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스토리] 엔씨소프트 연대기 3화 : 저작권 이슈와 글로벌, 그리고 리니지2의 시작

[게임동아에서는 2015년을 맞이하여 게임 기업의 탄생부터 성숙기까지 더한 연대기형 특집 '기업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첫 번째로 선정된 회사는 엔씨소프트로, 엔씨소프트의 과거와 현재를 비롯하여 정치, 인사, 경제 등 가능한 폭넓은 분야를 토대로 다루어볼 계획입니다.

- 기사 내 대화는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각색한 것으로 현실과 다소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엔씨소프트의 기업공개와 함께 크게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리니지'의 해외진출이었고, 또 하나는 기업공개와 함께 시작된 '리니지'의 원 저작권자인 신일숙 작가와의 소송 건 이었다.

신일숙 작가 쪽을 먼저 살펴보면, 지금은 많은 게임들이 만화나 영화 그리고 다양한 부분에서 IP를 활용하는 등 콜라보레이션이 활발했지만 초창기에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에 리니지를 활용한 타 분야와의 연결은 처음에 가까웠고 이때 생긴 소송은 현재의 저작권 문제 등의 시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리니지 만화
리니지 만화

리니지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신일숙 작가는 2001년 8월에 언론을 통해 입장문을 내놓았다. 당시 언론에 배포한 신일숙 작가의 입장문 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일숙 작가는 주식회사 엔씨소프트가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으나, 게임프로그램의 내용 중에 신일숙 작가에 의해 창작된 내용이 포함된 부분에 대해서는 신일숙 작가가 원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신일숙 작가의 만화작품에서 온라인 게임 “리니지”와 그 캐릭터들이 파생되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경제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원저작자의 의사에 반하여 캐릭터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법률에 위반되는 것은 물론 비도덕적인 행위입니다. 원저작자인 신일숙 작가로서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서비스 중단 및 손해배상 등 가능한 법적 대응을 고려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 드립니다."

이후 신일숙 작가는 입장문을 발표한지 13일 만에 태평양 법무법인을 통해 '리니지'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분쟁에 들어서게 된다.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캐릭터 사업, 그리고 원 '리니지'의 계약 당사자였던 아이네트 측에서 엔씨소프트로 '리니지'의 저작권을 가져올때 별도의 로열티 지급이 없다는 것, 해외 수출에 대해 서면 동의를 받지 않은 점 등이었다.

소송전에 들어가면서 전반적인 소송 결과는 엔씨소프트 측으로 기울고 있었으나, 4개월에 걸친 조율 끝에 엔씨소프트는 10억 원을 저작권료로 재조정하며 신일숙 작가와의 소송 건을 마무리하게 된다.

리니지 공성전
리니지 공성전

또 다른 건인 해외진출은 김택진 대표가 '리니지' 개발 초기부터 매우 중시하던 건으로 엔씨소프트의 사활을 건 행보 중 하나였다.

처음 시작은 미국이었지만, 기대하던 미국에서 '리니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에버퀘스트'의 열풍으로 3D 온라인게임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였고, 한국 정서에 맞게 전투와 경쟁이 주가 되었던 '리니지'는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었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북미 게이머들에게 혈맹 등 거대 커뮤니티 위주로 흘러가는 '리니지'는 생소하다는 평가를 더 많이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에 김택진 대표는 '리니지'의 차기작인 '리니지2'의 개발을 잠시 중단시키고 '리니지2'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송재경 씨를 해외 법인으로 보내는 등 승부수를 던지게 된다.

NDC 2013 키노트 스피커 배재현
부사장
NDC 2013 키노트 스피커 배재현 부사장

그러면서 창업공신 중 한 명이었던 배재현 씨(현재 부사장)가 송재경 씨 대신 2000년 12월에 '리니지2' 총괄로 임명되었고, 배재현씨는 만화 원작의 스토리와 선을 긋고 '리니지'의 시대 이전을 다룬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회사 내부에서 배재현씨가 총괄을 맡는 것이 무리라며 송재경 씨를 다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김택진 대표는 전권을 배재현 씨에게 주며 '리니지2' 개발의 모든 것을 맡기게 된다.

