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원의 귀로 즐기는 게임] 아도겐, 어류겐 기억하시죠?

안녕하십니까. 게임음악 작곡가, 음악감독 최용원 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게임이 출시되는 요즘, 그 게임들은 저마다 '그래픽이 훌륭하다 밸런스가 잘 잡혔다. 타격감이 끝내준다. 어떤 엔진을 사용했다' 등의 여러 미사여구를 사용하지만, 정작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게 참 아쉬웠습니다.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서 눈으로, 손으로 느끼는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귀로 느끼는 즐거움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요즘 들어 시들해진(?), 게임을 귀로 즐기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게임부터, 아.. 이런 게임이 있었나 싶지만 우리의 귀를 사로 잡기에 충분한 게임사운드 이야기들로 한 회, 한 회를 채워나가려 합니다.

자, 그 첫 번째 순서로 제가 들고 나온 게임은 바로 '스트리트 파이터2' 입니다.

두둥…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게임, 어쩌면 다른 기사나 칼럼에서 우려 먹을 만큼 우려내어 사골만 남은 게임이지만, '귀로 즐기는 게임'이라는 주제와 완벽하게 부응하고, 제가 이 자리에 있게 한 게임 중 하나라는 데에 그 이유를 두었습니다.

스트리트파이터2
스트리트파이터2

오랜만에 저 화면을 보니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저를 중학교 때 처음으로 오락실로 이끈 게임입니다. 하교길에 분식집 만큼이나 지나칠게 없게 만들었던 오락실의 주인공. 저는 사실 게임을 잘(?)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을 따라 가면 플레이 할 때 구경을 주로 했는데요. 어느날 부턴가 '스트리트파이터2'가 저에겐 귀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캐릭터에 심어놓은 목소리!!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스트리트파이터2'의 게임 캐릭터들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화면을 직접 보지 않아도 '류와 혼다가, , 춘리와 켄이 한판 붙고 있구나 '를 알 수 있게 해준 게임캐릭터의 목소리들이 바로 '스트리트파이터2'가 우리 귀에 전해주는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내가 움직이면 캐릭터가 목소리를 냅니다. 내가 제대로 장풍 쏘면 '아도겐' 이라고 합니다. 그전에 보글보글에선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거품 무는 소리만 내고, 파이널 파이트에서는 랜덤으로 이얏! 소리만 냈던 주인공들이. 그들만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스트리트파이터2'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건 바로 그 목소리 때문일 겁니다.

스트리트파이터2
스트리트파이터2

유저들은 자기들이 들리는 대로 번역을 했습니다. 아도겐, 어류겐, 부다파이어 까지는 합의가 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정말 제각각입니다. 원래는 아도겐은 스트리트파이터2의 주인공인 류가 쓰는 장풍 기술인 파동권(波動拳)이 잘 못 알려진 것으로, 정확한 일본 발음은 하도켄( はどうけん ), 어류겐 역시 승룡권(乘龍拳)을 잘못 발음한 것으로, 정확한 일본 발음은 쇼류켄(しょうりゅうけん)입니다. 당시 기판과 스피커의 한계로 인해 정확한 음성이 들리지 않아 생기는 문제였습니다. 같은 문제로 인해 가일의 소닉붐은 라데꾸라는 국적불명의 이상한 단어로 알려졌고, 타츠마키 센푸우 카쿠라고 들렸어야 할 용권선풍각은 대부분 아따따뚜겐, 혹은 장난기 넘치는 친구들은 찹살떡두개라고 외치기도 했었죠.

공격할 때 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무섭게 공격을 하다가도 춘리는 이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꺄악”소리를 내며 소녀로 돌아갑니다. 마치 플레이어의 기분을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패배했을 때는 어떤가요? 저만치 내 캐릭터가 나가떨어지면서 쏟아내는 외마디 비명은 제 가슴을 찢어놓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캐릭터에만 목소리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스트리트파이터2'에는 게임의 진행을 이끌어주는 중계자가 있습니다. 우리의 행선지를 안내해주고, 라운드 원, 퍼펙트 등 게임까지 평가해주는 중계자 말입니다. 이 중계자의 쫀득한 목소리가 없었다면, '스트리트파이터2'는 정말 무미건조 했을 겁니다.

스트리트파이터2
스트리트파이터2

BGM으로 세계여행을!!
내가 플레이할 캐릭터를 고르면 대전을 벌일 상대와 행선지가 정해집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일본, 중국, 인도, 소비에트연방, 미국, 브라질 등 '스트리트파이터2' 의 배경이 되는 나라와 장소에 걸맞은 BGM이 플레이 됩니다.

