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LOL' 그 숨가쁜 10년의 역사.

예전만큼의 명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한국은 아직도 '온라인게임의 강국'으로 통한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의 흥행을 시작으로 다양한 게임들이 등장해 국내 게임시장의 성장을 책임졌으며,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국내 게임사들이 세계 유명 게임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온라인게임 강국’ 한국에서 폭풍과도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또 앞으로도 누릴 예정인 게임이 해외 게임이 있으니 바로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다.

lol 메인
lol 메인

2011년 국내 게임시장에 상륙한 LOL은 온라인게임의 인기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PC방 순위에서 무려 145주가 넘도록 1위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게임.

LOL 이전에도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와 같이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 해외 온라인게임은 여럿 있었지만, 게이머들의 연령층이 한정된 기존의 온라인게임들에 비해 남녀노소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는 독보적인 사용량을 보인다는 점에서 LOL의 인기 돌풍은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 특유의 게임성과 대회에 특화되어 있는 경기 진행 방식으로, 수 많은 스타 프로게이머들을 배출해 내며 스타리그 이후 침체되어 있던 국내 e스포츠 리그를 활성화 시키며 하나의 세대를 대표하는 ‘팬덤’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도 LOL이 남긴 발자취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이런 LOL의 인기요소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바로 기존의 AOS(Aeon of Strife) 장르의 게임과는 차별화된 ‘단순한 게임성’과 수 백 종의 챔피언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술을 펼칠 수 있는 ‘전략 플레이’. 그리고 쉴 세 없이 변화하는 전략 전술 즉 ‘메타’가 바로 그것이다.

5대5로 진행되는 LOL은 암살, 탱커, 딜러 등으로 구분된 챔피언들의 조합과 게이머들 간의 호흡, 전략 플레이를 통해 승리와 패배가 갈리는 묘한 긴장감, 그리고 랭킹 시스템을 통해 게이머간의 급격한 수준차이를 자연스레 막아주는 ‘매치 시스템’까지, 빠르고 격렬한 게임 플레이를 선호하는 국내 게이머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고들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총 10인의 게이머가 한자리에 모여 게임을 플레이 하는 만큼 온갖 인신 공격과 패배를 부르는 해괴한 행위(트롤링)이 벌어지는 등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도 함께 하지만 말이다.

국민게임으로 불린 스타크래프트와 비교되며, 단순한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LOL. 과연 LOL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게임으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 때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롤드컵 컨퍼런스
롤드컵 컨퍼런스

라이엇 게임즈의 공동 창업자 ‘마크 메릴’과 ‘브랜든 백’은 ‘워크래프트3: 프로즌쓰론’의 ‘유즈맵’(게이머들이 직접 제작한 맵이나 모드)으로 제작되어 당시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던 ‘도타 올스타즈’에 주목했다.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고, 스스로 장르의 이름이 되어버린 전설의 게임 ‘Aeon of Strife’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도타 올스타즈’는 넥서스를 파괴하는 디펜스게임 장르를 바탕으로, 아이템 구매와 레벨업을 통한 캐릭터(챔피언)의 성장, 게이머의 스킬 컨트롤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지는 전투, 게이머들의 방해를 뚫고 타워를 공략하는 전략 플레이까지 기존 장르의 핵심 재미 요소를 모두 담고 있던 게임이었다.

더욱이 모드로 개발된 게임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아이스프로그’(IceFrog)와 ‘스티브 픽’(Guinsoo / 이하 ‘구인수’)을 통해 ‘도타 올스타즈’는 이미 아마추어 게임을 넘어 하나의 장르를 선도하는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던 상황.(사실 ‘구인수’는 일정 기간 ‘도타 올스타즈’의 밸런싱 패치를 맡았고, 전반적인 게임의 패치를 도맡아 하던 이는 ‘아이스프로그’였다. )

하나의 장르로써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 ‘도타 올스타즈에 주목한 ‘마크 메릴’과 ‘브랜든 백’은 게임의 개발자 중 한명인 ‘구인수’을 라이엇 게임즈에 영입하며 본격적으로 AOS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또 다른 개발자 ‘아이스프로그’는 ‘벨브’에 영입되어 오랜 개발 기간 끝에 ‘도타2’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전세계 e스포츠리그를 양분하고 있는 AOS 게임의 양대 산맥은 이렇게 하나의 게임을 통해 만난 두 명의 개발자로부터 시작된 셈이다.(‘구인수’는 이미 ‘스티브 픽’이라는 실명이 공개되었지만, ‘아이스프로그’ 만큼은 지금까지도 실명이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매진하던 라이엇 게임즈는 최초로 등장한 17명의 챔피언이 등장한 첫 번째 테스트를 시작으로 수 많은 패치와 베타 테스트를 끝으로 2009년 10월 27일 LOL의 정식 서비스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오랜 개발기간 끝에 모습을 드러낸 LOL이었지만, 서비스 초기에는 ‘도타 올스타즈’보다 낮은 인지도를 기록하며 ‘안습한’ 행보를 걷기도 했다.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스킬 시스템, 부족한 아이템 그리고 불안정한 챔피언간 밸런스까지, LOL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게이머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당시 범람하던 수 많은 AOS 장르의 게임 중 하나에 불과한 취급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라이엇 게임즈는 기존의 게임들에게서 문제시 되던 독단적인 밸런스 패치가 아닌 게이머들의 의견을 수렴한 패치와 챔피언 추가를 통해 점차 게임을 발전시켜 나갔고, 챔피언의 조합에 따라 게임의 흐름이 바뀌는 ‘메타’를 게임의 중심으로 등장시킴으로써 다른 게임과 차별화를 두었다.

