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 야구 시즌 개막 특집 한미일 야구게임 열전- 미국편

흔히 야구는 인생과 비교된다. 어찌 보면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공을 받아쳐야 하는 단순한 '공놀이'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는 수 많은 데이터를 기초로 선수를 기용하고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 난무하는 등 양 팀의 머리싸움이 결합된 치열한 전쟁이 펼쳐진다.

더욱이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라는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인 선수 '요기 베라'의 말처럼 아무리 점수차가 많이 난다고 한들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에도 기회가 남아있는 것처럼 야구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인생과 비교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스포츠이기도 하다.

비록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에 비해 국제 경기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등 축구보다는 국제무대에서 마이너 종목으로 취급 받고 있지만,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한미일 3국에서는 여느 구기종목을 압도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포츠인 것이 사실.

이 같은 모습은 야구를 소재로 한 게임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수 많은 전략과 다양한 룰을 지니고 있는 야구의 특성상 야구 게임 중 상당수는 가장 두터운 마니아 층을 보유한 이들 한미일 3국에서 집중적으로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이제는 열혈 야구 팬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야구게임들. 이에 게임동아에서는 꽃피는 4월과 함께 찾아온 야구 시즌 개막을 기념해 지금까지 게이머들의 머리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한미일 3국의 야구 게임들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 이 게임을 기억하면 당신도 ‘아재’? 야구 게임의 기틀을 세운 작품 ‘하드볼’>

‘인기 스포츠 = 게임 등장’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을 지닌 게임업계에서 엄청난 팬들을 보유한 야구는 외면하기 힘든 매력적인 콘텐츠였고, 이에 당시 게임 산업의 태동기였던 80년대에는 수 많은 야구게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구 게임은 당시의 기술력으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운 장르였고, 곧 어설픈 게임 플레이와 부실한 그래픽 등 실망스러운 망작들을 쏟아내기에 이른다.

하드볼
하드볼

그러던 1985년 야구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하드볼’을 시작으로 야구 게임은 스포츠게임의 주류로 떠오르게 된다. 아콜레이드에서 개발하여 아타리의 게임기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하드볼’은 당시 메이저리그의 중계 카메라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게임 진행과 함께 타자의 타격과 투수의 투구를 보다 세밀하게 구현하여 이전까지의 야구 게임과 차원이 다른 플레이를 선보였다.

더욱이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단순히 하나의 팀에서 야구 경기를 하는 것을 넘어 이적시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트레이드 하고, 새로운 선수가 등장하는 경영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도입됐으며, ‘에디트 시스템’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선수의 능력치를 설정할 수 있는 등 ‘하드볼 시리즈’는 당시 게이머들에게는 ‘야구 종합 선물세트’와 다름 없는 게임이기도 했다.

하드볼
하드볼

이러한 모습은 1995년 발매된 ‘하드볼5’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드볼5’는 야구의 맥을 짚어주는 해설을 도입해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게임 플레이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당시 선수들 대다수가 포함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등 레전드 메이저리거들을 만날 수 있는 ‘레전드 모드’가 더욱 강화되어 전설들과 현재의 선수들이 함께 경기를 펼치는 ‘꿈의 리그’를 구현해 놓았다. 이를 통해 ‘하드볼5’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5년 동안 수 많은 게임을 제치고 야구 게임의 ‘원 톱’으로 군림하게 된다.

뛰어난 그래픽을 바탕으로 4방향으로 조작하는 타격 시스템과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투수 별로 구현된 다양한 구종, 그리고 선수들을 영입하고 방출하는 시뮬레이션 모드까지 현재 등장하는 대다수의 야구 게임들은 ‘하드볼’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드볼’은 야구 게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하드볼5’ 이후 아콜레이드는 연이어 실망스러운 게임을 선보였고, 이에 핵심 개발진이 이탈하기 시작하며 결국 ‘하드볼6’를 끝으로 오랜 시간 게이머들에게 즐거움을 준 ‘하드볼’ 시리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 3D 시대의 뜨거운 포문을 열다! ‘하이히트 베이스볼’>

3D 기술이 게임업계를 휩쓸던 2000년. 기술의 발전과 더욱 강력해진 콘솔 기기의 성능을 바탕으로 야구 게임 역시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작품이 주를 이루게 된다. 1999년 처음 3DO에서 출시되어 큰 인기를 얻은 ‘하이히트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이하 ‘하이히트 베이스볼’)이 그 대표적인 예다. 90년대를 평정한 ‘하드볼’ 시리즈의 핵심 개발진이 모여 만든 ‘하이히트 베이스볼’은 이름 그대로(HIGH HEAT) 게이머들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이히트베이스볼
하이히트베이스볼

‘하드볼’ 특유의 방대한 데이터와 자유로운 게임 콘텐츠를 그대로 계승한 ‘하이히트 베이스볼’은 단순함과 박진감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잘 버무린 투구 & 타격 시스템을 통해 게임의 재미를 더했으며, 각 선수들 특유의 타격폼과 투구폼을 게임 내에 구현해 놓아 현실성을 더했다.

