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 '미니어처 게임'의 세계

"적과 아군의 군대를 형상화한 모형들이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을 따라 어지럽게 널려 있는 테이블. 적과 아군의 모형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전략을 설명하는 장군과 이를 지켜보며 목숨을 건 거대한 전투를 준비하는 부하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속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다. 통신장비가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의 전쟁에서는 적과 아군의 위치 등 전장의 상황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적의 군대와 아군의 군대를 형상화 한 모형을 실제 지형을 본 딴 테이블 위에 배치해 전략을 짜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 실제로 현재 군대를 보유한 대다수의 국가에서 시행되는 모의 전투 역시 이와 비슷하게 진행되며, 이 모의 전투를 실시간 게임으로 구현한 장르가 바로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미니어처게임
미니어처게임

이번에 소개할 '미니어처 게임' 역시 테이블 위 모형을 통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이른바 '워게임'에서 출발한 게임의 한 장르 중 하나다. 국내에는 생소한 장르인 '미니어처 게임'은 '게임'이 본격적인 형태를 이루기도 전인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장르로, 해외 게임시장에서는 ‘미니어처 워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미니어처 게임’은 흔히 보드게임의 하위 장르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보드게임이 보드판과 내용물만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것에 반해 ‘미니어처 게임’은 마치 실제 지형을 옮겨 놓은 듯한 테이블이 기본으로 구현되어 있어야 하며,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유닛 모형(미니어처)을 일일이 구매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서양 동화나 옛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주석 병정’이나 ‘군인 인형’ 등이 바로 ‘미니어처 게임’에 등장하는 유닛이다)

워해머
워해머

‘미니어처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거대한 전장(테이블)에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꾸밀 수 있는 유닛 모형을 통해 전투를 벌인다는 점이다. 이 ‘유닛 모형’들은 마치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의 카드처럼 다양한 룰과 설정을 지니고 있으며, 주사위를 던져 행동 방식을 정하고, 줄자를 이용해 이동 거리를 결정하는 등 게이머의 전략+주사위의 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전투를 펼칠 수 있다.

특히, 용이 등장하는 판타지부터 로봇이 등장하는 미래시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소재와 어떤 유닛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결과가 달라지며, 게이머가 직접 유닛을 옮기고 주사위를 던져 나타나는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단순히 마우스 클릭이나 지시만으로 게임의 결과가 결정되는 여타 장르의 게임들과는 다른 역동적이고 생생한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미니어처 게임의 특징이다.

워해머
워해머

다만, 하나의 구성품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과는 달리 ‘미니어처 게임’은 별도의 세트 팩을 구매해야 ‘유닛 모형’을 모을 수 있다. 아울러 어떤 유닛을 보유했느냐에 따라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조합이 달라져 여러 모형을 구매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미니어처 게임’을 즐기기 위해 최신 PC 1~2대를 맞출 수 있는 금액을 투자하는 게이머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사실.

더욱이 이들 유닛 모형들은 일체 도색 되어 있지 않아 게이머가 직접 유닛 하나하나마다 도색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게임을 하기 위해 모형과 테이블을 옮겨야 하는 등 게임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미니어처 게임’은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로 손꼽히고 있기도 하다.

미니어처 게임
미니어처 게임

‘미니어처 게임’의 시작은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 미니어처 게임은 유럽의 장교들이 다른 장교들과 전술 대결을 벌이기 위해 고안한 ‘워게임’에서 출발했는데, 기마병, 포병, 소총병 등의 병과를 인형으로 만들어 군대를 재현하고, 실제 전쟁과 유사한 규칙을 정해 놓아 이를 바탕으로 전투를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러한 ‘워게임’이 크게 유명해지자 국왕 혹은 장군 앞에서 전술을 시연하는 일이 잦아졌고, 자리가 자리인 만큼 격식에 맞추어 이들 유닛과 배경 역시 더욱 정교해지고 화려해져 실제 전장과 유사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미니어처 게임
미니어처 게임