더욱이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스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게이머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스킬로 변경시킴과 동시에 ‘타겟 스킬’과 ‘논타겟 스킬’을 단축키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캐스팅’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복잡하고 외울 것도 많은 AOS 게임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변화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서비스 초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위기를 겪은 LOL은 1년 후인 2010년 AOS 장르를 대표하는 게임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북미 게임 시장을 넘어 유럽 지역에까지 진출해 점차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여기에 2010년 7월 13일 시작된 ‘시즌1 패치’는 이러한 LOL의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랭크 게임’을 처음 도입한 시즌1 패치를 통해 게이머들은 단순히 반복되는 게임 플레이를 넘어 일종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상위 게이머들이 모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경기력이 향상되게 되어 ‘스타 플레이어’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2011년 2월 중국의 거대 기업 텐센트로부터 대대적인 투자를 받으며, 자금력을 확보한 라이엇게임즈는 지방 대회 수준에 불과한 LOL의 e스포츠 리그를 점차 확산시켜 전세계 팀들이 함께하는 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니 이것이 바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의 전신인 ‘리그오브레전드 시즌1 챔피언십’이었다.

북미의 강자 팀솔로미드(TSM)와 유럽의 강호 프나틱을 비롯해 총 8개 팀이 참가한 ‘리그오브레전드 시즌1 챔피언십’에서 맞붙은 팀들은 저마다의 전술과 메타를 통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으며, 지금의 ‘EU 메타’ 완성시킨 프나틱이 최초의 우승을 차지하며 전세계에 LOL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라이엇게임즈 브랜든 백
라이엇게임즈 브랜든 백

이 ‘리그오브레전드 시즌1 챔피언십’을 기점으로 LOL은 동남아,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 국가에 서비스를 하기에 이르며, 본격적인 아시아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2011년 7월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설립을 시작으로, 12월 28일 한국 서버 개설을 기념한 89번째 챔피언 한국형 챔피언 ‘아리’의 출시와 함께 국내 게임시장에 그 첫발을 내디뎠다.

서비스 일주일 만에 30만 명이 넘는 게이머들이 몰려들며 이미 큰 성공 조짐을 보인 LOL. 여기에 라이엇 게임즈는 한국형 챔피언 아리의 초기 6개월의 수익금을 한국에 기부하는 것을 비롯한 선행과 이전의 해외 지사들과는 다른 게이머 친화적인 운영으로 유난히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큰 지지를 받기에 이른다.

롤챔스 서머
롤챔스 서머

라이엇 게임즈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듬해인 2012월 3월 스타 이후 콘텐츠 부재에 고심하던 온게임넷과 손을 잡고 본격적인 e스포츠 리그를 신설하기에 이르니 이것이 바로 ‘LOL 챔피언스리그’(롤챔스)다. 스타리그의 부흥을 이끌었던 전용준 캐스터와 MBC게임에서 MSL과 워크래프트3 리그 중계로 잘 알려진 김동준 해설을 영입하여 리그 중계를 진행한 이후 스타 리그에 못지 않은 뜨거운 열기 속에 리그가 진행되기에 이른다.

구 cj 프로스트
구 cj 프로스트

특히, 이미 북미서버에서부터 명성을 드높인 1세대 LOL 프로게이머들이 대거 등장해 스타성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팬덤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들 프로게이머들의 경기에서 선보인 경기 전술과 전략은 일반 게이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 전국을 LOL 열풍에 휩싸이게 했다.

물론, 국내에서 LOL이 승승장구만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서비스 초기 가장 큰 문제였던 잦은 서버 불안은 수 많은 게이머들에게 비판 받는 부분 중 하나였으며, 수 많은 경쟁작들이 포스트 LOL을 외치며 도전한 것에 이어 2012년 6월 블리자드의 디아블로3,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소울의 거센 도전을 받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여기에 과도한 LOL 랭크 경쟁으로 인해 일정 금액을 받고 대신 ‘랭크게임’을 진행해주는 이른바 ‘대리 플레이’부터, 끊임없는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점쳐진 게임 플레이, 일부 그릇된 e스포츠 관계자들로부터 야기된 프로게이머 선수들의 처우 논란 등 LOL은 지난 3년간 언제나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서있었다.

하지만 신고제도를 비롯해 자체적인 자정작용을 거친 것은 물론, e스포츠협회 및 여러 단체들과 여러 방식을 통해 e스포츠리그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등의 움직임을 통해 게이머들부터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단일팀' 구성 및 '승강제' 도입 등 대대적인 e스포츠리그 개편으로 수 많은 우려 속에서 한 해를 맞이한 LOL. 하지만 해외 리그로 진출한 선수들의 선전과 새롭게 시작된 ‘롤챔스’의 흥행 등 지금까지 라이엇 게임즈의 선택은 성공적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MSI 1일차
MSI 1일차

지난 5월 8일부터 4일간 성공적으로 개최된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를 신설하는 등 여전히 그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라이엇 게임즈. 강력한 라이벌인 블리자드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 여러 경쟁작들의 출시가 예고되어 있는 가운데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으며 어느덧 중년 기업의 길로 접어든 라이엇 게임즈는 과연 2015년도 그 승승장구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앞으로의 모습이 주목된다.

게임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