특히, 마치 실제로 구단 간의 트레이드를 진행하는 듯 한 선수 영입시스템은 이 게임의 백미. MLB에 소속된 팀과 선수들의 공식 라이선스를 확보한 ‘하이히트 베이스볼’의 트레이드 시스템은 선수들을 사고 팔아 자신의 팀에 부족한 포지션의 선수를 채울 수 있어 마치 브레드 피트 주연의 영화 ‘머니볼’ 같은 MLB 이적시장을 게임 속에서 구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에 당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있던 박찬호, 김병헌, 최희섭 선수를 만나볼 수 있어 ‘하이히트 베이스볼’을 통해 야구 게임에 입문하는 국내 게이머도 상당수 있을 정도였다.(특히, 김병헌 선수의 능력치가 상당히 높아 마무리, 중계, 선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투수의 보직을 소화할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하이히트 베이스볼
하이히트 베이스볼

이런 게임 콘텐츠를 통해 실제로 ‘하이히트 베이스볼’은 라이벌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EA의 ‘트리플 플레이’를 압도하는 인기를 누리며, 게임이 처음 등장한 1999년부터 2003년 발매된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4’까지 야구 게임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게임으로 기록됐다.(북미 기준) 하지만 2003년 개발사인 3DO가 파산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회사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하이히트 베이스볼’의 저작권은 마이크로소프트에 판매되고 만다.

새로운 야구 게임 시리즈를 만들겠다며 높은 가격에 ‘하이히트 베이스볼’의 판권을 구입한 마이크소프트. 하지만 핵심 개발진의 이탈과 마이크소프트의 외면이 겹치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하이히트 베이스볼’의 후속작은 등장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매년 시리즈가 다시 등장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지만 대부분 루머로 끝났다)

< 혁신적인 시스템을 선보였지만 EA의 탐욕으로 사라진 비운의 야구 게임시리즈 ‘MVP 베이스볼’>

축구부터 아이스하키까지 매년 수 많은 장르의 스포츠게임을 선보이는 일렉트로닉 아츠(이하 EA). 이러한 EA가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인 야구를 놓칠 리가 없었고, 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야구 게임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에는 ‘하드볼’, 2000년대 초반은 ‘하이히트 베이스볼’에 밀려 큰 힘을 쓰지 못하는 등 EA의 야구 게임들은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MVP 베이스볼
MVP 베이스볼

더욱이 EA의 야구 게임 시리즈인 ‘트리플 플레이’의 경우 수 많은 단점으로 인해 안타까운 수준의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 이에 EA의 개발팀은 심기일전하여 독창적인 인터페이스와 발전된 그래픽으로 무장한 새로운 야구 게임시리즈를 선보이게 되니, 이것이 바로 ‘MVP 베이스볼’이다.

‘MVP 베이스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독창적인 투구 & 타격 시스템이었다. 투구의 경우 투수가 보유한 구종(슬라이더, 포크, 체인지업 등)을 고른 후에 등장하는 ‘게이지’에 원하는 만큼의 파워 세기를 채우고, 총 아홉 칸으로 나눈 스트라이크 존에 던지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전까지 등장했던 게임의 투구가 단순히 구종만 선택하면 되는 식이었던 것에 반해 ‘MVP 베이스볼’은 구종을 선택하고 이를 정확히 던지는 단계를 포함시켜 더욱 세밀한 야구 시스템을 완성했다.

더욱이 타격 역시 아홉 칸으로 나뉜 스트라이크 존에서 타자가 강한 부분은 빨간색(핫 존)으로, 약한 순서대로 회색, 파란색(콜드 존)으로 구분되어 약점을 공략하려는 투수와 이를 받아 치는 타자간의 ‘수싸움’을 실감나게 구현해 놓았다.

MVP 베이스볼
MVP 베이스볼

이러한 게임성으로 수 많은 판매고를 올린 ‘MVP 베이스볼’ 시리즈는 라이벌 인 ‘하이히트 베이스볼’이 3DO의 부도로 사라지게 되자 더욱 기세를 올리기에 이른다. 그러나 앞으로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 만 같았던 ‘MVP 시리즈’는 돌연 시리즈의 출시가 중단되는 엄청난 사태를 겪는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EA와 2K의 불화 때문이었다.