현재의 미니어처 게임 방식을 처음 고안한 이는 ‘투명인간’, ‘타임머신’, ‘우주전쟁’ 등 명작 SF 작품의 저자인 ‘허버트 조지 웰즈’였다.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우리를 끝낼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인물이기도 한 ‘허버트 조지 웰즈’는 모호하고, 형식적인 ‘워게임’의 방식을 보다 간편하게 만들고,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도록 고안한 '리틀 워즈'(Little wars)를 1912년 영국에서 최초로 선보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허버트 조지 웰즈’는 영국 내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인물이었고, '리틀 워즈' 역시 이들 상류층을 위한 게임이었다. 한마디로 주사위를 굴리고 줄자를 사용해 유닛을 움직이는 등의 지금의 미니어처 게임은 점잖게 차려 입은 영국 신사들을 위한 놀이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만만치 않은 금액을 투자해야 하는 미니어처 게임은 당시 서민들이 즐기기 어려운 게임이기도 했다. 물론 금액에 대한 부담은 지금도 마찬가지)

이처럼 상류층을 위한 게임이었던 미니어처 게임은 점차 일반 시민들도 즐기는 하나의 게임 장르로 자리를 잡아 나갔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해상과 공중전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은 물론, ‘던전앤드래곤’으로 대표되는 롤플레잉 게임의 룰과 캐릭터가 등장하는 롤플레잉 미니어처 게임이 등장하기도 했다.

워해머
워해머

그러던 1980년 영국의 게임사 게임즈워크숍(이하 GW)에서 ‘미니어처 게임’은 물론 세계 게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타이틀을 출시하니 이 게임이 바로 ‘워해머’다. 무려 4만 년 후의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워해머 40K’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워해머 판타지’ 두 종류로 나뉘어 출시 중인 ‘워해머’는 세계 미니어처 게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RPG, 액션, 전략 시뮬레이션 등의 다양한 장르의 게임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지닌 게임이기도 하다.

이런 ‘워해머 시리즈’의 인기의 근원은 바로 오랜 시간 쌓여온 방대한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게임의 규칙과 설정이 그 어느 게임보다 중요한 미니어처 게임의 특성상 ‘워해머’ 시리즈는 독창적인 종족들의 격돌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수 많은 인물과 세력의 전쟁과 암투를 그려냄과 동시에 이를 미니어처 게임으로 구현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워해머
워해머

특히, 인간이자 신이며, 인간의 신이신 ‘지그마 헬든해머’가 세운 ‘인간 제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워해머 판타지’와 4만 년 후의 미래 시대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광신과 숭배 그리고 오로지 전쟁만이 펼쳐지는 암흑의 세계를 다룬 ‘워해머 40K’ 등 워해머의 세계관은 MMORPG에 못지않은 방대하고 치밀한 설정을 지니고 있어 이후 등장하는 게임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뛰어난 세계관으로 유명한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역시 워해머의 큰 영향을 받은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매년 개정을 통해 게임의 규칙을 변경하고 신규 유닛의 추가 및 구 버전 유닛의 삭제를 통해 끊임없이 게임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매년 대회를 개최해 해당 대회를 하나의 전투로 풀어낸 캠페인을 매년 선보여 게이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물론, 개정을 통해 가격이 상승하는 유닛의 가격과 세트가 아닌 나눠 팔기 식의 판매 정책 그리고 낮은 할인율 등 가격 면에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미니어처 게임’은 여느 소설 못지 않은 특유의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와 자신이 직접 유닛을 만들고 모아 전투를 진행하는 독특한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독특한 장르의 게임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워해머를 비롯한 ‘미니어처 게임’ 중 상당수는 국내 정식 출시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때문에 제법 많은 수의 한국 미니어처 게임 마니아들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해외 직구를 이용하는 것을 비롯해 영어로 된 룰북을 공부하면서 배우는 말 못할 고충을 겪는 이들 역시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사실.

향후 이들 미니어처 게임들이 국내에 진출해 한국의 게임 시장이 보다 활성화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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