하게 재현한 드라마틱한 연출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까지. 콜오브듀티는 총싸움으로 점철된 FPS 장르에 드라마틱한 연출과 심도 깊은 스토리를 선보이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성공은 바로 매출로 이어졌다. 시리즈가 발매될 때 마다 매출을 갱신한 콜오브듀티를 통해 액티비전은 단숨에 세계 최대의 게임사로 발돋움했으며, 이에 만족하지 않고 트레이아크, 자사의 게임 개발사 슬레지해머 등의 개발사를 통해 미래와 과거를 오가는 콜오브듀티 시리즈를 선보이며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로고
액티비전 블리자드 로고

그러던 2008년 액티비전은 세계 게임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을 터트린다. 바로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등의 게임을 통해 국내에서 수 많은 팬들 거느린 블리자드와 액티비전이 하나의 회사로 합쳐지며 ‘액티비전-블리자드’라는 거대 게임사로 변신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에 전세계 게이머들을 경악했다. 바로 디아블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콜오브듀티가 하나의 회사 그룹에서 출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뿐만 아니라 수 많은 명작 게임의 개발사 블리자드와 퍼블리셔로써 큰 성공을 거둔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이 대규모 인수 합병의 이면에는 블리자드의 모기업이었던 비벤디 게임즈가 있었다. 비벤디 게임즈는 보다 안정적인 게임 타이틀을 위해 액티비전에게 접근했고, 많은 자금 확보를 위해 이 같은 대형 계약을 승락하기에 이르렀다.

블랙옵스
블랙옵스

이 회사의 시너지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2010년 9월 18일 블리자드에서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를 발매하며,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다시 한번 스타의 재미를 선사한 것에 이어 2010년 11월 16일 ‘콜오브듀티: 블랙옵스’가 하루만에 700만 장 판매라는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며 초대박을 친 것이다.

여기에 블리자드의 대표 MMORPG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확장팩 대격변의 출시까지 이어지며, 액티비전-블리자드는 2010년에만 무려 43억 달러(한화 약 4조 7천억 원)으로 추정되는 매출을 올리는 등 세계 게임업계의 공룡으로 자리잡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규모의 게임사의 주주로 있던 비벤디 그룹의 장 르노 포르투 회장이 2012년 돌연 무려 80억 달러(한화 약 9조원)에 육박하는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지분 61%를 판매하겠다는 선언으로 게임업계를 혼돈에 빠트린다.

이 같은 비벤디의 행보에 대해 2010년 이후 지속적인 수익감소를 거두던 두 회사의 가치를 재보기 위함이라는 설과 예술, 통신 등의 분야에 집중하기 위한 비벤디 게임즈의 행보라는 설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이 같은 선언은 전세계 거대 게임사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매각 설에 중국의 텐센트, 미국의 EA와 마이크로프스트 그리고 한국의 넥슨 컴퍼니(NXC)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서 자금력이 충분한 게임사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모두 80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에 고개를 저었다. 높은 금액에 회사를 넘기려는 비벤디에게는 최악의 결과였다.

결국 비벤디는 공개 매각으로 자신들의 지분을 판매했고, 이에 액티비전과 블리자드는 비벤디의 지분 중 각자 분량을 인수하며 독립 회사로 다시 출범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액티비전은 무려 3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아타리쇼크와 일본 개임사들의 창궐 그리고 새로운 플랫폼의 도래와 거대 회사로의 변신 등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으며 자신들의 확고한 영역을 쌓아가고 있다.

10여년 동안 그저 그런 서드파티에서 이제는 세계 최대의 게임사로 거듭난 액티비전. 앞으로 막강한 프랜차이지를 다수 보유한 이 회사가 어떤 행보를 걸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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