아.. 지금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으로 보이겠지만 그 때 당시로는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배경과 딱 들어맞는 BGM은 플레이의 몰입감을 높여주고 조금만 게임을 하다보면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 당시는 FM음원이라서 괜찮은 소스를 구하기 힘들고, POLY(한번에 낼 수 있는 음원의 개수)의 제약도 있었을 텐데 어쩜 그리 맛깔스러운 편곡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춘리테마를 좋아합니다. 중국의 한 저자 거리 배경과 그 배경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템포는 BGM과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각국의 배경에, 캐릭터에 맞게 잘 갖추어진 BGM들은 소리로 세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마저 전해주는데, 이는 그전까지 '뿅뿅 '이란 의성어로 대신했던 게임사운드를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만들 수 있겠구나, 많은 악기에 대해, 장르에 대해 알고 있어야 이런 BGM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겠구나' 라는 도전의식을 갖게 하며 저를 지금의 자리에 오게 만든 견인차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스트리트파이터2
스트리트파이터2

'니가 지고 있어!!! , '힘을 내! 거의 다 왔어! ' 승부를 부추기는 후반BGM
플레이를 하다가, 나의 에너지나 상대방의 에너지가 70%정도 소진되고 나면 BGM이 빨라집니다. 이런 상황은.. 흡사. 보글보글(버블보블)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플레이어가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면 Hurry UP!!이라고 글자를 보여주며 고래를 보내고 빠른BGM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해옵니다. 하지만 '스트리트파이터2'는 한발 더 나아가 빨라진 BGM으로 플레이어를 우쭐대게 만들고, 승부를 부추깁니다. 마치 '필살기 한방이면 끝나! 힘을 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제 귀에는 빨라진 BGM은 확실히 멜로디라인보다 리듬쪽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오디오 편집에서 흔히 사용되는 Time Stretch(타임스트레치)기능으로 BPM만 빠르게 한 것이 아닌 어쩌면 리듬이 강조된 후반부BGM을 새로 편곡해서 삽입한 거 같습니다. 정말 이렇다면 대단한 디테일 인데요..

스트리트파이터2
스트리트파이터2

소리로 만들어낸 타격감!!
역시 대전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즐거움은 타격감 아니겠습니까!!!
'스트리트파이터2'는 소리로 타격감을 만들어낸 교과서 같은 게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타격감은 '애니메이션의 싱크(sync)와 소리의 인아웃(in/out)'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데, '스트리트파이터2' 이전의 게임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싱크에만 신경을 썼지, 소리의 인아웃은 굉장히 미흡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꼭 필요한 소리만 넣어서 타격감을 극대화 시킨 것'입니다.

혹시 기회가 되신다면,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그에 나오는 소리들을 자세히 들어보시면, 공격하는 족족 다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같은 공격이라도 그 소리가 나옴으로써 타격감에 방해가 되면 과감히 뮤트가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류겐으로 승부를 결정지을 때, 제 상대의 공격소리는 플레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사운드 플레이의 우선순위를 로직으로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결과 입니다. 타격감에 이런 비밀이!!

자 오늘은 귀로 즐기는 게임 첫번째 시간으로, '스트리트파이터2'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에게.. 이거 다 아는 얘기잖아.. ' 또 어떤분들은 ' 아.. 그랬었나' 라고 느껴지셨겠지만 게이머들이 게임의 즐거움을 귀로 느끼는 그날까지 … '최용원의 귀로 즐기는 게임'은 계속 됩니다.

스트리트파이터2
스트리트파이터2

* 스트리트파이터2
캡콤에서 1991년에 출시한 아케이드용 대전 격투 게임으로, 1987년에 출시됐던 1편의 단점을 모두 개선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격투가들과 대결을 펼친다는 컨셉은 그대로이지만, 무조건 류, 켄만 선택할 수 있었던 1편과 달리 류, 켄, 춘리, 가일, 장기에프, 혼다, 블랑카, 달심 등 8명의 캐릭터 중 한명을 선택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으며, 7명의 캐릭터를 이기면 숨겨져 있던 4대 천왕 발로그, 베가, 사가트, 바이슨이 등장했다. 조작이 난해했던 1편과 달리 커맨드 입력 시스템을 확립시켜 대전 격투 게임에 새로운 획을 그었으며, 4대천왕까지 모두 이기면 등장하는 엔딩 화면이 선택하는 캐릭터마다 다르게 등장하는 것 역시 이후에 등장하는 대전 격투 게임에 많은 영향을 줬다. 한마디로 대전 격투 게임의 교과서 같은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침체기를 걷고 있는 오락실은 스트리트파이터2 덕분에 다시 전성기가 돌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트리트파이터2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협력 플레이 위주였던 다른 게임과 달리 대결 구도였기 때문에, 사용자 회전율이 빨라 오락실 주인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았으며, 그로 인해한 오락실 전체가 스트리트파이터2로만 채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열기는 다른 게임으로도 이어져 아랑전설, 용호의권, 사무라이 스피리츠, 다크 스토커즈, 킹오브파이터즈 등 수많은 대전 격투 게임이 탄생해 90년대 오락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 글쓴이 : 최용원 음악 감독

최용원 음악 감독
최용원 음악 감독

산타뮤직 음악감독. 과거 인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OST를 프로듀스 했으며, 라그나로크 RWC2011 음악감독, 모나토 에스프리 음악감독, 칼 온라인 음악감독, 메가엔터프라이즈 사무라이쇼다운, 메탈슬러그, 킹오브파이터즈 작곡 및 음악 프로듀서 등 다수의 게임 음악에 참여했다. 현재 이 경험을 살려 게임 개발 전문 교육 기관인 스킬트리랩에서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게임음악과 사운드의 이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www.choiyong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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