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쓰는 사냥꾼 잔혹사, '블러드본'

사냥꾼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사냥터의 지배자, 사냥감을 노리는 절대권력자란 느낌이 강하다. 반대로 사냥감은 사냥꾼에게 잡히기 바쁜 희생양, 언제 잡혀서 죽을 지 모르는 약자란 이미지가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액션롤플레잉 PS4게임 '블러드본'에서는 다르다. 게이머는 사냥꾼으로서 게임의 주 무대 '야남'을 돌아다니지만,사냥하기는커녕 사냥당하기 바쁘다. 그 원흉은 인간으로서 이성을 잃고 야수로 변하는 전염병 '야수의 병'의 환자들로, 이들은 사냥꾼처럼 숨고, 속임수를 쓰며, 압도적인 물량과 힘까지 겸비해 게이머를 옥죈다. 고난이도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라면 몇 번을 죽어도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게이머에게 도움의 손길은 오지 않는다. '블러드본'의 개발사 프롬 소프트웨어는 PS3용게임 '데몬즈 소울'을 시작으로 '다크 소울', '다크 소울 2'에 이르기까지 게이머에게 악감정을 푸는 듯한 게임을 내놓기로 정평이 난 회사. 매복을 일삼는 일반 몬스터들과 게이머의 눈을 속이는 함정, 그리고 고난이도의 정점인 보스들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들을 '맨몸으로 벽에 부딪혀 피를 묻히는 게임'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블러드본01
블러드본01

그렇다고 '블러드본'을 혹평할 수는 없다. 어렵고 불친절하다고 하소연이 나올 뿐이지, 감정적으로 혹평을 내리기엔 '블러드본'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먼저 '블러드본'의 진입 장벽들은 게이머가 어떤 부분을 준비 못 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해당 장벽에 부딪친 게이머는 뭐가 부족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캐릭터 생성 직후에 죽어야 진행되는 스토리, 지도가 없어서 게이머가 직접 외워야 하는 길과 적의 위치, 계몽이란 능력치를 올려야 등장하는 캐릭터 성장용 NPC 등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블러드본'에 익숙해지기 한결 편해진다.

그리고 여기서 게이머들이 일반적으로 혹평하는 게임들과 '블러드본'의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난다. 혹평받는 게임에서는 게이머가 고난이도, 부조리하다고 느낄 부분을 그저 참고 플레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블러드본'에서는 다르다. 제작진은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굳이 하나의 방법으로만 장벽을 넘으라고 게이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전투 조작실력에 자신 있다면 다수의 강한 적이 몰려와도 한 명씩 유인해 철저히 약점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정면돌파하면 된다. 전투 조작실력이 모자라면 맵의 구조를 파악해 곳곳에 있는 지름길들을 찾아 최대한 전투를 줄이는 효율적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자력으로 난관을 헤치기 어려운 게이머도 다른 게이머가 남긴 수기를 참고하거나 PS4 기능 중 하나인 트위치 방송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를 따라 할 수만 있으면 언젠가는 난관을 넘게 된다.

블러드본02
블러드본02

그대신 게이머는 '블러드본'을 플레이하면서 도전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을 때마다 게이머가 게임 재화인 '피의 유지'를 잃어도 그 자리로 되돌아가거나 게이머를 죽였던 적에게 복수하면 되찾을 수 있는 점, 안전한 원거리 공격이 아닌 근접 전투 중 경직을 주는 용도로 써야 하는 총포류, 공격을 받더라도 그 자리에서 반격하면 HP 일부가 회복되는 리게인 시스템 등이 좋은 예다. 심지어 회피 동작인 구르기조차 앞으로 구르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반대로 최대한 안 죽고 손실을 피하려는 게이머에겐 가차 없어서 유일한 방어 수단인 방패는 총기 사용 불가와 스태미너 소모량 때문에 활용하기 어려우며, 괜히 뒤로 굴러서 거리를 벌려보려고 했다간 치명적인 광범위 공격을 받아 빨간 글씨로 나타나는 'YOU DIE'를 보기 십상이다.

블러드본03
블러드본03

이렇게 '블러드본'의 장벽들을 하나씩 넘는 게이머들은 비로소 게임의 주 무대 야남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여기는 돌아다니기 험난하고, 게이머에겐 악몽만 선사하는 지옥 같은 도시지만 게이머는 여유가 생길수록 안 보이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버둥 치는 피해자, 야남의 악몽에 휘말린 다른 사냥꾼들, 게이머에게 퀘스트를 의뢰하거나 힘을 보태는 NPC 등 여러 부류의 캐릭터들이 게이머와 함께한다. 그리고 게이머가 그 과정에서 마주할 '블러드본'의 본격적인 스토리 라인은 게이머의 예상을 아늑히 넘는 스케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블러드본04
블러드본04

아울러 '블러드본'에서는 전투 역시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야남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 것처럼 전투에서도 왼손, 오른손 각각 10가지가 넘는 가변형 무기들과 기타 소모품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무기마다 유효한 상황, 능력치 궁합, 강화 정도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 달라지므로 게이머가 좀 더 안전하게 야남을 돌아다니기 위해선 이 부분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특히, 믿을 것 하나 없는 '블러드본'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게이머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 바로 숙련된 전투방법과 장비들이다. 도전의욕이 꺾일 것 같은 게이머라도 좀 더 다양한 전투법을 숙지하면 분명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물론 기존 장벽을 넘고 익숙해질 때쯤엔 새로운 장벽이 나타나 게이머를 괴롭히므로 엔딩을 볼 때까지는 비슷한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한다.

블러드본05
블러드본05

정리하자면, PS4의 성능을 마음껏 활용한 그래픽과 사운드와 더불어 게이머를 시험하는, 그러나 절대 얕보지 않는 게임이 지금 여기 있다. 지금까지의 게임으로는 자신의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게이머,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긴장감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게이머들은 바로 '블러드본'을 플레이해보자. 게이머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다면 야남만큼 좋은 무대는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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