하지만 초반 엔씨소프트의 미국의 시장진입 실패는 꼭 실패라고 볼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엔씨소프트는 절치부심하는 모습을 보였고, 2001년 8월에 대만에 진출하면서 성과를 올리게 된다. 대만 시장에서 엔씨소프트는 '감마니아'를 현지 파트너로 선정하고 상호간에 마케팅 전략이나 기술 지원 등의 문제를 면밀히 협의해 나가 비교적 성공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 후 엔씨소프트가 다른 나라에 진출할 때 현지 언어구사가 가능한 직원들을 미리 선정하고, 해당팀별로 1년 이상의 내부교육을 시키는 등 해외 서비스에 대한 프로세서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택진
김택진

"리니지2는 정말 중요하다..잘한다는 사람은 전부 불러들이도록!"

해외 진출과 함께 '리니지2'의 개발이 진행되면서 엔씨소프트는 변화의 분기를 맞이했다. 김택진 대표는 '리니지2' 개발을 위해 김영진 나모인터렉티브 이사, 단군의 땅을 개발했던 김지호 마리텔레콤 이사 등을 영입하는등 개발자를 250명까지 늘렸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개발자를 모두 데려오는 등 강력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또 사업쪽으로도 MS나 기타 인터넷 기업에서 대거 잘한다는 사람들을 불러오면서 엔씨소프트 회사 자체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고 '리니지2'는 조금씩 모양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규 경력자와 기존 인력간의 불협화음도 보이는 등 순탄치 않은 부분도 눈에 띄었다.

리니지2 이미지
리니지2 이미지

불안요소도 없지 않았다. 일단 '리니지2'는 전작인 '리니지1'과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당시에는 온라인 게임 서비스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나 마찬가지였고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리니지1'이 언제까지 인기가 유지될지 판단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리니지2'와 관련해서 수많은 토론이 이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리니지1'과 '리니지2'의 게임 캐시를 연동해야 한다', ''리니지1' 게이머들과 '리니지2'는 확실한 차별화를 해야 한다' 등의 논의가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리니지1이 잘되는데 굳이 2를 지금 개발해야 하느냐' 등 회의론까지 불거져 나왔다.

실제로 당시 '리니지2'의 총괄 중 한명이었던 김형진 씨(현재 상무)는 "리니지2는 전작을 뛰어넘는 게임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다른 게임이 되어야 했다."며 당시의 고충을 설명하기도 했다.

리니지2 이미지
리니지2 이미지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리니지2'는 당시 PC 사양보다 너무 권장사양이 높았고, 엔진을 다루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2002년 도쿄 게임쇼에서 '리니지2'를 최초로 공개할때만 하더라도 김택진 대표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고 하니 당시의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에 대한 확신 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태라고 보는 게 적절했다.

이러한 김택진 대표의 고민은 2003년에 블리자드에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출시가 임박함을 알리면서 더욱 깊어졌는데,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방대한 세계관에 불안함을 느낀 김택진 대표는 배재현 씨를 불러 개발을 앞당길 것을 지시하면서 총력전을 펼치게 된다.

'리니지1'의 순항과 '리니지2'에 대한 새로운 도전.

하지만 이때 사실 엔씨소프트의 핵심 키는 바로 개발자들에게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리니지2'는 '리니지1'의 핵심 개발자들이 일부 참여하긴 했지만 대다수는 회사에 인정받고 싶은 젊은 천재 개발자들이 잔뜩 포진한 팀이었다.

이들 젊은 개발자들은 '보란듯이 성공해보겠다'며 이를 악물고 개발에 몰입했다. 2번 3번 게임을 뒤집으면서도 '우리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악바리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런 와중에 드디어 게임의 런칭일이 다가왔다.

"동시접속자가 얼마나 나올 것 같아?"

"7만 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뭐 임마, 장난하냐. 그 수치가 되면 소원이 없겠다."

실제로 엔씨소프트에서는 '리니지2' 런칭을 기념하는 행사를 남산타워에서 개최했고, 이 행사에서 직원들끼리 이런 얘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리니지2'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다만, 하얗게 불태워버린 개발자들의 노력이 정식 심판대에 오르는 중이었고, 엔씨소프트의 모든 직원이 이를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리니지2 클래식 서버
리니지2 클래식 서버

대망의 2003년 7월, '리니지2'가 정식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이러한 불안은 기우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리니지2'는 서비스 두달 뒤인 9월 말에 가입자수 100만 명을 돌파했고, 동시접속자 수 9만 명을 넘어서면서 '리니지'와 함께 새로운 전설을 시작하는 게임으로 그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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