사연인 즉, 2000년대 중반 EA는 경쟁 게임을 견제하고 스포츠 게임 시장을 독점하고자 북미의 인기 스포츠들의 라이선스를 확보하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에 아이스하키(NHL), 미식축구(NFL) 등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따내게 이른다. 문제는 이런 라이선스 독점 때문에 다른 게임의 출시가 불가능해졌다는 것. 가장 직격탄을 맞은 회사는 EA와 같이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게임 시리즈를 출시하던 테이크투(이하 2K)였다.

EA의 NFL 라이선스 독점으로 게임 출시가 막혀버리자 격노한 2K 수뇌부는 곧바로 MLB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신청했다. 이에 반발한 EA 역시 같은 내용의 계약을 신청했고, 격렬한 싸움 끝에 MLB 사무국이 2K의 손을 들어주면서 2K는 수년간 MLB 독점 계약을 맺게 되었다.

MLB 독점 라이선스를 보유한 2K는 EA에서 출시되는 모든 야구 게임에 선수들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고, 이 영향으로 ‘MVP 베이스볼’ 역시 더 이상 게임을 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온라인, 콘솔, PC로 등장하는 전세계 수 많은 야구 게임에 MLB 선수들이 등장하지만 독점권을 보유한 2K 측에서 이를 우회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EA에서만 선수들의 라이선스를 사용할 수 없도록 제제한 셈이다.

때문에 ‘MVP 베이스볼’ 시리즈는 불과 3년 만인 2005년 시리즈의 명맥이 끊기게 되었고, EA는 2K의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된 2013년까지 야구 게임을 출시하지 못했다. 이후 ‘MVP 베이스볼 시리즈’는 국내의 게임사 엔트리브소프트와 계약을 맺고 한국 야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MVP 베이스볼 온라인’으로 서비스되며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 매년 ‘더쇼 타임’으로 돌아오는 야구 게임의 절대강자 ‘MLB 더 쇼’ >

‘MVP 베이스볼‘ 시리즈의 출시가 중단되고, 이를 뒷받침 해줄 게임이 등장하지 않는 상황. 이런 북미 야구 게임시장에 혜성 같이 등장한 야구 게임이 바로 ‘MLB 더 쇼’ 였다.

더쇼15
더쇼15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이하 SCE) 산하의 북미 게임 스튜디오 ‘SCE 월드와이드 스튜디오’에서 2006년 처음으로 출시한 ‘MLB 더 쇼’는 단순히 치고 달리는 야구 게임을 그려낸 것을 넘어 각 구단 별 스타디움, 관중들 그리고 화려한 그래픽까지 게이머들이 열광할만한 콘텐츠를 듬뿍 담아내며 출시와 동시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MLB 더 쇼’ 시리즈는 타자와 투수의 ‘수싸움’을 보다 다채롭게 구현한 것은 물론, 다양한 방향의 타구 생성과 이를 쫓는 수비수들의 동작을 통해 마치 하이라이트 같은 장면을 연출하여 게임을 즐기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더해 진짜 야구 마니아들이 원하는 게임 시리즈로 성장해 나갔다. 특히, 선수 한 명을 육성하는 ‘로드 투 더 쇼’ 모드와 ‘온라인 프랜차이즈 모드’ 등 본 게임 외에도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이 게임을 오랜 시간 즐기게 하는 인기요소 중 하나다.

특히, MLB 기반의 야구 게임이 더 이상 출시되지 않는 사실상 독점으로 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시리즈를 갈고 닦으며 보다 발전된 게임을 선보여 ‘MLB 더 쇼’ 시리즈는 매년 올해의 스포츠 게임상을 휩쓰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때문에 ‘MLB 더 쇼’는 축구의 ‘피파시리즈’, 농구의 ‘2K 시리즈’, 미식축구의 ‘매든 NFL’과 함께 하나의 스포츠를 대표하는 게임 시리즈로 성장해 무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굳건히 게이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중이다.

더쇼15
더쇼15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오로지 PS진영 독점으로 출시된다는 것. 때문에 야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더 쇼’ 하려고 PS 산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PS2부터 차세대 기종인 PS4의 판매량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온라인, 모바일게임에 익숙한 국내 게이머들에게 ‘MLB 더 쇼’는 언어의 한계와 더불어 다소 인지도가 낮은 게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음 히스토리에서는 미국에 이어 현미경 야구의 본산지, 아케이드 야구 게임의 원조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야구 게임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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